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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치명적인 무해함 _ 침입자들의 만찬, 미즈노 이타루 감독

그냥_ 2024. 2.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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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부조리 위에 펼쳐진 탐욕과 위선을 제압하는 치명적인 무해함

 

 

 

 

 

 

 

 

미즈노 이타루 감독,

『침입자들의 만찬 :: 侵入者たちの晩餐』입니다.

 

 

 

 

 

# 1.

 

영화는 뻔뻔스럽게 범죄 스릴러를 주장하지만 전반적인 톤은 코미디 어드밴처라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사건이 벌어지는 후지사키 나츠미의 집 역시 현실적 주거 공간이나 차가운 범죄 현장이라기보다는 흥미진진한 던전에 가깝게 연출되어 있죠.

 

응큼하고 지저분하지만 엉성하고 귀엽기도 한 여섯의 인물들이 각자의 음흉한 목적을 위해 지지고 볶는 하룻밤 소동극입니다. 소동극의 묘미라면 역시나 분투하는 인간들의 소동을 귀엽고 가엽게 그리는 시선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침입자들의 만찬> 역시 그 온건함에 대단히 충실합니다. 각본가 바카리즈무의 기질이 묻어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죠. 작품을 견인해 나가는 서스펜스 또한 한없이 무해하다 못해, 몇몇의 장면들은 내가 지금 힐링물을 보고 있는 건가? 싶은 착각마저 듭니다. 전개의 상당 부분을 우연에 기대고 있고, 그 우연을 다루는 방식 또한 날아갈 듯 가볍고 장난스러운데요. 단점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런 류의 영화라 이해하는 것이 편안하겠죠.

 

서스펜스, 코미디, 힐링, 드라마, 치정, 만담, 권선징악이 뒤엉킨 멀티 장르물인데요. 누군가는 다채롭다 누군가는 산만하다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쪽으로 평가한다 하더라도 마냥 틀렸다 할 수는 없습니다. 다양한 장르 전환이 같은 시퀀스 내에서의 수평적 변화폭을 제공하는 동안, 시간축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플롯은 감상에 수직적인 폭을 제공합니다. 하룻밤 소동이라는 단일 사건을 챕터가 넘어감에 따라 사건의 출발점보다 더 과거의 시점으로 회귀시킨 다음 도착점은 조금 더 전진시켜 사건의 실체를 점점 더 넓고 깊게 덧칠하는 플롯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능숙하고 흥미롭습니다.

 

 

 

 

 

 

# 2.

 

새롭게 추가되는 인물마다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인지할 뿐, 같은 사건을 반복하는 작품 특성상 점점 지루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챕터의 간격을 타이트하게 좁히고 반복적인 정보는 과감히 생략함으로써 속도감을 부여해 정면돌파합니다. 감상이 급하지 않으면서도 지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적재적소에 배치된 클래식 음악의 높은 활용도슬로모와 생략을 적극적으로 교차시킨 리드미컬한 편집의 덕이라 해야겠죠.

 

호신용 스프레이나 주머니에 구겨 넣은 복면 등의 소품뿐 아니라 도둑의 침입경로, 자리를 비운 경비원, 유일하게 청소하지 못한 소파 밑 따위의 소소한 장치들을 회수하며 조립하는 감각은 마치 퍼즐 게임을 즐기는 듯한 즐거움을 줍니다. 영화를 채운 퍼즐 조각 하나하나의 완성도도 썩 준수할 뿐 아니라 개수도 충분하고 그것이 모여 만든 큰 그림의 모자이크도 제법 만족스럽습니다.

 

연기를 이야기해 볼까요. 나쁜 짓을 밉지 않게 해야 하고, 위험한 상황을 위험해 보이지 않게 해야 하고, 가벼운 상황에서도 진심이 담겨있어야 하고, 코믹한 움직임에도 절실함이 묻어나게끔 표현해야 했을 텐데요. 키쿠치 린코, 히라이와 카미, 요시다 요, 시라이시 마이, 이케마츠 소스케, 카쿠타 아키히로 모두 해당 미션을 충실히 달성하는 좋은 연기를 합니다. 다만 언제나의 일본 코미디 영화들처럼 90도 넙죽 허리 굽혀 인사하는 식의 특유의 양식화된 표현에 대한 양해는 필요하겠죠.

 

 

 

 

 

 

# 3.

 

이처럼 안전하고 직관적인 작품임에 분명한데요. 사실 굴러가는 원리를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입체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편안하기 그지없는 관람과 별개로 보고 난 후의 감상이 마냥 앙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죠. 비틀린 아이러니를 직관적인 상황에 투사한 후 그렇게 만들어진 소란 속에서의 인물 탐구는 분명 흥미롭습니다.

 

영화는 부조리로 가득합니다. 침입과 허가의 모호한 경계, 소시민과 자본가의 충돌, 청소하고 살림하는 침입자, 피해자가 된 도둑, 경비원이었던 스토커, 나쁜 도둑을 잡는 착한 도둑, 불륜녀의 침대 밑에서 잠든 전처, 이 모든 패악질을 용서하는 집주인까지. 그중 백미는 모두가 모두에게 투쟁함에도 불구하고 발각되는 순간 공멸에 이르는 이들이 서로를 무한정 용서하는 상황적 묘미라 할 수 있고, 이는 '침입자'와 '만찬'이라는 어휘가 가진 이질적인 질감을 통해 상징됩니다.

 

가장 이질적인 고유의 조작은 역시나 선행과 악행을 등가교환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일 겁니다. 선행은 선행이고 악행은 악행일 뿐이라는 일반의 상식을 뒤집고 선행과 악행을 측정해 총점을 매길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잘잘못을 정량적으로 탐구하게 만들어 영화 전체를 사고실험을 권유하는 장치적인 상황으로 옮겨가게 합니다.

 

누가 어떤 짓을 하든지와 무관하게 선행과 악행의 총량은 결국 제로섬입니다. 누군가의 악행을 다른 누가 대처하는 순간 같은 값의 선행으로 환원되기 때문이죠. 이는 모든 인물들이 서로의 선행과 악행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토양이 됩니다. 일련의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 있는 유일한 악행은 사장의 탈세입니다. 필연적으로 탈세가 발각되며 극이 마무리될 수밖에 었었던 것이죠.

 

 

 

 

 

 

# 4.

 

기저에 강력한 사회비판과 계급론이 숨겨져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적은 월급과 부당한 회사 방침에 시달리는 가사도우미 직원들의 불만, 그라비아 아이돌 출신 사장의 탈세와 불륜, 범죄 드라마를 보고 범죄 수법을 배우는 사람들, 피해자에게 참을 것을 조언하는 변호사와 불륜 커플의 화목한 하와이 여행 등은 비판적 시선을 읽기에 충분한 근거죠.

 

사건 속 인물들은 계급론에 입각해 보자면 '자본가'의 집에 침입한 '피고용자'와 '소비자'와 '탈락자'라 할 수 있습니다. 큰 틀에서 보자면 집에 숨겨져 있었던 것은 두 가지, '탈세된 돈'과 '다섯의 소시민'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자본가의 부정을 상징하는 돈과 침입자들을 연결 짓는다는 것은 일련의 사단이란 자본가 계급의 부정에 일부 근거하고 있음을 느슨하게 암시합니다. 감독은 자본가 계급을 악행을 숨기기 위해 선행하는 사람으로, 소시민 계급은 악행 하는 와중에도 선량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실제 빚, 생활고, 사업실패, 배신과 같은 선량하게 살고 싶은 의지를 흔드는 사회적 부조리를 지적하면서, 그럼에도 양보되지 않는 최소한의 선량함과 양심, 최소한의 직업윤리가 공존함을 증명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죠. 영화의 결말은 침입자 세 사람의 저녁 식사인데요.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에서 '공존의 가치'를, 비싼 주차비용에서 '경제적 현실'을, 삼등분한다는 면에서 '분배의 필요성'을 암시하며 막을 내립니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 소시민의 핑계를 편 들어준다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침입자들의 주장이 궤변이라는 것도, 어쨌든 남의 집을 침입한 침입자라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니까요. 착한 사람이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의 의지를 비추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비루한 악행을 정당화하는 소시민들의 위선과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꼬집어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 부분적으로 사건을 인지하고 섣부르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뜬구름 잡는 소문 따위의 섣부른 예측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좌충우돌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관객 역시 챕터가 넘어감에 따라 사건을 부분적으로 인지하고 섣부르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미즈노 이타루 감독, <침입자들의 만찬>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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