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사진이 아닌 그림이고 설명이 아닌 문학이며 대화가 아닌 음악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
『문라이즈 킹덤 :: Moonrise Kingdom』입니다.
# 1.
사소하다. 뉴 펜잔스 섬의 곳곳도, 카키 스카우트의 야영장도, 낡은 경찰서와 항구도, 사랑의 도피를 떠난 샘과 수지도, 그들의 탐험과 낙원도 모두 작고 사소하다. 웨스 앤더슨은 그 심각성이 사소해 보일 수 있도록 다운스케일링된 이야기를 최대한의 사랑스러움으로 가다듬어 인형의 왕국을 축조한다. 사소함을 역설하는 달뜨는 왕국에서 감독은 무엇을 찾고 싶었던 걸까. 무엇을 담고 싶었던 걸까. 1
세계는 안전함과 별개로 구속적이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 그러하다. 울타리에 둘러싸인 야영지가 그러하다. 스카우트의 규율과 규율을 증명하는 무수한 훈장이 그러하다. 외로운 로미오의 성장환경이 그러하고, 답답한 줄리엣의 가정환경이 그러하다. 왼손잡이 가위로 무장한 두 사람은 치열한 사투 끝에 5.2km 갯고랑으로 달아난다. 하찮고 능숙한 문라이즈 킹덤에서 예상보다 훨씬 불타는 사랑을 나눈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붙잡히고 만다. 잔뜩 화가 난 비숍의 선언과 달리 카키 스카우트 대원들의 도움으로 다시 달아나지만, 건너편 섬엔 더 많은 스카우트가 기다리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폭풍과 홍수가 들이쳐 저수지를 무너트린다. 가면을 쓴 두 사람은 사람들에 섞여 높은 산 위 방주에 숨는다. 성당의 꼭대기까지 내몰린 연인은 아슬아슬한 첨탑의 끄트머리에 다다른다.
# 2.
위탁가정에서도 포기한 고아와, 고아가 부러운 문제아는 구속을 벗어나고 싶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지엔 달콤한 사랑보다 말썽의 빈도가 훨씬 잦은 이유다. 수지의 어울리지 않는 눈화장과, 샘의 어울리지 않는 시가 파이프는 시간의 구속을 벗어나고픈 욕망을 표현한다. 워드 대장도 놀란 외톨이 대원의 야영 솜씨와, 앞으로 더욱 가슴이 커질 소녀의 쌍안경은 공간의 구속을 벗어나고픈 욕망을 의미한다. 두 사람의 낙원은 사랑의 공간임과 동시에 자유의 공간이고, 영화는 짧은 해방을 지나 아슬아슬한 첨탑에까지 내몰리는 이야기다.
더없이 사랑스럽고 로맨틱한 영화는 사실 로맨스가 아니다. 웨스 앤더슨에 의해 제안된 샘과 수지는 이미 완전하기 때문이다. 한눈에 반한 두 사람은 확신으로 사랑하고 있고, 그 사랑은 과정에서 특별히 발전하지도 퇴색되지도 않는다. 인격적 성장에 도달하는 것도 없다. 3일간의 소동 끝에 연인에서 부부가 되었을 뿐이다. 오히려 두 주인공은 일종의 계기로써 자신들을 물리적으로 몰아붙이는 주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몰아세우는 압력에 가깝다. 영화를 보는 동안 변하는 것은 주변사람들과, 변화하는 주변사람들을 보며 함께 변화할 관객들이다.
사랑의 도피를 떠난 두 사람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사랑에 대한 진솔함은 영화 내내 정직하게 전염된다. 비단 샘과 수지뿐 아니라 스스로에게까지 구속적이었던 뉴 펜잔스 섬의 사람들은 두 사람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진화한다. 비숍 부인과의 외도에 솔직하지 못했던 경찰 소장 샤프는 책임을 선택한다. 샤프와의 외도에 솔직하지 못했던 비숍 부인은 스스로 지키지 못한 규율을 요구하던 위선을 직시한다. 가정의 위기를 힘을 통해 제압하는 것으로 외면하던 비숍은 가족의 의미를 성찰한다. 본능적으로 샘을 괴롭히고 기계적으로 샘을 추적하던 스카우트 대원들은 사명을 재고한다. 카키 스카우트를 유지하는 것에 구속적이던 스카우트 대장 워드는 사랑스러운 여인의 액자를 얻고, 수상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의 사회복지사는 자신의 방식이 실패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 끝에 줄리엣은 이전과 같지만 다른 집으로 돌아오고, 로미오는 자신과 똑 닮은 경찰의 아들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 3.
영화의 경험은 이들의 변화에 비추어 관객의 변화를 스스로 감동하는 것에 있다. 작품은 어린 시절의 감각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으고 모은 추억이 깃든 오르골과 같은 것이지만, 본질은 오르골의 거울에 비친 뭉클한 마음에 그렁그렁해진 관객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감독은 두 사람이 있었던 갯고랑을 문라이즈 킹덤이라 이름 붙여 앤딩으로 선사하지만 그곳엔 다정한 샘과 수지가 없다. 샘과 수지의 사랑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둘은 문라이즈 킹덤에 비숍과 우드와 샤프와 당신을 데려다 놓기 위한 가이드다. 따뜻한 색감과 대칭적 미감과 다정한 소품으로 쌓아 올린 문라이즈 킹덤은 꿈꾸는 어린 시절 첫사랑과 같은 풍경화. 웨스 앤더슨의 동화는 사진이 아닌 그림이고 설명이 아닌 문학이며 대화가 아닌 음악이다.
다소 복잡 다난한 감독의 영화 중에서 이례적으로 진솔하고 정직한 것은 이 영화가 진솔함과 정직함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필모그래피 중 가장 뛰어난 영화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비롯한 다른 영화일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가장 사랑스러운 영화는 단연 문라이즈 킹덤이 아닐까.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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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스 앤더슨이 축조한 사랑스러운 인형의 왕국. 영화평론가 이동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