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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홉스의 영화적 증명 _ 갓즈 포켓, 존 슬래터리 감독

그냥_ 2021. 11. 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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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연기를 볼 마지막 기회"

- The Telegraph, 영화 홍보 카피 중에서-

 

 

 

 

 

 

 

 

'존 슬래터리' 감독,

『갓즈 포켓 :: God's Pocket』입니다.

 

 

 

 

 

# 1.

 

영화의 제목은 갓즈 포켓, 신의 호주머니입니다. 호주머니에는 보통 볼품없는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잡동사니라 불리는 것들이죠. 각각의 용도나 정체성을 주목하지 않는 잡다한 것들의 무리. 값지지 않아 이리저리 구르고 깨져도 걱정이 없는 것들을 뜻합니다.

 

호주머니 속 잡동사니들은 걸음에 따라 뒤엉킵니다. 어느 조각이 위에 오르기도 하고 어떤 조각은 아래에 깔리기도 하지만 이는 걷는 사람의 의도가 아닌 운에 따를 뿐입니다. 무언가가 부서졌다거나 부서지지 않았다면 그 역시 조금 운이 나쁘거나 운이 좋았을 뿐이죠. 잡동사니 각각은 보다 안전한 자리, 안락한 자리에 머무르기 위해 끊임없이 부딪힐 테지만 그래 봐야 호주머니 속 제자리를 맴돌 뿐입니다.

 

새로운 물건이 더해지는 것도 기존의 물건이 꺼내어지는 것도 호주머니 속 사정과 무관합니다. 손을 밀어 넣은 후 거칠게 휘저어 필요한 것을 꺼내갈 뿐입니다. 호주머니에 머리를 집어넣고 세심하게 살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거였다면 애초에 혼란과 충돌이 충분히 예상되는 호주머니 따위에 쏟아부어두지 않았겠죠.

 

 

 

 

 

 

# 2.

 

갓즈 포켓의 사람들은 그 이름처럼 호주머니 속 잡동사니에 불과합니다. 친구 아들 시체 내다 버리는 장의사나, 깝치는 잼민이 뚝배기 부수는 노인네 등 제법 개성적인 캐릭터들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들 모두 하나의 운집한 무리로 인식되는 건, 작가의 의도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내내 벌어지는 무수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원하는 상승의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래 봐야 호주머니 속이니까요. 영화 내내 팔자를 고치는 건 빌려준 돈을 뜯으러 다니는 사채업자도, 호구를 물어내는 데 성공한 장의사도, 눈부신 미모의 유부녀와 환상적인 섹스를 즐긴 칼럼니스트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남들보다 운이 조금 좋았던' 경마 도박쟁이뿐이었죠.

 

# 3.

 

파괴와 폭력과 기만과 강도가 일상인 개막장 마을입니다.

모두는 이익과 욕망을 위해 거침없이 타인을 공격합니다.

 

사람이 죽었지만 죽은 이유는 주목되지 못하고 시신 또한 존중받지 못합니다. 죽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죽음은 다른 누군가에게 기회가 됩니다. 장례식을 거하게 열어 한몫 당길 기회라거나 유부녀와 바람을 피워 볼 기회, 중고 트럭을 헐값에 매입할 기회 등 말이죠.

 

피곤하고 불편한 진실보다 흥미롭고 유용한 루머에 반응합니다. 소문이 떠도는 동안에는 어두운 술집에 앉아 얼굴을 숨기고 있습니다. 화가 난 술집 사장이 불을 켜자 불만이 터져 나오지만, 불을 끄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타인의 소문엔 그렇게나 비겁하던 사람들이 자신들에 대한 적나라한 비평에는 분을 삼키지 못해 얼굴을 노출합니다. 우르르 몰려 나가 거칠게 폭행합니다.

 

 

 

 

 

 

# 4.

 

이렇게만 보면 마을 사람들이 짐짓 악당들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그렇게 못돼먹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빗발치는 총알과 통수와 루머의 향연이 관객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을 테지만 아들이 죽었다는 이웃의 소식에 수천 달러의 모음을 모은 것 역시 마을의 사람들이었다는 걸 잊어선 곤란하죠.

 

리온의 장례식엔 이웃들의 울음소리와 위로의 말이 가득했고 시신을 욕보인 장의사는 주먹질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사람들 사이에 나름대로 관계와 교감도 표현되어 있구요. 거래가 존재할 뿐 아니라 미약하게나마 신용이라는 것도 작동하고 있죠. 칼럼니스트에 의해 지옥처럼 묘사된 것과는 달리 어느 누구도 갓즈 포켓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는 인간 세상을 시니컬하게 부정하는 류의 풍자적 영화들과는 결이 제법 다름을 뜻합니다. 그저 특정한 조건 하에서의 인간 사회는 이러저러하다. 라는 중립적 진단에 훨씬 가까운 설정들이죠.

 

# 5.

 

영화는 편집증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석적인 역학 구도를 기만합니다. 폭행하러 간 사람은 폭행당하고 죽이러 간 사람은 죽습니다. 이곳엔 강자도 약자도 없습니다. 모두는 모두에게 투쟁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지극히 평등합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의미를 가지는 관계는 혈연血緣 뿐입니다. 아들을 잃은 엄마를 위로하는 사람은 그녀의 자매들이었고, 아들이 죽은 진짜 이유를 궁금해하며 값비싼 장례를 고집한 사람 역시 친엄마뿐이었으며, '아서' 역시 다름 아닌 가족의 보호 덕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죠.

 

 

 

 

 

 

# 6.

 

앞선 단락들에서 설명드린 갓즈 포켓의 사람들을 정리하자면, 영화 밖의 누구나와 똑같이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정많은 평범한 사람들이되, 사회적으로 합의된 도덕적 규율'만' 붕괴된 특별한 세상 속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

Bellum omnium contra omnes.

 

작가는 토머스 홉스(1588~1679, 정치철학자)의 열렬한 팬인 것처럼 보입니다. 시나리오는 홉스가 진단한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 본성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자연 상태에서 죽은 사람은 냉동탑차에 실린 고깃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사회적 인간의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죠. 영화를 보는 동안 마을 사람들의 행동에 강한 불쾌감이 느껴지셨다면 역으로 영화를 제대로 보고 있었다는 뜻으로 이해하셔도 무방하다는 생각입니다. 자연법을 선택하게 만든 당신의 본능적 불안을 공격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 7.

 

영화 <갓즈 포켓>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대응하는 두 이방인의 이야기라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은 당연히 마을 출신이 아닌 사람, 주인공 '미키'와 칼럼니스트 '차드'가 되겠죠. 영화에는 두 개의 엔딩이 존재하는 데요. 이 역시 각각 미키와 차드에 대응된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차드'는 지식인입니다. 화려한 언변으로 설득하고 계몽합니다. 그는 지성의 힘으로 사람들을 진단하고 규정하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팬을 자처하는 데 반해 게으른 표정으로 매년 같은 칼럼을 싣는 모습은 엘리트 의식을 엿보게 하죠.

 

그의 실패는 인간이란 동물은 생각만큼 그리 고상하지 않다는 것과, 지식인으로서의 명성도 약점이 드러난 순간 타인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전혀 보호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간과했다는 점입니다. 영화 말미에 당하게 되는 무자비한 폭행은 그가 유부녀와 잠을 잤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을 평가질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키'는 투쟁을 인정하고 시스템에 순응합니다. 갓즈 포켓의 룰에 따라 기만하고 강도하고 도박하지만 끝내 마을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는 결국 '아서'와 함께 마을을 떠나게 되는데요. 자연에 둘러싸인 곳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잠을 자는 동안 죽임 당하지 않기 위해 총 쏘는 연습을 해야 하는 인간, 원시적 인간으로 돌아갔음을 은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화 내내 사랑하는 아내를 얻기 위해 분투했습니다만 결국 혼자되고 맙니다. 미키의 결말은 차드의 앤딩에 비해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 더욱 절망적입니다.

 

 

 

 

 

 

# 8.

 

무심한 신이 길을 알려주거나 구원해 줄 것을 기대한다면 미련한 짓입니다.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합니다. 호주머니 속에서 서로 깎여 부서지지 않으려면 어떤 식으로든 규칙을 정해야 합니다. 사회의 룰을 지키는 건 곧 스스로를 지키는 것입니다. 시민법에는 '강도하고 음해하고 폭행하는 자유'를 포기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규약이 무너진 상태에서 낭만 타령이나 하고 있으면 '차드'처럼 응징당할 겁니다. 규약이 무너진 상태에 순응하면 '미키'처럼 버려질 겁니다. 알싸한 블랙 코미디의 이면에 노골적인 경고의 메시지를 숨겨둔 영화인 셈이죠.

 

# 9.

 

여담으로, 글 서두에서 영화의 국내 홍보 카피를 적어 뒀는데요. 작품의 메시지를 너무나 실천적으로 잘 보여주는 백미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죽음이 또 다른 누군가의 기회가 되는 야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의 카피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라는 사람의 죽음을 기회로 삼고 있다는 측면에서 말이죠. 영화를 보고 난 후 포스터를 보노라면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갓즈 포켓임을 증명하는 것만 같아 실소 끝에 섬뜩함이 묻어 나온달까요. '존 슬래터리' 감독, <갓즈 포켓>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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