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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단편영화를 권하는 이유 _ 민우씨 오는 날, 강제규 감독

그냥_ 2019. 2. 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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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아직도 나는 당신의 모습 보지 못하고

당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내 집 문 앞을 지나시는

당신의 조용한 발걸음 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강제규' 감독,

『민우씨 오는 날 :: Awaiting』 입니다.

 

 

 

 

 

# 1.

 

쉽지 않네요. 리뷰마다 없는 글재주 짜내느라 나름의 고충이 있습니다만, 이 작품은 평소의 그것보다 조금 더 힘든 느낌입니다. 단편영화들은 아무래도 간결한 이야기 속에 선명한 메시지를 담는 작품들이 많은데요. 생각나는 얘기를 함부로 했다가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과 이 이야기에 얽힌 삶을 사시는 분들께 폐가 될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죠.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가급적 글을 읽지 마시고 영화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이 영화는 소중한 시간과 돈을 들여 보아도 아깝지 않은 완성도와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내 '연희'가 홀로 집에 남아 남편 '민우'를 기다린다는 이야기입니다.

 

담담한 일상이 따뜻하게 그려집니다. 과정에서 이물감을 느낄만한 떡밥들, 이를테면 정체모를 알약을 6개씩이나 먹는다던지, 기억이 나빠 메모를 해야 한다던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유려한 요리 솜씨라던지, 냉면에 얽힌 이야기라던지, 할머니들 사이에서의 어색한 에어로빅이라던지, 의사의 '곱다'는 말이라던지, 헛것이 들린다던지 하는 등의 것들이 스쳐 지나는데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감독이 의도한 영화의 호흡보다 조금 더 빨리 감을 잡으실 수도 있겠네요.

 

 

 

 

 

 

# 2.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는 단체에서 '연희'를 찾아와 공손한 태도로 북에 남은 '민우'를 찾았다 말합니다. 아... 그렇죠. 분단으로 남편과 헤어진 이산가족이었네요. 그녀는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은 노년의 여성이었습니다. '연희'는 새로 결혼한 남편과도 헤어지고 처음의 남편을 잊지 못해 홀로 기다리는 치매에 걸린 노년의 할머니입니다.

 

남편을 만나볼 마지막 기회를 잡은 '연희'. 하지만 협상이 결렬되어 무기한 연기됩니다. 그녀에겐 그 무기한을 버텨낼 여력이 없는데 말이죠. 절망하는 '연희' 앞을 가로막는 군인들의 모습이 관객의 가슴을 사정없이 쥐고 흔듭니다. 신문 속 단신으로 만나게 되는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과 연기라는 문구들이 누군가에겐 평생의 시간을 얼려버릴 만큼 육중한 것이라는 걸 전달합니다. 정성스레 준비한 도시락을 흔들어보이는 '연희'의 모습 뒤로 흐르는 무심한 앵커멘트가 시대의 건조함과 무심함을 강화합니다.

 

젊고 고운 여배우가 노년의 '연희'를 연기한다는 것이 주는 울림이 상당합니다. 주책맞은 할머니, 한 많은 할머니, 불쌍한 할머니가 아니라 가족과 헤어진 그 혹은 그녀들의 내면은 지금의 시간을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소년이고 소녀입니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자식도 새 남편도 잊어버린 엄마 '연희'와 그녀를 오래도록 엄마라 부르지 않았던 딸 '사라'. 결혼을 거부하던 '사라'가 마지막에야 새로운 출발을 말하며 엄마에게 사랑을 이야기할 때, 수많은 연희씨들의 딸이자 아들이었던 관객들은 쏟아져 내리는 눈물은 참아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 3.

 

중절모를 들고 집을 나서는 '민우'. 그 뒤를 세상 사랑스러운 걸음으로 아장아장 뛰어가는 '연희'. 눈물 가득 머금은 눈으로 손을 흔드는 '연희'는 눈 감기 직전 그녀가 꾸는 끝내 이루지 못한 꿈입니다. 오프닝에서 멈춰 선 에메랄드 빛 버스와 그 앞을 가로지르는 엠뷸런스는 사실 이산가족 상봉이 결렬되고 되돌아오던 길에서 끝난 그녀의 마지막이었던 거죠. 영화적 도치라 할 수 있겠네요.

 

도치의 효과가 훌륭합니다. 현실에서의 '연희'와 남편을 만나 행복한 꿈속의 '연희'를 고속버스 속 비극적인 마지막이 단절하지 않도록 도려내면서, 동시에 영화를 도입부에서부터 다시 곱씹어 볼 수 있게 합니다. 감독은 '연희'의 정체와 '연희'의 마지막이라는 두 번에 걸친 반전을 고작 26분 사이에 깔끔하게 작동시킵니다.

 

 

 

 

 

 

# 4.

 

물론 영화로서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연희 씨'의 일상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정체와 관련된 떡밥들이 너무 많고 또 너무 노골적입니다. 때문애 '손숙 배우'와 교차되는 과정에서의 감동이 조금 덜하죠. 카메오 활용도 좀 아쉽습니다. 물론 좋은 의도의 좋은 영화에 기꺼이 출연해준 배우들의 선의는 존중합니다만, 윤다훈과 김수로의 존재감은 본의 아니게 영화에 대한 집중력을 일정 부분 잡아먹고 말았네요.

 

주인공 '연희' 역은 문채원 배우가 분합니다. '고수'나 '손숙' 그 외 유명 배우들이 출연합니다만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문채원의 영화입니다. 26분의 런타임을 사랑에 빠진 소녀의 눈과, 단아하고 섬세한 숙녀의 표정과, 곱고 서글픈 노년의 몸짓으로 가득 메워 냅니다. 아름답네요. 훌륭한 배우의 진심이 담긴 표현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스크린을 가득 채웁니다. 역시 문채원은 눈부신 미모만으로 평가되기엔 너무 좋은 배우입니다.

 

 

 

 

 

 

# 5.

 

개인적으로 선량한 의도가 영화의 만듦새를 압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의도가 좋으니까 대충 만들어도 괜찮다는 식의, 이 영화를 까는 건 이 위대한 혹은 불쌍한 인물들을 까는 거라는 식의 비겁한 무언가 들을 굉장히 혐오하죠. 그 좋은 의도 속 인물들을 돈벌이로 써먹으며 되려 욕보이는 행동이니까요. 다행히도 이 영화는 쉽게 건드리기 힘든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그 만듦새가 의도에 누를 끼치지 않습니다.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다루는 영화가 '단편'이라는 것이 역설적입니다. 그네들의 길고 긴 시간이 마치 짧은 단편처럼 메말라 쪼그라들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그들이 헤어져 살아온 70여 년의 세월의 긴 시간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기분도 듭니다. 참... 여러모로 미안하고, 안됐고, 사랑하고, 그렇네요. 영화는 단편입니다만 다 보고 난 이후의 감정을 추스르는데 다른 여느 장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를 영화입니다. 단편영화? 뭐? 20몇 분? 시시하게 그 동안 무슨 얘길하겠어?라 생각하시는 분께 자신있게 이 영화를 권합니다. '강제규' 감독, 『민우씨 오는 날』 이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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