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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모닥불 _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그냥_ 2023. 11.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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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값비싼 자동차를 몰기 위해 뾰족구두에 못은 박았지만,

그럼에도 모닥불은 피어나 얼어붙은 기타리스트를 깨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입니다.

 

 

 

 

 

# 1.

 

핀란드의 거장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작품입니다.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함께, 시네필인 척하고 싶을 때 써먹으면 가성비가 무지 좋은 감독이죠. <성냥팔이 소녀>나 <과거가 없는 남자>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려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정도를 거명한 후, 차갑고 건조한 미장센, 비정한 세상에 대한 날 선 조소, 투쟁하는 노동자 계급을 향한 다정함, 무성 영화에 대한 동경 따위를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 늘어놓다가, 대화가 끝날 즈음 그의 진가는 작품을 지배하는 서늘한 문제의식보다 그럼에도 결코 잃는 법이 없는 웃음이라는 말과 함께 커피 한 모금 홀짝이며 창밖 멀리를 쳐다보면. '저 녀석, 겁나 재수 없지만 조금은 멋진걸?'이라는 평판의 상승을 날로 먹을 수 있으실 겁니다. 개꿀이죠.

 

말씀드린 대로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누가 봐도 대충 지은 듯한 킹받는 이름의 Sleepy Sleepers라는 밴드와 함께, Leningrad Cowboys라는 밴드를 만들어 뮤직비디오와 단편 몇 개를 찍었었는데요. 그것을 계기 삼아 똘끼 충만한 코미디 장편 하나를 추가로 뽑은 것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장르는 블랙 코미디와 로드무비 그리고 음악영화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테구요, 형식은 실존하는 밴드이니만큼 모큐멘터리라 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작품이죠.

 

영화는 미국을 유랑하는 이방인 밴드의 애환과 음악을, 약자에 대한 해학과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를 곁들여 그려냅니다. 안 그래도 지독한 감독의 작품인 데다 누가 봐도 돈 들만한 구석이라곤 인건비와 양파 1망(...)이 전부인 저예산 영화임에도, 다양한 지역의 사람과 문화를 폭넓게 녹여내고 있다는 것은 칭찬받아도 좋은 거겠죠.

 

 

 

 

 

 

# 2.

 

영화는 '사람'과 '음악'과 '환경'이라는 세 핵심요소가 충돌하는 순간 폭로되는 소련의 허구와 미국의 폐해로 귀결됩니다.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 떨어진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레닌그라드 카우보이라는 낯선 현상과 충돌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이죠. 감독은 음악 시장에 투사된 자본주의적 시장 논리를 계급론에 입각해 비판적 시각에서 조명합니다. 그 결과 상업주의와 소비문화뿐 아니라 인종차별과 정치적 위선과 약자에 대한 무관심까지 한 작품 안에 두텁게 그려낼 수 있었죠.

 

밴드는 자신의 정체성과 예술성을 지키려 하지만 미국은 이를 비웃고 차별합니다. 매니저와 밴드의 관계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를 맥주 캔과 스테이크와 태닝과 좌석 배치와 현금 다발과 쿠데타 등을 동원해 다각도에서 은유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미국은 툰드라와 별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건조하게 죽어있는 도시입니다. 자본주의의 폐해에 떠밀린 사람의 얼굴은 화가 난 표정도, 슬픈 표정도, 절망하는 표정도 아닌 '무표정'이라는 진단은 영화 속 그 무엇보다도 서늘하죠.

 

 

 

 

 

 

# 3.

 

영화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하나 꼽으라면 역시나 스타일일 겁니다. 퐁파두르라 해야 할지 리젠트라 해야 할지 모를 괴랄한 헤어스타일과, 그 머리만큼이나 앞으로 뻗어 나온 검은색 뾰족구두와, 아무 장례식장에 들어가도 육개장 한 그릇은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검은 정장은 가히 압도적이죠. 일련의 스타일은 허망하고 때론 우스꽝스럽지만 그들에겐 포기할 수 없는 정체성과 자존감에 대응합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 속 주인공은 언제나 노동자, 부랑자 등의 소외된 계층인데요. 이 영화에서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의식주를 향한 갈망과 저렴한 값으로 현실을 잊게 만드는 술과 담배, 그리고 음악으로 은유됩니다. 영화의 서사는 코믹한 상황과 별개로 처절한 생존 투쟁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영어를 배우고, 로큰롤을 배우고, 컨트리를 배우고, 하드락을 배워 연주하지만 보상은 착취로 인한 배고픔과 추위뿐이었죠.

 

우스꽝스럽지만 진지한 정체성에 대한 고집과, 처절한 투쟁에도 길가에 앉아 배를 곯는 모습의 대비는 그 자체로 작품이 실현하고자 하는 웃픈 정서의 페이소스로 승화됩니다. 감독은 그들의 실패를 부정하지 않지만 성공을 측정하지도 않습니다. 밴드의 실패와 좌절을 해학적으로 그리면서도 그들의 의지와 열정만큼은 존중하고 치하하고 있는 것이죠.

 

 

 

 

 

 

# 4.

 

감독을 중심으로 이야기드렸습니다만, 밴드 영화이니만큼 당연히 음악을 간과해선 곤란합니다. 영화는 짧은 런타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긴 시간을 투자할 만큼 음악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니까요. 음악은 영화를 포함한 예술의 가치와, 집단으로서의 정체성과, 개인으로서의 소시민성을 복합적으로 의미합니다. 관악과 아코디언이 인상적인 폴카나 집시 음악 등을 하던 밴드가 미국의 음악사를 관통하기라도 하려는 듯 다양한 음악을 훑고 지나가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큰 영화적 재미라 할 수 있겠죠.

 

어두운 밤 황량한 길가에 지핀 작은 모닥불 같은 영화라 평합니다. 비극에서부터 벗어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연약한 사람들이 잠깐의 온기에 옹기종기 모여 웃고 노래 부르는 듯한 영화랄까요. 자본 논리에 밀려나버린 사람과 예술의 서글픔을, 지극히 인간적이고 예술적인 웃음으로 풀어낸다는 면에서 단단한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삶과 음악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보여주면서도, 직면하게 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들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 작품입니다. 단순한 로드무비나 음악영화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와 체제에 대한 통찰이 담긴 가장 뜨거웠던 순간의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박제를 유쾌한 웃음으로 들여다보는 것만 같은 작품이랄까요.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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