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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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앤더슨 감독,
『머시니스트 :: The Machinist』입니다.
# 1.
위키는 작품을 스릴러로 소개하고 있고 대부분의 관객 역시 그러하겠으나, 개인적으론 달리 해석한다. 이 영화의 메인 장르는 '퍼즐'이고 그 뒤로 호러, 액션, 어드벤처가 적절히 혼합된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이렇게 들으면 번뜩 거부감이 들 것이다. '미스터리도 아니고 퍼즐은 뭐래. 무슨 게임도 아니고...' 그렇다. 필자는 크리스찬 베일이 살 빼느라 개고생 한 것으로 유명해진 영화를, 숄더뷰로 진행되는 3인칭 호러 퍼즐 게임의 시네마틱 모음이라 주장하려는 것이다.
사실 영화의 내러티브는 평이하다. 자수하고 광명 찾자가 전부다. 되려 작품의 매력은 공포의 주체와 객체의 전복에 있다. 내내 주인공이 느낀 공포와 불안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 영화 내내 주변인들에게 공포스러운 존재는 주인공이었다는 것이 사건의 본질이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게임의 작법을 적극 차용한 영화라는 추측이다. 영화가 훨씬 선배이긴 하지만 대만의 게임사 레드 캔들의 <환원 -Devotion->이나 한때 인기를 끌었던 <파피 플레이타임> 등을 연상할 수 있다면 훌륭하다. 나루호도의 이의 있음!으로 유명한 <역전재판> 등과도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 2.
특정한 정보를 얻고 나온다는 목적지향적 시퀀스 배분은 공포게임의 스테이지 구성과 지나치게 닮았다. 각각의 인물들은 캐릭터라기보다는 NPC에 가깝고 이를 증명하듯 모두의 피드백은 하나같이 기능적이고 또 수동적이다. 동료 노동자들의 공장, 웨이트리스의 공항, 아이반의 주점처럼 대부분의 인물들은 각자의 공간에 강하게 귀속되어 있기에 주인공이 그들을 만나기 위해 해당 공간으로 자유로이 이동하면 여지없이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의 인터렉션 역시 주인공이 먼저 시도하는 문답에 의해 이루어진다. 마치 가까이 다가가 ⓧ키를 누르면 예정된 대화가 펼쳐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버튼을 누르면 딸깍 소리와 함께 열릴 것만 같은 서랍과 냉장고에는 준비했다는 듯 요긴한 아이템이 계속 튀어나온다.
잠들지 못하는 레즈닉의 집은 공장, 공항, 도로, 주점 등 외부에서의 스트레스를 환기하고 단서를 정리한다는 면에서 일종의 베이스캠프와 같다. 차근차근 퍼즐을 수집해 나가는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막연해하지 않도록 진행도를 관리하는 것 역시 중요한 데, 진행률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갱신되는 Hangman 메모 역시 익숙한 시스템이다. 내러티브 속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제니퍼 제이슨 리의 존재는 영화에선 어색하지만 게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모든 퍼즐을 조립하면서 숨겨진 주인공의 비하인드를 늘어놓을 수 있게 해 줄 전담 NPC로서, 그녀와 대화하는 순간마다 짤막한 딜레이와 함께 [자동 저장] 되고 있다 상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몇몇의 증거들, 선글라스나 폰티악, route666, 죽은 생선 대가리, 죄와 벌 따위가 다소 작위적이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각각이 지나치게 캐릭터적이기 때문인데, 이 역시 게임을 가정하면 납득 가능하다. 특징적인 물리적 아이템으로 구체화가 되어야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을 테니까.
# 3.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리는 분기가 몇 차례 등장하는 데, 이는 자수라는 구원과 도피라는 지옥을 대비시키는 주제의식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지만, 게임을 가정하면 역시나 익숙한 멀티 엔딩의 구조다. 분기에서 주인공에겐 가혹하지만 관객에겐 편리한 왼쪽 길을 고른다면 빠르게 엔딩을 볼 수 있는 노멀 앤딩(Normal Ending),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몰고 나가 공항 대신 경찰서에서의 자수를 선택하면 진앤딩(True Ending)이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8번 출구>처럼 명암을 모조리 날려버린 구치소에서의 결말은 내내 어두침침한 화면만 뚫어져라 지켜보던 게이머를 마음껏 기지개 켤 수 있도록 하는, 정말이지 공포게임스러운 연출이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영화의 제목은 머시니스트, 기계공이다. 별다른 가치판단이 없는 건조한 제목이라 문학적인 맛은 떨어지지만 주인공의 시점에 올라타 내러티브를 진행하게 될 관객, 아니 게이머를 위한 것이라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깡마른 크리스찬 베일의 모습 역시 같은 의미에서 가치가 있다. 주인공의 피로감과 죄책감에 대한 강력한 미장센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을 인물이 아닌 캐릭터로 받아들이게끔 하는 개성적인 외형으로서 기능하는 것이기도 하다.
# 4.
당연하게도 영화의 한계라면 퍼즐 게임의 논리를 영화로 냅다 이식한 데 따른 위화감이다. 앞서 게임이라면 이해된다 이야기한 대부분의 구조적 설명에도 불구하고 머시니스트는 엄연히 영화이고, 영화의 기준에서 이물감이 드는 건 관객의 탓이 아니다.
가장 난점은 게임과 달리 영화는 개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퍼즐 게임을 풀어내는 실력과 감각에는 개인마다 편차가 있고, 게임에선 그 차이를 플레이어 스스로 진행을 유보시킴으로써 개인화할 수 있다. 이를 테면 막힌다 싶으면 버튼을 누르지 않고 찬찬히 다시 생각해 본다거나, 그동안 모은 인벤토리나 일지 속 단서들을 둘러볼 시간적 여유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영화는 본질적으로 그러할 수 없다. 영화는 관객의 의지와 무관하게 감독의 템포로 진행되기에 관객이 이해하지 못한 퍼즐은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다음 증거를 향해 끌려가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결국 하향평준화. 상대적으로 무덤덤한 관객조차 조각을 차근차근 맞춰나갈 수 있을 정도로 퍼즐의 난이도를 낮추는 것이고, 이는 영화의 경험을 시시하게 만든다. 조금만 눈치가 있어도 아이반이 가공의 인격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고, 어린 소년과의 유령의 집은 지나치게 노골적이라 복선이라 말하기 민망할 정도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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