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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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 272

두려운 자의 품격 _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맷 브라운 감독

# 0. 고통이 두려워 신을 부정하는 자와 고통이 두려워 신을 갈망하는 자 사이에서의 품격        맷 브라운 감독,『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 :: Freud's Last Session』입니다.     # 1. 은 미국의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Mark St. Germain)이 아몬드 M. 니콜리 주니어(Armand M. Nicholi Jr.)의 저서 에서 영감을 얻어 쓴 희곡이다.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계기로 영국이 전면전을 선포하며 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겸 기독교 호교론자 C. S. 루이스(C. S. Lewis)가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파크컴퍼니가 ..

Film/Drama 2024.09.04

괜찮을 거라는 격려, 마음을 담은 헌사 _ 소스 코드, 덩컨 존스 감독

# 0. Everything is gonna be okay.Thank you for your service.        덩컨 존스 감독,『소스 코드 :: Source Code』입니다.     # 1. 10년도 더 지난 영화의 플롯을 이제와 설명하는 건 지루하다. 러틀리지 박사의 설정놀음을 걷어내고 나면, 결국 통 속의 뇌에다 죽은 사람의 기억을 접붙이기한 후 파생되는 문제들은 평행우주로 돌파했을 뿐이다. 물론 창의적이고 도발적인 발상, 스피디한 편집과 미술적 성취, 제이크 질렌할의 불안과 소명, 미셸 모나한의 사랑스러움, 백투백 홈런을 날리는 듯한 반전 카타르시스는 인정받아 마땅한 것임에 분명하지만 말이다. 다만 의외인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키스신에서 영화를 끝냈으면 좋았을 것이라 이야기..

Film/SF & Fantasy 2024.08.30

당나귀와 코끼리 _ 킬링 소프틀리,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

# 0. 비겁하고 야비한 당나귀이기적하고 잔인한 코끼리        앤드류 도미니크 감독,『킬링 소프틀리 :: Killing Them Softly』입니다.     # 1. 버락 오바마의 연설로 시작되는 영화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숨길 생각이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겁 없이 도박장을 턴 두 도둑과 그들을 쫓는 살인청부업자의 네오 누아르지만, 이면엔 부시 말기부터 오바마 초기까지의 혼란스러운 미국 사회를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로 가득하다. 수다스러운 걸쭉한 농담과 드라마틱한 액션 연출의 매력이 분명한 작품이다. 다만 주연이자 제작자이기도 한 브래드 피트가 진단하는 미국에 대한 날 선 시선은 때론 너무 노골적이고 감정적이라 영화를 시시하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 마지막 대사는 문장의 완성도와 별개로 굳이 ..

Film/Action 2024.08.28

뮤-비 _ 스터질 심프슨의 사운드 & 퓨어리, 마이클 아리아스 감독 외

# 0. 가끔은 이런 류도 나쁘지 않지.        마이클 아리아스 감독 외,『스터질 심프슨의 사운드 & 퓨어리』입니다.     # 1. 스터질 심프슨(Sturgill Simpson)은 미국 켄터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할 수도 있지만 21세기 미국 컨트리 음악을 선도하는 뮤지션으로 평가되는 나름 월클이(라고 한)다.  2013년 데뷔 앨범 을 통해 세상에 등장한 후 두 번째 앨범 을 통해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입지를 넓혔다. 연이어 2016년에 발표된 세 번째 앨범 는 그레이 어워드 올해의 앨범 후보에 오른다. 과거 해군 시절 경험과 아버지와의 삶을 녹여낸 것으로 알려진 앨범은, 직전의 두 번째 앨범과 더불어 뮤지션의 최고작으로 평가된다. 아마도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

Film/Animation 2024.08.16

신의 주사위 놀이 _ 똑똑똑,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 0. 뭐시 중헌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똑똑똑 :: Knock at the Cabin』입니다.     # 1. 언제 봐도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바티스타와 그의 팔뚝만 한 귀여운 소녀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영화, 이다. 영화는 원천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떡밥과, 사실상 떡밥의 의인화나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쉴 새 없이 던진다. 그렇다면 그렇구나 하는 수밖에 없는 일방적인 세계관과, 늘 관객보다 두어 발짝 앞질러가는 불친절한 전개는 언제나와 같은 샤말란이다. 인류의 운명을 거론하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침입자 무리, 단란한 가족 중 한 명이 희생해야 70억 인류를 살릴 수 있다는 우악스러운 설정, 피해자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 스스로 자해하는 아이러니, 작지만 구체적..

커넥트 _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밴드, T.G. 해링턴 / 대니 클린치 감독

# 0. 결국 음악의 본질은 연결인 것일까        T.G. 해링턴 / 대니 클린치 감독,『프리저베이션 홀 재즈밴드 :: A Tuba to Cuba』입니다.     # 1. 가끔은 치졸한 질투심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외세의 침탈로 인한 역사적 단절, 절멸 수준의 전국 전쟁을 겪으며 스스로 발현된 것보다 수입된 것을 현지화하며 성장한 한국은, 삶의 부분집합으로서의 음악을 향유할 뿐이다. 반면, 굴곡진 근현대사를 성숙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스스로 발현될 만큼 충분히 고립된 뉴올리언스의 음악은 삶의 일부분이 아닌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합집합이다. 우리는 발라드를, 힙합을, 클래식을, 트로트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 재즈는 선택이 아닌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존재와 닿아있는 음악이라니. 그 ..

Documentary/Art 2024.08.06

이카루스의 거울 _ 리플리스 게임, 릴리아나 카바니 감독

# 0.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릴리아나 카바니 감독,『리플리스 게임 :: Ripley's Game』입니다.     # 1.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심리 스릴러다. 맷 데이먼의 (1999)가 알랭 들롱의 (1960)의 그늘에 가려진 수작이라면, 이 작품은 그 그늘에조차 들어가지 못한 비운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으나, 제법 흥미로운 중년의 톰 리플리를 만날 수 있다는 면에서 일정한 의의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연은 존 말코비치가 맡았다. 사근사근한 목소리의 톰 리플리는 50대 중반의 세련된 사기꾼이자 냉혈한 살인마다. 오프닝의 사건을 통해 한몫을 챙긴 톰은 이탈리아 시골에서 은퇴 생활을 즐기는 듯 보이지만 내면엔 갈등과 복잡성이 가득하다. 하이스미스의 원작들이..

겁쟁이 _ 스카이워커스, 제프 짐발리스트 감독

# 0. 자신 있게 못하는 늘 숨어만 있는나는 겁쟁이랍니다.        제프 짐발리스트 감독,『스카이워커스 사랑 이야기 :: Skywalkers: A Love Story』입니다.     # 1. 수학은 인간이 구축한 것 중 가장 일관되고 엄정한 논리체계다. 과학, 공학, 경제학 등 정교한 논리구조를 요구하는 학문들이 수학을 일종의 언어로서 필수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다. 흥미로운 것은 엄격한 체계일수록 단 하나의 오류만으로도 손쉽게 붕괴된다는 점이다. 어째 숫자보다 알파벳과 로마자가 더 많이 보이는 방대한 현대 수학조차, 고작 [1+1=3]이라는 잘못된 명제 하나의 침입에 허망하게 무너진다.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가 부조리로 가득한 것은 그릇된 명체 하나를 끌어안는 과정에서 생긴 논리적 오류다. 지붕에 오른..

Documentary/Social 2024.07.26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 _ 마션, 리들리 스콧 감독

# 0. I'm pretty much fucked.That's my considered opinion.Fucked.        리들리 스콧 감독,『마션 :: The Martian』입니다.     # 1.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 희대의 명문으로 시작하는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마션은 주인공의 숙고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시작된다. 우주 탐사 중 예기치 못한 폭풍으로 홀로 화성에 남겨진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우주 모험을 넘어 인간의 생존 의지와 연대의 가치를 탐구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장르를 선언적으로 보여준다. 일상적인 탐사대의 활동이 갑작스러운 모래폭풍으로 인해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장면은, 관객을 긴장감 ..

Film/SF & Fantasy 2024.07.24

마지막 질문 _ 미스터 홈즈, 빌 콘돈 감독

# 0. 위대한 배우가 위대한 탐정을 빌려 던진 마지막 질문        빌 콘돈 감독,『미스터 홈즈 :: Mr. Holmes』입니다.     # 1. 93세의 셜록 홈즈와 함께 기억과 현실의 경계를 탐험한다. 위대한 탐정의 이름에 묘수풀이식 미스터리 추리극을 기대하기 쉬우나, 인간 정신의 복잡성과 노화의 의미를 다룬 영화라는 면에서 의외성이 있다. 영화는 과거 사건의 전말을 중심으로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추리 장르의 관습을 탈피, 새로운 서사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논리와 감성, 과거와 현재, 기억과 망각, 사실과 창작의 대비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지적이면서 동시에 감성적인 탐구다. 다만, 그 의외성에 관객이 동의해 줄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이후 이야기하게 될 주제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홈즈의 ..

패러다임의 탄생 _ 본 슈프리머시, 폴 그린그래스 감독

# 0. 액션은 지금부터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본 슈프리머시 :: The Bourne Supremacy』입니다.     # 1. 기본적으론 정체성 갈등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은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특수요원으로, 냉혹한 과거의 행적과 따뜻한 현재의 윤리 사이의 괴리에 느끼는 고통과 불안을 물리적으로 치환한 작품이라 요약해도 큰 무리는 없다. 열감으로 비유하자면, 는 차가운 내면과 뜨거운 액션의 결합, 은 뜨거운 내면과 뜨거운 액션의 결합, 은 차가운 내면과 차가운 액션의 결합이라 한다면, 시리즈는 뜨거운 내면과 차가운 액션의 결합이라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액션 어드벤처로서 거대한 지배력을 가진 , 코미디 활극으로서의 를 더하면, 이후 어떤 영화가 나오더라도 이 여섯 시리즈가..

Film/Action 2024.07.18

잘 자요 _ 드림 시나리오,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

# 0. 잘 자요.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드림 시나리오 :: Dream Scenario』입니다.     # 1. 정갈한 머리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매일밤 꿈속에 나타나 당신을 지긋이 바라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 니콜라스 케이지의 꿈을 수많은 세상 사람들이 똑같이 꾼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심지어 갑자기 꿈속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도발적 상상의 판타지 영화 는 (2002)로 데뷔한 크리스토퍼 보글리의 차기작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 역시 창의적인 설정과 도발적인 표현, 유쾌한 코미디 이면엔 알싸한 풍자가 가득하다. 주연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맡았다. (2021)에서 보여줬던 과격하고 야생적인 모습과 대조되는 소심하고 찌질한 연기를..

Film/Comedy 2024.07.10

현대영화 _ 킬 룸, 니콜 페이온 감독

# 0. 어. 느새. 부터. 미. 술~~ 은 안 멋져.        니콜 페이온 감독,『킬 룸 :: The Kill Room』입니다.     # 1. 현대미술이 영화에 머리채를 잡히는 건 연례행사다. 끝없이 관념적으로 뻗어나가는 현대미술 일체를 스노비즘(snobbism)으로 치부하거나, 부자들의 친목 모임 뒤에 숨겨진 재산 은닉과 탈세에 복무하는 시종이라 조롱하는 식이다. 때문에 제 아무리 이런저런 킬링포인트를 추가한다 하더라도 큰 틀에서의 작동은 죄다 거기서 거기다. 예술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이 대충 만든 작품을 미끼로 던져 놓은 후, 그 황당한 작품에 허망한 형용을 난사하는 업계를 조소하는 구조로 흘러간다. 코미디언 장동민이 잭슨 폴록의 드리핑을 흉내 낸 그림에 미학자 진중권이 진땀 흘렸던 모 예능을..

Film/Comedy 2024.07.02

캐주얼 오리엔탈리즘 _ 러시 아워, 브렛 라트너 감독

# 0. I never told you I didn't. You assumed I didn't.        브렛 라트너 감독,『러시 아워 :: Rush Hour』입니다.     # 1. 개봉 당시는 물론 명절 특선으로도 꾸준히 사랑받은 지만, 받은 사랑에 비해 완성도가 높은 시리즈라 부르기엔 부족함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적지 않은 부분에서 상투적인 클리셰의 조립으로 이루어져 있고, 나 등에서 경험한 바 있는 성룡의 시그니처를 열화 된 방식으로 재연하고 있기에 어떤 면에선 얄팍하다 해도 무리는 없다. 유명하다는('유명한'과 '유명하다는'은 다른 말이다.) 홍콩의 액션스타를 데려다 할리우드의 작법에 쑤셔 넣고 있는 작품은, 이질적인 두 요소를 결합시키겠다는 의도에 걸맞은 화학적 반응을 도출하지 못한 채..

Film/Action 2024.06.20

신세계 _ 사운드 오브 메탈, 다리우스 마더

# 0. 적외선을 보지 못해 불행한 사람은 없다.        다리우스 마더 감독,『사운드 오브 메탈 :: Sound of Metal』입니다.     # 1. 여자친구와 투어 중인 드러머 루빈(리즈 아메드)은 어느 날 거짓말처럼 청력을 잃는다. 드럼 사운드도, 연인 루(올리비아 쿡)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 그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비보를 전달받은 밴드의 후원인은 청각장애인 커뮤니티 운영자 조(폴 레이시)를 소개한다. 조의 공동체는 재활시설이라기보다는 장애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공간에 가깝지만, 루빈의 눈에 비친 그곳은 원형으로 둘러앉은 마약중독자 모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정한 조는 루빈에게 커뮤니티에서의 생활을 제안하는 대신 루를 포함한 이전 세계와의 단절을 요구한다. 두 사람은 크게 고민하지..

Film/Drama 2024.06.18

네 명의 이름은 _ 스턴트맨,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

# 0. 스턴트만큼 영화도 사랑해 주었으면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스턴트맨 :: The Fall Guy』입니다.     # 1. 괜찮을 수 없는 순간에조차 언제나 괜찮아야 했던 나의 오랜 파트너들에게. 사랑을 담아. # 2. 극장을 나서며 느낀 가장 강렬한 정서를 다음과 같이 메모에 옮겼다. 감동은 며칠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감독을 포함, 참여한 모든 이들의 진정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후 그 어떤 비판을 하더라도 말이다.  스턴트맨에 '대한' 영화가 아닌 스턴트맨을 '위한' 영화다. 배우 대신 몸을 던지는 스턴트맨들의 노고와 헌신과 기여, 그에 미치지 못하는 대우에 대한 불만이 알파이자 오메가다. 무수한 액션 영화들의 레퍼런스가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가장 밀접하게 연상되는 작품은 셋이..

Film/Action 2024.06.14

진정한 변화 _ 더 배트맨, 매트 리브스 감독

# 0. 이유 없이 우뚝 선 희망의 탄생        매트 리브스 감독,『더 배트맨 :: The Batman』입니다.     # 1. 어둠 속의 히어로는 세 가지 의미다. 스스로 복수(분노의 어둠)의 화신을 자처한다는 것, 자경단이 아닌 범죄자(윤리의 어둠)로 받아들여진다는 것, 가문과 고담의 진실을 모른다(무지의 어둠)는 것이다. 그는 범죄자에겐 공포의 존재일지언정 경찰에겐 핼러윈 코스튬의 또 다른 범법자에 불과하다. 배트맨은 자신을 Vengeance(복수)라 선언하지만 정작 무엇에 대한 복수인지, 누구를 향한 복수인지조차 모른다. 이전의 그 누구보다 초췌하고 미성숙한 로버트 패틴슨의 배트맨은 어둠 속에 갇혀버린 무지의 존재다. 배트맨은 복수자로서 고담의 진실을 갈구한다. 캣우먼이 건네받은 카메라의 붉..

Film/Action 2024.06.12

씨앗은 어디로 틔울까 _ 루퍼, 라이언 존슨 감독

# 0.  화려한 상상과 호쾌한 액션으로 역사를 통찰한다.        라이언 존슨 감독,『루퍼 :: Looper』입니다.     # 1. '선택'이라는 기준에서 보자면 영화는 생각보다 더 단순하다. 자신이 살기 위해 절친을 팔았던 사람이, 아무 연고 없는 세라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야기라고 말이다. 인생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수수밭과 같고,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라는 선택의 과정이다. 조는 방탕하고 쾌락적인 인생에 집착하는 보신주의적 인물로, 삶에 대한 태도는 지하실에 숨겨둔 은괴 가득한 금고가 증언한다. 과거의 조가 세라에게 수수밭을 태워버리자 말하는 대목이 있는 데, 이는 그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다. 불안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신의 내일을 태워버리는 어리석음이고, 그 ..

Film/SF & Fantasy 2024.06.04

개판 _ 스트레이스, 조쉬 그린바움 감독

# 0.  대체 무슨 짓을 해야 유기견 이야기로 19금을 받을 수 있는 거지?!        조쉬 그린바움 감독,『스트레이스 :: Strays』입니다.     # 1. 누구에게나 감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수천 편 이상의 영화를 보다 보면 (매번 적중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지간하면 견적이 보인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강아지가 복수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로 소개된 넷플릭스 영화에 큰 기대를 걸 정도로 미련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봤던 것은 딱 하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짓을 해야 이 소재로 19금을, 호러도 아닌 코미디로 19금을 받을 수 있었던 걸까. 확인 끝에 찾은 대답은 음담패설이다. 사랑스러운 네 마리의 강아지 위로 섹스와 성기와 마약과 기타 등등의 이야기가 ..

Film/Comedy 2024.06.02

무지의 지 _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드니 빌뇌브 감독

# 0. 모른다는 것을 안다.        드니 빌뇌브 감독,『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 Sicario』입니다.     # 1. 자신만만한 젊은이는 선언한다. "사람은 초록이다." 그가 아는 아무개들 모두 초록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연두를 만난다. 잠시 당황한 그는 초록색 계열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하루는 푸른색을 만난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청록의 무리라 수정한다. 붉은색 사람을 만나며 혼란에 빠진다. 사람은 색인가 보다 후퇴한다. 시간이 흘러 어릴 적 초록색이었던 아무개가 노란색이 되어 있음에 당황한다. 사람의 색은 변하기도 하는 것인가. 파란색인 줄 알았던 누군가는 원래부터 보라색이었고,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처음으로 돌아가 자신의 판단부터 의심한다. 그리고 마침내 투명의 ..

Film/Action 2024.05.30

어느 초보운전자의 이야기 _ 드라이브, 니콜라스 빈딩 레픈 감독

# 0. 인생을 운영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피로감, 고독감        니콜라스 빈딩 레픈 감독,『드라이브 :: Drive』입니다.     # 1. 를 연출한 덴마크 영화감독 니콜라스 빈딩 레픈이 메가폰을 잡았다. 주연은 감독을 추천한 라이언 고슬링, 그리고 캐리 멀리건이다. 브라이언 크랜스턴, 알버트 브룩스, 오스카 아이삭, 론 펄만 등이 참여한다.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리드미컬한 편집, 배우진의 열연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제64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처음으로 자신의 운전대를 잡아본 사람의 이야기다. 비록 주인공은 능숙한 드라이버지만 말이다.  전반부를 통해 쌓아 올린 주인공의 정체성은 모두 대리만족이라는 공통점 아래에 있다. 비유하자면 운전석이 아닌 보조석에 탄 인물인 것으로..

Film/Action 2024.05.16

서글픈 정신승리 _ 나이트 플라이트, 웨스 크레이븐 감독

# 0. 고도로 발달한 정신승리는 정신치료와 구분할 수 없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나이트 플라이트 :: Red-Eye』입니다.     # 1. 와 로 유명한 웨스 크레이븐의 2005년 작이다. 한평생 호러만 깎은 장인의 이름에 많은 사람들이 정통 호러를 예상했으나, 의외로 전형적인 범죄 액션 스릴러물이다. 당시 그를 좋아하던 일부의 팬들은 실망을 표하기도 했는데, 사실은 명예로운 죽음이다. 장르 선택과 별개로 완성도부터 부실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스릴러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영화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창작하지도, 충분한 긴장감을 연출하지도 못한다. 흔한 비행기 테러의 클리셰를 따라가는 동안 사투는 지루한 버전의 로 전락한다. 리사(레이첼 맥아담스)의 행동은 최선이라기보다는 대책 없는 ..

세안 _ 피그,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

# 0. 그의 여행은 결국 마지막 세안에 도달하기 위함이었나.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피그 :: pig』입니다.     # 1. 거지 꼴을 한 왕년의 슈퍼스타가 납치당한 돼지를 찾는 이야기는 이목을 끌기 충분하다. 일부는 돼지 버전의 이냐는 둥의 짓궂은 농담을 던지기도 했지만 섣부른 오해다. 젊은 미국인 감독의 데뷔작은 창작자로서의 야심과 별개로 그렇게까지 장르적이지 않다. 처절한 추격전이나 끔찍한 결말, 최소한의 정돈된 결착 따위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일부 액션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물의 내면을 세심하게 매만지는 감정적인 드라마라 소개하는 것이 적절하다. 호흡은 일관되게 느리고 고요하며 진중하다. 심오하고 애처로우며 다소 피학적이기도 하다. 쳅터의 구성에서부터 그러하..

악역을 사는 사람은 없다 _ 캐시트럭, 가이 리치 감독

# 0. 세상에 악역을 사는 사람은 없다.        가이 리치 감독,『캐시트럭 :: Wrath of Man』입니다.     # 1. 가이 리치와 제이슨 스타뎀의 재결합이다. , , 로 검증된 두 사람의 협업은 이목을 끌기 충분했지만, 그보다 더 주목을 끈 것은 16년의 공백이다. 각자의 시간 동안 두 사람 모두 나름의 성업적 성취에 도달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있는 법이다. 스타뎀은 (이젠 놀림감이 되기까지 하는) 특유의 발성과 노출을 곁들인 액션에 갇혀 버렸고, 리치는 몇몇의 프로젝트를 지나는 동안 초기 스타일의 활력이 둔화되었다. 직전작 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찾으려는 가이 리치는, 기세를 이어 이견의 여지없는 페르소나에게 프러포즈한다. 영화 은 전형적인 액션 스릴러의 이야기지만 마치 미스..

Film/Action 2024.04.28

타블로이드의 구독자 _ 젠틀맨, 가이 리치 감독

# 0. Ladies and Gentlemen, Please Welcome.        가이 리치 감독,『젠틀맨 :: The Gentlemen』입니다.     # 1. 가이 리치가 돌아왔다. 신작 이야기가 아니다. 스타일의 복원. 즉, 셜록 홈스, 킹 아서, 알라딘을 돌아 무려 12년 만에 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줄 작품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뜻이다. 낡은 술집 귀퉁이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허풍 가득한 이야기가 타란티노스러운 리드미컬한 플롯 위에 펼쳐진다. 화려한 수사학적 과장으로 가득한 묘사, 현란한 촬영과 편집의 기교도 충만하다. 위선적 교양이 지저분한 액션으로 탄로 나는 시퀀스의 완급은 능숙하다. 애드거 라이트의 그것만큼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누가 보더라..

Film/Action 2024.04.24

뱀파이어 힐스 _ 죽어야 사는 여자,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 0. 50대 중년에겐 두 갈래 길이 있다. 40대처럼 보이려 발버둥 치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죽어야 사는 여자 :: Death Becomes Her』입니다. # 1. 가끔은 아쉽다. 50대 중년에게 '멋진 50대가 된다'라는 선택지는 정녕 없는 걸까. 만약 그런 선택지가 있었다면 40대처럼 보이려 발버둥 치는 사람은 조금 덜 괴롭지 않았을까. 자조적으로 포기해 버린 사람도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예로 든 것일 뿐 비단 50대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젊어 보인다는 말이 칭찬으로 통용되는 것은 세대를 막론한다. 40대는 30대로 보이고 싶어 하고, 30대는 20대로 보이고 싶어 하고, 20대는 10대로 보이고 싶어 한다. 이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은..

Film/SF & Fantasy 2024.04.20

노 아담 플리즈 _ 노 하드 필링스, 진 스텁닛스키 감독

# 0. 아담 샌들러가 꼭 필요한 거야? 진 스텁닛스키 감독, 『노 하드 필링스 :: No Hard Feelings』입니다. # 1. 죽지도 않고 또 오는 게 엿장수만은 아니다. 세상엔 잊을만하면 돌아오는 것이 너무나 많지만, 할리우드식 로맨틱 코미디는 그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수도 없이 반복된 탓에 레시피도 공개된 것과 진배없다. 배경은 보통 휴양지인데 기왕이면 바닷가가 좋다. 부자를 시기하고 부러워하는 서민이 주인공이지만, 연기하는 배우들이 그 시기와 질투의 대상인 백만장자라는 것은 괘념치 않는다.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통속적인데, 철없는 주인공과 비슷한 수준의 친구 하나가 옆에 붙어 코미디를 전담하는 동안 주변을 배회하는 노년의 현자가 틈틈이 교훈을 토해낸다. 영화는 뜬금 이벤트 당첨이나, 우연한 헌..

Film/Comedy 2024.04.18

Sunburn _ 미드 90, 조나 힐 감독

# 0. 스케이트 보드를 왜 타는 거냐는 물음에 답하며 조나 힐 감독, 『미드 90 :: mid90s』입니다. # 1. 스케이트보딩을 다룬 영화들은 보드의 미학을 작품 안에 끌고 들어와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존재하는 듯하다. 래리 클락의 , 구스 반 산트의 , 크리스털 모젤의 과 같은 영화들이 그러하듯 말이다. 영화에서 주로 활용되는 보드는 상당히 모순적인 활동이다. 무모하면서 무기력하다. 자유로우면서 구속적이다. 개인적이면서 계급적이고, 낭비적이면서 가난하다. 투쟁적이면서 도피적이고, 공격적이면서 비굴하며, 강인한 척하지만 나약하고, 물리적이지만 정신적이다. 화려한 트릭이 무색하게 내내 같은 공간을 맴돈다. 앞으로 나가는 듯 보이지만 정확히는 멈춤에 저항하는 것에 가깝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친 ..

Film/Drama 2024.04.12

달디단 _ 웡카, 폴 킹 감독

# 0.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초콜릿초콜릿        폴 킹 감독,『웡카 :: Wonka』입니다.     # 1. 움파룸파의 것을 훔쳐간 사람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것이 순진한 웡카의 짓이든, 악독한 슬러그워스의 짓이든 괴팍한 주황색 소인은 괘념치 않죠. 웡카는 자신을 찾아온 누구나에게 초콜릿을 만들어 줍니다. 그것이 소버린을 지불한 도시의 사람들이든, 친절을 베푼 누들과 친구들이든, 오만한 피켈그루버든 상관없습니다. 웡카라는 이름을 이정표 삼아 극장을 찾은 관객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웡카를 찾아온 사람들은 누구나 웡카로부터 초콜릿을 선물 받습니다. 영화는 '엄마를 그리워 하는 소년 윌리가, 달콤 백화점에 가게를 차리고 초콜릿 공장을 세운 웡카가 된다'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영화..

Film/SF & Fantasy 2024.03.20

역치는 차갑다 _ 아가일, 매튜 본 감독

# 0. 킹스맨의 그늘 아래 다소곳이. 매튜 본 감독, 『아가일 :: Argylle』입니다. # 1. 솔직해 집시다. 어차피 대부분은 매튜 본이라는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않습니다. 킹스맨 만든 감독이라 하면 그제야 '아~ 그 사람이야? 나 그거 재미있게 봤어!' 정도의 반응을 볼 수 있겠죠. 관객이 기대할 아가일의 세일즈 포인트 역시 재철 전어처럼 살이 포동포동 올라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라거나, 라데꾸를 날릴 것만 같은 플랫탑 스타일의 근육질 헨리 카빌이 아닌,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던 콜린 퍼스의 슈트핏과 머가리 팡팡 터트리는 액션이라는 '그 맛'의 재해석일 가능성이 99.9%입니다. 이례적으로 성공을 거둔 우리나라 기준, 시크릿 에이전트는 600만이 들었습니다. 전작의 후광에 힘입어..

Film/Action 2024.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