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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팽팽하게 당겨진 원단처럼 _ 아웃핏, 그레이엄 무어 감독

그냥_ 2023. 9. 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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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팽팽하게 당겨진 원단처럼.

촘촘하게 새겨진 바느질처럼.

단호하게 가르는 가위처럼.

 

 

 

 

 

 

 

 

그레이엄 무어 감독,

『아웃핏 :: The Outfit』입니다.

 

 

 

 

 

# 1.

 

서스팬스는 팽팽하게 당겨진 원단 같습니다. 내러티브는 촘촘하게 새겨진 바느질 같습니다. 연기는 단호하게 가르는 가위 같습니다. 핏이 딱 떨어지는 정장 같은 고급스러움으로 가득합니다.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들이 만드는 입체적인 스릴러와, 예측을 거부하는 전개 역시 위력적입니다. 그 아래로 잔잔하게 흐르는 시대에 대한 은유는 작품에 유의미한 깊이까지 더하고 있죠. 이 모든 것들을 좁디좁은 양장점 안에 들어선 여섯 남짓의 인물들을 통해 구현했다는 것이야 말로 작품의 가장 큰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바늘', '가위', '총'이라는 세 도구로 인간을 구분합니다. 바늘은 재봉사(Taylor), 가위는 재단사(Cutter), 총은 갱스터(Gangster)를 상징한다 할 수 있을 텐데요. 작품의 제목인 아웃핏과 연관되는 '정장'과 말씀드린 바늘, 가위, 총의 관계는 썩 흥미롭습니다. 바늘은 옷감의 연결에 충실히 복무하고, 총은 정장의 안주머니에 숨어있는 데 반해, 가위는 핏을 결정하고 통제하는 카리스마를 가지는 데요. 작품의 내러티브 역시 시카고 아웃핏이라는 조직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연약한 시민들과, 아웃핏의 권위 뒤에 숨어 거들먹거리던 비겁한 갱스터, 그런 갱스터의 역학관계를 적절히 조율해 원하는 바를 얻었던 재단사의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 2.

 

갱스터들은 돌아가며 주인공을 테일러, 즉 재봉사라 부르는데요. 이는 갱스터들이 그에게 얼마나 무관심한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갱스터들 눈에 레오나르드가 진짜 테일러로 보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갱스터들이 주인공을 부르는 또 다른 멸칭에는 잉글리시가 있는데요. 시카고로 건너온 이방인쯤 되겠죠. 레오나르드는 잉글리시 테일러. 망가진 과거로부터 비겁하게 도망친 이방인이자, 과거의 상처를 기워내기 위해 시카고로 터를 옮긴 재봉사입니다.

 

영화는 레오나르드가 재단사로서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서사라 할 수 있습니다. 외람된 이야기지만 적어도 이 작품에서 재봉사는 딱히 대접받지 못합니다. 바느질 따위야 누구나 할 수 있고 아니다 싶으면 풀어버려도 그만인 것이죠. 도입에서 총을 맞은 리치를 봉합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주인공은 처음이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이내 능숙하게 해냅니다. 재단사에게 재봉하는 것쯤은 손쉬운 일이니까요. 이후 모든 것이 재단사 레오나르드의 계획임이 밝혀지는 방향으로 작품이 흘러가는 것은, 이 영화가 갱스터 간의 분쟁이나 그 분쟁에 휘말린 개인의 불안을 그린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정체성 탐구에 그 본질이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자식뻘에게 엉덩이를 내어주는 등 시종일관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만 테일러라는 말만큼은 따박따박 정정했던 것은 그런 의미에서 느슨한 복선이라 할 수 있겠죠.

 

총을 든 갱스터들은 자신들이 계획을 독점한다 생각합니다. 프랜시스, 리치, 로이, 라퐁텐 모두가 나름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장면들뿐 아니라, 양장점에 들어선 갱스터들이 정장을 '구매'하려는 장면들 모두 그들이 스스로 계획을 소유하고 있다는 착각을 은유하죠. 반면, 레오나르드를 포함한 시민들은 그려준 밑그림대로 바느질할 뿐인 재봉사라 생각됩니다. 갱단의 보스 로이가 메이블과 그녀의 죽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이 같은 사고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말씀드린 대로 계획은 재단사의 몫입니다. 아웃핏을 지배하는 것은 안주머니에 숨은 총 따위가 아니라 밑그림을 실천하는 가위이니까요. 주인공이 총을 다루지 않는 것도, 다른 사람이 가위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도, 클라이맥스에서까지 가위로 프랜시스를 처단한 것도 모두 가위라는 정체성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3.

 

옷은 통상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합니다. 옷을 갖춰 입은 차림새(Outfit)가 제목이라는 것은 곧 정체성에 대한 영화라는 말과 동의어라고도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실제 영화 속 캐릭터 각각은 구체적 개인이기도 하지만 정체성 계층으로 나눠볼 수도 있습니다.

 

각 인물들은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시대적입니다. 레오나르드는 각자의 사연을 두고 새 삶을 찾아 시카고로 넘어온 이민자를 대변합니다. 로이 패밀리는 무법천지 시카고를 호령하던 무자비한 마피아, 알 카포네로 유명한 시카고 아웃핏입니다. 라퐁텐은 먹고살기 위해 도박 따위의 어둠으로 흘러들어 간 흑인 계급을 대변하기도, 먼저 터를 잡고 살았던 원주민 계급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그 사이에 얽힌 세 젊은이는 다음 세대를 상징합니다. 자기 증명을 꿈꾸는 불같은 남자, 표독스럽게 권력을 탐하는 얼음 같은 남자, 자유를 갈망하는 담대한 여자 따위죠. 이들 간의 긴장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찰력의 공백과, 치안을 수복하기 위한 FBI의 감시까지 곁들여지면, 일련의 얼어붙은 시대적 열감은 12월의 눈 내리는 밤으로 완성됩니다.

 

누구도 누구의 편이라 할 수없고,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믿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같은 방 안에 주검이 되어 있는 아들을 찾는 아이러니입니다.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모를 테이프와, 누가 보내었는지 알 수 없는 편지입니다. 천편일륜적인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언제 무슨 이유로 꺼낼지 모를 총은 시대의 불안과 불신을 구체화합니다. 시대의 모순과 억압은 차갑게 짓누르는 정장으로, 긴장과 욕망과 원망은 모든 것을 불태우는 불길로 대비됩니다.

 

 

 

 

 

 

# 4.

 

주인공은 구체적 사건을 기획한 재단사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이 모든 사건이 벌어진 양장점의 주인이라는 면에서 해당 시대의 표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20세기 초 위태롭던 시카고라는 한 시대의 의인화라는 것이죠. 그가 자신의 흔적을 불태우고 양장점을 떠나는 결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대를 흘려보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인공으로 은유된 시대와, 그 시대를 그린 작품들에 대한 은은한 노스탤지어인 것이죠.

 

영화에는 정장과 대비되는 개념 하나가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데요. 바로 청바지죠. 레오나르드를 '정장 시대의 주인'이라 한다면 '청바지 시대의 주인'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메이블이군요.

 

그녀는 레오나르드와 사상적으로 충돌하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녀에게 사장님은 고루하고 고리타분하고 지루하고 투박한 노인이죠. 자신의 뒤를 이어 양장점을 운영하길 바란다 생각하고 있고,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갈 길을 가게 됩니다. 메이블은 다른 모두와 달리 영화 내내 정장을 입지 않고, 역으로 레오나르드의 양장점에는 여성 정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같은 해석에 힘을 더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반목하거나 대립하는 관계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영화 내내 두 사람은 서로를 더없이 아끼고 걱정하고 있죠. 온갖 서스펜스로 가득한 스릴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장의 시대를 살아온 레오나르드와 청바지의 시대를 살아가게 될 메이블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세대 교감이라는 테마는 해당 시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핵심 내러티브 중 하나인 부모-자식 관계로 환원되고 있기도 하죠.

 

 

 

 

 

 

# 5.

 

시나리오 위주로 말씀드렸습니다만 연기력이 중요한 작품이라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마크 라이언스의 연기는 대단합니다. 대사나 표정뿐 아니라 온몸으로 연기하는 모습은 작품 전체에 연극적인 비장미를 더합니다. 상황에 따라 몸이 움츠러들었다 부풀어 올랐다 마지막에는 같은 인물인가 싶을 정도로 거대해 보이는 착각까지 들 정도죠. 여타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합니다. 전반적으로 뛰어난 가운데 자니 플린의 포식자와 피식자를 넘나드는 표현의 격차도 좋았고요, 사이먼 러셀 빌의 카리스마도 짧지만 작품에 크게 기여하고 있죠.

 

... 몇몇의 아쉬움을 이야기하며 마무리할까요. 바늘, 가위, 총, 정장, 불 등 몇몇의 요소들 위에 시대적 알레고리를 곁들여 해석해 보긴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너무 기계적으로 주인공 손바닥에 놀아나는 것은 영화를 단조롭게 하긴 합니다. 이리저리 줄을 갈아타는 파편적 전개까지는 의외적일지라도, 이 모든 것들이 주인공 손바닥 위라는 것을 깨달아 버리는 순간 영화의 재미는 가라앉아 버리고 말았죠. 어느 정도의 의외적 상황이 벌어지기라도 하던가, 아니면 주인공의 계획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치밀했어야 했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것이 주인공의 계획이라고 하기엔 솔직히 우연이 너무 많거든요. 각본에 대한 칭찬이 많아 보이는 데요. 오히려 느슨한 각본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분위기를 지켜낸 연출과 연기를 칭찬하는 것이 더 정당하지 않을까 싶은 평입니다.

결말에서 주인공의 정체(원래 총을 쓰던 사람)를 공개하는 것이 이전까지의 유능함을 설명해 주긴 하지만 재단사라는 정체성이 흐릿해진다는 면에서 이전까지의 내용과 조화롭지 못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영화 끝나가는 데 주인공의 액션도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라는 기계적 공식에 입각한 장면처럼 느껴지고 말았달까요. 그레이엄 무어 감독, <아웃핏>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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