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I never told you I didn't. You assumed I didn't.
브렛 라트너 감독,
『러시 아워 :: Rush Hour』입니다.
# 1.
개봉 당시는 물론 명절 특선으로도 꾸준히 사랑받은 <러시아워>지만, 받은 사랑에 비해 완성도가 높은 시리즈라 부르기엔 부족함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적지 않은 부분에서 상투적인 클리셰의 조립으로 이루어져 있고, <프로젝트 A>나 <폴리스스토리> 등에서 경험한 바 있는 성룡의 시그니처를 열화 된 방식으로 재연하고 있기에 어떤 면에선 얄팍하다 해도 무리는 없다. 유명하다는('유명한'과 '유명하다는'은 다른 말이다.) 홍콩의 액션스타를 데려다 할리우드의 작법에 쑤셔 넣고 있는 작품은, 이질적인 두 요소를 결합시키겠다는 의도에 걸맞은 화학적 반응을 도출하지 못한 채 물리적 나열에 그치고 만다. 실제 관객 경험의 대부분은 크리스 터커의 화려한 구강 액션과, 유물을 지키며 싸우는 성룡의 무술 액션, 배너에 미끄러져 착지하는 클라이맥스 스턴트가 절대분을 차지할 뿐, 그 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역으로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기록적인 수익을 얻을 만큼 요소요소의 파괴력이 절륜한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전개를 훤히 보이는 클리셰로 때워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힘 있게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캐릭터의 위력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이다. 진지하고 순수한 리의 숨겨진 능글맞음과, 능글맞지만 선량한 카터의 숨겨진 진지함이 겹쳐져 만들어내는 신뢰형성과 상호성장은 버디 무비의 정석이다. 장르의 발전사에 기여하는 바를 찾기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일정한 자기 영역을 차지하는 데에는 성공한, 대충 별 세 개짜리 범작이라 정리한다면 영화를 좋게 본 사람도, 실망스럽게 본 사람도 적당히 타협할 수 있지 않을까.
# 2.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영화를 만든 사람이 훤히 보인다는 것이다. 흔히 좋은 영화에만 만든 사람의 견해가 투영된다 생각하지만 오해다. 모든 영화에는 만든 사람이 들어있다. 잘 만든 영화는 만든 이의 철학적 사상이 의식적으로 투사되고, 완성도가 낮은 영화는 만든 이의 성향이 무의식 중에 묻어난다. <러시 아워>는 명백히 후자고 말이다.
영화에는 홍콩으로 상징되는 동양 문화에 대한 할리우드의 이율배반적 시선이 고르게 녹아있다. 기술적이고 자본적인 면에서의 무시와, 철학적이고 역사적인 면에서의 동경이 겹쳐있고, 이는 동양의 무술과 미국의 총술로도, 동양의 문화재와 서양의 돈가방으로도 대비된다. 과거지향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선량하며, 권위에 순종적일 것이라는 오리엔탈리즘적 선입견과, 그것이 호의로 여겨질 것이라는 무신경함은 우스꽝스럽다. 동양인은 영어를 못할 것이라는 지레짐작과 흑인은 중국어를 못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을 코미디의 훅으로 쓰는 작품이 정작 동양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그리고 이는 영화 속 리 형사를 그리는 방식뿐 아니라, 할리우드가 배우 성룡을 쓰는 방식에서도 발견된다. 단순히 '스턴트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라는 것은 성룡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성룡은 스턴트 속의 진정성과 처절함, 액션에 돌입하기까지 누적되는 드라마적 표현 모두 훌륭한 연기자다. 하지만 영화는 수영이나 한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등한시하는 등 대단히 제한적으로 배우를 쓰고 있다. 그렇다고 액션에 대한 이해라도 좋으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다. 풀샷을 적극 활용하는 액션 시퀀스의 현장감과, 타격 순간의 중첩을 통해 폭발력을 응축시켜 나가는 본토의 편집에 비해 이 영화에 쓰인 무지성 폭발과 난잡한 컷 전환은 조악하다는 말도 부족하다. 배우 스스로 <러시 아워>의 소통하는 방식이나 연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회고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오만과 무지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 3.
시대적 맥락이 노골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흑인과 백인이 갈등하던 시기를 지나 히스패닉과 동양인 이민자까지 몰려옴으로 인해 새로운 갈등을 마주하게 된 미국을 은유한다. 홍콩에서 쌓은 리 형사의 커리어는 미국에서 인정되지 못한다거나, 거나하게 자리 잡은 차이나타운, FBI의 권위 앞에 LAPD의 기여는 존중받지 못하는 와중에 그런 사람이 하필 흑인이라는 것은 인종적 맥락으로 밖엔 달리 읽을 수 없다. 약자로서의 흑인이 새로운 약자인 동양인에게 배타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시작한 작품이 파트너십으로 끝맺음되는 것은 연대를 중시하는 계급론적 사상이다. 아버지와 관련된 과거는 상이한 배경의 두 인물이 교감하는 근거인데, 이는 단순한 가족사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고 투쟁하는 약자들 간의 공통된 레거시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미국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홍콩은 고유한 문화권으로서의 홍콩이 아닌, 미국의 동양인 이민자로만 활용된다. 영국의 홍콩 통치 마지막날로 시작된 영화가 홍콩 반환에 대한 시선이 전무하다는 것은 무책임한 영국과 무신경한 미국의 단상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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