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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간귀 _ 데드 탤런트 소사이어티, 존 쉬 감독

그냥_ 2025. 4. 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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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맛은 평범하지만 간은 귀신같이 맞췄다.

 

 

 

 

 

 

 

 

존 쉬 감독,

『데드 탤런트 소사이어티 :: Dead Talents Society』입니다.

 

 

 

 

 

# 1.

 

<죽은 시인의 사회>(1989)를 대화하다 보면 꼭 따라붙는 이야기가 있다. 제목에 대한 비하인드다. Dead Poets는 죽은 시인이라기보다는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과 같이 오래전에 죽은 옛날 시인에 가깝고, Society는 모임이나 협회를 뜻하는 것이기에 '고전 시인 협회' 정도가 적당함에도 그것을 냅다 직역하며 생긴 오역이라고 말이다. 다만 세태를 두루 관조하는 면이 없잖아 있었던 내러티브와, 특유의 비장한 뉘앙스가 작품이 받은 사랑에 보탬이 되었다는 아이러니를 첨언하면 대충 교양 있는 스몰 토크가 완성된다.

 

<데드 탤런트 소사이어티>의 제목은 누가 보더라도 데드 포엣 소사이어티를 패러디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의미가 한국식 오역에 가깝다는 점이다. 재기 발랄한 감독은 진짜 죽어버린 재능들과 사회에 대해 정직하게 이야기한다. 대놓고 명화의 제목을 끌고 온 것처럼 오만 것들을 뒤섞어 노는 패러디 코미디지만 큰 틀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적극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성적 지상주의적인 동아시아 특유의 경쟁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면에서 우리 관객들에게도 안착하기 편안한 주제랄까.

 

현실을 지옥이라 말하는 대신, 죽은 사람들의 저승을 현실과 같은 모습으로 비쳐 전복시킨 아이디어는 작품의 정체성으로 <몬스터 주식회사>(2001)나 팀 버튼의 영향도 크게 발견된다. 죽어서도 실적에 매달린다거나, 쇼츠를 찍고 뷰수에 애태우는 모습. 공적을 차지하기 위해 다툰다거나, 성과제로 추방되다 못해 소멸되는 모습 따위는 귀신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장면들만큼이나 섬뜩하다. 소멸되지 않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사람들, 죽어서까지 고달픈 사람들의 비애란 코미디로 가득한 영화임에도 문득문득 코끝을 시큰하게 한다.

 

 

 

 

 

 

# 2.

 

영화의 해법이란 인간을 소비하지 않고 관계해야 한다는 안전한 메시지다. 결말이 실패한 주인공의 반전 성공 따위가 아니라, 비중이 적은 배역들까지 허투루 하지 않고 한데 모인 유사가족으로 귀결되는 이유다. 자기실현은커녕 소멸되지 않기 위해 몸을 내던지고 고꾸라지는 청춘들의 비애를 적나라하게 직시하지만, 마냥 슬프게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연약한 희망을 함께 이야기한다는 면에서 본연의 선량함이 있다. 힐링 영화 특유의 낯간지러운 감정선과 네가 소멸되길 바란 적 없어 같은 오그라드는 감정선이 중간중간 개입되지만,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다정한 메시지의 민망함을 능청으로 희석하는 느낌이라 나쁘지 않다.

 

인간성 회복을 이야기하는 영화에서 진정성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결한 것이다. 그 수단으로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촬영에 대한 오마주를 적극 끌고 들어온다는 면에서 우에다 신이치로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8)와 같은 느낌도 일부 있다. 당장 다른 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배우들의 온몸을 내던지는 열연만으로도 적잖이 감동적이다. 다소 진부할 수 있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세계에 꾸준히 생동감이 감도는 건 비단 한두 명의 주연뿐 아니라 모든 출연진의 치열함 덕이 크다.

 

도입의 공원이나 오디션장, 귀신들의 파티 등을 통해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친숙한 도시괴담을 패러디 코미디로 끌고 와 볼륨을 보강한 것은 경제적인 선택이다. 그것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은 것 또한 감독의 통제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면에서 칭찬할만하다. 전반적으로 코미디의 호흡이 지배적으로 작동하긴 하지만 마냥 웃음만 있는 영화는 아니다. 401호의 연출로 대표되는 몇몇의 호러뿐 아니라 달리는 차에 처박혀 핏자국 남기고 질질 끌려간다거나, 미모의 주인공을 옥상에서 냅다 던진다거나, 간판에 꽂아 박더니 감전까지 시킨다거나, 바닥에 처박아 피칠갑을 한다거나 하는 고어 장면들은 코미디와 드라마에 치우칠 수 있는 작품에 알싸한 킥이 된다. 와중에 의뭉스럽게 떡밥을 던지고 알뜰하게 회수하는 짓까지 하고 있으니 성실함 하나만큼은 인정받아도 좋을 영화다.

 

 

 

 

 

 

# 3.

 

수많은 귀신들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가장 귀신같은 건 허리 뒤로 접은 케서린도, 붉은 드레스의 제시카도 아닌 감독의 밸런스다. 특히 만족스러운 것은 쓸데없는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안 무서운 걸 가져다 무섭다고 우긴다거나 안 웃긴 걸 가져다 웃기다고 우긴다거나 하는 대목이 거의 없다. 먹힌다 싶은 파트를 눈치 없이 반복한다거나 쓸데없이 길게 끈다거나 하는 식으로 집착하지도 않는다. 경쾌함과 다정함 사이에서의 완급과 균형은 작품의 매력이다. 다정한 영화들 특유의 오그라드는 감정선에 매몰되지도, 호러 영화 특유의 과격함 일변도로 흘러가지도, 코미디 영화 특유의 무책임한 전개도 관리하는 데 성공한다. 특별히 뛰어난 맛은 아니지만 익숙한 재료들의 간을 잘 맞춘 음식. 누구에게나 추천해도 무난할 웰메이드 코미디랄까.

 

물론 언제나 그렇듯 균형이 좋다는 것은 어중간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할 말은 없고, 그 어중간함을 변호해 줄 정석적 향신료인 '개성'이나 '창의성'이 부실한 것도 사실이다. 배우들, 특히 왕정과 진백림의 역량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기에 일정한 시점까지 두 배우에 대한 애정을 확보하지 못한 관객은 유치하고 번잡한 영화라 느낀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고, 이는 작품이 겸허히 수용해야 할 지적이다. 뒤 없는 표현들로 시스템의 지적을 나열해 놓고 그 끝은 명랑만화스러운 무조건적인 선량함으로 마무리하는 것 역시 일견 무책임해 보일 수 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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