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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무소유 _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소아전 감독

그냥_ 2025. 4.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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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소유와 교환 사이에서 필요를 깨닫는다

 

 

 

 

 

 

 

 

소아전 감독,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 Taipei Exchanges』입니다.

 

 

 

 

 

# 1.

 

우리는 소유하며 살아간다. 자산을 가지고 능력을 가지고 경력을 가진다. 공간과 시간, 생각, 기억, 기회를 가지고, 이 모든 것들의 총체로서 이야기를 가진다. 삶은 소유의 범위를 최대한 넓혀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긴다. 역행하는 것은 불안하다, 심지어 불행하다 평가하길 꺼리지 않는다.

 

교환이라는 행위가 재미있는 건 언제고 굳건해 보이는 소유하는 마음이 해체되는 몇 안 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버리는 것과는 다르다. 버린다는 것은 가치가 없음을 전제하지만 교환은 여전히 가치 있다 여김에도 필요치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가진 무언가를 교환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이 물건은 나의 것이지만 동시에 나의 것이 아니고 상대 역시 다르지 않다. 두 사람은 누구의 것도 아닌 모호한 상태로 눈앞의 사물을 마주한다. 적당한 긴장으로 흥정하는 동안 소유하고 있다는 인식으로부터 해방되어 필요와 가치를 저울질한다. 교환이 끝나면 비로소 사물은 나의 것과 너의 것이 되고, 모호한 상황을 벗어나 관성적인 소유하는 삶으로 돌아간다.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는 소유와 교환을 충돌시키는 이야기다. 우연찮게도 같은 엄마를 둔 두얼과 창얼은 혈연관계라기보다는 하나의 뿌리에서 태어난 두 개의 사상이자, 영화가 진단하는 현대인의 두 얼굴을 대변한다. 비슷한 외모이지만 상반된 스타일로 일관하는 이유로, 특히 마지막 하얀 옷을 입은 창얼과 검은 옷을 입은 두얼의 소파 위 대조는 인상적이다. 엄마가 두 딸들에게 말할 때마다 주변의 시민들이 대신 답하는 유머에 숨겨진 함의이기도 하다.

 

 

 

 

 

 

# 2.

 

두얼이 인생을 정의하는 방식은 정돈되고 예측가능한 우아한 카페다. 라테의 꽃모양을 싫어하는 건 커피크림과 우유거품이 섞이는 걸 볼 수 없기 때문이고 이는 경계와 작동이 명확한 것을 지향함이다. 요일마다 정해진 메뉴를 엄격하게 나열하는 오프닝, 손님용 소파와 바텐더 테이블의 크기를 고민하는 모습 모두 두얼이 살아가는 방식의 은유다. 한 잔의 커피와 한 조각의 케이크에 얼마의 비용이 들어가는지 계산하는 두얼은, 이를테면 세계여행 대신 공부를 선택한 사람이다. 마침내 자신의 카페를 얻게 된 두얼은 춤추며 자유로움을 노래한다. 그녀에게 자유란 나의 소유를 향유하는 것이다.

 

창얼의 공간은 익스체인지, 교환소다. 그녀는 카페의 음료와 디저트보다는 교환과 흥정에 흥미가 있다. 우연히 얻게 된 새하얀 칼라꽃과 개업선물로 받은 잡동사니들을 교환하기 시작한 창얼은 전당포의 물건들을 떼와 본격적으로 교환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의 교환 역시 본질적이진 않다. 자동차를 타던 언니와 달리 자전거를 탄 동생은 조금 더 자유로워 보이지만, 그래봐야 그녀의 꿈 역시 자동차를 사는 것이다. 그녀에게 교환이란 필요를 찾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가치를 소유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언니와 달리 공부 대신 세계여행을 선택한 사람이지만 그 여행은 본질적으로 공부와 다르지 않다.

 

감독은 교통사고를 겪은 두얼의 상황을 타이페이 시민들에게 질문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선택과 이유와 이후를 논리적으로 답하지만 모두는 손익의 관점으로 답한다는 면에서 두얼과 창얼과 다르지 않다. 공부를 선택한 두얼과 세계여행을 선택한 창얼처럼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돈과 칼라꽃을 선택하지만 모두는 필요가 아닌 이익을 이야기할 뿐이다. 결말에서 서로 교차되는 선택을 하게 된 자매를 엄마가 타박하자 택시 운전사는 반문한다. 대체 뭐가 다른 거냐고 말이다.

 

 

 

 

 

 

# 3.

 

물물교환의 상황을 도식화한 오프닝을 통해 심리적 가치 기준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한다. 초콜릿 케이크를 맛있어하던 인부들이 점점 지루해하는 장면의 나열은 친절한 예시다. 초콜릿 케이크라는 사물은 그대로이지만 가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케이크가 기본 예제라면 35개의 비누는 심화 예제다. 남자 췬칭이 늘어놓은 비누의 가치는 무엇인가. 비누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들은 누구의 것일까. 그 이야기를 들어 얻은 심상을 그린 그림은 누구의 것일까. 이야기를 마친 췬칭이 비누와 그림을 가져가 버리자 두얼은 더 이상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다 말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고 자신의 심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을 비누라는 아이템으로 설정한 것은 제법 감각적이다. 향기로운 비누는 쓰는 순간 녹아버리고 쓰지 않는 비누는 무의미하다. 소유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두얼은 36번째 이야기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소파객이 된 두얼은 비로소 필요에 의한 교환에 도달했음이다. 내가 자게 될 소파가 어떤 소파인지, 소파보다 편안한 침대가 있진 않은지, 내가 몇 번의 소파를 빌려주고 빌려 받았는지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감독이 궁금한 것은 두얼이 아닌 관객이다. 감독은 두얼의 마지막 선택에 빗대어 관객을 시험한다.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두얼과 창얼의 카페에 애정을 가졌을 것이고 그것을 던지고 나온 두얼의 선택에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췬칭이 두얼의 그림을 가져가버리는 것에 아쉬움을 느낄 것이고, 췬칭이 돌아왔음에도 여행의 떠나버린 두얼의 선택에 다시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자매가 자리를 비운 카페를 차지한 괴상한 모습의 힙스터들에게 공간이 훼손되고 있음을 아쉬워할 것이다. 이 모두는 두얼과 창얼과 카페와 이 모든 것들을 통할한 영화의 '이야기'를 관객인 나도 '소유'하고 있다 집착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관객의 아쉬움과 무관하게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소유로부터의 자유로움이 세상을 무가치하게 바라본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카페엔 사람들이 찾아와 커피를 마시고, 췬칭은 두얼을 기다릴 것이며, 36번째 이야기를 찾아 나선 두얼은 언젠가 그녀의 동생과 췬칭과 손님들에게 그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 4.

 

원제는 <第36個故事>, 36번째 이야기라는 뜻이다. 작품의 방점이 소파객이 되어 떠나는 결심과 그 결심의 기저에 흐르는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에 있음을 추측케 한다. 반면 영어 제목은 <Taipei Exchanges>, 타이페이 교환소. 한국어 제목은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다. 각각의 제목은 해당하는 문화권에서 작품을 통해 어떤 이미지를 선택하느냐와 관련해 흥미로움이 있다. 한국어 제목은 소유에 대한 집착을 선택했고, 영어 제목은 소유를 위한 교환을 선택했다 생각하면 속마음을 들킨 것만 같아 서늘하다.

 

여담으로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그리고 후각적으로도 만족감이 있는 영화다. <她的改變>나 <朵兒咖啡館 (序曲)> 등 중화풍 특유의 서정성이 가미된 재즈 음악들과, 잡화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기대감, 왠지 턱을 괴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카페의 여유로움, 코끝을 스치는 진한 에스프레소의 향기가 뒤엉킨 화면이 시각적으로도 서사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진화해 나가는 모습은 크게 인상적이라 내러티브의 헐거움을 상당 부분 만회한다. 계륜미 임진희 두 배우가 이야기를 주도함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주인공은 수많은 사람들을 접촉하며 변화하는 공간 그 자체다. 카페라는 친숙한 공간을 특별하게 그려내는 작품들의 공통된 매력으로, 몇몇의 관객들이 언제고 비슷한 영화를 그리워하는 이유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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