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굳이 노력해서 더 재미없는 곳을 향해 추락한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스콧 데릭슨 감독,
『더 캐니언 :: The Gorge』입니다.
# 1.
영화는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협곡 위, 협곡 아래, 다시 협곡 위다. 첫 번째 파트의 주인공은 인물이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협곡의 실체와 관련된 설정이고, 세 번째 파트에서는 폭탄이다. 내러티브를 인간에서 설정으로, 다시 폭탄으로 추락시키면서 관객의 몰입이 다운그레이드되지 않길 바랐다면 솔직히 미련한 것이고, 애석하게도 감독은 최선을 다해 미련한 길을 내달린다.
전반부는 두 주인공을 관객에게 소개한 후 공간에 안착시키는 과정으로 점철된다. 리바이는 아무런 관계도 추억도 없어 인생의 기반이 없는 사람이다. 반복되는 ptsd는 군사 작전 이력이란 사명이 아닌 저주에 불과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자긍심에조차 의존한 수 없음을 짚어 확인한다. 반면 드라사는 유일한 기반을 잃게 생긴 사람이다. 아버지다. 자신의 불안을 스스로 관리하는 대신 아버지에게 버려온 인물로, 아버지와 만나는 공간이 무수한 주검들이 묻힌 묘지인 이유다. 그런 아버지는 암에 걸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딸이 죽음을 만류하자 아버지는 매섭게 자신의 인생이라 말한다. 눈앞의 남자는 나의 아버지 이전에 자신의 인생을 사는 타인이라는 것. 그것은 평생 아버지에게 의존해 온 동굴 속 숨어 살던 딸에게 무엇보다 무서운 것이다.
# 2.
고립된 남자와 고립을 앞둔 여자는 무시무시한 협곡에 배치된다. 광활한 스케일을 커버하는 화려한 화기보다 재미있는 건 쓸데없이 번거로운 자급자족의 시스템이다. 어차피 하룻밤 사이 헬기 타고 들락거릴 거리라면 물자 정도는 떨궈줘도 괜찮지만 그러지 않는 건 인물의 고립을 공간으로 연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맞은편 협곡의 두 사람은 나처럼 외로운 서로를 발견한다. 그날이 여자의 생일인 건 아버지 품 속에 살던 여자가 처음으로 자기 인생의 발을 떼는 것과 다름이 아님을 의미한다. 베테랑 저격수인 두 사람은 까마득히 먼 거리를 넘어 갓난아이마냥 관계를 연습한다. 더듬더듬 한 글자씩 전하는 스케치북과, 상대의 다음 걸음마를 기다리는 온화한 인내심이다.
망원경과 스코프는 친절한 미장센이다. 감독은 첫날부터 서로의 컵과 술병을 쏘게 만들어 사격실력을 과시하게 한다. 공격할 수 있는 수단과 능력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코프를 통해 상대가 나를 지켜보고 있음에도 두 사람은 불안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수단이 아니라 수단을 사용하는 사람임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평생 사람을 죽이는 용도로만 써왔던 기술은 처음으로 서로를 살리기 위해 활용된다. 천국의 젓가락처럼 멀리 서로를 먹이던 두 사람은 물리적 간극을 사뿐히 넘어 넉넉한 시간을 징검다리 삼아 정신적 관계를 누적한다. <퀸스 갬빗>(2020)과 <위플래쉬>(2014)의 소소한 배우개그로 쉬어간 후. 멀리 떨어진 사람의 나약함에 기회가 아닌 사랑을 느낀 남자는 협곡을 건넌다.
마침내 만나게 된 리바이와 드라사. 도입의 굳은 얼굴이 믿기지 않는 두 사람은 설레는 표정으로 인사한다. 대부분의 관객 역시 그 관계에 충분히 동화되어 있을 것이기에 함께 설레지 않을 도리가 없다. 모처럼 정장을 빼입고 토끼 파이를 나눠 먹은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눈다. 외로운 탑의 꼭대기에 올라 지옥을 내려다보는 대신 평화로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를 이야기하는 감정선은 제법 훌륭하다. 좋다. 관객은 성실하게 누적된 내면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이후 이어지게 될 관계에 대한 탐구를 함께 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 3.
그리고 감독은 두 주인공을 협곡 아래로 내동댕이친다. 만세.
1시간 동안 쌓아 올린 캐릭터는 모조리 집어치운 채 누구도 궁금하지 않을 언럭키 그루트의 내막과 식상한 생체실험 아이디어를 지루한 액션에 얹어 나열하는 만행을 장장 40분에 걸쳐 벌인다. 이제 막 첫 데이트를 끝낸 연인은 누적된 서사와 개성을 모조리 잃고, 뛰고 구르고 총 쏘는 액션 요원 1,2로 전락한다. 수십 년 묵은 협곡의 정체를 키보드질 몇 번으로 꿰뚫어 본 후 저격수인 건지 슈퍼솔저 혈청 처맞은 캡틴 아메리카인 건지 모를 능력으로 절벽을 기어오르는 걸 보노라면 미칠듯한 현타가 몰려온다.
대충 내막은 그러하다. 2차 세계대전 말미에 소련과 미국은 이면에서 생체병기 실험을 함께 진행했는 데 지진에 의해 시설이 파괴되며 통제력을 잃자 폐기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된 한 민간 군수회사에서 은밀하게 실험장으로 활용했고 감시 및 관리역으로 퇴역 군인을 데려다 소모품으로 활용했다는 식이다. 비밀스러운 공간치곤 지나치게 요란한 관리법의 부조화라던지, 아무도 내려갈 수 없는 협곡 아래라 드론으로 탐사하면서 왜 굳이 컴퓨터를 가져다 둔 건지, 와중에 인터넷 연결된 고성능 웹캠은 또 왜 설치해 둔 건지, 현대 자동화 화기로도 빠듯한 크리처를 50~60년대엔 어떻게 막아왔다는 건지, 크리쳐가 위로 올라오는 건 막는다지만 계곡 따라 옆으로 가는 건 대체 어떻게 막아온 건지, 절벽 올라오는 좀비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감염 위험이 큰 희뿌연 공기는 대체 어떻게 가두고 있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감독도 모를 테니 물어볼 필요는 없다.
# 4.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협곡에서 승부를 보기라도 하던가. 감독은 다시 한번 두 주인공을 협곡 밖으로 꺼낸 후 어설픈 수습을 시도한다. 탈출한 두 사람은 얼싸안고 행복해하지만 애초에 두 주인공이 탈출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바보는 없다. 감염되었을 수도 있다는 설정을 끼얹어 억지 긴장을 만들어보려 하지만 이제 막 관계를 얻은 두 사람의 인생이 감염 따위로 마무리될 것이라 생각하는 머저리 역시 세상엔 없다. 갑자기 안야 테일러-조이의 배에서 체스판이 튀어나온다거나, 마일러 텔러가 J.K. 시몬스와 융합해 드럼 괴물이 된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자빠져 있는 걸 쩐주인 애플이 내버려 둘 리 없지 않나.
어쨌든 협곡에 냅다 커플을 던졌고, 건져야겠다 싶어 건졌다면, 적당히 마무리짓긴 해야 한다. 그래, 일단 악당을 데려오자. 누가 봐도 일부러 죽으러 오는 시고니 위버 누님이 헬리콥터를 타는 순간, 들개인지 똥개인지가 발동되어 협곡은 폭발하고 그에 휘말려 악당 무리들 모두 죽는 와중에, 두 주인공은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아 위 아 더 월드 할 것이라는 건 미취학 아동도 알 수 있고, 예상한 전개에서 토씨하나 틀리지 않은 모습 그대로 흘러간다. 양심도 없이 본 아이덴티티 앤딩을 훔쳐오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나면 영화는 저격이고 협곡이고 나발이고 모든 개성을 잃은 채 그저 흔해빠진 ott용 액션 로맨스로 전락한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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