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잘 자요.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
『드림 시나리오 :: Dream Scenario』입니다.
# 1.
정갈한 머리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매일밤 꿈속에 나타나 당신을 지긋이 바라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 니콜라스 케이지의 꿈을 수많은 세상 사람들이 똑같이 꾼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심지어 갑자기 꿈속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도발적 상상의 판타지 영화 <드림 시나리오>는 <해시태그 시그네>(2002)로 데뷔한 크리스토퍼 보글리의 차기작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 역시 창의적인 설정과 도발적인 표현, 유쾌한 코미디 이면엔 알싸한 풍자가 가득하다. 주연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맡았다. <피그>(2021)에서 보여줬던 과격하고 야생적인 모습과 대조되는 소심하고 찌질한 연기를 능숙하게 선보인다. 영화의 조작을 거칠게 단순화하자면 주인공 폴을 '유명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영화는 셀러브리티를 주의력 경제(Attention economics, 관심경제, 주목경제)의 생산자로 정의한다. '관심'을 희소한 상품이자 자원으로 활용해 이익으로 교환하는 사람으로서, 일련의 특수한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고충을 드라마적으로 연출, 막연하게 유명세를 동경하는 일반인을 우회적으로 타격한다.
연예인은 꿀이라던 누군가의 댓글에 비아냥 거리던 가수 성시경이 진행하던 라디오 클로징이 하필 "잘 자요."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썩 흥미롭다. 노르웨이 국적의 감독이 성시경을 알았을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그럼에도 드림 시나리오는 그의 아이러니를 고스란히 영화로 옮겨놓은 것만 같아 보인다.
# 2.
쓰지도 않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길 바라는 사람, 구체화한 적 없는 아이디어로 논문 저자가 되길 바라는 사람은 유명해지기 위해 오늘도 피드를 올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감독은 폴의 입을 빌려 셀러브리티를 꿈꾸는 일반인을 얼룩말에 비유한다. 보호색으로 자연에 숨어들기엔 드러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행여나 표적이 될까 자신의 실루엣(실체)이 노출되는 것은 꺼리는 비겁한 얼룩말은 매일같이 기계적으로 인스타를 둘러보는 현대인이다.
초현실적인 영화의 조작은 당사자의 능력이 배제된 불안정한 유명세다. 폴이 얻은 유명세는 그의 능력과 평판은 물론 선택이나 윤리와도 무관하다. 폴이 갑자기 사람들의 꿈에 나타난 것도 사라진 것도 이유는 없다. 억지로 이유를 찾자면 대중들의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정신적 변덕 정도가 전부고, 이는 컬트적인 밈으로 떴다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가라앉는 무수히 많은 셀러브리티들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 호러로 소개할 수 있는 데, 코미디는 뜨는 동안의 설렘이고 호러는 가라앉는 동안의 두려움으로서 캔슬 컬처에 대한 시의적절한 풍자적 해부로 승화된다.
사람들은 관심이 이익으로 환원되는 모습만을 주목할 뿐, 무리에 숨은 얼룩말도 언제든 사냥당할 수 있다는 것은 간과한다. 과감하게 전환되는 영화의 후반부는 무리에서 낙오된 얼룩말이 사냥당하는 과정이다. 살이 토실토실 오른 유명한 얼룩말에 스프라이트로 상징되는 기업이란 사자들은 군침 흘리지만 손해가 발생한다 판단되자 기민하게 발을 뺀다. 오바마 운운하던 트렌트로 대표되는 하이에나들은 폴의 삶이 난도질당하는 동안 여전히 익명에 숨어있다. 가족과 친구와 커리어 모두 해체된 이후에조차 극단적인 환경으로 내몰리면서까지 마지막 남은 유명세를 이익으로 환원하는 상황, 그 과정에서 당사자의 자연인으로서의 타락을 아랑곳 않는 결말은 서늘한 사회적 주검이다.
# 3.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꿈은 꿈처럼 연출되지 않는다. 기이한 현상으로서 짐작될 뿐이다. 꿈과 현실이 붕괴되는 동안 셀러브리티로서의 가상의 인격과 자연인으로서의 실질적 인격은 함께 붕괴되는 데, 그 상황에서의 주도권을 현실의 자아가 아닌 가상의 자아가 가져간다는 것은 섬뜩하다. 만델라 효과와 마찬가지로 본질과 인식이 충돌할 때, 실제 일이 벌어졌는가 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식되는가가 더 중요해진 세상인 것이다. 폴이 사람들을 공격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폴로부터 공격받는다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런 것이다. 본질보다 인식이 앞서는 순간 내일은 불확실한 도박에 놓일 수밖에 없다. 유명인이 된다는 것은 땅에 발붙이고 사는 것이 아닌 하늘로 떠오르는 듯한 불안이다.
감독은 적극적인 프레이밍으로 일련의 꿈을 SNS 피드처럼 연출하는 등 일반인에게 셀러브리티의 삶을 대신 경험시키면서도, 꿈이라는 초현실적 조작을 통해 관객을 공격한다는 혐의로부터는 달아나는 데, 이는 영화 <구명보트>(1944)에서 히치콕이 연합 측의 관객에게 나치 독일을 대리 경험시키면서도 적절한 조작을 통해 숨겼던 방식과 유사한 면이 있다. 추락하는 셀러브리티가 된 듯한 공포와, 추락하는 셀러브리티를 훔쳐보는 사람의 코미디가 뒤엉킨 위화감은, 일련의 문화를 비판하고 멸시하면서 탐닉하고 갈망하는 인간의 이율배반적 욕망을 장르적으로 환원한다는 면에서 탁월하다.
폴이 가족에게 던지는 식탁에서의 규칙은 시대 변화에 대한 관성적 저항이다. 밥상머리에서 스마트폰과 연예인 이야기를 금지시키는 등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과거 규범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영화는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 기껏해야 역지사지와 같은 허망한 캠페인 구호가 전부다. 영화적 상상이 가미되어 있을 뿐 현실의 재연에서 크게 벗어난다 말하기 어렵고, 그마저도 후반부 노골적인 소셜 미디어에 대한 영화로 구체화되며 시시해져 버린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관객에 따라 급작스럽고 무책임한 결말이라 평가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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