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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원래 그런 거야 _ 무서운 영화, 키넌 아이보리 웨이언스 감독

그냥_ 2024. 2. 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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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원래 그런 거야, 인마~

 

 

 

 

 

 

 

 

키넌 아이보리 웨이언스 감독,

『무서운 영화 :: Scary Movie』입니다.

 

 

 

 

 

# 1.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매년 설추석이면 특수를 노리고 여러 신작들이 개봉되곤 합니다만, 그래도 명절엔 추억의 옛날 영화죠. 2000년에 개봉한 영화를 옛날 영화라 이야기하는 게 어색하긴 한데요. 벌써 2024년이니까요. 세월 참 빠르군요.

 

개막장 B급 싼마이 코미디 영화 되시겠습니다. 명작의 반열에 오른 <에어플레인>이나 007 시리즈를 가지고 논 <오스틴 파워> 등과 함께 가장 성공적인 패러디 영화이기도 하죠. 속편은 없다!! 라는 선언이 무색하게 무려 다섯 편에 걸쳐 제작된 시리즈물이기도 한데요. 언제나 그렇듯 첫 편의 용머리 이후로는 지난한 뱀꼬리가 이어지니 굳이 찾아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우리나라에서는 김정은, 임원희가 주연한 <재밌는 영화>라는 제목의 패러디 코미디가 개봉하기도 했더랬습니다. 물론 이쪽은 특정 장르를 꼬집어 들어간 것이 아니라 한국 영화 일반을 패러디하고 있긴 합니다만, 제목에서부터 그러하듯 무서운 영화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작품임에 분명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문가와 관객 모두에게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린 작품인데요. 이런 얘기가 이젠 식상하기도 하죠. 개막장 패러디 영화라는 게 대체로 다 그런 거니까요. 이런 영화를 만들고 즐기는 변태들은 심지어 논란과 호불호를 즐기기도 합니다. 평론가의 불평불만과 화려한 흥행성적을 나란히 전시해 놓고 그걸 훈장처럼 여길 걸 생각하면 무지개반사를 당하는 것만 같은 무력함에 열받기도 하죠. 아무리 저속하다느니 천박하다느니 유치하다느니 해봐야 '원래 그런 거야, 인마'라는 말이 깡패입니다. 과도하다는 말도 부족할 섹스 코드와 폭력씬이 영화 내내 난무하는 데, 막상 그걸 단점이라 지적하기에는 슬래셔 고어 무비를 잔인한 게 단점이라 말하는 것처럼 우스워진다는 걸 부정할 수도 없죠.

 

 

 

 

 

 

# 2.

 

무서운 영화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단연 센스 있는 패러디입니다. 패러디 특성상 원작을 따박따박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진입장벽이 있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천박한 화장실 개그에 거부감만 없으시다면(중요) 지금 봐도 낄낄 댈 수 있을 정도로 타율이 괜찮죠.

 

<스크림>과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와 <유주얼 서스펙트> 정도의 뼈대 위로 무수히 많은 패러디가 쏟아집니다. <블레어 위치>, <샤이닝>, <13일의 금요일>, <핼러윈>과 같은 유명 공포 영화는 물론 <식스 센스>나 <포레스트 검프>, <록키> 등 타 장르 네임드 영화들도 마음껏 끌고 들어오고 있구요. 인종, 성별, 장애를 포함한 사회문화적 선입견 혹은 부조리까지 성역 없이 끌고 들어와 낭비적으로 과시적으로 파괴적으로 소비하기도 합니다. 제4의 벽을 넘나들며 카메라를 밀치고 촬영 스텝을 찍고 캐스팅을 비웃는 등 메타 코미디에도 주저는 없죠. 물론 지금의 윤리 기준에서 께름칙한 것도 상당 부분 있습니다만(중요 2), 지금에 와서 그걸 지적하는 건 딱히 의미가 없을 테니 적당히 당시 시대상은 그러했구나 하시면 충분합니다.

 

이야기를 즐길 수 없는 패러디 특성상 빈틈없이 코미디를 밀어 넣어 정신없게 만드는 작업이 필수적인데요. 적절한 타이밍에 원작을 집요하게 재연하기도 비틀어 변형하기도 하는 터라 예측대로 흘러가는 법은 없습니다. 흔히 <무서운 영화>를 이야기하면 개막장 영화라는 것만을 거론하곤 하는데요. 표현이 그런 거구요.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싼마이 패러디 사이에서도 이 정도의 인지도와 유명세를 얻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연출적으로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냥 만만하기만 한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죠.

 

 

 

 

 

# 3.

 

무서운 영화를 이야기할 때면 이러나저러나 <스크림>이 함께 불려 나올 수밖엔 없을 겁니다. 살인마를 공유한다는 걸 차치하고서라도, 둘 다 공포 영화 패러디를 대표하는 작품이니까요. 그것을 괴팍함이라 부르든 홍대병이라 부르든 B급 정서라 부르든 어쨌든. 마이너리티의 기준에서 보자면 보편의 공포 영화가 드라마에 자극을 조금 더한 메조 포르테, 스크림이 그런 공포 영화의 원리를 끌고 들어와 더 많은 자극을 더한 포르테, 무서운 영화는 그 스크림까지 모조리 끌고 들어와 망가트리는 포르티시모 같기도 합니다. 패러디의 먹이사슬이라 상상하면 그것대로 유쾌하죠.

 

일반이 스크림을 위대한 호러 영화로, 무서운 영화를 논쟁적인 문제작으로 구분하게 하는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금기를 넘어서는 파격성이나 폭력성을 탓하기에는 스크림도 슬래셔 무비이긴 매한가지란 말이죠. 결국엔 장르에 대한 애정을 지목하게 되는데요. 역으로 그럼 스크림이 가진 장르에 대한 애정무서운 영화가 지향하는 영화적 자유에 대한 예찬보다 반드시 우선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논쟁과 별개로 무서운 영화를 재미있게 본 수많은 관객들의 즐거움을 폄하하는 것은 그것대로 부당할 테니까요.

 

하나는 패러디를 대단히 논리적인 형태로 접근해 구조적인 형식으로 동원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하나는 대단히 말초적인 형태로 접근해 파괴적인 형식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면에서 대척점에 있는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두 작품을 오가다 보면 결국 패러디란 무엇인가라는 최초의 질문에 거슬러가게 되는데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언제나 풍자와 해학의 패러디에서 본질 따위를 찾고 자빠진 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결말에 도달하곤 하는데, 이번에도 같은 엔딩이군요.

 

아,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빼먹었네요. 트리니티의 발차기를 갈기는 2000년의 안나 패리스는 겁나 귀엽습니다. 진짜 겁나 귀엽습니다.(중요 3) 키넌 아이보리 웨이언스 감독, <무서운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