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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이건 다른 장르입니다만 _ 글래스 어니언, 라이언 존슨 감독

그냥_ 2022. 12.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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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형식 위에 수립된 브랜드가 형식을 포기하고 나면 남는 게 뭐지?

 

 

 

 

 

 

 

 

라이언 존슨 감독,

『글래스 어니언 :: Glass Onion A Knives Out Mystery』입니다.

 

 

 

 

 

# 1.

 

시리즈의 정체성과 연속성이 깔끔하게 휘발,

아니 붕괴되었습니다. 만세.

 

앞선 <나이브스 아웃>의 글에서 정통 후더닛의 매력을 계승하면서도 오답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대신 10분 내외의 작은 질문의 연쇄를 선택한 영리한 작품이라 말씀드렸는데요. 단 두 편 만에 시리즈의 매력과 정체성이 몽땅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형식 위에 수립된 브랜드가 형식을 포기한 셈이라 주인공 블랑의 캐릭터만 공유하는 별개의 작품이라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편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전반부 휘향찬란 돈지랄 눈뽕으로 비비고, 중반부 두 주인공의 추적 어드벤처로 버틴 후, 후반부 폭발 액션과 권선징악 빔 발사!!! 로 정의되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미스터리 체리피킹 _ 나이브스 아웃, 라이언 존슨 감독

# 0. 크리스마스엔 역시 살인이지 라이언 존슨 감독, 『나이브스 아웃 :: Knives Out』입니다. # 1. 제목을 검색하다 보면 '후더닛'이라는 키워드가 함께 뜨는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Who done it? 을 들

morgosound.tistory.com

 

 

 

 

 

# 2.

 

한마디 대사마다 숨겨진 복선이 가득했던 전작과 달리 금연 구역 같은 몇몇의 떡밥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밀도가 크게 떨어집니다. 모든 캐릭터들이 멀쩡하고 범인은 특별히 똑똑한 가운데 탐정은 그보다 더 똑똑했던 전작과 달리 이번엔 용의선상의 모두 지나칠 정도의 평면적인 바보들이죠. 10분마다 질문이 쏟아지던 전작과 달리 놀라울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하기에 관객은 주변 경관이나 구경하는 것 밖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만 공유할 뿐 각자 고유의 감정선과 이해 관계가 뚜렷했던 트롬비 가문의 사람들과 달리 마일스와 친구들은 사실상 동일한 캐릭터들에 직업만 바꿔 끼운 셈이라 지루합니다. 전개 또한 탐정의 추리는 없고 용의자들이 자기 입으로 편리하게 읊어준 걸 잠입한 헬렌이 주워들었을 뿐이죠. 블랙코미디 역시 '엘리트는 모두 욕망의 화신인 부도덕한 존재들이다!' 라는 단편적 지적에 머물러 있어 깊이가 훨씬 얕습니다. 

 

이 모든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가장 크게 추락한 것은 이야기의 깊이입니다. 가족의 증언, 할런의 계획, 마르타의 기억, 랜섬의 음모, 블랑의 추리가 겹쳐드는 미스터리의 입체성이 뛰어났던 전작과 달리, 본편에서는 사건의 전개도 진범의 정체도 단편적이라 지루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홈즈를 오마주 하며 팬더믹에 몸부림치던 천재 탐정의 억눌린 스트레스를 해갈하는 사건이라기엔 너무 나태한 미스터리일 텐데요. 관객이 기대한 건 '브누아 블랑의 미스터리'지 '제임스 본드의 첩보 액션'이 아니었을 텐데요.

 

 

 

 

 

 

# 3.

 

앞서 간단한 질문을 하나 해 볼까요. 후더닛은 쉽게 말해 '누가 범인인가'를 궁금해하는 장르물이라 말씀드렸는데요. 사람들은 누가 범인인지를 왜 궁금해하는 걸까요?

 

정답은 누가 범인이냐에 따라 사건의 전말 뿐 아니라 이후의 상황 또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전작을 예로 들자면 미스터리 작가 할란이 어떻게 죽었느냐에 따라 이후 유산의 행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할란이 자살을 한 것이라면 유산은 그의 유언에 따라 간병인 마르타에게 전달될 겁니다. 할란의 죽음에 마르타가 연관되어 있었다면 유산은 가족들에게 돌아가겠죠. 가족 중 누군가가 할란을 해친 거라면 유산은 유언대로 마르타에게 돌아감과 동시에 범인은 감옥에 끌려가게 될 겁니다. 유산의 규모는 진범의 정체에 걸린 일종의 판돈이라 할 수 있고, 그에 비례해 자연스럽게 진범을 찾아내는 행위의 가치 역시 커지게 됩니다.

 

 

 

 

 

 

# 4.

 

글래스 어니언으로 돌아와 봅시다. 어쨌든 메인 테마는 앤디 살인사건입니다. 용의자는 부호 마일스와 그의 친구들 클레어, 라이오넬, 버디, 듀크가 될 텐데요. 문제는 이들이 돈과 약점으로 뒤엉킨 운명공동체라는 점입니다. 어느 누가 범인이라 하더라도 공멸, 즉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이죠.

 

영화의 결말은 범인은 마일스였다라는 것입니다. 일련의 소동을 겪은 친구들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마일스를 단죄할 증언을 할 것이라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선언하며 끝나는 결말이죠. 이후 마일스는 파멸할 테지만 친구들을 쓰레기라 부를 정도로 내려다보던 인격이니 친구들의 약점을 끌어안고 같이 죽자 나설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공멸이죠.

 

만약 마일스가 범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앤디 살인사건의 범인이었다 가정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어차피 범죄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빨간 봉투 안에 담긴 앤디의 냅킨은 찾았을 겁니다. 마일스는 살인 사건이 아니라 하더라도 회사의 지분을 잃고 몰락했겠죠. 앤디를 살해한 범인뿐 아니라 마일스가 몰락하는 과정에서 나머지 친구들도 각자의 비리에 따른 책임을 짊어질 테고 엎친데 덮친 격 돈줄도 끊겼으니 모조리 몰락할 겁니다. 똑같죠.

 

어차피 자살이 아닌 살인이라는 것은 쌍둥이 동생 헬렌이 등장하는 시점에서 관객도 알고 있습니다. 살인 사건이었다는 것만 증명할 수 있다면 친구 무리는 모조리 공멸할 것이 당연하고, 탐정 추리물의 특성상 사건의 전말은 무조건 밝혀질 테니 결말의 공멸은 예정된 것과 같고, 기왕이면 이들 무리의 핵심인 마일스가 장렬히 무너져 내리는 방향으로 흘러가겠죠. 진행부터 결말까지 뻔히 보이는 터라 추리물로서의 매력이 모조리 휘발되고 나면 남는 건 이리저리 숨어 염탐하는 동안의 서스펜스와 소소한 코미디 뿐이게 됩니다. 이쯤 되면 영화의 장르는 진실을 추적하는 탐정의 추리물이 아니라, 빨간 봉투에 담긴 절대반지를 향한 첩보 액션 어드벤처에 훨씬 가깝다고 밖엔 달리 말할 수 없겠죠.

 

 

 

 

 

 

# 5.

 

시리즈로 받아들인다면 크게 실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차라리 전작과 같은 후더닛의 매력은 전혀 기대하지 마시고 007 류의 첩보 액션 무비를 한 편 본다는 감각으로 즐기시는 편이 났습니다. 뭐, 어차피 총 맞는 장면에서 대놓고 오마주 하며 배우개그를 하고 있기도 하니까요.

 

불행 중 다행으로 화려한 섬과 바다의 풍경, 눈을 현혹하는 화려한 퍼즐들과 편집의 기교, 좌충우돌 염탐하러 뛰어다니는 주인공들의 서스펜스와, 온갖 밉상짓이 차곡차곡 누적된 마일스가 몰락하는 장면의 통쾌함 따위의, 좋게 말하면 친절하고 나쁘게 말하면 말초적인 재미에 집중하며 본다면 킬링타임 팝콘 무비로서의 의의는 방어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누군가 '나는 그럭저럭 볼만하던데?' 라 하더라도 수긍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는 것이죠.

 

첫 작품만 하더라도 이런 영화가 열 편이고 나왔으면 좋겠다 싶었는데요. 속편 단 하나로 3편조차 기대되지 않는 브랜드로 추락해버렸다는 것이 황당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붕괴로 폼을 잡더니만 정작 붕괴된 건 시리즈의 정체성이었군요.  라이언 존슨 감독, <글래스 어니언>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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