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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ction

설산에 홀로 헐벗은 듯 _ 레버넌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그냥_ 2025. 3.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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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실존하는 인간의 생이란 매 순간 가감 없이 선명한 것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 The Revenant』입니다.

 

 

 

 

 

# 1.

 

〖 1823년 8월, 그랜스 강 유역에서 곰에게 습격당해 살해당한 줄 알았던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 휴 글래스가 6주 동안 320km를 이동해 극적으로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입니다. 〗

 

당시에도 신문 같은 것이 있었다면 대충 이런 식이지 않았을까.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적잖은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느꼈겠으나, 그럼에도 실제 경험한 이에 비하면 심드렁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은 비단 19세기 사람들만의 무신경함이 아니다. 지금도 누군가의 비장한 사건이 두어 문장에 실리는 동안 사람들은 찰나와 같은 감상 끝에 흘려보낸다. 하지만 경험해 알고 있듯 실존하는 인간의 생이란 매 순간 가감 없이 선명하고 잔인하다. 히치콕은 드라마를 일컬어 지루한 부분을 잘라낸 인생(Drama is life with the dull parts cut out.)이라 했다지만, 그 지루한 부분이라 해서 만만하진 않다. <바벨>(2006)과 <버드맨>(2014)을 연출한 멕시코인 감독은 위의 97자로 이루어진 태만한 문장의 틈을 비집고 헤집고 찢어발겨 1초마다의 처절함과 1초마다의 잔혹함을 눈앞에 들이민다.

 

오스카를 얻기 위한 디카프리오 최후의 발악이란 우스갯소리처럼 영화 내내 휴 글래스의 투쟁은 비참하고 비정하다. 대부분의 분량이 주인공의 고난으로 점철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집채만 한 회색곰에게 습격당해 목소리를 잃고 등을 헤집히고 다리가 부러진다. 눈앞에서 하나뿐인 아들을 잃는 동안 저항은커녕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고, 원수가 아들을 모욕하고 자신을 내팽개치는 동안 저주의 말 한마디 할 수 없다. 분노와 오기로 무덤에서 기어 나온 글래스는 구멍 뚫린 목을 막으려 스스로 불을 지지고, 리 족의 추적을 피하려다 폭포에 휩쓸린다. 다행히 인디언 남자의 도움에 기력을 조금 회복하지만 다시 쫓긴 끝에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나뭇가지에 걸려 간신히 목숨을 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눈보라가 몰아친다. 혹한을 견디기 위해 죽은 말의 내장을 들어낸 후 알몸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가장 충격적인 순간으로, 영화가 자신의 방법론을 얼마나 집요하게 관철하려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감독은 글래스의 투쟁을 왜곡된 앵글을 통해 과시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휴 글래스에게서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스크린 앞에 주눅 들게 만드는 이 압도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 2.

 

물론 생에 대한 집념이 우선하겠지만, 동시에 개인을 초라하게 만드는 세계로부터의 압도감이기도 하다. 관객은 막연하게 망각하던 휴 글래스가 살아 돌아오는 과정을 또박또박 지켜봄으로써 미처 생각지 못했던 세계의 두터움을 함께 감각한다. 결말에서 말하는 ‘신의 뜻’의 함의다.

 

이를테면 웅장한 세계는 장대한 아름다움과 가혹한 시련의 얼굴을 함께 가진다. 매서운 루이지애나의 추위는 글래스의 고난이지만 그가 달아날 수 있었던 이유이자 상처가 곪지 않았던 이유다. 총은 흉악한 공격임과 동시에 위치를 노출시킨다는 면에서 피학적인 것이다. 회색곰은 모든 문제를 일으킨 원흉이지만 그는 자신의 새끼를 보호하려 했을 뿐이고, 이는 글래스와 별반 다르지 않다. 브리저는 비열한 짓에 가담하지만 사람을 연민할 줄 아는 겁 많은 소년이다. 심지어 피츠제럴드에게도 사연은 있다. 그는 악인이고 결국 대가를 치르지만 그럼에도 인디언에 대한 경계심과 이기적인 행동들에 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 3.

 

글래스라는 분노가 세계를 가로지르는 동안 아군과 적군, 피해와 가해, 야만과 문명의 게으른 경계는 날 선 아이러니와 함께 마구 휘몰아친다. 인디언은 한 단어로 뭉뚱그릴 수 없다. 무수한 부족의 성향과 이해가 얽혀 있으며 그 속에서 다시 개개인이 선명하게 실존한다. 작품은 추적하는 인디언과 달아나는 글래스의 구도이지만 인디언의 추적엔 추장의 딸과 관련된 피해가 있고 그 연원은 다시 침략자인 백인들에게 있다. 밤새 최선으로 백인을 살린 히콕은 백인들에게 처참히 살해당하고, 가장 문명적이었던 인물의 목에는 야만이란 조롱이 걸린다. 글래스가 살아남은 것은 겁탈당하던 포와카를 구했기 때문이지만, 그저 말이 필요했을 뿐 선량함으로 그녀를 구한 것은 아니다. 몰살당한 프랑스인들에겐 글래스야말로 지독한 원수일 지도 모른다. 몇몇의 장면에서 프랑스인들은 비열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영국인들에 비하면 인디언에게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세력이었다.

 

설원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에게 인디언은 먹을 것을 나눠주고 영국인은 가진 것을 내놓아라 말한다. 인디언이 두피를 벗기는 걸 잔인하게 이야기하지만, 정작 백인들은 동물의 가죽을 벗겨 돈을 번다. 헨리 대위는 분노에 차 피츠제럴드와 브리저를 비난하지만, 그 역시 글래스가 죽도록 내버려 둔 것은 마찬가지다. 그가 몇몇의 무리를 글래스의 곁에 남긴 건 고작 장례를 치르기 위함일 뿐이다. 환자를 장례하는 문명과 환자를 치료하는 야만이 동시에 벌어지는 전경을 두고 영화는 묻는다. 아군과 적군은 누구인가. 야만과 문명은 무엇인가. 피해와 가해는 누구의 것인가.

 

 

 

 

 

 

# 4.

 

수병에 그려진 소용돌이처럼 세계는 그렇게 다면적이고 또 순환적이다. 거대한 순리 앞에 놓인 인간은 살을 에는 설산에 홀로 헐벗은 것과 다르지 않고, 그저 살아남기 위한 최선을 발악한 후 나머지는 신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영화의 압도감이란 인간에게 한없이 싸늘한 세계의 한기와, 그 한가운데 버려진 인간의 처지를 지켜보는 차가운 시선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복수에 성공하지만 피츠제럴드는 글래스에게 자신을 죽이라 말하며 조소한다. 그래봐야 죽은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잔인한 진실과 함께. 복수하지만 무엇을 위해 복수하는지 알 수 없었던 글래스는 '복수는 신의 뜻대로'라는 말과 함께 강건너로 피츠제럴드를 떠내려 보낸다. 작품의 미학이 미술적으로 펼쳐지는 순간이다. 만약 마지막 부족이 포와카의 부족이 아니었다면 여지없이 글래스는 죽었을 것이다. 그가 살아남아 아내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일 뿐이고, 세계가 그러할 뿐이다.

 

옥죄는 듯한 강력한 집중력으로 견인해 나가는 영화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확장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작중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영화를 본 관객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미주리강 유역의 다양한 지역과 인디언 부족들의 관계를 속속들이 꿰고 있기까지 글래스의 부자가 건너와야 했을 고난의 시간들을 말이다. 포니 족 여자 사이에서 혼혈 아들을 얻었던 시기의 비난들과, 이후 아내를 잃고서 겪어야 했던 좌절들, 피츠제럴드에게 복수를 마친 이후의 허무함이라 해서 영화 속에서 보여준 복수의 시간보다 밀도가 떨어지진 않을 것이고, 관객은 그것을 직접보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전에 비해서는 훨씬 부지런하게 헤아릴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비로소 관객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도 단편적인 문장의 틈을 찢어발겨 각자의 추운 세계 안에서 헐벗은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든 순간을 직시할 것이다.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Netflix, Tving, WatchaPlay, CoupangPlay, Appletv,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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