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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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 221

피해망상의 주인 _ 웨더링, 메갈린 에치쿤워크 감독

# 0. 피해망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메갈린 에치쿤워크 감독, 『웨더링 :: Weathering』입니다. # 1. 확실히 넷플릭스는 단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단편을 낼 거라면 차라리 시리즈를 선호하는 편인데요. 체류시간을 최대한 길게 뽑아내자는 운영방침에 반하기 때문인 거겠죠. 그럼에도 가끔씩은 단편을 제작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단편은 왓챠에서 주로 본다지만 외국 단편은 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소소하게나마 제작되는 넷플릭스산 단편들은 생각보다 더 쏠쏠합니다. 아이를 유산하게 된 엄마가 느끼는 자책감과 트라우마를 조명하는 작품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겁니다. 병원과 집을 오가는 각각의 장면들은 실제 일어난 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인공 '제미나'를 짓누르는 가혹한 감정들의 시각적 ..

Film/Thriller 2023.06.30

편리한 낙원은 없다 _ 존 윅 4,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 0.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존 윅 4 :: John Wick Chapter 4』입니다. # 1. 부제를 떼고 마침내 완성된 존 윅입니다. 분노라는 핵심 정서와 이를 작동시키기 위한 특유의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는 앞선 글에서 했으니 링크로 대신하도록 하구요. 마트 마감할인 같은 넉넉한 인심의 액션들과 수많은 오마주에 대해 이야기드리려면 스틸 컷을 따야 할 텐데, 역시 귀찮으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쯤 되면 그럼 넌 무슨 이야기를 할 건데? 싶으실 텐데요.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대사 한 줄로부터 파생된 이야기를 가볍게 나눠볼까 합니다. 그것은 바로 Without Rules, We live with the Animals. 우리말로, "규율이 없다면 우리는 동물에..

Film/Action 2023.06.10

'이런 영화'를 본다는 것 _ 내 이름은 마더, 니키 카로 감독

# 0. 아직 못 본 영화가 많습니다만 그럼에도 대충 기천 편은 넘어가고 있으니 적잖이 영화를 좋아한다 해도 무리는 없을 겁니다. 관람 편수가 그 정도가 되면 아무리 무심한 사람이라도 감이라는 게 오기 마련인데요. 요컨대 '이런 영화'를 보며 이야기를 기대할 만큼 미련하지는 않다는 것이죠. 니키 카로 감독, 『내 이름은 마더 :: The Mother』입니다. # 1. 주연은 제니퍼 로페즈입니다. 포스터를 대문짝만 하게 장악하고 있는 걸로 보아 전형적인 원탑영화처럼 보이죠.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총질 난사하는 예고편과, 노골적인 제목에 미루어 본다면 적당히 모성코드를 비벼낸 액션 영화쯤 될 겁니다. 최근의 이나 ,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나 같은 작품들이 얼핏 떠오르는 데요. 죄다 실망스러운 작품이..

Film/Action 2023.05.28

눈 가리고 아웅 _ 인어공주, 롭 마셜 감독

# 0. 답이 뻔한데 왜들 이러실까. 롭 마셜 감독, 『인어공주 :: The Little Mermaid』입니다. # 1. 인어공주는 결국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와 육지를 오가는 눈부신 붉은 머리와 경쾌한 안다다씨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과 별개로 서너 가지의 딜레마와 그 안에서의 가혹한 선택이라 요약한다 해도 무리는 없는 작품인 것이죠.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첫 번째 딜레마는 다들 아시는 대로 아름다운 [미모]와 인어라는 [운명]입니다. 에릭 왕자와 사랑에 빠진 주인공은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마녀 우르슬라를 찾아가 [다리]를 얻는 데 성공하지만, 대가로 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불하게 되죠. 이후 원작에서는 왕자와의 [사랑]과 물거품이 ..

Film/SF & Fantasy 2023.05.26

착각의 늪 _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아론 호바스 / 마이클 젤레닉 감독

# 0. "자기감정에 속기도 하거든요." 아론 호바스 / 마이클 젤레닉 감독,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 The Super Mario Bros. Movie』입니다. # 1. 이 영화를 리뷰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 2. 극장을 나서며 든 첫 번째 생각입니다. 이 작품은 마리오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영화라는 그릇을 빌린 [마리오]였기 때문이죠. 좋게 말하면 칼 같은 손익계산에 힘입은 영리한 초정밀 타게팅 상품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박하게 말한다면 팬심에 절대적으로 기대는 서비스 덩어리라 해도 무리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냥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하다못해 마리오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마리오가 벌이는 '이 영화만의 특별한 모험'을 기대한 사람들을 위한 요소는 그냥 전무하다 해도 무방..

Film/Animation 2023.05.18

손가락의 방향 _ 이츠 어 디재스터, 토드 버거 감독

# 0. 빌어먹을 세상이 또 망했습니다. 이쯤 되면 망하지 않는 세상이 잘못인 것 같아요. 토드 버거 감독, 『이츠 어 디재스터 :: It's a Disaster』입니다. # 1. 네 쌍의 커플이 커플 브런치라는 이름의 소소한 파티에 참석하는데요. 갑자기 세상이 망했다 합니다. 이유 모를 공격으로 미국 한 복판에 방사능 오염과 신경독 가스가 퍼지게 되고, 파티 중인 집 안에 모조리 고립되어 버렸다는 설정인 것이죠. 나름의 발버둥이랍시고 덕트 테이프를 문틀에 처덕처덕 발라보지만 그 정도로 해결될 리 없습니다. 결국 몇 시간 못가 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된 상황. 사람들이 보이는 각양각색의 발버둥을 수다스러운 대사에 얹어 관찰하는, 고런 느낌적인 느낌의 코미디 영화라 할 수 있겠네요. 방사능이 어쩌..

Film/Comedy 2023.05.06

닌쟈리 방방 _ 존 윅 시리즈,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 0. 연작의 신작이 나올 때면 기계적으로 예전 영화들을 몰아보게 되는데요. 이번엔 존 윅이군요. 최근 들어 매트릭스도 그렇고 백 투 더 퓨쳐도 그렇고 오래전 시리즈를 하나의 글로 뭉개서 수다를 떠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이런 것도 썩 나쁘지 않다 싶기도 합니다. 보고 싶은 신작의 리스트가 밀린다는 점만 빼면 말이죠.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존 윅 :: John Wick』입니다. # 1. 이러나저러나 존 윅의 핵심 키워드는 분노입니다. 존나 센 주인공이 빡쳐서 모조리 죽여버리는 액션 영화라는 정의에 이렇게나 무식하게 들어맞는 작품도 또 없죠. 비슷한 감정선을 가지는 대부분의 영화들은 빈 컵을 준비한 후 물을 담는 과정을 성실하게 묘사하는 방식으로 풀어갑니다. 담기는 물(스트레스)의 양으로 분노의..

Film/Action 2023.04.20

담음새 _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 딘 플라이셔-캠프 감독

# 0. 평범하고 소소한 아이디어를 비범하고 웅장하게 담아낸다. 딘 플라이셔-캠프 감독, 『마르셀, 신발 신은 조개 :: Marcel the Shell with Shoes On』입니다. # 1.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진 않는데요. 모 유튜브에서 '평론가는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느라 재미는 덜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동진 평론가가 대충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영화에 친숙하지 않은 일반의 관객들은 영화를 두 가지 기준에서 보게 된다. 하나는 스토리, 다른 하나는 연기다. 하지만 영화에는 스토리와 연기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정보들이 있다. 이를 테면 쇼트나 편집, 구도나 플롯 따위의 흔히 연출이라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때론 스토리나 연기가 특출 나지 않음에도 훌륭한 영화들이 있고 그런 영화들 역시..

Film/SF & Fantasy 2023.04.12

얼음으로 들어가 불로 나온다 _ 디스트릭트 9, 닐 블롬캠프 감독

# 0. 볼 영화가 없다는 건 정확한 표현은 아닐 겁니다. 그저 '지금 영화관에서' 볼 영화가 없을 뿐이죠. 닐 블롬캠프 감독, 『디스트릭트 9 :: District 9』입니다. # 1. 여러분께서 이 글을 언제 읽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2023년 3월 중순인 지금 국내 영화판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강제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재들의 전유물인 것만 같던 슬램덩크가 400만을 훌쩍 돌파하고, 팬이 많은 만큼 중2병이란 꼬리표도 함께 따라다니던 신카이 마코토의 스즈메가 300만을 노리고 있는 요즘이죠. 포스트 코로나의 수혜를 다른 영화도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이 받고 있는 모습이 다소 어색하긴 합니다. 영화로 밥 벌어먹고사는 당사자들에겐 심각한, 한 발짝 떨어진 사람들에겐 신기한 작금의 현상에 대해 갑론..

Film/SF & Fantasy 2023.03.28

겁나 높은 곳은 겁나 무섭다 _ 폴: 600미터, 스콧 만 감독

# 0. 사는 건 힘들고, 죽는 건 무섭다. 스콧 만 감독, 『폴: 600미터 :: Fall』입니다. # 1. 암벽 등반 마니아 셋이 있었는데요. 달달한 신혼부부 사이 여자 하나가 꼽사리 낀 모양새군요. 사랑의 암벽 등반을 즐기던 중 남편이 거대 닭둘기에 당해 낙사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눈앞에서 남편 잃은 아내는 폐인이 되고, 같이 벽 타던 친구는 잠적합니다. 긴 시간 괴로움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아내가 남편 따라가기 직전 잠적한 친구가 짜잔 나타나는 데요. 그 사이 인스타와 유튜브를 두루 섭렵한 개막장 관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친구 헌터는 남편 잃은 주인공 베키를 꼬셔 600미터짜리 티브이 타워에 올라가 유해를 뿌리자는 속이 뻔한 제안을 하는데요. 정신 나간 마누라는 그것 참 좋은 아이디어구나..

Film/Thriller 2023.03.16

한 편의 걸작 두편의 부록 _ 매트릭스, 더 워쇼스키즈 감독

# 0.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송곳니를 이야기하며 인식과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로버트 저메키스의 백 투 더 퓨쳐를 보며 트릴로지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의식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이끌더군요. 더 워쇼스키즈, 『매트릭스 :: The Matrix』입니다. # 1. 혹자에겐 거리감 있는 것으로,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허황된 것으로 취급되기도 하는 철학입니다. 특히 실용주의적 성향이 강한 몇몇의 이과적 인간들에겐 더욱 그러한데요. 요런 류의 인간들에게 잘못 걸렸다간 철학뿐 아니라 인문학이라는 분야 전체가 너덜너덜해지기 십상이죠. 인생에서 가장 시니컬하던 시기였던 학창 시절. 성리학의 이기론이니 주기론이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대체 검증 조차 할 수 없는 저딴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걸 넘어, 저..

Film/SF & Fantasy 2023.03.10

할리우드의 모든 것 _ 백 투 더 퓨쳐,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 0. 어차피 분석적인 이야기, 디테일한 비하인드는 검색하면 차고 넘치거니와, 30년도 더 지난 마당에 이제와 새삼스럽기도 합니다. 자세한 건 꺼무위키 찾아보시구요. 오늘은 평소보다 더 어깨 힘을 빼고 소소하게 수다나 떨도록 하죠.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백 투 더 퓨쳐 :: Back to the Future』입니다. # 1. 못해도 십 수 번은 본 것 같은데요. 하하. 또 봤습니다. 이젠 처음 본 게 언젠지도 가물가물한데요. 85년 개봉작이니 영화관에서 보진 않았을 테고. 대충 명절 특선이나 비디오테이프로 처음 봤을 것 같네요. 개봉시기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즈음에 많이들 보셨을 테니 70년대생 분들께 더욱 특별한 영화로 기억되실 겁니다. 적잖은 수의 40대 중반쯤 되는 형님..

Film/SF & Fantasy 2023.03.04

카타르시스 _ 조지타운, 크리스토프 왈츠 감독

# 0. 그리스어로 정화를 의미하며, 마음속에 쌓여 있던 불안, 우울 긴장, 등의 응어리진 감정이 풀리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이러한 정화작용을 비극에서 등장인물의 비극적인 상황이나 비참함을 보고 마음에 있던 응어리나 슬픔이 해소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쾌감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카타르시스는 비극에서 비참한 모습이 해소된 이후에만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로 이를 표현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을 수 있다. - 카타르시스 [κάθαρσις / Catharsis] - 크리스토프 왈츠 감독, 『조지타운 :: Georgetown』입니다. # 1. '그' 크리스토프 왈츠 맞습니다. 바스터즈에서의 한스 란다, 장고에서의 닥터 슐츠로 익숙하실 오스..

Film/Thriller 2023.02.10

마침내 도달한 중도의 평화 _ 3000년의 기다림, 조지 밀러 감독

# 0. 매혹적이고 환상적이며 치명적인 극단들을 소거한 끝에 마침내 도달한 중도의 평화 조지 밀러 감독, 『3000년의 기다림 :: Three Thousand Years of Longing』입니다. # 1. 짝퉁 골동품을 타고 나타나 알리세아를 만난 지니입니다. 소원에 앞서 들려주는 시바 여왕과 귈텐과 제피르의 이야기는, 집착으로서의 매혹이자 극단으로서의 환상이며 비극으로서의 치명입니다. 불신과 맹신. 구속과 자유. 집착과 고독. 욕망과 체념. 과학과 동화. 이야기와 현실. 다양한 위상의 대립항을 놓고 각각의 극단이 가지는 불완전성을 교훈 삼는 세 편의 단막극을 전개합니다. 기나긴 시간과 드넓은 바다에 은유된 원망과 후회와 분노와 집착을 견뎌낸 끝에, 마침내 치우침 없이 도달한 중도의 평화를 그려낸 작품..

Film/SF & Fantasy 2023.02.04

야망의 초상 _ 맥베스의 비극, 조엘 코엔 감독

# 0. 빛의 캔버스 위, 잠식하는 그림자로 그려낸 살아 움직이는 야망의 초상 조엘 코엔 감독, 『맥베스의 비극 :: The Tragedy of Macbeth』입니다. # 1.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입니다. 4대 비극 중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래도 오셀로 덕에 꼴등은 면한 친구죠. 누구나 냉장고엔 먹다 남은 트러플이라도 있는 듯 맥베스를 읽은 것처럼 말하지만, 현실은 햄릿조차 인용하기 만만찮은 세상이니 익숙지 않으신 분들이 많으리라 가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겁니다. 영화 이야기에 앞서 대충의 줄거리 정도는 환기하고 시작하는 것도 괜찮은 거겠죠. 스코틀랜드의 장군이자 왕족이자 글라미스의 영주 맥베스입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친구 뱅코와 왕에게 돌아가는 데 광야에서 마녀를 만나 예언을 듣습니다..

Film/Thriller 2023.01.30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ⅱ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ⅰ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 0.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 등을 집필한 장르 문학가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영미권에서는 순수문학가이자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더욱 큰 인물입니다. ... 나무위키가 그렇다네 morgosound.tistory.com # 6. 암시와 복선은 미스터리를 위해 기능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드라마적 기준에서 숨겨지지 않는 악행과 죄책감을 표현하는 메타포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자신의 복수를 숨기는 동시에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함께 묻어 숨기려 했지만 숨길 수 없었고, 그것이 복선이라는 형태로 관객에게 들키고 있다는 것은 곧 랜도르 스스로에게도 자신의 죄책감이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었다는..

Film/Thriller 2023.01.18

죽은 자의 눈에 비친 속죄의 풍경 ⅰ _ 페일 블루 아이, 스콧 쿠퍼 감독

# 0.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 등을 집필한 장르 문학가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영미권에서는 순수문학가이자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더욱 큰 인물입니다. ... 나무위키가 그렇다네요. 스콧 쿠퍼 감독, 『페일 블루 아이 :: The Pale Blue Eye』입니다. # 1. 포의 이름을 들은 관객은 직관적으로 지적호기심을 최대한 자극하는 고오급 추리물을 기대하기 마련일 텐데요.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감상을 방해하는 성급한 기대가 되고 말았다는 생각입니다. 영화 에서 미스터리는 부차적인 재미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영화 속 미스터리는 삶의 목적을 상실한 길 잃은 주인공의 내면을 세계로 확장시켜 장르적으로 투사한 것에 가깝습니다. 본질은 잔혹한 과거를 가진 한 남자의 깊은 ..

Film/Thriller 2023.01.16

스무고개 _ 더 나은 선택, 제니퍼 팡 감독

# 0. 더쳐스 캐리는 누구인가 제니퍼 팡 감독, 『더 나은 선택 (어드벤테이저스) :: Advantageous』입니다. # 1. 어린 딸과 친구들의 스무고개로 시작됩니다.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 사람. 몇 가지만 빼고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 크루아상과 크랩애플을 먹는 사람. 협력을 해서는 안됩니다. 한 명만이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커닝하면 승자는 없습니다. 질문하고 답하며 수수께끼의 인물 더쳐스 캐리에 대해 고민하던 소녀들의 걸음 맞은편엔 붉은 드레스의 엄마, 아니 엄마 같아 보이지 않는 여자 '그웬'이 반갑게 인사합니다. 영화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반갑게 손 흔드는 이 여자에 대한 스무고개인 것이죠. 작품 초반 경제적 문제에 봉착한 그웬은 전화 속 드래이크라는 존재와 대화를 나누는 데요. 그의 대답..

Film/SF & Fantasy 2023.01.08

이건 다른 장르입니다만 _ 글래스 어니언, 라이언 존슨 감독

# 0. 형식 위에 수립된 브랜드가 형식을 포기하고 나면 남는 게 뭐지? 라이언 존슨 감독, 『글래스 어니언 :: Glass Onion A Knives Out Mystery』입니다. # 1. 시리즈의 정체성과 연속성이 깔끔하게 휘발, 아니 붕괴되었습니다. 만세. 앞선 의 글에서 정통 후더닛의 매력을 계승하면서도 오답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대신 10분 내외의 작은 질문의 연쇄를 선택한 영리한 작품이라 말씀드렸는데요. 단 두 편 만에 시리즈의 매력과 정체성이 몽땅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형식 위에 수립된 브랜드가 형식을 포기한 셈이라 주인공 블랑의 캐릭터만 공유하는 별개의 작품이라 생각하는 것이 차라리 편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전반부 휘향찬란 돈지랄 눈뽕으로 비비고, 중반부 두 주인공의 추적 어드벤처로 버..

Film/Thriller 2022.12.30

미스터리 체리피킹 _ 나이브스 아웃, 라이언 존슨 감독

# 0. 크리스마스엔 역시 살인이지 라이언 존슨 감독, 『나이브스 아웃 :: Knives Out』입니다. # 1. 영화를 검색하다 보면 '후더닛'이라는 키워드가 함께 뜨는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Who done it? 을 들리는 대로 옮겨놓은 건데요. 미스터리 사건 속 수수께끼를 풀어 진범을 찾아내는 플롯의 추리물의 별칭 정도로 이해하시면 무난합니다. 은 아주 오랜만에 나온 후더닛 무비, 그것도 어설픈 퓨전 따위를 곁들이지 않은 정통 후더닛의 특성을 정석적으로 따라가는 작품이죠. 무고한 것이 확실한 주인공과 그의 누명을 벗기고 진실을 밝혀내는 섹도시발 천재 탐정 vs 진범의 정체와 트릭이라는 형식을 빌린 작가 간의 흥미진진 머리싸움입니다. 상황과 공간을 폐쇄적으로 제한한 후 몇몇의 용의자를 특정해 이..

Film/Thriller 2022.12.28

넓게 잡고 얕게 판다 _ 보이저스, 닐 버거 감독

# 0. 이렇게 얕을 거라면 왜 우주까지 끌고 가서 그 난리를 피운 거지? 닐 버거 감독, 『보이저스 :: Voyagers』입니다. # 1. 이제는 조금 식상하기까지 한 우주 배경의 사고 실험물입니다. 인간 군상을 집어넣은 가상의 실험실을 만든 후 계를 분리시키기 위해 냅다 우주로 던져버리는 식이죠. 인터스텔라 같은 유명 작품뿐 아니라, 얼마 전 창세기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 같다 말씀드린 바 있는 하이라이프 같은 영화들도 비슷한 접근법을 공유하는 작품이었더랬습니다. 언제나처럼 인류의 미래를 짊어진 최후의 희망. 뭐, 고런 식으로다가 적당히 당위를 만드는 과정에서 고증 오류가 듬성듬성 발견되기도 합니다만, 역시나 그런 오류에 집중하는 것은 썩 무의미합니다. 애초에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어드벤처가..

Film/SF & Fantasy 2022.12.16

김치피자탕수육 _ 유로파 리스트, 세바스챤 코르데로 감독

# 0. 파운드 푸티지 베이스에 아마겟돈식 영웅 서사랑 크리쳐 앤딩을 비비면?! 세바스챤 코르데로 감독, 『유로파 리스트 :: Europa Report』입니다. # 1. 이상하겠죠. 실제 이상한데요. 그런데 생각보다는 또 볼만합니다. 명작은커녕 수작도 조금 버겁습니다만 컬트적인 재미가 없다 말하는 것은 그것대로 가혹합니다. 세상 건조하고 차가운 파운드 푸티지에 동료애 넘치는 뜨뜻한 갬성 서사를 더하고, 고증이 핵심인 우주 탐사 SF와 개 뜬금 판타지 크리쳐물을 비벼놨는데 덜컹거리긴 해도 어찌어찌 돌아는 갑니다. 다양한 요소들이 충돌함으로 인한 불가분의 장단점이 매우 뚜렷합니다. 극단적인 퓨전 요리인 탓에 빈말로라도 대중적이라 말할 순 없지만 동시에 좋아하시는 분들은 맛있게 드시기도 하는 김피탕 같은 영화..

Film/SF & Fantasy 2022.12.04

집탈출 게임 _ 런, 아니쉬 차칸티 감독

# 0. 방탈출 게임을 테마로 영화를 뽑으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아니쉬 차칸티 감독, 『런 :: Run』입니다. # 1. 빌런의 정체와 내막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기대하시면 곤란합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스테이지 탈출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타임어택 퍼즐 게임의 경험에 훨씬 가까운 작품이죠. 실제 전개를 보면 방이면 방, 복도면 복도, 계단이면 계단, 약국이면 약국, 지하실이면 지하실. 각 공간을 스테이지 단위로 칼같이 구분한 후 그 공간의 미션을 풀 수 있는 명확한 해법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장르적 측면에서 엄마의 존재는 주인공을 정신적으로 압박하는 카리스마 빌런이라기보다는, 정해진 시간 안에 방을 탈출하도록 주인공의 등을 떠미는 게임의 조건, 째깍째깍 조여 오는 모래..

Film/Thriller 2022.11.26

스페셜리스트 _ 마스크 오브 조로, 마틴 캠밸 감독

# 0. 을씨년스러운 11월이면 포근한 이불속에서 귤 까먹으면서 보는 고전 액션 활극이 땡길 때가 있죠. 마틴 캠벨 감독, 『마스크 오브 조로 :: The Mask of Zorro』입니다. # 1. 낭만에서 시작해 낭만으로 끝납니다. 낭만이 뛰어다니고, 낭만이 칼질하고, 낭만이 키스하고, 낭만이 폭발하는 영화죠. 어떤 것들은 원툴이라 폄하당하고 어떤 것들은 스페셜리스트라 칭송받기도 하는데요. 사실 원툴과 스페셜리스트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잘해서 설득이 되면 스페셜리스트고 안되면 원툴인 것이죠. 그 기준에서 본다면 이 영화는 분명 낭만 밖에 없지만 스페셜리스트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특별할 건 없습니다. 배경만 피식민 계급 캘리포니아인과 식민 지배계급 스페인인의 갈등일 뿐, 실상은 총..

Film/Action 2022.11.20

습기와 그늘 _ 매혹당한 사람들, 소피아 코폴라

# 0. 똬리 틀고 돌아보는 뱀. 이름 모를 버섯의 군락. 습기. 그늘. 그리고 매혹이란 이름의 독. 소피아 코폴라 감독, 『매혹당한 사람들 :: The Beguiled』입니다. # 1. 1864년 전쟁으로 인해 모두가 떠난 인적 드문 마을. 심각한 다리 부상으로 죽음 직전 상태에 놓인 군인 '존'이 구조되고, 7명의 여자들만 살고 있는 비밀스러운 대저택에 머물게 된다. 유혹하는 여인 '미스 마사'부터 사로잡힌 처녀 '에드위나', 도발적인 10대 소녀 '알리시아'까지 매혹적인 손님의 등장은 그녀들의 숨겨진 욕망을 뒤흔들고, 살아남으려는 '존'의 위험한 선택은 모든 것을 어긋나게 만드는데... # 2. 기본적으론 제목에서처럼 [유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잘생긴 남정네 하나를 두고..

Film/Thriller 2022.11.06

질문이 아니라 협박이죠 _ 다우팅 토마스, 윌 맥파든 감독

# 0. 물론 의심한다면 너는 인종차별자가 된다는 것만 알아둬. 윌 맥파든 감독, 『다우팅 토마스 :: Doubting Thomas』입니다. # 1. 뼈대만 덩그러니 있는 듯한 영화입니다. 백인 부모 아래 태어난 흑인 아기라는 설정과 인종차별 메시지 정도를 제외하면 의미 있는 정보를 거의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죠. 영화의 전개란 시나리오 단계에서 설정된 인물 관계의 내막을 주인공 등이 순차적으로 제공받는 과정으로 점철됩니다. 그로 인한 갈등이나 변화, 고민, 선택 따위는 사실상 전무해 대부분의 인물들은 내내 제자리에 멈춰있는 것과 다를 바 없죠. 서사가 존재하지 않으니 플롯이라 부를 만한 것도 없구요. 장르적 효과도 당연히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작품의 목적이 네가 톰이라면 어떤 ..

Film/Drama 2022.10.26

뉘앙스 ⅱ _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뉘앙스 ⅰ _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 0. 대상(Her)이 주체(She)가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어른의 사랑 - 영화평론가 이동진, 그녀(Her) 한줄평 - 토드 헤인즈 감독, 『캐롤 :: Carol』입니다. # 1. 창살과 함께 영화는 시작됩니다. 감독은 자 morgosound.tistory.com # 6. 테레즈의 '안심이 되냐'는 물음에 캐롤은 놀라운 사람이라 답하며 회피합니다. 두려운 게 있다면, 도와줄 것이 있다면 청하라는 말에는 단호하게 두려운 것이 없다 말하죠. 여행 캐리어는 캐롤의 깊고 은밀한 내면을 의미합니다. 그 속에 숨겨둔 총을 보여준 다음 두려움에 대한 대화를 풀어내게끔 편집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캐롤은 내면에 두려움을 숨기고 있으며 그 두려움이 [총]이라는 아이템으로 연결되..

Film/Romance 2022.10.22

뉘앙스 ⅰ _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 0. 대상(Her)이 주체(She)가 되는 순간에 찾아오는 어른의 사랑 - 영화평론가 이동진, 그녀(Her) 한줄평 - 토드 헤인즈 감독, 『캐롤 :: Carol』입니다. # 1. 창살과 함께 영화는 시작됩니다. 감독은 자신이 펼쳐놓으려는 이야기의 환경을 똑같은 모양의 틀이 군집된 창살로 정의합니다. 거칠고 건조한 철제 질감과 오밀조밀한 구성은 단절감이나 통제력 따위의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암시합니다. 정체성을 제약하는 압박감과 획일성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기본적으론 짙은 정서의 멜로 영화입니다만 못지않은 드라마적 깊이를 겸비한 작품인 것이죠. 다양한 형태의 [프레임]을 징검다리 삼아 풀어낸 작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대표적으로 창문을 꼽을 수 있을 테죠.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

Film/Romance 2022.10.20

외롭고 버거운 별들의 맞잡은 손 _ 애드 아스트라, 제임스 그레이 감독

# 0. 남을 따라서 살 일이 아니다 네 가슴에 별 하나 숨기고 살아라 끝내 그 별 놓치지 마라 네가 별이 되어라 - 너는 별이다. 나태주 - 제임스 그레이 감독, 『애드 아스트라 :: Ad Astra』입니다. # 1. 우주 SF입니다. 문제적 감독 제임스 그레이가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갈수록 멋있어지는 브래드 피트가 주연 '로이 맥브라이드'를 연기하구요, 맨 인 블랙의 K로 익숙하실 토미 리 존스가 로이의 아버지 '클리포드 맥브라이드'를 맡았습니다.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 '리마'를 이끌던 클리포드는 오래전 실종되었다 합니다. 그를 영웅으로 여긴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우주 비행사로 성장하게 되죠. 그러던 어느 날 해왕성 방면으로부터 전류 급증 현상이 초래되어 지구가 위험에 노출됩니다. 사태에 리마 ..

Film/SF & Fantasy 2022.10.12

7번방의 노마 _ 블론드,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

# 0. 논란의 작품입니다. 고인 모욕에 대한 이야기도 들리구요. 왜곡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더 크게 들리는 듯합니다. 수위가 세다는 마케팅에 속은 일부의 관객들이 화를 내는 듯한 모양새도 있군요. 혹자는 '마릴린 먼로를 창녀로 만드는 영화'라며 분개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원작 소설에 대한 비판에 조금 더 가깝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과연 그것만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은 충분한 것인가에 다소 의문이 있다는 것이죠. 우리는 영화를 보고 있으니까요.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 『블론드 :: Blonde』입니다. # 1. 전기 영화란 몇몇의 예외적 시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인물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소개하거나, 간과되기 쉬운 입체성을 재조명하기 마련일 텐데요. 문제의 는 왜곡을 차치하고서라도, 인물의 정체성을 ..

Film/Drama 2022.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