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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설득의 기술 _ 신의 구부러진 선, 오리올 파울로 감독

그냥_ 2022. 12.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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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설득을 하는 데 있어 논리만이 반드시 최선일까?

 

 

 

 

 

 

 

 

오리올 파울로 감독,

『신의 구부러진 선 :: Los renglones torcidos de Dios』입니다.

 

 

 

 

 

# 1.

 

감독 이름이 익숙합니다. 아, 장인의 오르골이라는 다소 호들갑 떠는 제목과 함께 이야기드린 바 있는 <인비저블 게스트>의 감독이었군요. 각기 다른 네 개의 시간대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건의 실체와, 각자의 이익을 위한 편의적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동안의 서스펜스를 즐기는 스릴러였더랬습니다. 제법 탄탄한 밀도의 이야기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관객이 신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없어 수동적인 작품이기도 했다는 평도 함께 드렸던 기억이군요.

 

# 2.

 

다양한 시점을 이리저리 조립해 미스터리를 만드는 데 능한 감독다운 신작입니다. 독특한 제목처럼 이번 작품 역시 제법 머리를 써야 하는 골치 아픈 영화죠. 오래전 살인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정신병원에 위장 입원한 사립 탐정 알리시아. 비밀이 가득한 병원의 실체에 다가가는 동안 뜻하지 않은 사건을 겪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과거 사건의 진실에서부터 무언가를 은폐하고 있는 듯한 병원장의 실체에 이르기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합니다. 주인공의 정체와, 그녀의 주장, 각기 다른 의사들의 진단,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 계기와, 수년 전 벌어진 사망사건의 전말 등의 다층적 미스터리가 하나의 공간에 겹치고 겹치다 결말에 이르러 한 꺼풀씩 벗겨져 나오는 재미는 이번에도 역시 유효합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말씀드린 것처럼 반전 영화의 플롯을 빌리고 있긴 합니다만 사실 반전영화라 하기엔 조금 애매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당장 반전은커녕 사건의 실체!!! 라 할만한 것도 없거든요. 오프닝에서부터 영화는 도나디오 박사의 소견서라는 형식으로 정답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다만 관객이 전문의의 소견을 '믿지' 않았을 뿐이죠.

 

 

 

 

 

 

# 3.

 

주인공 알리시아가 온갖 사람들을 꼬시고 다니는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설득에 있어 논리가 아닌 믿음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짐짓 알리시아는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믿고 싶게 만드는 데 능한 사람에 훨씬 가까운 인물이라는 것이죠.

 

알리시아가 부원장 몬세라트와 함께 있는 순간엔 여성으로서의 동질감을 어필합니다. 특히 원장 사무엘과 몬세라트가 함께 있는 순간엔 원장이 여자를 무시하는 인물이라 강하게 주장하죠. 이전의 평온하던 모습과 달리 격앙된 모습으로 원장을 힐난하는 장면들은 짐짓 원장에게 화를 내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몬세라트에게 하는 말이라 봐야 합니다. 여의사 몬세라트는 원장과 대립하고 있고 주장이 묵살되다 결국 해고까지 당하게 되는데요. 사람은 누구나 억울한 피해를 당했다 느끼면 이유를 찾고 싶어 하기 마련이죠. 그런 상황에서 알리시아의 주장을 통해 은연중 느끼고 있던 피해의식이 자극되게 되고, 그에 비례해 알리시아는 몬세라트에게 믿을만한 인물, 보다 정확히는 '믿고 싶은 인물'이 됩니다.

 

의료 과장 세사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알리시아는 세사르의 앞에서는 매혹적인 여성을 연기합니다. 안경테로 상징되는 이지적이고 매혹적인 여성을 말이죠. 세사르가 알리시아를 지지하는 것은 그녀가 선량한 사람 혹은 정직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마음에 둔 여성이기에 정직한 여성일 것이라 믿는 것에 훨씬 가깝습니다. 처음 만나는 상담사 테오도르의 약점은 자긍심입니다. 그가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캐치한 알리시아는 이를 자극하고 도발합니다. 결국 그 역시 네가 만약 풋내기 의사라면 나를 진짜 환자라 진단할 것이다 라는 반복적인 압박 앞에 굴복하고 말죠.

 

양심의 법정 위에 선 의사들의 입에서 Si(Yes의 스페인어)라는 말을 꺼내는 데 성공한 주인공의 무기가 논리가 아니었음을 캐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 그녀는 병원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고 그 어떤 종류의 확고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죠. 그녀가 '합법적으로 납치되었다'는 '거짓 주장'에 의해 '합법적으로 병원을 탈출하게 되었다'는 아이러니에 도달하는 방법론이라는 것이 논리가 아닌 믿음이라는 데에서 의의가 발견되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 4.

 

다시 영화의 제목을 살펴볼까요. <신의 구부러진 선> 작중 주인공과 가장 대척점에 있는 사무엘이 자신의 환자들을 지칭하며 하는 말입니다.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면 정신병자들은 아직 그림 솜씨가 무르익기 전에 그린 선, 구부러진 선이 아니냐는 말이니 적당히 신의 습작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죠.

 

당연히 모욕적인 비하인데요. 비하의 뉘앙스보다 중요한 것은 감독은 왜 굳이 영화의 서사에 조금도 기여하지 않는 이 비하 장면을 관객에게 공들여 보여주는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심지어 주인공의 미스터리와 전혀 무관한 이 한마디 관용구를 왜 굳이 영화의 제목으로 선택한 것일까라고 질문해 볼 수도 있겠죠. 감독은 그 한마디가 자신의 작품을 대표할 정도로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딱 한번 등장하는 원장의 '신의 구부러진 선'이라는 말을 관객이 영화 끝까지 기억하고 가져가기를 바랍니다.

 

쓸데없이 창의적인 비하의 말보다 중요한 것은 비하의 목적입니다. 관객은 저 한마디 대사를 통해 직관적으로 원장이 나쁜 사람이라 평가, 정확히는 나쁜 인간일 것이라는 '믿음'을 형성합니다. 논리적으로 본다면 그가 비하적으로 환자의 존재를 평하는 것과 의사로서의 직무 전문성은 무관할 뿐 아니라, 그의 부도덕함과 주인공의 정신병 유무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에 분명하지만 관객은 성급한 믿음 앞에 판단의 힘을 잃고 마는 것이죠. 원장이 악당이라 믿는다는 것은 그와 끝까지 치고받으며 대립하는 주인공은 선량한 사람일 것이라 믿는다는 뜻이고, 이는 역으로 그녀의 선량함이 원장이 악당이라는 것을 통해 증명될 것이라는 기대로 연결되게 됩니다. 이 상태에 빠져든 관객은 사실상 세 명의 의사 몬세라트, 세자르, 테오도르와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이죠.

 

 

 

 

 

# 5.

 

영화가 전개되는 동안 끊임없이 원장을 몰아붙이지만 냉정히 점검해 보면 그 어떤 논거도 원장의 판단이 틀렸음을 증명하지는 못함을 알 수 있습니다. 남편에게 받았다는 후원금은 통원 치료를 포기하고 금치산자가 되어 병원에 입소하게 된 아내를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기탁한 것이라 생각하면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심지어 그렇게 받은 돈은 한 푼도 빠짐없이 병원에 옮겼다 원장이 자신 있게 해명하기까지 하지만, 몬세라트도 관객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을 뿐이죠.

 

마지막 앤딩 장면. 끝까지 표독스러운 인물'이어야' 할 원장이 자신의 직을 던지겠노라 말하는 순간 관객은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소견서를 써준 사람이자 알리시아를 병원까지 데려다준 도나디오 박사가 등장해 주인공의 실체를 폭로하는 순간, 진짜 폭로되는 것은 주인공의 실체가 아닌 믿음 앞에 나약한 관객의 판단력이 폭로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흔히 사람들은 이성으로 판단하고 논리로 설득한다 믿지만, 생각보다 더 인상으로 판단하고 믿음으로 설득한다 것이 곧 작품의 주제의식이라 할 수 있겠네요.

 

강박적으로 보일 정도로 무수히 많은 기만으로 가득한 듯 '느끼지만' 냉정히 영화를 점검해 보면 역설적이게도 단 하나의 기만도 존재하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저 관객 스스로 제 발에 걸려 넘어진 것뿐이죠. 전반부 화창한 시점과 비 오는 시점의 교차편집은 대표적입니다. 플래시백을 암시하는 연출이 없거든요. 가령 주인공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 위로 비 오는 장면이 오버랩된다거나, 주인공이 유심히 바라보는 노트에 적힌 무언가 위로 비 오는 장면이 오버랩된다면 이는 플래시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런 연출은 없습니다. 감독은 그저 다른 두 상황을 건조하게 교차 편집할 뿐입니다. 관객이 제 멋대로 '당연히' 사설탐정인 주인공이 추적한다는 과거의 비밀일 것이라 '믿었'을 뿐이죠.

 

 

 

 

 

 

# 6.

 

물론 과도하게 과장되어 있고 일부의 표현과 설정은 억지스럽기도 합니다. 윤리적으로 파산한 것이라고 밖엔 달리 말할 수 없는 병원의 시스템, 공공연히 우리라 부르는 독방으로 대표되는 강압적인 방식, 만장일치가 필요하다는 억지스러운 퇴소 절차와, 마지막 재판장을 방불케 하는 심사 장소는 영화를 촌스럽게 보이게 만듭니다. 관객을 주인공의 시점에 붙여 놓은 상황에서 스스로 위화감을 느끼며 실체를 추적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원장이 한껏 폼을 잡으며 범인을 체포하듯 반전을 공개하는 방식도 유치합니다. 관객 스스로 '내가 잡혔구나...' 깨닫는 것이 아니라 원장이 '너 잡혔지롱!'이라며 놀리는 것 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다만 일련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충분히 흥미로운 장르영화라는 평입니다. 몇몇 지점에서 전개가 뻔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휘둘러야겠다는 강박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로 쫀쫀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은 절대 흔하지 않죠. 2시간 30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모호성을 지키며 관객의 집중을 붙들어 매야 하는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바바라 레니의 연기 또한 칭찬할만합니다. 오리올 파울로 감독, <신의 구부러진 선>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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