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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졸작의 관성 _ 정이, 연상호 감독

그냥_ 2023. 1.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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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모든 것들에 관성적 접근으로 일관하는 영화에서 단 하나 관성을 벗어난 것이 물리 묘사라는 아이러니

 

 

 

 

 

 

 

 

연상호 감독,

정이 :: JUNG_E』입니다.

 

 

 

 

 

# 1.

 

김현주 눈나는 겁나 이쁩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겁나 이쁩니다. 뛰고 구르고 개고생을 해도 말도 안 되게 이쁩니다. 누구는 외모가 미친 듯이 퇴보하고 있는데요. 이 눈나의 미모에만 선택적으로 관성이라도 작동하나 봅니다.

 

강수연 배우의 카리스마도 반갑습니다. 70년대부터 필모를 두텁게 쌓아온 대배우지만 아무래도 지금의 사람들에겐 여인천하에서의 모습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시겠죠. 오랜만의 복귀작임에도 이번 영화 역시 감정을 터트리는 순간의 눈빛이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에는 여전히 관성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상호 감독입니다. <돼지의 왕>, <발광하는 현대사> 등의 애니메이션으로 두각을 드러낸 후 <부산행>의 대성공을 통해 상업 영화판에 안착한 감독이죠. 하지만 세간의 시선은 다소 싸늘해 보입니다. <염력>을 대차게 말아먹은 후 무려 강동원과 함께 했던 <반도>까지 시원찮은 평가를 받으며 필모그래피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죠. 인터뷰 논란도 하나 있었구요. 그런 상황에서 나온 영화가 <정이>인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 역시 <염력>과 <반도>의 관성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말았다는 생각입니다. 네, 졸작이라는 거죠.

 

 

 

 

 

 

# 2.

 

대충 SF 배경의 AI 어쩌구 세계관과, 이를 활용한 인간성 고찰, 뜨뜻하고 지루한 모성애 코드, 특유의 시니컬한 사회비판을 접붙이기 한 고런 친구인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영화는 4가지 기반 모두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관성적이고 편의적인 접근으로 일관합니다.

 

빌어먹을 지구는 대체 뭔 잘못을 그렇게 했길래 또 멸망했답니다. 환경오염 어쩌구저쩌구라는 데 그 이유에 관심을 가질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겁니다. 애당초 감독조차 자기 설정에 애정이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이죠.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거주지역들이 적당히 편의적으로 연출되고, <건담> 등에서 본 것만 같은 자치령 간의 전쟁 양상이 지루한 내레이션으로 전개됩니다. 역시나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현수식 모노레일을 타고 다니는 퇴근길 옆으로, <블레이드 러너> 등에서 본 것만 같은 사이버펑크 풍의 전경이 아무 맥락 없이 동원되었다 아무 의미 없이 소비되죠.

 

졸라 짱 쎈 용병 '정이'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작전 중 사망하자 전투 AI로 만든다는 설정입니다. 벌써부터 <로보캅>의 향기가 솔솔 풍기네요. AI가 되어버린 인간의 정체성 혼란이라는 면에서 <공각기동대>나 <아이, 로봇>과 같은 영화들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겁니다만, 뭐 좋습니다. 이 정도는 장르적 유사성이라 볼 수도 있는 거니까요. 문제는 '그래서 이 설정 속에서 감독은 어떤 참신한 것을 발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인 거겠죠.

 

 

 

 

 

 

# 3.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정이를 상품으로 취급합니다. 법적으로 상품이기도 하고, 캡슐 속에서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버젓이 실존 인물이 살아있기까지 하니 상품으로 인지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는 거겠죠. 장성한 딸이 엄마에게 궁금했던 것을 AI에게 질문할 생각조차 못했다는 대목이라거나, 실험이 끝난 후 냉정하게 폐기를 지시하는 장면 등에서 미루어 볼 때 딸 서현 또한 처음에는 복제된 물건으로 대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점차 테스트가 진행됨에 따라 정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심경의 변화를 느낀다는 전개인 것이죠. 소장이 회장의 복제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장면 역시 그런 심정적 변화에 기여하는 순간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인간성 탐구를 다룬 유사한 코드의 작품들은 대개 일련의 과정을 거친 인물들의 내적 변화와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합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성이라는 관념의 본질을 해체하고 재조립한 끝에 독자적인 세계관과 만나 나름의 결론을 도출하게 되고, 그것이 결말에 이르러 갈림길에 놓인 인물들의 선택으로 구체화되며 작품의 주제의식으로 승화되는 것이 정석적이라 할 수 있겠죠.

 

 

 

 

 

 

# 4.

 

영화 <정이>는 인간성 탐구를 다뤘던 다른 모든 영화들의 경험을 훨씬 얕은 형태로 풀어갑니다. 정이의 인식을 여기 꺼내서 저기 넣고, 여기 복사해서 딴 데 넣고, 이건 폐기하고 저건 옮기고, 팔 자르고 다리 총 쏘고 껍데기 바꿔가며 지지고 볶는 식의 앙상한 전개가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할 뿐 그 이상은 없습니다. 그저 튀르키예 아이스크림 파는 이용진에 빙의해 어떤 게 진짜 인간이게~? 맞춰야지~? 못 찾겠지~? 멍~충 멍~~~ 충 거리며 질답의 야바위를 반복할 뿐이죠.

 

서현의 마지막 선택은 달아나라는 것입니다. 인간성 탐구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자유]라는 인간적 가치를 해당 AI에 부여하는 것을 서현이 선택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서현에게 만큼은 눈 앞에 있는 정이의 복제가 인간성 혹은 그와 유사한 어떤 가치를 스스로 확보하고 있는 존재로 여겨짐을 의미합니다. 인간성에 대한 나름의 주제의식인 것이죠.

 

다만 일련의 결말이 최소한 말이 되려면 서현은 정이의 뇌에 손을 대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모성애를 상징할 게 뻔한 노란색 영역을 삭제하는 장면이 들어가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이죠. 나는 마음대로 너를 조작할 수 있지만, 사람처럼 자유롭게 살아라 라는 결말이 모순됨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앤딩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누리게 될 정이의 자유로움라고 해 봤자 결국 '서현이 선택한 만큼의' 자유로움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니까요. SF씩이나 되는 환경을 만들어서까지 가져온 대답이 고작 이거라면 관객이 설득될 리 만무합니다.

 

 

 

 

 

 

# 5.

 

자유라는 결론에 주인공이 도달하게 된 이유는, 보다 높은 차원의 인간성 탐구가 아닌, 겉모습이 어떻든 원본이든 아니든 딸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만 있으면 그게 본질. 모성애는 짱이에요! 라는 휴먼 드라마입니다. 심지어 이 관성적이고 태만한 결론 앞에 서현을 도달시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론은 바로, 주인공 '정이'를 최대한 학대하는 것이죠.

 

영화 속 정이는 모성애의 화신입니다. 딸의 수술을 위해 용병으로 뛰다가, 죽은 후에도 딸의 장래를 위해 C타입으로 팔려나간 불쌍한 인물에 불과합니다. 할머니와의 관계라거나, 용병으로서의 불안과 두려움, 본연의 성격이나 성향 혹은 가치관, 심지어 AI라는 것을 자각한 이후의 혼란과 생각 따위의 영역까지 영화는 완벽하게 무시합니다.

 

인물의 행동반경을 모성애라는 한 가지 방향으로만 작동하도록 폭압적으로 통제해 놓고, 그 길목을 지키고 서서 다가오면 할퀴고 다가오면 꼬집는 것으로 런타임이 채워져 있습니다. 고통에 절규하며 비명을 지르는 정이를 보는 동안 불쾌감이 차곡차곡 누적되다 섹스 토이로 소비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면 불쾌감은 최고조에 치닿게 되는데요. 이때 관객이 느끼는 불쾌감이란, 인격과 상품 중간 어딘가의 존재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 따위가 아니라, 그저 불쌍한 무언가를 학대하는 영화 속 모두에 대한 느슨한 분노에 불과합니다. 관객의 입에서 '제발 그만하고 정이를 풀어줘라'라는 말이 나오는 것 하나를 위해서 하염없이 내달리는 영화 라고 밖엔 달리 할 말이 없는 것이죠.

 

 

 

 

 

 

# 6.

 

일련의 가학적인 신파 위로 특유의 염세주의적 사회비판 아니 사회'비난'이 올라탑니다. 쓱쓱 스쳐 지나는 쓰레기 더미와 같은 환경 코드라거나, 무료 배식과 같은 빈곤 코드, 기업체의 이익과 같은 자본주의 경제 논리, 섹스 토이로 대변되는 소비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 따위죠.

 

자기 손으로 구체적 대상으로서의 정이에 대한 극악한 참극을 만들어 놓고, 책임은 은근슬쩍 관객을 비롯한 평범한 인간 모두에게 전가하는 방식입니다. 똘망똘망한 박소이 양이 등장하는 플래시백을 집어넣어 주인공을 어루만지는 장면들은, 말이 좋아 모성애 코드지 사실상 관객이 느낀 불쾌감을 공격하는 것 밖엔 되지 않죠. 쉽게 말해 '관객인 너 같은 인간들이 정이를 공격하면 감독인 내가 어루만지는' 구조의 반복이라는 건데요. 그 과정에서 관객이나 등장인물들에게 다른 선택지라도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없었죠. 어디서 Uneducated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군요.

 

 

 

 

 

 

# 7.

 

세계관과 이야기와 주제의식이 모조리 무너지고 나면 SF 테마의 눈뽕 액션 밖엔 남는 게 없는데요. 퀄리티는 빈말로라도 좋다 할 수 없을 겁니다. 군데군데 실물 세트와 CG가 구분되어 보일 정도로 전반적인 디테일은 크게 떨어집니다. 메카닉은 운전병 출신 예비군 아저씨가 광을 내기라도 한 건지 위화감이 심할 정도로 매끈매끈합니다. 불이 붙는 장면도 이글거리는 것이 영 어색하구요. 그런 이상한 그래픽들이 투닥거리는 액션의 연출도 조악합니다.

 

특히 최악은 로봇을 비롯한 오브젝트들의 물리 묘사가 너무나도 어설프다는 점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육중한 무언가가 떨어지거나 하는 느낌 하나 없이 종이 박스들이 이리저리 부대끼는 것만 같아 보입니다. 인물이 달리기를 하는 장면이라거나 비행하는 장면에서의 물리적 운동 감각 역시 심각하게 어색하죠. 본문을 통해 말씀드린 것처럼 SF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 AI에 대한 해석, 인간성 탐구에 대한 접근, 가학적인 신파, 염세적인 사회비난, 태만하고 비겁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에 관성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영화가, 정작 물체의 물리적 운동성 딱 하나만 관성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끝으로, 그래요. 기술적인 것, 영화적인 것 다 차치한다 치죠. 인간의 뇌를 데이터베이스화 해 조작하고 우주 공간에 쉘터를 몇 개씩이나 만드는 미래 문명 세계관에서 왜 홍콩 영화도 아니고 투닥투닥 무협 액션을 하고 자빠져 있는 건지는 진짜 모르겠습니다. 이건 진짜 좀... 등신 같잖아요. 공각기동대와 로보캅과 아이, 로봇과 JK 식 신파물의 열화 카피로 떡칠되어 있는 영화가, 싼마이 무협 액션을 지나 마지막 스파이더맨 열화 카피 같은 와이어 전철 액션씬이라는 결말에 다다르면 이걸 보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 가슴이 옹졸해집니다. 연상호 감독, <정이>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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