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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그저 최선을 다할 뿐 _ 검찰 측 증인, 빌리 와일더 감독

그냥_ 2023. 7. 1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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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우리가 재판을 받아들이는 건 완벽해서가 아니라 최선이기 때문일 뿐이야.

 

 

 

 

 

 

 

 

빌리 와일더 감독,

『검찰 측 증인 :: Witness for the Prosecution입니다.

 

 

 

 

 

# 1.

 

최고의 추리 소설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최고의 영화감독 중 하나인 빌리 와일더가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세 명의 주연은 찰스 로튼, 타이런 파워, 그리고 마렌느 디트리흐가 연기합니다. 라인업 살벌하죠. 물론 70년 후의 관객에까지 전달되는 고전 명작들이 대부분 그러하긴 하지만요.

 

인간의 이기적인 추악한 욕망이 물고 물리는 동안의 긴장감을 지적 호기심으로 견인하는 법정 스릴러입니다. 감독의 명성에 걸맞은 밀도 높은 각본과 다소 복잡할 수도 있었을 스토리를 편안하게 전달하는 연출의 묘가,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작품의 가치가 전혀 퇴색되지 않도록 지키는 굳건한 기둥이 되어주고 있죠. 지금 봐도 충분히 훌륭한 코미디가 스릴러에 간질간질한 리듬을 더하다 결말부 몰아치는 반전의 연쇄는 충분히 위력적입니다. 보다 보면 관객인 내가 노련한 낚시꾼의 능숙한 릴 테크닉에 매달린 물고기가 된 것만 같달까요.

 

 

 

 

 

 

# 2.

 

작품의 전개는 불확실성과 모호성의 연쇄라 정의해도 크게 무리는 없습니다. 영화는 그 제목처럼 몇몇의 증인에 대한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의 심문을 중심으로 흘러가는데요. 그들의 증언은 각기 다른 의미에서 모두 불완전합니다. 담당 형사는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수사로 얻은 제한적인 사실만을 이야기합니다. 하녀 자넷의 증언은 사건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주관적인 감정과 편견에 오염되어 있었죠. 극의 중심에 있는 크리스틴은 거짓을 이야기하는 듯 보이지만 결말에 다다르면 그녀의 모든 증언은 진실이었고, 거짓을 밝히기 위한 논거로 동원된 변호사의 진실은 역으로 모조리 거짓이었음이 밝혀지게 됩니다.

 

검찰 측 증인인 크리스틴은 정작 변호사를 위한 증인입니다. 변호인 측 증인인 레너드는 검찰에 의해서만 질문받는 검찰 측 증인이 됩니다. 심문이 진행되는 동안 같은 증인의 같은 증언에 대해 검사와 변호사가 각기 다르게 해석하고 질문할 때마다, 청중의 머리로 은유된 진실은 쉴 새 없이 좌우로 휘둘립니다. 비단 증인들 뿐 아니라 '찢는 순간 치마가 되는 바지', '진심과 연기의 불분명한 경계', '서류와 감정이 충돌하는 혼인 관계', '기둥의 역할을 대신하는 앉을 수 없는 의자', '화폐와 사랑을 대리하는 커피' 따위는 영화를 관통하는 진실의 불확실성과 모호성을 은은하게 비유하는 메타포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 3.

 

그렇다면 감독은 일련의 불확실성을 통해 어떤 주제의식을 그려내고자 했던 걸까를 고민해 봐야겠죠. 통상의 작품이었다면 검사와 변호사의 대결 구도를 명확히 하고 결말의 대비를 선명히 하기 위해 권위 있는 판사 하나를 내세우기 마련인데요. 그에 반해 작품은 배심원제로 진행됩니다. 심지어 배심원 외에 수많은 시민들까지 참관인으로 동원하고 있죠. 엘리트 율사들 간의 치밀한 법리적 판단을 다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인 관객 각자에게 자신의 가치판단을 되묻기 위함이라는 추측은 썩 합리적입니다.

 

관객은 영화 속 누구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받지만 그럼에도 반전이 공개되기 전까지 끝내 실체적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레너드와 크리스틴이 처음 만나는 플래시백을 예로 든다면, 관객은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낭만적인 모습으로 시작된 것인가를 직접 보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사랑이라는 실체적 진실은 알 수 없었던 것과 같죠. 결말에 다다르면 레너드에 대한 크리스틴의 사랑은 진실된 것이었던 것에 반해, 레너드의 사랑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비열한 것이었음이 밝혀지는 데요. 관객인 내가 만약 증인이었다면 그들의 사랑을 '객관적'으로 증언할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 앞에 주저하게 되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 겁니다.

 

수많은 증인들이 증언하고 있고, 수많은 배심원이 고민하고 있고, 수많은 참관인들이 지켜보고 있고, 수많은 관객들이 영화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과거와 전후 사정까지 모조리 알고 있음에도 실체적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면. 과연 인간은 실체적 진실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회의를 넘어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라는 의문에 도달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통상의 법정 스릴러들은 어떤 어려운 사건을 맞닥뜨리게 된 주인공이 본인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난관을 극복한다는 식으로 흘러가기 마련인데요. 주인공 윌포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에밀리 프렌치 부인 살인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전혀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 같은 주제의식을 강하게 증명하는 결말이라 할 수 있겠죠.

 

 

 

 

 

 

 

# 4.

 

실체적 진실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윌포드와, 시스템으로서의 법정의 무기력함은 그들의 면전에서 벌어지는 참상으로 증명됩니다. 크리스틴이 레너드를 죽인 것은 레너드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윌포드의 비극이자, 법정의 비극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윌포드의 습관 중 단안경을 끼고 심문하는 사람의 얼굴에 빛을 반사시키는 장면이 있는데요. 그가 이를 통해 진실과 거짓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생각한다는 점에서 '통찰'을 상징한다 생각하면 무난할 겁니다. 하지만 그의 통찰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죠. 문득 살인의 추억에서 얼굴만 보면 범인을 척하고 알아볼 수 있다 자부하던 형사 박두만의 한계가 생각나기도 하는군요.

 

윌포드가 체포되는 크리스틴의 뒤를 따르며 그녀를 변호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리는 데요. 여기서 새로운 질문을 해 볼 수도 있겠죠. 여기까지도 모조리 크리스틴의 계획과 연기라면 어떡할 것인가. 크리스틴은 진즉 남편 레너드가 바람이 났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일부러 최고의 변호사 윌포드를 도와 남편에게 에밀리 부인의 유산이 상속되도록 만든 후, 남편을 죽이고 최고의 변호사로부터 최대한의 변호를 받음으로써 남편에게 상속된 에밀리 부인의 유산을 다시 상속받으려 한 것은 아닐까라고 말입니다. 그런 후 원래의 서류 상의 남편과 영국에서의 재결합을 계획했다면 우리는 일련의 실체적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다 확신할 수 있을까요. 어렵죠.

 

실체적 진실이란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비관적인 메시지의 작품입니다만, 그럼에도 염세적이지 않다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어쨌든 그럼에도 윌포드는 크리스틴을 변호하기로 했다는 것을 놓쳐선 곤란하다는 것이죠. 그는 상심한 끝에 휴양지로 떠나는 대신 씩씩하게 다시 법정으로 돌아갑니다. 설령 실체적 진실이란 것에 도달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련의 결말은 재판을 당위의 공간임과 동시에 언제고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겸손의 공간으로 승화시킵니다. 이 같은 입체적인 메시지는 주인공과 주인공을 따라가게 되는 관객의 실패를 영화가 조롱하지 않는다는 점과, 코미디의 방식으로 주인공을 사랑스럽게 포용하고 있다는 것에서 재차 확인됩니다.

 

 

 

 

 

 

# 5.

 

윌포드, 레너드, 크리스틴 외에 특별히 흥미로운 캐릭터는 바로 미스 플림솔입니다. 윌포드를 돌보는 간병인인데요. 그녀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입에서 지팡이에 숨겨둔 시가를 찾는 것으로 등장해, 결말에서 보온병에 숨겨둔 위스키를 꿰뚫어 보며 퇴장하는 것처럼 말이죠. 시계를 들여다 보는 행위는 시간을 통제하는 듯한 이미지를 추가적으로 부여합니다. 초월적인 캐릭터로 해석할 여지가 다분하다는 것인 데요. 마치 실체적 진실에 도달할 수 없음에도 애쓰는 인간을 가엽게 여겨 보살피는 신처럼 보이지 않느냐는 것이죠.

 

이런 해석 하에서 그녀를 상징하는 공간이 2층이라는 점은 재미있습니다. 극중 2층을 오르내리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계단이고 다른 하나는 리프트죠. 계단을 통해 오르내리는 동안은 그냥 집으로서의 2층입니다만, 리프트를 타고 오르는 순간 2층은 영적인 공간이 된다는 상상입니다. 그 사이에서 리프트를 타고 익살스럽게 오르내리는 윌포드의 시퀀스는 코미디이기도 하지만,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고 있는 윌포드의 건강을 은유하는 것임과 동시에, 진실(2층)과 현실(1층)의 경계를 오르내리며 고뇌하는 변호사라는 직업적 의의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빌리 와일더 감독, <검찰 측 증인>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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