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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명콤비의 커튼콜 _ 라디오 스타, 이준익 감독

그냥_ 2020. 3.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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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2006년에 소환된 1990년대 영화입니다. 다소 평면적인 캐릭터 설계와, 무던하고 진중한 관계 설정, 상황을 풀어나가는 단단하고 온건한 방식, 보수적 가치 위에 세워진 관계 중심의 주제 의식과, 다소 연극적 색채가 묻어나는 표현 등 영화 전반에 걸쳐 『8월의 크리스마스』, 『접속』, 『약속』과 같은 90년대 명작 드라마 영화들의 분위기와 냄새가 짙게 묻어나기 때문이죠.

 

 

 

 

 

 

 

 

'이준익' 감독,

『라디오 스타 :: Radio Star』입니다.

 

 

 

 

 

# 1.

 

공식적으로 드라마를 표방하고 있기에 이를 존중해 리뷰의 카테고리 역시 드라마로 잡긴 했습니다만, 플롯만 보자면 버디무비라기보다는 로맨스에 더 가깝습니다. 삯바느질하는 조강지처(안성기)와 헛바람 든 철없는 남편(박중훈)[기]. 지고지순한 내조 끝에 남편이 성공한 후[승], 바람이 날 뻔하다가 [전], 조강지처의 헌신을 깨닫고 가정으로 돌아온다 [결]는 대단히 고전적 플롯의 '신파극'이죠. 충분히 검증된 범용성 높은 플롯을 고스란히 가져오되 시의성 높은 아이템으로 살짝 변주해 최소한의 개성을 확보하고자 하던 게 90년대 전후 한국 대중 영화 흥행 공식이었습니다.

 

사랑싸움하는 동안의 전개와 지루함을 펑크 밴드 '노브레인'을 동원해 잡아내겠다는 아이디어와, 이 인물들을 지극히 코미디로만 활용한다는 점 등의 '기능별로 칼같이 구분된 캐릭터 구성을 통한 직관적 문법' 역시 전형적인 8~90년대 영화의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우산 씬 역시 완성도와 별개로 현대적 감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고, '민수'의 와이프가 '최곤'의 팬클럽 회장이었다는 설정이나, 김밥집을 하다 망해서 길거리에서 김밥을 판다는 식의 『이수일과 심순애』가 떠오를 법한 전개, 마지막 자신의 남편에게 본 남편(...)에게 돌아가라 말하는 장면들 모두 8~90년대의 감성이죠.

 

 

 

 

 

 

# 2.

 

물론 이 모든 걸 클리셰를 동원한 셈이니 비판 지점이 되지 않겠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론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원래부터가 8~90년대의 감성을 소환하겠다고 덤벼든 영화니까요. 이 영화를 클리셰 덩어리라고 비판하는 건 흥부전을 촌스럽다고 비판하는 것만큼이나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한국 영화사에 있어 2003년은 단편적으론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의 해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드라마와 인물 구조 중심의 '근대 영화'와 미술적 미장센과 철학적 주제의식 중심의 '현대 영화'를 구분 짓는 분기점이기도 한데요. 이 작품이 개봉된 2006년이면 이미 영화적 문법에 있어 90년대 이전 '근대 영화'의 그것으로부터 탈피해 제법 현대적 영화가 자리 잡고 있던 시점으로 볼 수 있죠. 당장 감독이 직전에 찍은 『왕의 남자』만 하더라도 이 영화보다는 훨씬 더 세련된 방식을 뽐내고 있다는 걸 감안할 때, 이 작품에 8~90년대의 감성이 짙게 묻어나는 건 어디까지나 영화의 아이템과 주제의식을 고려한 감독의 계획과 선택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겁니다.

 

 

 

 

 

 

# 3.

 

'최곤'이 몰락하고 도태된 이유는 기본적으론 '촌스러움' 때문입니다. 그가 시종일관 입고 다니는 짙은 검은색의 가죽 재킷은 인물의 스타일뿐 아니라, 낡고 시대착오적인 내면까지 은유하죠.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최곤'은 자신의 그 촌스러움을 벗어던지지 못하지만, 촌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숨어있는 '인간미'와 '솔직함'의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이는 '최곤'과 함께 '8~90년대 영화' 역시 다소 촌스러울지언정 그때 당시의 영화들에게도 결코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되는 '솔직함'과 '인간미'가 있었다는 걸로 읽히게 만들죠. 여러모로 참 순박하고 또 선한 영화랄까요. 영화는 스스로 느지막한 오후의 일상적 사연의 라디오처럼, 온갖 종류의 언어유희와 함께 힘을 빼고 놀고 있다는 느낌인데요. 이 선량한 영화를 풀어내는 이토록 여유로운 방식은 여러모로 참 '이준익스럽다'는 생각입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감독이 어깨힘 잔뜩 주고 덤벼들었다면 분명 지금과 같은 호평을 받지는 못했을 겁니다.

 

물론 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의도가 뭐가 되었든 간에 심심한 영화라는 사실 자체가 변하지는 않기에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부르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평평한 영화답게 전개가 눈에 훤히 보인다는 단점 역시 부정하기 어렵죠. 목적의식이 최대한의 런타임을 이 '90년대 감성의 인간미'로 채우는 것이다 보니, 말미에 진행을 위한 진행을 짧은 시간에 몰아서 해치우는 감각 역시 다소 작위적이긴 합니다만. 그런 일련의 것들이 영화가 추구하는 가치와 의의를 퇴색시킬 만큼 큰 흠이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 4.

 

영화는 소위 '한물 간 스타'가 제2의 전성기를 맞는 과정의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온전한 재기에 대한 내용이라기보다는 꺼지기 직전의 마지막 불꽃과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게 인상적입니다. 매니저 '민수'와의 재회 이후에 '최곤'이 과연 다시 메인스트림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솔직히 회의적이죠. 둘은 그렇게 엔터테이너와 매니저로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오랜 친우로서의 여정을 이어간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울 겁니다. 즉, 영화는 라디오스타로서 '최곤'이 재기하는 영화가 아니라 결국 <시대의 흐름에 밀려난 '최곤'이 자신을 사랑해준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진중하고 솔직한 인사>라는 거죠.

 

흥미로운 것은 이 감각이 온전히 배역 '최곤' 뿐 아니라 현실의 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에게서도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80년대 영화배우 끝판왕 '안성기'와 90년대 최고의 흥행 보증수표 '박중훈'. 말 그대로 범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었던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배우 콤비에게 감독 '이준익'이 영화계를 대표해 보내는 마지막 송사와 같은 느낌이랄까요. 영화가 개봉한 시기인 2006년은 90년대의 감수성이 통용될 수 있는 마지막의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참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 5.

 

물론 이후로도 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은 나름의 필모그래피를 몇 년간 더 이어나가긴 합니다만, 이름값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관객과 평단 모두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습니다. (물론 '박중훈'의 경우, 『내 깡패 같은 애인』을 통해 반짝 성취를 이루긴 합니다만, 그 이외의 작품 활동들은 성공과는 거리가 멀죠.) 시간이 지나고 나서의 결과론이라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론 관객이 두 배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왜냐면 이 영화를 끝으로 영화 속 팬들이 자신의 스타 '최곤'을 추억에 묻으며 작별을 고한 것처럼, 현실의 관객들 역시 배우 '안성기', '박중훈'과 작별을 고했거든요.

 

만약 더 작품 활동을 하고 싶었다면 두 배우는 이 영화를 하지 않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동시에 이 영화를 할 거였다면 멋지게 영화판에서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하게 됩니다만, 당사자에게 있어 평생을 몸 담았던 판을 떠나는 건 절대 쉬운 선택이 아닐뿐더러, 남이 그런 강요나 주장을 입어 담는 건 무례한 일이기도 하기에 다소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코엔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래』를 보며 '서부극'이라는 흘러간 장르에 대한 존중 어린 작별이라는 평을 했었는데요. 이 영화는 흘러간 '근대 한국 영화'와 그를 대표하던 최고의 배우들에 대한 존중 어린 작별이라 할 수 있겠네요. '비와 당신'을 들을 때면 『라디오 스타』와 배우 '안성기'와 배우 '박중훈'과 두 배우의 앙상블과 두 배우를 대표하는 무수히 많은 명작들을 그리워하게 되겠죠. 개인적으로 좀 뜬금없는 소리로 글을 마무리하자면 저는 이 두 분이 매우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관객들은 두 분 덕에 너무도 많은 시간이 행복했으니까요. '이준익' 감독, 『라디오 스타』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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