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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언젠가 4월이었을 당신에게 _ 4월 이야기, 이와이 슌지 감독

그냥_ 2018. 12. 1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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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일본 영화 좋아하시나요? 일본 영화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뇨, 애니메 말구요. 아뇨, 빌어먹을 코스프레 특촬물 말구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나 『지금 만나러 갑니다』. 혹은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나 『바닷마을 다이어리』 같은 영화들 말이죠.

 

글쎄요. 저는 말보다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다. 약간은 게슴츠레하게 뜬 눈을 슬쩍 사선으로 올려다보며 무언가를 회상하는 사람. 피식 웃는 입꼬리는 한쪽만 가볍게 올라가고, 마음속 깊이 쌓인 무언가를 숨에 담아 긴 호흡에 내보내는 소리가 들리는 그 순간. 언제든 자리를 뜰 수 있다는 듯 어설피 걸터앉은 엉덩이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한가로운 오후 하늘을 올려다보며 떠나가 버렸지만 남은 것들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추억들을 담담히 곱씹는 이의 모습. 그런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사연보다는 감정을 고스란히 꺼내 섬세하면서도 담백하게 세공해 보여주는 그런 영화. 너무 복잡한가요?

 

 

 

 

 

 

 

 

'이와이 슌지' 감독,
『4월 이야기 :: 四月物語』 입니다.

 

 

 

 

 

# 1.

 

슬프지만 오롯이 슬프지 않고, 기쁘지만 오롯이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만 오롯이 사랑스럽지 않은. 야속하지만 오롯이 야속하지 않고, 창피하지만 오롯이 창피하지 않으며, 그립지만 오롯이 그립지만은 않은. 아직 언어가 점유하지 못한 특별한 정서의 회색지대를 부르는 이름. 말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지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망울을 마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다 알 것만 같은 뭉클하게 하는 그것. 역시 너무 복잡할까요? 아니면 짧게, '4월 이야기' 같은 거라 답할 수도 있겠죠.

 

스무살의 시작들을 지나오셨나요? 평범한 누구나 한 번쯤은 지나왔을 그 시기미숙함을 부끄러워하지만 아직 그 미숙함이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부러운 것임을 모르는 시기.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모든 것들이 어설픈 시작일 수밖에 없는 시기. 이를테면 첫 독립. 첫 사회생활. 첫 대학. 첫 사랑. 마지막으로 내딛는 첫 번째 걸음마. 역시 너무 복잡할까요? 아니면 짧게, '4월 이야기'를 보시라고 답할 수도 있겠죠.

 

 

 

 

 

 

# 2.

 

여러분의 '4월'은 언제였나요. 벚꽃이 쏟아질 듯 흘러내리는 어느 날. 처음 홀로 선 자취방. 의욕에 넘쳐 머리를 묶고 소매를 걷어 올리지만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던 그때의 나. 처음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쭈뼛쭈뼛 전하는 자기소개. 혼자 앉은 식당 맞은편에서 어색한 대화를 건네는 새 친구. 혼자서는 처음 와본 오래된 영화관. 공터에서 어설프게 던져보는 낚싯대. 책 향기 가득한 서점. 그곳에서 만난 첫사랑.

 

갑자기 쏟아지는 봄날의 소나기. 그 남자에게서 건네받은 부러진 빨간 우산. 이 모든 것을 담은 옆으로 긴 스크린과 물 빠진 수채화 같은 화상. 느리게 느리게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 한 시간 남짓 짧은 시간 내내 숨 막힐 듯 벅차오르는 정서. 그런 것들이진 않으셨나요? 아니면 역시, '4월 이야기'로 대신 답할 수도 있겠죠.

 

 

 

 

 

 

# 3.

 

너무나 일본 영화스러운 일본 영화입니다.

 

섬세한 스물의 감수성이란 추상적 개념의 시각화입니다. 관객 머릿수만큼의 특별한 추억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무언가입니다. 이와이 슌지죠. 제가 이해하는 예술의 정의란 언어의 공백을 메우는 것입니다. 한마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 시절 그 순간의 무언가를 감각적으로 짚어주는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참 예술적이죠.

 

모든 것은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당신의 이야기라 말하는 1인칭 도입부는, 한없이 차가운 눈발이 내리는 홋카이도입니다. 그렇게 떠나온 캠퍼스는 쏟아질 듯 벚꽃이 휘날리죠. 하늘은 언제나 맑음. 다소 미숙하고 어설프지만 결코 불안하거나 위태롭지 않습니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처럼 갑작스레 덮친 첫사랑에서도 우즈키가 가진 4월의 생동감은 결코 빛을 잃지 않죠. 어느 공간 어느 시간에서나 4월은 감동적입니다.

 

2.35:1의 비로 과하다 싶게 넓게 벌려진 스크린은 끊임없이 걷고 자전거를 타는 삶의 연속성입니다. 특유의 세기말 감성 돋는 색감 역시 박동하는 우즈키의 생명력을 더욱 화사하게 다듬죠. 그럼에도 이 영화의 표현에 있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음악일 겁니다. 하나같이 버릴 곡이 없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옛날엔 CD 한 장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면 보통 1시간 남짓에 떨어졌는데요. 67분의 런타임이 어쩌면 이 음악들을 한 앨범처럼 들려주고 싶어서가 아녔을까라는 착각마저 들게 됩니다.

 

 

 

 

 

 

# 4.

 

올해도 어느덧 보름 남짓 남았네요. 시끌벅적한 1월이 순식간에 흐르고 어수선한 2월이 어영부영 지나면 여느 때처럼 4월이 또 찾아오겠죠. 그 시간이 오면 이 영화를 또 다시 봐야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앤딩 크레딧과 함께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 장소가 다시금 떠오르겠죠. 어차피 기억이라 부를 거라면 저 역시 사랑의 기적이라 부르겠습니다. '이와이 슌지'가. 『4월 이야기』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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