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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ⅱ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그냥_ 2023. 1. 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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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ⅰ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 0.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 등을 집필한 장르 문학가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영미권에서는 순수문학가이자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더욱 큰 인물입니다. ... 나무위키가 그렇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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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암시와 복선은 미스터리를 위해 기능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드라마적 기준에서 숨겨지지 않는 악행과 죄책감을 표현하는 메타포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자신의 복수를 숨기는 동시에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함께 묻어 숨기려 했지만 숨길 수 없었고, 그것이 복선이라는 형태로 관객에게 들키고 있다는 것은 곧 랜도르 스스로에게도 자신의 죄책감이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었다는 것이죠. 어떤 면에선 주인공에게 참 잔인한 영화랄까요.

 

 

 

 

 

 

# 7.

 

교수형이라는 코드 또한 재미있니다. 교수형은 흔히 단순한 살인이나 복수를 넘어 징벌懲罰로서의 이미지를 함께 부여하게 되는데요. 특히 흥미로운 것은 발이 땅에 닿은 형태의 교수형이라는 점이죠.

 

교수형의 작동원리는 죄수 본인의 무게로 인한 중력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무게, 즉 스스로 저지른 죄의 무게를 치른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발이 땅에 닿는 교수형이라는 것은 스스로의 죗값을 치르는 교수형으로서는 불완전한 형태입니다. 징벌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복수 역시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할 테니, 자연스럽게 사적 제재를 통한 그의 계획이라는 것 역시 본인에게도, 딸에게도 온전한 구원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복선이라 할 수 있겠죠.

 

실제 생도들은 자신이 저지를 행동에 걸맞은 나름의 대가를 치기지만, 죄를 지은 것으로 인해 죽은 것이 아니라 살인마 가족에게 희생당한 사람으로 기억되게 됩니다. 영화 속 장교들에 의해 육사가 거론되는 장면마다 반복적으로 '명예'라는 코드가 강조되는데요. 여기서 육사와 명예의 관계는 심장과 상징의 관계와 같다 생각하시면 무난합니다. 상징 없는 심장은 방광과 다를 바 없듯 육사에게는 명예가 목숨보다 중요하기에, 설령 목숨을 잃었을지언정 명예를 지킨 생도들은 죽여도 죽인 것이 아닌 것이죠. 사건이 종결된 후 결말에 앞서 육사를 책임지는 두 장교가 랜도르에게 '감사'를 표하는 장면에서 내비치는 랜도르의 불쾌한 감정선은, 이와 같은 불완전한 교수형에 따른 필연적 수순이라 할 수 있습니다.

 

 

 

 

 

 

# 8.

 

포는 심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서클링 경의 시를 인용합니다. '그대 심장을 가질 수 없으니 내 심장을 돌려주시오.' 랜도르의 복수는 이 시구를 뒤집은 것과 같습니다. 이를 테면 '그대가 내 심장을 가져갔으니 나 역시 그대 심장을 가져가겠소.' 랄까요. 재미있죠.

 

가슴을 억지로 열어 심장을 꺼내는 과격한 상황은 랜도르가 겪은 극심한 고통을 물리적으로 치환해 연결하고 있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가슴이 열어져 심장이 꺼내어진 채 살아가는 인물인 것이고, 그런 정서는 극심하게 야윈 크리스찬 베일의 모습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 딸을 눈앞에서 본 아버지의 표정으로도 연결됩니다. 그 순간의 연출이 채 깜빡이지도 못하고 '흔들리는 눈'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 역시 아주 중요한 미장센이라 할 수 있겠죠.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영화는 이 눈에 보이는 풍경입니다. 랄까요.

 

술에 대한 소문은 모든 것을 잃고 고통받는 랜도르의 심리에 대한 직접적 묘사이기도 합니다만, 혼탁하게 흔들리는 눈이라는 주관적 시점에 대한 간접적 은유이기도 합니다. 랜도르와 포는 각자 딸과 엄마의 상실이라는 슬픔을 공유하고 있음을 함께 술을 마시는 행동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 역시 그런 면에서 중요하다 할 수 있을 테구요. 슬픔과 윤리를 분리하지 못하는 랜도르와 달리 포는 슬픔과 윤리를 분리해 통제하고 있음을 마지막 술을 거절하는 모습을 통해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결국 반전을 파헤치는 것은 순수하고 열정적인 예술가의 눈입니다. 영화 속 에드거 A. 포는 위명의 문학가라는 구체적 개인이기 이전에 진리와 본질을 탐구하는 사람으로서의 예술가 일반에 더 가까운 인물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전글 서두에서 이름값에 압도되느냐에 따라 감상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 말씀드린 이유죠.

 

 

 

 

 

 

# 9.

 

사건의 실체와 범인의 정체라는 미스터리로만 이야기를 국한시킨다면 다소 지루할 수 있어 보입니다. 영화에서 미스터리는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거세게 쏟아지는 눈발과 같은 일종의 환경이자 길 잃은 랜도르의 심리에 대한 은유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의 정서를 깊이 있게 따라갈 수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해리 멜링이 연기한 에드거 A. 포는 분명 탁월하고 매력적이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캐릭터에 불과합니다. 영화는 온전히 불행한 과거를 가진 퇴역 형사 랜도르의 이야기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죠.

 

일반적인 반전영화라면 영화가 끝난 후 앞서의 내용에서 논리적 떡밥이나 미학적 복선을 탐색하기 마련일 텐데요. 이 영화에서 반전으로 말미암아 되짚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랜도르라는 인물이 수사 과정에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내비치게 된 정서적인 대사와 표정이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미스터리 영화의 반전 요소가 이끄는 종착력이 깊은 정서적 탐구의 드라마라는 것은 분명 이색적이죠.

 

 

 

 

 

 

# 10.

 

각각의 미스터리를 해체한 후 재조립해 관객을 끌고 가는 구성은 이상적입니다. 마커스 가족의 오컬트 미스터리와, 살인 사건의 실체, 포가 찾아낸 진짜 전말이라는 세 이야기가 맞물려 돌아가는 과정은 기대보다 더 현란하지만, 정작 막이 내리고 나면 각 주체들 모두 선명한 목적을 향해 직선적인 행동을 해왔다는 것은 이야기의 완성도를 증명합니다.

 

기본적인 톤부터가 문학적인 맛이 있고 그것이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다소 장황한 느낌은 있습니다. 아주 조금은 더 콤팩트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달까요. 음악으로 홍보를 많이 한 작품답게 웅장한 현악이 멋들어진 작품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크리스찬 베일은 물론이거니와, <카우보이의 노래>,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맥베스의 비극>를 거친 해리 멜링의 연기는 이제 한껏 만개하는 듯하기까지 합니다. 화면을 장악하는 감각이 마치 배리 키오건의 아우라마저 느껴지는 듯하달까요. 스콧 쿠퍼 감독, <페일 블루 아이>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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