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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겁나 높은 곳은 겁나 무섭다 _ 폴: 600미터, 스콧 만 감독

그냥_ 2023. 3.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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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사는 건 힘들고, 죽는 건 무섭다.

 

 

 

 

 

 

 

 

스콧 만 감독,

『폴: 600미터 :: Fall입니다.

 

 

 

 

 

# 1.

 

암벽 등반 마니아 셋이 있었는데요. 달달한 신혼부부 사이 여자 하나가 꼽사리 낀 모양새군요. 사랑의 암벽 등반을 즐기던 중 남편이 거대 닭둘기에 당해 낙사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눈앞에서 남편 잃은 아내는 폐인이 되고, 같이 벽 타던 친구는 잠적합니다. 긴 시간 괴로움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아내가 남편 따라가기 직전 잠적한 친구가 짜잔 나타나는 데요. 그 사이 인스타와 유튜브를 두루 섭렵한 개막장 관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친구 헌터는 남편 잃은 주인공 베키를 꼬셔 600미터짜리 티브이 타워에 올라가 유해를 뿌리자는 속이 뻔한 제안을 하는데요. 정신 나간 마누라는 그것 참 좋은 아이디어구나! 라며 따라갑니다. 온갖 잔망을 떨며 사다리를 오르는 와중에 그래도 실력은 있었는지 성공하긴 하는 데 저런. 녹슨 사다리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전화도 터지지 않는 600미터 상공. 맨몸으로 갇혀 버린 것이죠.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리 구르고 저리 깨지며 지지고 볶는 와중에 두 사람 사이의 관계 변화가 서서히 벌어지게 되고, 그 끝에 과연 이들은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를 흥미진진 따라가는 고런 작품 되시겠습니다.

 

 

 

 

 

 

# 2.

 

겁나 높은 곳은 겁나 무섭다.

 

육상 동물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을 지구로 처맞는 것에 대한 물리적 공포라는 정공법으로 승부를 본 스릴러입니다. 영화 시작 20분 무렵 공간의 카리스마가 설득되는 지점부터, 말 그대로 무슨 짓을 하든 영화가 관객을 끌고 다닐 수 있음을 증명하는 골 때리는 작품이죠. 제 아무리 강심장이라 하더라도 영화에 빠져든 순간 손만 톡 건드려도 바들바들 떨게 만드는 통제력은 가히 파괴적입니다.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과 옷가지,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 녹이 슬어 삐걱 거리는 철제 타워의 소름 끼치는 굉음과, 사다리를 오르는 위태로운 동선, 높은 곳에 설치된 안테나를 돌아가는 아슬아슬한 움직임, 볼트 하나 신발 하나 떨어질 때마다 내가 같이 떨어지는 것만 같아 움찔하게 만드는 몰입감만큼은 그 유명한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 못지않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나름 작지 않은 스크린에 걸어놓고 보긴 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극장에서 봤더라면 훨씬 더 좋았겠다 싶은 아쉬움은 가시질 않는군요.

 

 

 

 

 

 

# 3.

 

영화의 테마는 중반 들어 고도高度에서 고립孤立으로 전환됩니다. 화면 연출 역시 높이를 강조하는 방식에서 고립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전환되며 관객이 느낄 스트레스의 성격에 변화를 주고 있죠. 동시에 주인공이 대응하게 될 대상을 높이라는 추상적 개념에서 주위를 배회하는 독수리로 서서히 치환하고 있기도 합니다.

 

작 중 독수리는 죽음, 보다 정확히는 살아있는 존재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상징합니다. 도입에서 아직 살아 있는 동물을 뜯어먹는 장면을 보여준다거나, 베키 주위를 옥죄어 오다 다친 다리를 공격하는 장면 등은, 독수리가 죽음이라는 [현상] 보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감정]에 조금 더 가까이 닿아 있음을 의미한다 할 수 있겠죠.

 

따라서 앤딩에 다다라 베키가 거대 닭둘기를 뜯어먹는 장면은 잃어버렸던 생에 대한 의지를 발견하는 순간이자, 죽음에 대한 공포를 직시하는 장면이며, 동시에 죽은 사람을 잃는 것에 대한 공포까지 복합적으로 극복하고 있음을 은유합니다. 붉은 피와 살점을 뜯어먹는 연출은 굳건한 의지에 대한 과격한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일련의 성장은 치킨 먹방 후 베키의 눈빛이 흔들림 없이 단호하게 연기되고 있는 것으로 재차 표현되고 있기도 하구요. 화면 연출 역시 훨씬 안정적으로 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미 죽은 헌터의 시신에 사랑한다 작별 인사를 남긴 후 아래로 밀어버릴 수 있는 인물이 된 것이기도 하죠. 결국 영화의 이야기를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축약한다면 공포(독수리)를 얕잡아 보고 방심하다 목숨을 잃은 댄과, 공포에 잡아 먹힌 헌터와, 공포를 극복하고 잡아먹어버린 베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 것이죠.

 

# 4.

 

아빠의 존재는 주요 내러티브라기보다는 독수리의 안티테제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합니다. 고립과 공포를 극복하게 만드는 관계와 사랑의 상징인 것이죠. 하늘에서 주인공이 죽기를 기다리는 독수리와 땅에서 딸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빠의 구도에서 타워가 만들어내고 있는 높이라는 개념과도 적극적으로 조응합니다.

 

이 정도 토대 위로 사다리와 안테나와 전화나 드론 따위의 서로를 끌어당기는 인력이자 연결되는 관계성을 은유하는 메타포들이 제한적인 작품에 유의미한 입체감을 더합니다. 그 위로 각각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태양과 어둠의 압도적인 시각적 이미지까지 더해지노라면 구체적인 이야기를 넘어 어떤 신화적인 감동마저 느껴지는 듯하죠.

 

 

 

 

 

 

# 5.

 

아쉬운 점을 살펴볼까요. 지지부진하게 끄는 것 없이 초반부터 타워에 올라가는 것이 쿨하긴 합니다만, 그만큼 빠르게 올라간 탓에 스트레스의 총량 역시 어마어마해지고 말았습니다. 타워에 오른 후로 베키와 헌터 두 사람이 걷거나 뒤돌거나 아래를 내려만 봐도 스트레스가 쭉쭉 쌓이죠. 물론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중반부의 드라마와, 후반부의 호러, 결말의 반전에 걸쳐 작품의 궤도가 살짝씩 수정되며 희석되긴 합니다만, 그것만으론 역부족이라 해야 할 만큼 스트레스의 크기가 큽니다. 로드리고 코르테스의 <베리드>도 지치는 걸로는 어디서 꿀리지 않은 작품인데요. 개인적으론 그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통상적으로 이들의 행동이 바보짓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감상의 큰 걸림돌입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바보짓이라는 걸 상기하게 되는 순간마다, 거 봐라. 그러게 왜 올라가 등신들아! 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영화의 주제의식과 조금씩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장벽이라 해야겠죠.

 

소소하게 두 여자의 힘이 너무 좋다는 것도 저에겐 방해였습니다. 애초에 체력은 변수가 아닌 것으로 포기한 모양새가 너무 노골적이었달까요. '돌아다닐 힘도 없다'가 되어버리면 안 그래도 좁은 공간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는 이해합니다만, 이해는 이해고 감상은 감상인 거죠. 1년간 폐인 생활하던 사람이 못 먹고 못 마시고 못 자고 헛것에 허덕이고 다리에 큰 상처가 나 감염이 진행되더라도 기둥은 번쩍번쩍 잘만 타다 보면, 저 체력이면 그냥 600미터를 천천히 타고 내려가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드는 건 어쩔 수 없을 겁니다.

 

 

 

 

 

 

# 6.

 

여담으로 숙제하듯 풍자적인 뉘앙스도 일부 발견되는데요. 자연스럽기는 합니다. 감독에게 이들의 도전을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치장하는 건 부담일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도발하며 장난치던 헌터가 결국 대가를 치르고 말았다는 점이나, 수많은 팔로워들이란 닿지 못하면 아무 의미 없는 허망한 것이라는 냉소, 온라인에서의 하트와 대비되는 현실 속 사람들의 차가운 반응들에서 노력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 풍자적 메시지가 삶과 죽음에 대한 영화의 주제의식과 잘 어우러지고 있는가에는 다소 비판적이게 됩니다.

 

... 전반적으로 압도적인 영화적 체험 위로 환경의 잠재력을 집요하게 또 꼼꼼하게 챙겨 먹는 알뜰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평입니다. 단순한 환경이 무색하게도 시나리오를 통해 제법 다층적인 변주를 주고 있고, 그 변주는 과연 효과적이죠. 오프닝의 달리 줌을 비롯해 제한적 환경에서도 최대한 다양한 느낌의 스릴을 구현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고 있구요. 그 위로 퍼즐적인 요소라거나, 인물과 인생에 대한 드라마, 과감한 호러의 연출과, 기만적이지 않고 정석적인 반전이 적재적소에 바통을 이어받으며 관객을 즐겁게 합니다. 스콧 만 감독, <폴: 600미터>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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