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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Horror

어둠 속의 등불 _ 더 위치, 로버트 에거스 감독

그냥_ 2022. 4.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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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곽도원 대신 안야 테일러 조이가 나오는 곡성이 있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

『더 위치 :: THE VVITCH입니다.

 

 

 

 

 

# 1.

 

미국으로 이민 간 영국인 가족이 마을에 정착하지 못하고 추방됩니다. 없이 사는 와중에 금슬이 좋았던 부부는 애를 다섯이나 낳지만 줄초상 납니다. 막둥이는 까꿍 하다 행방불명 되구요, 쌍둥이 동생은 염소 밥 되고 엄마 찌찌는 까마귀 밥 되고 아빠는 흑염소한테 몸통 박치기 당하지만 큰 아들은 겁나 이쁜 누나랑 뽀뽀하고 죽어 여한이 없는지 하나님께 땡큐 합니다. 가족 잃고 실의에 빠진 미모의 큰 언니는 홀딱 벗고 댄스 동호회에 가입한 후 하하호호 웃으며 승천한다는 내용의 훈훈한 영화죠.

 

# 2.

 

믿음에 대한 영화들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허황된 믿음으로 도망가는 나약한 인간성을 염세적으로 조소하는 작품이라는 면에서 아무래도 곡성이 함께 연상되는 면이 있습니다. 다소 난해하고 중의적이면서 동시에 기만적이기도 한 방법론과 오컬트를 서브 장르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 또한 비슷하구요.

 

1692년 미국에서 벌어진 실화 세일럼 마녀 재판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환경만 가져왔을 뿐이라 관계는 옅습니다. 사회적-시대적 맥락에서 동떨어진 특정 가족 안에서 전개가 벗어나지 않으니까요. 마녀 재판에 얽힌 이야기를 몰라도 감상에 지장은 없습니다만, 겸사겸사 꺼무위키 찾아보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개막장 재판이라 꿀잼이거든요.

 

 

 

 

 

 

# 3.

 

영화는 주인공 '토마신'의 가족이 겪게 되는 음흉하고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나열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요. 적당히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 겁니다.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듯한 불길한 우연, 합리적이나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 발생한 오해, 비합리적이고 초현실적인 현상이죠.

 

부화를 앞두고 깨진 달걀, 반복적으로 등장해 정면 주시하고 달아나는 토끼, 염소젖에서 나오는 피 따위는 불길한 오컬트의 뉘앙스를 풍기기는 하지만 마녀와의 인과는 확인되지 않은 우연이기도 합니다. 사라진 엄마의 은잔에 관련된 아들과 아빠의 거짓말이라거나, 짜증 나게 구는 쌍둥이를 겁주기 위해 자신이 마녀라 말하는 토마신, 아이들이 자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딸을 출가시키려는 부모의 대화 등은 상황 자체는 합리적이지만 맥락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 발생한 오해들이죠. 아들과 쌍둥이의 발작 역시 마을 의사로부터 진단받지 못한 상황에서 마녀의 저주인 것으로 편리하게 해석되고 있구요. 눈앞에서 아이가 사라진다거나, 아들이 마녀와 만난다거나, 염소가 말을 하는 상황 따위는 비합리적이고 초현실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 4.

 

일련의 사건들의 공통점은 제한적 정보나 지식 등의 이유로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이해할 수 없고 분석할 수 없는 사건들의 반복은 의심과 불신의 싹이 되죠. 특히 엄마와 아빠는 다수의 우연과 오해를 지나는 동안 각자의 신앙을 크게 위협받습니다.

 

엄마는 '신과 악마는 존재하고 가족은 악마로부터 시험받고 있다' 생각하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의 존재 그 자체를 의심하게 됩니다. 세 아이가 죽은 날 밤, 그녀의 가슴을 검은 까마귀가 쪼는 모습이 연출되는데요. 까마귀로 표현된 악마가 피로 된 젖을 쪼아 먹는다는 것은 그녀의 심장에 악마로 인한 의심이 고통과 함께 깃들었음을 은유한다 이해할 수 있겠죠. 상대적으로 더욱 신실한 아빠는 '신과 악마는 존재하나 가족은 악마로부터 분리되어 신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생각하는데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토마신에게 악마가 깃들고 말았다 여기게 됩니다. 영화 초반 힘으로 제압할 수 있었던 염소가 갑자기 아빠를 공격해 살해할 수 있었던 건 마찬가지로 그의 신념에 악마가 깃들 허점이 생겼음을 은유한다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 결과는 가족의 비참한 파멸과 딸을 마녀로 만드는 것이었죠.

 

# 5.

 

어둠 속에서 작은 등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

숲 속에서 총 한 자루를 들고 있는 사람들의 영화입니다.

 

드넓은 어둠 속에서 손에 쥔 등불이 비추는 부분까지 밖에 보지 못하는 불완전한 존재들의 이야기입니다. 여백의 어둠을 의심과 불신으로 채울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존재들의 이야기입니다. 미로 같은 숲 속에서 가족으로 상징된 안식과 젖가슴으로 상징된 욕망을 찾아 헤매는 아둔한 존재들의 이야기입니다. 기껏 방아쇠를 당겨보지만 스스로의 눈을 때릴 만큼 자해적인 폭력으로 무장한 미숙한 존재들의 이야기입니다.

 

마녀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불완전하고 어리석고 아둔하고 미숙한 존재들이 자신의 손으로 악마와 마녀를 낳는 비극입니다. 영화 내내 고통받는 인간들과 달리 (다소 그로테스크하긴 하지만) 한데 모여 춤추는 마녀들의 모습은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 6.

 

몰이해가 마녀를 만드는 서사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관객은 그 어떤 등장인물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실제 관객은 각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전부 제공받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사라진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 지도 알고 있구요. 숲에서 길을 잃은 동생이 누구를 만났는 지도 알고 있습니다. 토마신이 스스로 마녀라 칭하며 동생을 겁 주게 된 맥락과, 은잔의 행방과 동생과 아빠의 거짓말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토마신의 출가를 논의하는 동안 아이들이 잠에 들지 않았다는 것도, 두 아이들이 숲으로 들어가게 된 전말도, 토마신이 실신한 동생을 발견하는 모습까지 모조리 알고 있죠.

 

그런 관객조차 염소의 입에서 직접 말소리가 나오기까지 마녀에 얽힌 실체를 확신하지 못하고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관객조차 혼란스럽다면 극 안에서 제한적인 정보를 받게 될 인물들의 혼란은 그보다 더 심한 것이었을 테니까요. 영화는, 만약 당신이 토마신의 가족이었다면 마녀가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누가 마녀인 건지 알 수 있었을까? 라 되묻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다시 당시의 마녀사냥이라는 것이 비이성적이라는 것과 별개로 당시의 사람들을 싸잡아 한심하고 바보 같은 사람이라 폄하하는 것은 정당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시대가 폭력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도덕성을 추궁하는 것은 정당한가 질문하던 아벨 페라라의 <어딕션>처럼, 시대가 광신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합리성을 추궁하는 것은 정당한가 논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겠죠. 일련의 메시지를 위해 '신앙이라는 안락'과 '타락이라는 고통'의 구도를 역전시켜 '구속으로서의 광신'과 '해방으로서의 마녀'라는 구도로 역사적 사건을 재해석했다는 것을 시나리오적 성취라 할 수 있을 테구요.

 

 

 

 

 

 

# 7.

 

현대인은 직관적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미개하다 여길 가능성이 큽니다. 고문 끝에 나온 증언만으로 사람을 마녀로 몰아 죽였다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니까요. 지성주의 시대의 기준에선 '이단'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현대인이 미개하다 여기는 당대 재판의 기준에선 가족은 다시 그들 사이에서의 이단이 됩니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추방된 가족은 토마신을 다시 이단으로 만들고 말았죠.

 

마녀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녀가 탄생하며 마무리된다는 측면에서 이단을 찾아내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 과정에서 진짜 마녀가 되어버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마녀를 외부의 인물이 아닌 스스로 배 아파 낳은 딸 토마신으로 삼은 이유라 할 수 있겠죠.

 

상황의 맥락과 지식이 충분히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연과 오해의 누적이 마녀를 만들게 된다는 메시지는, 일련의 구조를 거슬러 올라와 현대인에게 전하는 느슨한 교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지성적이라 여기는 오만한 현대인은 지금 누구를 마녀로 만들고 있는가 랄까요. 시대를 불문하고 의심하는 인간의 본성을 논한다는 점에서 존 패트릭 셰인리 감독의 <다우트>도 잠깐 떠오르는군요.

 

 

중독과 선택 _ 어딕션, 아벨 페라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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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메시지와 구조에 대해 조악하게나마 이야기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호러 영화입니다. 장르적 기준에서 관객은 무엇을 무서워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 또한 흥미롭다 할 수 있을 텐데요. <더 위치>라는 제목이 무색하게도 관객이 느끼는 공포심은 마녀의 공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 묘사되는 폭력이라고는 손만 못생긴 겁나 이쁜 마녀 누나의 뽀뽀와 염소의 몸통 박치기, 모녀간의 레슬링 정도가 전부라 할 수 있죠.

 

토마신이 가족으로부터 고립되어가는 과정이란 곧 관객이 진실로부터 고립되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육상 동물이 발 디디지 못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불안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성체인 인간이 이해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믿음이 붕괴되었을 때의 불안을 공포로 느끼는 것이랄까요. 사회적 고립과 인식적 고립의 교집합을 발판 삼아 주인공과 교감하며 공유하게 되는 서늘한 한기, 확인할 수 없는 음습한 존재보다 그런 존재를 숨기고 있는 어둠에 대한 공포야 말로 이 작품의 장르적 본질이라는 생각입니다. 흔한 점프 스케어 하나 없이 날붙이로 베어내는 식의 불쾌한 연출 없이 정공법으로 공포심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수작 호러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작품이죠.

 

 

 

 

 

 

# 9.

 

다양한 동물들과 젖가슴의 의미, 어둠과 등불 따위의 미장센도 썩 흥미롭습니다만 특히 공간 연출은 인상적입니다. 빽빽하게 늘어선 숲은 영화를 지배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미로와 같은 고압적인 형상은 극의 핵심을 관통하는 판단의 감옥이자 인식의 감옥으로 승화됩니다. 숲으로 집을 포위하고 나무집과 나무 울타리를 통해 가족이 있는 공간으로 스며들도록 만들어 작품의 세계관으로 구축하는 방식은 과연 탁월합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곡성과 마찬가지로 관객과 합의한 영화만의 세계관을 시청각적으로 충실히 구현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한 장르일 수밖에 없을 텐데요. 분명한 성취라 해야겠네요.

 

좋은 영화에는 좋은 연기가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극에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부여하는 랄프 이네슨의 굵은 목소리와 발성도 기억에 남구요. 불안함과 원망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케이트 디키의 폭발력도 인상적입니다. 그 외 다른 아역들의 연기 모두 단단합니다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안야 테일러 조이의 영화입니다. 안야의 연기를 보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는 한 번쯤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개성적인 마스크 위로 맑고 깨끗하게 정제된 불안과 억울함과 공포 따위의 정서가 섬세하게 뒤엉켜 연기되는 모습은 장관입니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 <더 위치>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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