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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길 잃은 남자 _ 고립된 남자, 바실리스 카추피스 감독

그냥_ 2024. 10.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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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바실리스 카추피스 감독,

『고립된 남자 :: Inside』입니다.

 

 

 

 

 

# 1.

 

고백하자면 나는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보는 동안 적어도 두어 번 이상 길을 잃었다. 이후의 글은 그 과정만을 간신히 옮긴 것이다.

 

자, 일단 스릴러는 아니다. 주인공은 처음 보는 늙은 도둑이고, 그의 위기를 걱정해야 할 동인이 없는 상황에서 긴장은 성립할 수가 없다. 호화로운 펜트하우스에 갇혀 말라죽어가는 윌렘 데포를 보며 안타까워할 사람보다는 연기에 감탄할 사람이 훨씬 많을 거라 예상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실험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작위적 환경과, 감상을 어지럽히는 난해한 암시 탓에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면의 알레고리를 탐색하게 되는 데, 감독은 그 부분에서 어떤 확신도 주지 못하고 있다.

 

2010년대 말 이후 만들어진 '고립'을 다룬 영화는 기계적으로 팬더믹에서 실마리를 찾게 된다. BIFAN이 작품을 '팬더믹 상황의 고립에 대한 확장된 고민을 담은 영화'로 소개하고 있듯 말이다. 다만, 팬더믹과 결부시키기에도 다소 부자연스럽다. 주인공은 기한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탈출을 도모하는 터라 감정선이 아예 다르다. 팬더믹은 관계의 위기가 주요했던 것에 반해, 주인공은 철저히 먹고 마시는 물자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것 역시 차이가 크다.

 

 

 

 

 

 

# 2.

 

그래서 처음엔 '기후위기' 쪽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망가진 디스플레이의 온도계는 범지구적 기온 상승이 인간의 폭력에 의한 에코 시스템의 붕괴임을 암시한다고 말이다. 더워지는 동안 물이 말라가는 것은 저위도 물부족을, 과일의 부패는 식생의 변화를, 어항 속 물고기는 해양 생태계의 은유를, 냉동실 바닥의 얼음은 녹아가는 빙하라 생각하면 대충 조각이 맞춰진다. 프리츠커 상을 받은 건축가의 펜트하우스는 위대한 생태계의 지구다. 공간을 장악한 예술은 스스로 향유할 자격이 있다 자평하는 오만한 인류의 문명이고, 고가의 예술품으로 가득하지만 정작 유용한 물건이 없음은 본질을 상실한 문명의 민낯이다. 그곳에 숨어든 도둑은 끝을 알 수 없는 탐욕이고 말이다.

 

집 안의 정원은 숲이다. 화장실에도 주방에도 나오지 않던 물이 숲에서만 샘솟는 것은, 결국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길은 자연의 회복에 있음이다. 도둑은 스프링클러의 물을 받는다. 식물에게 돌아가야 할 물을 훔치는 것이고, 반성 없는 인간의 허영은 허세 가득한 주방에서의 행동으로 풍자된다. 꺼지지 않는 네온사인에는 글귀가 빛난다. All the time that will come after this moment. 회복가능한 마지노선 그 끝자락에 서 있는 이 순간 이후에 마주하게 될 모든 시간이다.

 

지옥이 되어버린 새장을 탈출하기 위한 유일한 통로는 하필 천장이고 그곳을 향해 쌓아 올린 탑은 인간의 오만을 상징하는 바벨탑으로도, 지구를 탈출하려는 우주선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쯤 되면 아주 작고 사소한 스케일의 <인터스텔라>(2014)라 해도 무리는 없다. cctv 넘어 닿을 수 없는 재스민에게 절규하는 장면에서, S.T.A.Y 를 외치던 조셉 쿠퍼가 연상된다면 너무 장난스러운 생각일까.

 

여기까지가 지루한 절반이다. 이후는 대체 어떻게 풀어나가려나 싶었던 영화는 급격히 널을 뛰기 시작한다. 숨겨진 좁은 녹색의 틈과, 에곤 쉴레의 자화상, 작위적인 네온사인 글귀, 죽은 노인의 모형 따위는 지치게 만들기 충분하다. 뭐야, 기후위기도 아니었어?

 

 

 

 

 

 

# 3.

 

보이지 않는 세계(the unseen world)를 지나, 다른 예술가의 초대전과 관련된 이세계가 펼쳐지고 나면 결국 남은 가능성은 지극히 정신적인 해석이다. 타인의 심상을 훔치고 싶었던 어느 예술가의 고독한 정신세계를 물리적으로 뒤집어 놓은 것이라고 말이다.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반복하는 것은 급격한 감정 변화의 열적 은유고, 내면으로 들어오지 못한 비둘기는 영감이며, 그 안에서의 사투는 창작자의 집념이라고 말이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없는 에너지 쥐어짜 굳이 예술 나부랭이를 하고 있는 도둑놈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게 유일하다.

 

초록의 방과 닭둘기의 시퀀스는 죽음을, 열대어와 개밥 먹는 시퀀스는 물질을, 시계가 표현되는 시퀀스는 시간을, 재스민과 관련된 시퀀스는 관계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사색하는 것이라 추측된다. 불씨는 예술가의 혼이고 그것은 수미상관적인 문답으로 확인된다. 쏟아져 내리는 스프링클러는 답을 갈구하다 좌절하는 예술가의 내면에 쏟아져 내리는 슬픔의 비다. 끝내 자유로운 천창과 흘러들어오는 빛은 고통과 좌절과 슬픔을 극복한 자가 도달한 예술적 각성 쯤 될까.

 

다만 이렇게까지 억지스럽게 선해(善解)한다 하더라도 영화는 끝내 그 실체를 증명하지 못한다. 주인공이 얻은 예술의 결과를 통해 그 동안의 고통을 설득해야 하는 데, 안타깝게도 감독은 천재적인 예술가가 아니다. 적당히 태만한 벽화와 그보다 태만한 글씨 따위로 면피하려 하지만 될리가 없고, 바보가 아닌 관객은 이렇게 반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쩌라고.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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