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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스물 일곱 _ 프란시스 하, 노아 바움백 감독

그냥_ 2020. 6. 2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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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청춘 영화입니다. 청춘을 위한 영화입니다. 나이 어린 꽃돌이 꽃순이 배우 무더기로 때려 박은 후 미취학 아동마냥 억지로 순진한 표정을 짓도록 시켜 만든 『변산』이나 『청년 경찰』,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쓰레기가 아니라 이런 작품들이 진짜 청춘들을 위한 영화죠.

 

 

 

 

 

 

 

 

'노아 바움백' 감독,

『프란시스 하 :: Frances Ha』입니다.

 

 

 

 

 

# 1.

 

몇몇 감독들은 아무래도 기성인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 청년상이라는 걸 자랑하지 않으면 뒤지는 병이라도 걸려있나 봅니다. 이를테면 잘생기고 키 크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순결하고 겸손하고 예의 바른 모범생. 유복한 집안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란 데다 독립심도 강해 지 앞가림 척척하는 자소서식 유학파 글로벌 리더. 의협심과 모험심을 양 손에 무장하고 온데 일을 저지르고 다니지만 결국 낙타 바늘구멍 통과할 낮은 확률을 뚫고 당당히 성공해 효도하는 아들과, 자신의 삶 따윈 안중에도 없이 맹목적으로 어른들 뒷바라지하는 걸 존재 이유로 생각하는 순박하고 서정적인 눈물 많은 공무원 딸. 같은 것들 말이죠.

 

나이 먹은 자신들이 만든 젊은 사람들의 비루한 현실과 늙은 자신들의 무례한 태도는 어쩔 수 없는 최선이라 말하면서도, 젊은 사람들의 절망은 나약하고 한심한 것으로 폄하하는 흔한 꼰대들이 환장할 법한 이상적 청년상이란 괴물들을 몇 개 뽑아 놓은 후, 다수의 젊은 배우들의 가슴팍에 이름표처럼 달아 마리오네트로 만들어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린 다음 어린 관객 니들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훈계질이나 하는 쓰레기들을 그간 많이도 만들어 왔습니다. 욕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죠.

 

이 영화에는 한국 청춘 영화에선 찾을 수 없는 동등한 인격체에게 마땅히 보여야 할 존중이 있습니다. '프란시스'는 그녀의 비루함과 무관하게 '노아 바움백' 감독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도 폄훼되거나 희화되지 않습니다. 감독은 진지하게 관찰하고자 합니다. 대도시 어딘가 우연히 있을 법한 프란시스라는 20대 성인을 발견해 그녀의 상황과 내면의 변화를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과 앞으로 경험해 나갈 시련과 그 끝에 도달하게 될 성장과 성장이라는 거창한 이름 뒤에 가려진 깊은 상처를 진중하게 탐구합니다.

 

 

 

 

 

 

# 2.

 

27살의 프란시스는 유치한 듯 보이지만 실은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자존심을 부리는 듯 보이지만 투쟁하는 사람입니다. 자유로운 삶을 사는 듯 보이지만 방황하는 사람입니다. 허세에 찌든 것처럼 보이지만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서른이 될 프란시스는 철이 든 것처럼 보일 테지만 실은 체념을 내면화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단짝 친구 소피와 몸싸움하고 달리고 춤추고 수다 떨고 보드 게임을 즐기는 건 어리석고 유치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어느 것 하나 안정된 것 없기 때문입니다. '출판계의 거물'과 '유명한 현대무용가'가 된 환상적인 미래를 읊고 또 읊는 건 그런 미래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 남자와 가정을 꾸려야 하는 순간이. 꿈꾸는 무용수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견습생을 벗어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모든 것을 쏟아부어 왔던 길을 포기하는 순간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모를 미래가. 불확실한 소득을 조롱하듯 밀려드는 생활비와, 현금인출기의 수수료 3달러가 너무도 너무도 두렵기 때문입니다.

 

 

 

 

 

 

# 3.

 

시종일관 웃고 떠드는 건 우울하고 무섭고 외롭기 때문입니다. 또래 앞에서 민망한 춤을 추는 건, 천진난만한 금수저들의 자랑질과 투정 앞에 빈곤한 지갑 사정을 고백하는 건, 바쁜 일정을 변명하면서도 늙어 보인다는 무례한 말을 감수하는 건, 베이글을 꾸역꾸역 삼키는 건, 공짜 아파트와 경쟁자의 집에 얹혀 전전하는 건 모두 베알이 없거나 염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내내 시종일관 내달리는 건,

그녀의 삶 역시 길 한복판에 내던져져 있기 때문입니다. 

 

뉴욕과 새크라멘토와 파리를 돌아다니지만 온전히 머무를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화려해 보이는 여권 도장은 부유하고 있었음을 증명할 뿐입니다. 점점 멀어져 가는 듯한 어쩌면 사라져 가는 듯한 소피의 방문에 애써 자신은 잘 살고 있다 말하는 건, 행복하다 말하는 건, 무용수를 관두고 사무실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있지도 않은 일자리를 만들어 말했던 건 허영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그래야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 4.

 

마지막 소피와의 잠자리 대화는 프란시스가 그 전과는 다른 '다음 쳅터의 프란시스'가 되는 순간을 극적으로 묘사합니다. 소피는 프란시스에게 작별을 고하고, 여전히 침대 위에서 양말을 벗지 않던 프란시스는 맨발로 차가운 바닥 위에 홀로 멈춰 섭니다. 거절했던 일자리를 결국 맡습니다. 사랑하는 소피와의 재회를 눈웃음으로 대신합니다. 담담히 자신의 이름을 자신의 손으로 접어냈던 건 그녀가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담담히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가치는 누군가의 유아적이고 허영에 찌들어 있고 자유로운 것으로 '오해되기 쉬운' 치열함과 비루함과 고단함을 묘사함에 있어 고압적인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구태여 화면을 흑백으로 죽이면서까지 쉬이 평가하거나 규정하거나 예단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잘려나간 이름의 쓰라림과, 그 쓰라림을 대수롭지 않은 듯 받아들이는 주인공 '하'에게 그 자체로의 당신 역시 썩 나쁘지 않다 말할 뿐입니다. 천천히 걸어와 진심을 담아 두어 번 어깨를 토닥이는 것만 같은 담담하지만 깊은 진짜 어른의 위로죠. 노아 바움백 감독, <프란시스 하>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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