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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북쪽의 사람들 _ 노스맨, 로버트 에거스 감독

그냥_ 2024. 11. 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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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선량한 복수의 세계로 빨아 당기는 일렁임, 이글거림, 으르렁거림.

 

 

 

 

 

 

 

 

로버트 에거스 감독,

『노스맨 :: The Northman』입니다.

 

 

 

 

 

# 1.

 

우리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즐기는 동안 올림푸스와 동시에 그런 상상을 만개하던 아고라를 함께 떠올린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으며 인생의 유한함을 고찰하면서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을 했던 그 옛날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자취를 함께 즐긴다. 히브리 신화를 읽는 동안 기독교 교리 아래로 당대 서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상을 상상하고, 단군신화를 배우며 쑥과 마늘의 이야기 이면에 담긴 오래전 한반도에 자리했던 조상들과의 문화적 연결성을 확인한다. 이처럼 신화가 특별한 건 이야기만큼이나 특별한 화자의 세계가 동시에 느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신화에 흥분하는 건 물론 신화 속 매력적인 캐릭터들 덕도 있겠으나, 그 신화를 만들고 향유하던 사람들과 만난다는 반가움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로버트 에거스의 <노스맨>은 감독의 전작들[각주:1]과는 다소 이질적인 복수극 드라마다. 10세기 바이킹 신화 속 영웅 암레스(Amleth)의 이야기를 최대한의 정밀함으로 재현한 작품은, 사실 이야기를 즐기는 맛이 크지는 않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원전으로 알려진 것처럼 플롯은 대단히 친숙하다. 하다못해 <라이온 킹> 정도만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이야기는 손바닥 위에 놓인 듯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다.

 

 

 

 

 

 

# 2.

 

오히려 노스맨을 흥미롭게 하는 건 암레스 왕자의 일화를 엮어 신화로 풀어낸 10세기의 '화자'와 그의 '세계'다. 감독은 신화를 특별하게 하는 것이 신화를 상상했던 화자의 존재감이라는 것을 통찰하고 있기라도 한 듯, 화자의 구술을 최대한 선명히 표현하는 것에 집중한다. 비단 장엄한 폭력뿐 아니라 당대 바이킹의 생활상을 집착적인 성실함으로 구현하고 있는 이유다. 건물 하나, 무기 하나, 음식 하나, 의복 하나, 말투 하나하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이 있는 건 그 자체로 화자와 접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디테일이 화자와의 거리감을 좁히는 것이라면 배경으로서의 웅대한 자연은 '세계'를 상징한다. 제 아무리 영웅이라 한들 한낱 인간에 불과한 존재들을 아울러 지배하던 세계로서, 그 존재들이 모여 투쟁하고 약탈하고 수용했던 이유이자, 그런 치열함 속에서 상상해 낸 신화적 영감의 증거다.

 

화자의 존재감이 선명해질수록 관객은 10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10세기의 이야기를 듣는 21세기의 청자가 아닌, 스스로 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헐벗은 바이킹의 걸걸한 육성을 듣는 청자가 된다. 그렇기에 영화의 감상은 이면의 함의 따위가 아닌 지극히 감각적인 것이다. 타오르는 불길과 흔들리는 눈빛의 이글거림을 목격함이다. 얼굴 위를 타고 발끝까지 흘러내리는 그림자의 일렁임과, 그 그림자를 몰아내는 빛의 성스러움에 압도됨이다. 분노와 증오와 용맹과 욕망의 으르렁거림에 고양됨이다. 검붉은 피의 끈적임과, 북유럽 바닷바람의 쓰라림과, 올가의 살결을 내 손으로 어루만지는 듯한 부드러움과, 심장을 파고드는 칼날의 서늘함과, 숙명을 이룬 자의 평온함에 함께 도달함이다.

 

따라서 영화를 '야만의 세계'라 평하는 것은 어색한 것이다. 야만이란 야만과 대비되는 문명을 전제함이고, 이는 미처 작품의 세계에 온전히 들어가지 못했음을 시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좌표의 기준점을 당시의 화자로 옮겨놓는 순간 영화는 더 이상 야만적이지 않고, 정확히는 야만적일 수 없다. 비교군이 없는 유일한 세계는 그 자체로 온전한 모든 세계다.

 

 

 

 

 

# 3.

 

북쪽의 사람들에게 약탈과 노예무역은 비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씨 뿌리고 추수하는 것과 같은 당연한 삶의 방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에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약탈자에게 있어 동귀어진을 감수하고서라도 보복한다는 시그널을 피약탈자에게 주는 것은 저항을 억지한다는 면에서 합리적인 것이고, 그 합리적인 선택이 윤리의 형태로 흡수되어 신화에 투사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각주:2]

 

노예가 된 것은 분하지만 억울하지는 않고 억울하지 않은 것이기에 지적하거나 고발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암레스가 굳이 스스로 부당하게 실권한 왕자라 이야기하고 다니지 않는 이유다. 분하다면 힘을 키워 복수하면 된다. 복수할 수 없다면 자신의 무능을 저주하며 참거나 달아나야 한다는 것이 그 시대의 상식이다. 분노에 찬 누군가의 복수를 기다리는 상대 역시 그것에 부당함도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당연한 복수자의 등장에 당연히 자신을 방어할 뿐이고, 만약 패배한다면 나의 후손이 새로이 복수할 뿐이다. 복수를 금기시하고 그 위험을 법에 위탁한 현대인에겐 굉장히 이질적인 세계로서, 로버트 에거스의 영화는 이 이질적인 세계를 오감으로 체험하는 것에 있다.

 

암레스는 복수의 화신으로 맹목적인 듯 보이지만 현대의 기준일 뿐이다. 복수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면 복수하기 위해 추가적인 당위가 필요하겠지만, 복수하는 것이 당연한 세계라면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치 않다. 흥미로운 장면은 암레스가 엄마인 구드룬 여왕과 키스하는 장면이다. 그 순간 관객은 윤리적 문제를 느끼는 데 이는 암레스 역시 마찬가지고, 이는 그들에게도 엄연히 윤리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그가 사람을 죽이고 노예를 부리고 복수하는 건 윤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와 다른 윤리'를 가진 존재일 뿐이라는 근거다.

 

 

 

 

 

 

# 4.

 

노스맨의 세계에서 복수는 살아가는 동력으로서 긍정적인 것이다. 현대의 영화들은 연쇄를 낳는 복수를 끊어야 한다는 식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나, 작품은 복수를 긍정하는 것을 넘어 심지어 신성시한다. 암레스는 영화 내내 복수를 하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운명과 신탁의 적극적인 독려 끝에 복수를 달성하고, 이때의 정당성은 위대한 처녀왕(Maiden King)의 필연과 찬란한 발할라의 보상으로 확인된다. 그들의 세계에서 복수는 선량한 것이고, 그런 세계가 임의로 창작된 가상의 판타지가 아닌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라는 사실이 우리를 가슴 뛰게 한다.

 

오딘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 신화 역시 마찬가지다. 까마귀의 왕과 용맹한 여전사와 발할라가 묘사되는 데, 이는 감독 로버트 에거스의 선택이 아니다. 암레스의 일대기를 노래하던 화자가 살아 숨 쉬던 세계에서 오딘과 발할라는 '믿음'이 아닌 '상식'이고, 그의 이야기에 선량한 복수를 실천하려는 암레스를 살피는 오딘의 등장은 마치 밥을 먹지 않아 배가 고픈 것과 다름없는 당연한 것이다. 수많은 제의적인 절차들. 왕위를 물려받는 의식이나, 피를 통해 감각하는 혈통, 죽은 토리르의 장례 절차와,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 산제물을 바치는 장면, 죽은 헤이미르가 살아나고, 밤에만 뽑을 수 있는 검이 깨어나고, 눈 감은 예언자가 신탁을 내리는 것 모두 특별한 다크 판타지적 설정이 아닌 그 세계의 인과에 따른 순리다.

 

관객이 존재하는 곳과 전혀 다른 상식이 작동하는 세계를 오감으로 탐험하는 것이야 말로 영화 노스맨의 본질이자 신화의 본질이다. 작품의 제목 노스맨은 주인공 암레스를 지칭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물론 자연스럽겠으나, 북쪽에 사는 인간의 무리들, 그들의 세계를 그리고 경험하는 작품임을 폭넓게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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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 위치>(2015), <라이트하우스>(2019) [본문으로]
  2. 암레스와 그의 무리로 인해 노예가 된 올가가 암레스를 사랑하게 된다는 전개는 지금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당시의 인식 체계를 잘 보여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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