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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열린 볼라드 너머 _ 보통의 카스미, 다마다 신야 감독

그냥_ 2023. 11.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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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안드로메다에 가지 못해 슬픈 사람은 없어.

 

 

 

 

 

 

 

 

 

다마다 신야 감독,

『보통의 카스미 :: そばかす』입니다.

 

 

 

 

 

# 1.

 

카스미는 연애를 하고 싶지도, 그런 감정이 들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정이 있어서는 아니구요, 타고나길 그렇게 태어난 인물이죠. 세상은 그녀의 성향을 이해하기는커녕 존재를 인지하지조차 못합니다. 직장 동료들의 최대 관심사는 언제나 연애고, 엄마는 의무감과 부채의식에 결혼을 닦달하고, 동생은 사랑의 결실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 '모범적인' 임산부죠.

 

카스미와 세계의 관계는 대표적으로 직업에 은유됩니다. 콜센터 상담사는 매뉴얼에 따라 수행하는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사회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이후 이직하게 되는 어린이집 역시 나이와 무관하게 사랑으로 관계가 이루어지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처지를 은유하죠. 이 같은 관계의 번잡스러움은 집안을 가득 메운 수많은 오브젝트들로 재차 은유되고 있기도 합니다. 콜센터와 어린이집과 대비되는 본연의 기질은 음대에서 전공했다는 첼로입니다. 영화는 첼로를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악기로 소개하는데요. 여기서의 목소리란 카스미의 지향을 포함한 내면의 목소리라 이해한다면 무난합니다.

 

영화는 주인공이 주변인물들과 만나는 에피소드들의 단계적 나열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그들의 공통점은 카스미와 비슷한 모습으로 다가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며 떠난다는 점입니다.

 

일련의 방법론은 특히 흥미롭습니다. 이성적 관심이라는 것이 '없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그녀의 존재라는 '있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한다면 모순될 텐데요. 영화는 주인공의 상황에 걸맞게 그녀에게 없는 것들을 소거하는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워커홀릭이라는 오해를 지워내고, 동성애자라는 오해를 지워내고,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오해를 지워내고 나면. 관객은 점점 카스미의 고유함에 다가감과 동시에, 그 비슷한 사람들과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같은 사람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점점 더 세밀하게 공통점과 차이점에 다가가다 앤딩에 이르러 온전히 같은 누군가를 만나 통합되는 순간, 관객은 비로소 '보통의 카스미'를 만나게 되는 것이죠.

 

 

 

 

 

 

# 2.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봅시다. 맞선에서 만난 남자 고구레와는 아이러니하게도 연애와 결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매개로 가까워집니다. 대학에 갔지만 라멘집을 하는 남자와, 음대를 나왔지만 상담사를 하는 여자는 겉보기에 짐짓 비슷해 보이죠.

 

하지만 남자는 하기 싫은 것을 벗어나 하고 싶은 것을 찾으려는 사람이고, 여자는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한 상황에서 해야 하는 것에 순응하는 사람이라는 면에서 뚜렷이 대비됩니다. 그리고 이 같은 상황의 차이는 '이성을 좋아는 하는 데 지금은 마음이 없는 사람'과 '타인을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마음 자체가 없는 사람'의 입장 차이로 연결됩니다.

 

결국 두 사람은 고백을 계기로 갈등합니다. 결과적으로 고구레는 실연당하는데요. 중요한 것은 카스미도 실연당한다는 점입니다. 그저 그녀의 사랑이 성적인 형태의 사랑이 아닌, 공통분모를 교감하는 상대에 대한 인간적 사랑이었을 뿐이죠. 남자의 사랑은 '키스'로 상징되는 데 반해, 여자의 사랑은 '친구'라는 말로 상징됩니다. 고구레와의 에피소드는 관객으로 하여금 무성애자가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냉혈한이라거나, 더 중요한 일이 있어 잠시 사랑을 미뤄두고 있는 워커홀릭이라는 오해를 해소합니다.

 

 

 

 

 

 

# 3.

 

다음은 전직 AV 배우 출신 동창 요나가입니다. 자기 주도적인 삶에 대한 갈증이라는 공통분모를 계기로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집니다.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보이듯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는 것뿐 아니라, 어릴 적 에피소드를 근거로 카스미는 요나가에 대한 막연한 동경까지 가지고 있죠.

 

카스미는 드디어 만난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같이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결국 요나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며 동거를 거절합니다. 요나가는 남자를 원망하는 사람이었을 뿐이지 관심조차 없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신데렐라 연극을 만들며 요나가는 내레이션을 맡는데요, 이는 목소리를 빌려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카스미의 목소리는 카스미가 연주하는 첼로에 있지, 요나가가 대신하는 내레이션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요나가와의 에피소드는 관객으로 하여금 무성애자가 이성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오해를 해소합니다.

 

그 외에 어린이집으로 도망친 게이 친구라거나, 자신을 레즈비언이라 오해하는 동생 시노하라 역시 상대적으로 흔한 동성애자일 것이라는 일반의 편견을 대변하는 사례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나가가 정치인 아버지와 갈등하는 장면은 일련의 상황을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 확장시키기 위해 덧댄 곁가지처럼 보이는데요. 충분한 고찰 없이 과도하게 격앙된 장면이라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몇 안 되는 지점 중 하나라 할 수 있어 보입니다.

 

 

 

 

 

 

# 4.

 

오프닝을 수놓은 모래사장의 바다는 카스미의 평온을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통상적으로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진 영화들의 경우 인물을 고립시키는 비극적인 단칸방에서 출발하기 마련인데요. 탁 트인 바다 앞에 앉은 평온한 표정의 카스미는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구체적 인물의 비극이 아닌, 세심한 자아 성찰과 한 인간에 대한 담담한 소개에 닿아있음을 증명합니다. 실제 카스미는 캠핑도 다니고 사람도 사귀고 아이들도 돌보고 디지털 연극도 만드는 적극적인 사람입니다. 함께 할 사람만 있다면 언제든 눈앞의 바다에 풍덩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이고, 이는 요나가와의 캠핑에서 보여준 물놀이로 증명되고 있죠.

 

시각적인 면에서 '선'과 '영역'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쓰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성향에 따라 분리했다가 밀어 넣었다가를 반복하며 관찰하는 작품이라는 것이죠. 카메라 앞을 크게 분절하는 침대의 프레임이라거나 집 거실의 기둥 등은 어렵지 않게 떠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그와 관련해 특별히 중요한 것은 '볼라드'입니다. 앤딩의 장면인데요. 같은 성향의 두 사람이 멀찌감치 떨어져 서로를 바라보는 씬에서 가운데 놓인 볼라드를 말하는 것이죠. 내내 인물 사이를 가로막던 단절과 침범이 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영역은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음을 의미한다는 면에서, 주제의식이 응축된 시각적 메타포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깊이감을 이용해 정서와 관계의 우위를 표현하는 것도 능숙합니다. 카메라 멀리 화면 깊숙이 있어 작아진 인물의 정서는 주눅 든 것으로, 가까이 있어 크게 보이는 인물의 정서는 폭발적인 것으로 이해되게끔 연출을 통해 돕고 있죠.

 

 

 

 

 

 

# 5.

 

논외로 카스미 다음, 아니 어쩌면 카스미만큼이나 중요한 인물은 바로 아빠입니다. 도입에서부터 아빠는 고립되어 말이 없는 모습으로 소개되는데요. 영화 내내 혼자 요리를 하고 악기를 닦고 줄넘기를 하며 우울감을 떨치고 있죠. 앤딩에서 그는 응급구조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 선언합니다.

 

생각해 보면 영화는 카스미와 아빠의 성장이라 요약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불행한 카스미는 운이 좋게도 그녀의 이야기를 진득하게 들어줄 관객들이 있지만, 아빠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었을 뿐이죠. 실제 관객은 아빠가 왜 우울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영화가 끝나도록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아빠의 존재로 인해 제목의 '카스미'는 미우라 토우코가 연기한 구체적인 개인이나 무성애자라는 소수자 집단을 넘어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희소하면서도 개인적인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라는 보통 명사로 승화됩니다. 영화는 톰 크루즈처럼 도망만 다니던 카스미라는 이름의 무성애자가 드디어 목적을 찾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만, 역으로 무성애가 아닌 다른 그 어떤 것으로 대체된다 하더라도 핵심적인 주제의식은 전혀 훼손되지 않습니다. 카스미가 무성애자이든 아니든 다른 무엇이든 지와 무관하게 그녀는 '보통의 카스미'이기 때문입니다. 다마다 신야 감독, <보통의 카스미>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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