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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동네 영화 _ 카모메 식당,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그냥_ 2021. 1.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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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핀란드의 갈매기는 뚱뚱하다. 비대한 몸으로 항구를 뒤뚱뒤뚱 걷는 꼴을 보면 초등학교 때 키우던 나나오가 생각난다. 나나오는 10.2킬로나 되는 거대 얼룩 고양이였다. 독불장군에다 툭하면 다른 고양이에게 폭력을 휘둘러 모두가 싫어했다. 하지만 왠지 나한테만은 만져도 화내지 않고 기분 좋은 듯 가르릉 거리기도 했다. 그게 너무 귀여워서 엄마 몰래 먹을 걸 잔뜩 주었더니, 점점 살이 쪄서 결국 죽었다. 나나오가 죽은 다음 해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었다. 엄마를 정말 사랑했지만 어쩐지 나나오 때보다 덜 울었던 것 같다. 그건 무술가인 아버지가 사람들 앞에서는 울지 말라고 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난 살찐 동물에게 약하다. 맛있게 먹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인다.

 

엄마는 말라깽이였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카모메 식당 :: かもめ食堂』입니다.

 

 

 

 

 

# 1.

 

미도리상.

내일은 시나몬롤을 만들어 볼까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작품은 사실 리뷰하기 썩 좋은 영화들은 아닙니다. 논리적이고 치밀한 전개나 인상적인 연출의 묘, 참신한 아이템이나 서사의 매력 같은 것들보다는 소담한 일상 속에 담긴 정갈한 감수성을 매력으로 삼는 작품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즉 할 얘기가 딱히 없거든요.

 

간혹 감상평을 찾아보다 보면 '뻔하다' 혹은 '지루하다'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은데요. 물론 충분히 지루할 수 있는 영화라는 덴 저 역시 이견이 없습니다만, 개인적으론 영화보단 관객이 번지수를 잘못 찾은 탓이 조금 더 크지 않나 하는 생각도 조심스레 하게 됩니다.

 

 

 

 

 

 

# 2.

 

여긴 레스토랑이 아니라 동네 식당이에요.

근처를 지나다가 가볍게 들어와 허기를 채우는 곳이죠.

 

핀란드에서 사치에가 차린 식당의 이름은 <카모메 식당>입니다. 사치에가 사람들을 만나고 음식을 대접하는 영화의 제목 역시 <카모메 식당>이죠. 주인공이 자신의 식당을 많은 손님을 유치하고자 하는 레스토랑보다는 그저 마을 사람들이 지나다 한 끼 든든히 할 수 있는 동네 식당으로 만들고자 한 것처럼, 감독 역시 이 영화를 특별한 걸작보다는 그저 지나던 사람들이 우연히 들러 마음을 든든히 채울 수 있는 동네 영화로 만들고자 한 듯 보입니다. 동네 식당밥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경우는 드물지만, 대신 가장 많이 먹게 되는 편안하고 따뜻한 음식인 것처럼 이 영화 역시 그런 안정적이고 편안한 작품이죠.

 

동네 식당의 음식을 가지고 미슐렝 레스토랑을 심사할 때처럼 분석하려 드는 건 부질없을 겁니다. 이 영화를 가지고 작가주의적 색채가 강한 미장센 영화를 볼 때처럼 구조화하려 드는 것 역시 썩 부질없는 짓이죠. 중요한 날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고 싶은 단 한 편의 영화 뭐 이런 것보다는, 햇빛이 거실로 깊게 드리우는 휴일의 오전 멀리서 들려오는 꼬마 아이들 떠드는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시간 죽이듯 보는 영화 쪽에 훨씬 가까운 작품입니다.

 

 

 

 

 

 

# 3. 

 

어디에 가든 슬픈 사람도 있고

외로운 사람도 있는 법 아니겠어요?

 

메시지나 구성은 누구나 예상하실 수 있을 법한 잘 알려진 그대로입니다. 결핍으로 인해 상처 받은 영혼들을 위한 위로를 테마로 하는 작품이죠. 모든 것을 달관한 것만 같은 초인적 주인공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파편화된 커뮤니티를 연결 짓는 고리로서 자리매김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가진 마음의 여유분을 주변의 결핍된 다수의 인물들에게 나누어준다는 식의 옴니버스 서사.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는 그동안 슈퍼맨처럼 보였던 주인공의 숨겨진 과거와 상처가 공개되고, 주인공으로부터 위로받고 치유받았던 주변 인물들이 자신이 받았던 선량함을 되돌려주며 주인공을 함께 구원한다는, 그런 선의의 순환에 관한 메시지로 귀결되는 구성입니다.

 

 

 

 

 

 

# 4.

 

커피 맛있게 만드는 법 가르쳐 드릴까요?

코피 루왁!

 

일련의 소담한 이야기 사이사이를 귓가를 떠나지 않는 갓챠맨 노래, 알래스카와 타이티에서의 미도리나 핀란드어를 모른다는 마사코 등이 펼치는 실없는 코미디, 멋들어지게 꾸민 네 여자가 줄지어 앉은 모습과 도둑 아저씨와의 몸개그, 신상 오니기리를 쌓아놓고 품평회를 여는 동안과 같은 익숙한 구성, 커피가 맛있어지는 주문이나 지푸라기 저주와 같은 특유의 소녀적 감성이 메웁니다.

 

서두에 옮겨둔 오프닝의 내레이션은 작품의 성격을 소개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뚱뚱한 핀란드 갈매기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10.2킬로짜리 거대 얼룩 고양이 나나오를 지나 교통사고로 여읜 엄마를 건너 무술가였던 아버지에까지 순식간에 도달하지만 그 끝은 그저 '잘 먹자'.

 

영화 역시 텅 빈 식당에서 출발해 토미 힐투넷의 갓챠맨과 미도리의 여행과 어릴 적부터의 습관이었던 무릎걸음과 마티가 알려준 커피가 맛있어지는 주문과 신작 오니기리 품평회와 시나몬롤을 좋아하는 세 할머니와 짐을 잃은 마사코상과 눈매가 무서운 리사와 마티의 가슴팍에 뭍은 밥풀과 버섯이 가득 들어있는 짐가방과 아빠가 싸준 도시락을 지나겠지만 그 끝은 역시 마음이 배고픈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잘 먹자' 입니다.

 

 

 

 

 

 

# 5.

 

이상한 아저씨가 고양이를 떠맡겨서

못 돌아갔어요.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서사를 메우는 아이템 대부분이 쓸모없는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과 사건들과 배경들은 영화를 감상하는 데 있어 썩 쓸모가 없습니다. 커피나 시나몬 롤, 오니기리와 연어구이를 좋아하지 않으셔도 상관 없습니다. 갓챠맨은 그냥 갓챠맨이고 마사코가 남은 이유는 누군지도 모를 이상한 아저씨가 들려준 고양이일 뿐이며 미도리는 돈을 받지 않더라도 식당에 나오는 게 즐겁기만 합니다. 토미 힐투넷은 공짜로 커피를 마시지만 뭐 나쁠 것 없구요. 남편이 집 나간 리사가 왜 카모메 식당에서 술을 마신 건지 모르겠지만 역시 상관없습니다. 마티는 몰래 가계에 숨어들었지만 배가 고프다면 오니기리를 나눠 먹지 못할 이유가 없죠.

 

그래서 이 영화는 매력적입니다. 쓸모 있는 이야기, 중요한 이야기 보다 정확히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영화들 가운데 이 영화는 분명한 경쟁력을 가집니다. 그런 콘텐츠들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스트레스와 피로감 없이 긍정적인 감수성만이 전달되는 감각이 상쾌합니다.

 

 

 

 

 

 

# 6.

 

갓챠맨 노래 다 아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어요.

 

사치에는 갓챠맨 노래를 다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한다 반복해 말합니다. 갓챠맨 노래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세상 쓸데없죠. 에어 기타 대회, 사우나 오래 참기 대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별것 아니기에 그녀의 말에는 감동이 있습니다. 별 것 아닌 이유로도 쓸데없는 이유로도 누군가를 믿을 수 있다는 순수함. 거창한 이유 없이 그렇게 나를 믿어주었으면 하는 은연 중 소망을 거침없이 고백하게 만드는 힘은 오기가미 나오코만의 저력이라 할 수 있겠죠.

 

작가로서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은 현장감을 살리면서도 현실성을 제거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보편적인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만날 수 있는 상식적인 소재의 디테일로부터 단서를 얻으면서도, 불필요하게 논평하거나 예단하는 식의 우를 범하지 않죠. 덕분에 관객은 불필요한 부담감이나 압박감 없이 가져가고 싶은 긍정적인 감정을 가져가고 싶은 만큼만 가져 나올 수 있습니다.

 

주인공 사치에 역의 고바야시 사토미의 연기 또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죠. 만화적인 캐릭터와 서정적인 드라마 인물 표현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우는 멋지게 증명합니다. 

 

 

 

 

 

 

# 7.

 

이랏샤이!

いらっしゃい!

 

영화의 마무리가 "잘 먹겠습니다. いただきます."가 아니라 "어서 오세요!"라는 뜻의 "이랏샤이! いらっしゃい!"라는 점은, 이 영화가 '음식'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음식을 먹으러 식당을 찾는 '사람'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카모메 식당에 찾아가 오니기리를 먹고 싶다."라 평하셨다 하는 데요. 같은 의미에서 이 평의 핵심 역시 오니기리보다는 '찾아가' 쪽에 있다 할 수 있겠죠. 저는 초딩 입맛이라 매실 주먹밥보단 시나몬롤에 루왁 커피로 하겠습니다. いただきます.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카모메 식당>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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