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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ⅰ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그냥_ 2023. 1.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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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 <어셔 가의 몰락> 등을 집필한 장르 문학가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영미권에서는 순수문학가이자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더욱 큰 인물입니다.

 

... 나무위키가 그렇다네요.

 

 

 

 

 

 

 

 

스콧 쿠퍼 감독,

『페일 블루 아이 :: The Pale Blue Eye』입니다.

 

 

 

 

 

# 1.

 

포의 이름을 들은 관객은 직관적으로 지적호기심을 최대한 자극하는 고오급 추리물을 기대하기 마련일 텐데요.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감상을 방해하는 성급한 기대가 되고 말았다는 생각입니다. 영화 <페일 블루 아이>에서 미스터리는 부차적인 재미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영화 속 미스터리는 삶의 목적을 상실한 길 잃은 주인공의 내면을 세계로 확장시켜 장르적으로 투사한 것에 가깝습니다. 본질은 잔혹한 과거를 가진 한 남자의 깊은 드라마죠.

 

# 2.

 

The Pale Blue Eye. 

 

영화의 제목이자 루이스 바야드가 집필한 원작의 제목입니다. 대충 직역하자면 '창백한 푸른 눈' 쯤 될 텐데요. 흥미로운 것은 영화 속에서 '눈'이라는 아이템이 그다지 유의미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되려 어둠이나 등불, 심장, 오컬트, 교수형 따위의 아이템이 훨씬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두어 개의 형용을 더한 'Eye'로 정의합니다. 거기에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죠.

 

 

 

 

 

 

# 3.

 

통상의 '세계'란 이야기가 뛰놀 수 있는 객관적인 환경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론 시선과 관련된 코드와 만나 그 자체로 인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감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가장 큰 단위의 메타포로서 활용되기도 한다는 것이죠.

 

제목에서처럼 영화 속 세상은 온통 창백하다 못해 푸르러 보이기까지 한데요. 관객이 보게 되는 화면의 열감은 겨울에 대한 객관적 묘사라기보다는 제목에서 말하는 '창백한 푸른 눈'이라는 필터를 통해 인식되는 주관적 세계에 더 가깝지 않나 싶은 생각입니다. 일련의 추측이 영화의 서사가 랜도르의 시점에서 흘러간다는 점과 만나면, 제목의 창백한 푸른 눈이란 곧 랜도르의 눈이라 추측할 수 있겠죠.

 

그럼 창백한 푸른 눈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건 조금 더 쉽습니다. 직접 등장하니까요. 시신이 된 생도들의 눈 말이죠. 페일 블루 아이를 죽은 자의 초점 잃은 눈동자라 이해한다면 랜도르는 죽은 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됩니다. 즉, 살아 움직이기만 할 뿐 내면의 깊은 곳은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후반부 그가 겪어야 했던 잔인한 과거는 이 같은 추측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합니다.

 

죽은 사람들은 가슴을 갈라 심장이 꺼내어집니다. 랜도르와 포가 술집에서 만나 '심장에 상징이 없다면 방광과 다를 바 없다' 말하는 장면은 다들 기억하실 텐데요. 그 순간 '심장'은 '상징'과 동의어로서 합의되는 것이죠. 랜도르가 생도들과 같은 창백한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역시 심장, 보다 정확히는 [심장의 상징]을 잃은 사람이라 할 수 있고, 당연하게도 거칠게 꺼내어져 버린 그의 심장이란 참혹한 죽음을 겪게 된 딸 매티라 할 수 있겠죠.

 

 

 

 

 

 

# 4.

 

서사는 딸 매티를 강간한 세 생도에 대한 퇴역 형사 랜도르의 치밀하고 처절한 복수라 요약할 수 있을 텐데요. 랜도르가 죽은 생도들과 같은 범주의 창백하고 푸른 눈을 가진 존재라는 것에 미루어, 생도들에 대한 복수는 곧 자기 자신의 죄책감에 대한 복수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표면적으로는 딸을 잃은 아빠 랜도르의 처절한 복수극처럼 보이지만 감정선은 딸을 지키지 못한 아버지로서 자신의 죄책감을 질타하며 그 고통에서 구원받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이 같은 관점에서 영화를 점검하다 보면 흥미로운 것이 있습니다. 랜도르가 정작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는 딱히 화를 내지 않는다는 점이죠. 육사 무도회를 감독할 책임이 있었던 장교들이라거나 범인들과 시시덕 거리는 다른 생도 등 화를 낼 수도 있을 법한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함에도 딱히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그는 자기 자신의 치부와 관련된 특정한 순간엔 가감 없이 화를 내비칩니다. 포가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라거나, 의사 다니엘의 직업윤리를 질타하는 장면 등인데요. 사실상 본인 스스로의 거짓말과 딸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파괴된 자신의 직업윤리에 화를 내고 있는 셈이죠. 일련의 태도는 피골이 상접한 랜도르의 외형과 함께 작품을 관통하는 짙은 자기혐오로 승화됩니다.

 

각기 다른 복수의 형식도 흥미롭습니다. 랜도르가 겪어야 했던 죽음'들'에 대한 상징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교수형을 당한 첫 번째 생도의 죽음은 딸이 끔찍한 일을 당했음을 알게 된 순간의 고통으로 연결됩니다. 프라이의 심장을 자신의 손으로 꺼내지 않은 건 어쨌든 첫 번째 순간엔 딸 매티가 살아'는' 있었기 때문이죠. 랜도르에 의해 심장이 꺼내어진 두 번째 생도의 죽음은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순간의 랜도르와 연결됩니다. 겁에 질려 달아나 평생을 공포에 떨어야 하는 세 번째 생도의 여생은 복수를 끝 마쳤음에도 죄책감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랜도르의 남겨진 삶과 크게 닮아 있을 테죠.

 

 

 

 

 

 

# 5.

 

리아 일가의 파멸로 살인 사건이 종결되는 시점부터 포에 의해 반전이 공개되기 전까지 짧은 시간 동안 화면의 질감이 따스하게 바뀐다는 점 역시 특기할만합니다. 관객이 보고 있는 화면이 곧 랜도르의 눈을 빌린 랜도르의 인식이라 한다면, 화면이 따스하게 바뀐다는 것은 세 생도를 벌함으로 인해 일을 마쳤다는 안도감과 자신의 죄를 속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따위를 시각화한 것이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복수를 달성한 랜도르는 와인을 한잔 마시는데요. 비로소 구원에 도달한 자신과 딸에게 바치는 술처럼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포가 찾아와 사건의 실체를 공개하며 랜도르의 계획이 불완전했음을 고발하자 세상은 다시 차갑게 얼어붙습니다. 포의 눈물을 마주한 랜도르는 처음과 같이 창백하고 차가운 세상의 끝으로 돌아가 딸의 유품을 손에서 놓으며 홀로 남겨집니다. 랜도르는 세 번째 생도와 같이 죽는 순간까지 창백하고 푸른 눈을 가진 채 딸에 대한 그리움과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자신의 악행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열감을 통해 강렬하게 표현합니다. 거대한 업보로 이루어진 잔인한 운명에 포획된 존재라는 것은 일련의 폐쇄적인 플롯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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