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Comedy

우리들 _ 소피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나인 안티코 감독

그냥_ 2025. 5. 6. 06:30
728x90

 

 

# 0.

 

제대로 배우지 않아 엉망이지만 그래서 개성적인 우리들

 

 

 

 

 

 

 

 

나인 안티코 감독,

『소피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 Playlist』입니다.

 

 

 

 

 

# 1.

 

프랑스의 만화가 나인 안티코의 감독 데뷔작은 파편화된 청춘의 일상을 만화가 특유의 독특한 리듬으로 그린다. 원제 'Playlist'가 그러하듯, 영화는 주인공 소피가 마주하는 삶의 여러 문제들—불안정한 직업과 미래, 복잡 다난한 대인 관계, 갑작스러운 건강 이슈, 열악한 주거 환경 등—을 예측 불가능하게 뒤섞인 트랙처럼 불규칙하게 배치한다. 감독의 만화가적 기질이 반영된 듯 일련의 분절적 구성은 단순히 시간순의 줄거리 나열이 아닌, 소피가 체감하는 현실의 무질서함과 미래의 불확실함, 그로 인한 내면의 혼란을 복합적으로 암시한다.

 

흑백의 화면은 현실의 질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선택이다. 종종 오해되곤 하는 도전하는 청춘에 대한 낭만적 환상은 화려한 색채와 함께 걷어내고, 인물의 생생한 감정과 상황의 버거움에 온전히 집중하게 함이다. 도시의 차가운 질감을 고스란히 노출하는 장면 표현, 지친 소피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나, 빈대가 들끓는 좁고 답답한 방의 연출 따위는 일련의 흑백 연출과 맞물려 현실의 고단함을 더욱 날카롭게 부각한다. 고정된 카메라 앵글과 반복적으로 삽입되는 이동 수단의 장면들은 좁은 프레임 안에 갇힌 인물의 상태, 애써 움직여도 제자리이거나 심지어 뒷걸음질 치는 듯한 삶의 역설을 시각적으로 포착하며, 작품 전반에 흐르는 서글프면서도 애잔한 톤을 구축한다. 흑백의 표현과 인물 중심 서사는 부분적으로 노아 바움백의 <프란시스 하>를 떠올리게 한다. 대도시 파리라는 공간이 자유로운 활력 대신 부유하는 불안과 고립된 자의 피로를 안겨주는 제약으로 작동한다는 면에서도 유사한 지점이 있다.

 

 

 

 

 

 

# 2.

 

형식이 파편화된 현실을 시각화한다면, 그 파편들 속에서 소피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는 관계의 위기와 현실의 압박이다. '낭만적 연애'의 시작이었을 장과의 관계는 소통 부재와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실패한다. 공연장 시퀀스에서 무대 위와 아래처럼 동떨어진 물리적/정서적 거리감이나, 임신과 관련된 대화에서 드러나는 남자의 비열한 모습은 인물이 느낄 단절감과 좌절감을 친절하게 연출하고 있다.

 

장과의 관계 실패는 소피에게 홀로 임신이란 현실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남기며 깊은 상처와 불신을 새긴다. 이후 다른 남자들과의 관계 역시 각자의 어려움을 수반한다. 속도에 대한 이견이나, 확신할 수 없는 진심, 잠자리 순간의 신체적 문제 따위는 단순한 에피소드를 넘어 인물이 관계를 맺는데 내외부적 장벽에 가로막히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소피는 진정한 연결을 갈망하지만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불안은 새로운 관계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이는 감독이 진단하는 청춘들이 직면한 관계의 위기다.

 

비단 연인 관계뿐 아니다. 출판사 사장의 황당한 무례와 갑작스러운 해고, 그림 작가를 꿈꾸지만 정식 교육의 부재와 애매하게 많은 나이로 인해 좌절하는 현실은 세상에서 주변화된 청춘의 비애를 여실히 보여준다. 원치 않는 현실과 꿈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괴리감은 소피를 끊임없이 지치게 한다. 가족과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갈등은 또 다른 종류의 압박감으로 작동하고, 자신의 불안정한 상황을 숨기고 애써 괜찮은 척해야 하는 가족 관계 역시 인물의 고립감을 심화시킨다. 친구들의 삶 또한 소피와는 다른 궤적을 그리며 그녀의 상황을 상대화한다. 때로는 꿈을 포기하겠다는 친구와의 다툼처럼 자신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영화 내내 관계들은 주인공에게 지지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자신의 어려움을 상당 부분 홀로 마주해야 함을 시사한다. 사회적 경제적 문제들로 인해 끊임없이 재편되는 복합적 상황 속에서 자리 잡지 못하는 사람의 몸부림이다.

 

 

 

 

 

 

# 3.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삶의 압박은 소피의 몸에 정직하게 새겨진다. 예상치 못한 순간 찾아오는 신체적 통증이나 길거리에서의 폭주 후 맥없이 쓰러지는 모습 따위는, 내면의 혼란과 누적된 스트레스가 외부로 표출된 결과이자, 현실의 고통이 인물의 몸에 새겨진 서사임을 의미한다. 때로는 통제 불가능한 분노로, 때로는 생경한 기술 습득으로, 때로는 과거로의 회귀로 나타나는 소피의 행동들은 생존하기 위한 애처로운 몸부림이다. 주먹질은 못하더라도 하다못해 박치기라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나, 교회를 찾아 초를 붙이고 심폐소생술을 배우는 건 이러한 에너지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통제함으로써 현실에 맞서고 싶은 열망의 무의식적 발현처럼 보인다.

 

그녀의 시간들은 대부분 실패로 귀결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듯 보이고,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바위에 계속해서 계란을 던지는 것만 같은 무모함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반복과 좌절 속에서도 끝끝내 좌절하지 않는 소피다. 고단하지만 강인한 청춘의 투쟁을 상징하는 것. 무너지지 않으려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 4.

 

감독은 소피의 비극을 신파로 몰아가지 않으면서 현실의 부조리한 순간들을 포착해 관객에게 웃음과 서글픔을 동시에 안긴다. 작품의 톤은 인물의 고난에 대해 직접적인 감정 이입을 강요하기보다 한 발짝 떨어져 그녀의 상황과 반응을 관찰하게 만드는 데 집중한다. 상황의 아이러니와 보편성에 대해 사유하게 하기 위함이다.

 

소피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래픽 노블을 완성하는 앤딩은 소피와, 현실의 소피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을 추측케 하는 것이다. 그 모든 지난하고 고통스러웠던 삶이 결국 어디로 향했는지를 보여주는 성찰의 결과다. 외부의 성공이나 문제 해결이 아닌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끝내 길을 잃지 않고 자신의 경험 그 자체를 의미 있는 동력으로 삼아 스스로를 재정의하는 모습이다.

 

작중에서도 그녀의 그림은 '제대로 배우지 않아 엉망이지만 그래서 개성적이라' 평했던 것처럼. 그녀의 젊음 역시 실패와 좌절로 점철된 시간이라 할지라도 그 경험들이 한 인물의 고유한 서사가 되어 예술로 승화될 수 있음을 위로한다. 불안한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언어와 방식으로 간신히 의미를 찾아 나가는 사람들. 실수와 실망과 좌절 투성이고 궁핍하고 비루하고 고단하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이다.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Netflix, Tving, WatchaPlay, CoupangPlay, Appletv,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 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