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아리안 루이-세즈 플루프 감독,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입니다.
# 1.
사람을 불쌍히 여겨 피를 빨지 못하는 뱀파이어 사샤와,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죽고 싶은 인간 폴의 이야기다. 굶주린 그녀를 위해 대신 죽어주겠다는 폴이지만 마음 여린 사샤는 소년을 헤치지 못한다. 대신 소년에게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하자 말하는데, 그러면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피를 빨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년은 자신을 괴롭히던 또래들과 이를 방치하던 교사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고, 마지막으로 메인 빌런인 앙리에게 복수하려 하지만 역으로 된통 당하고 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샤는 순간 이성을 잃고 앙리를 공격, 처음으로 사람을 사냥하는 데 성공한다. 자신의 충동적 행동에 충격받은 사샤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폴은 어느 모텔에 숨어들고. 폴은 사샤에게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되겠다며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한다.
모처럼만의 뱀파이어 영화는 시종일관 귀엽고 사랑스럽다. 폭행, 납치, 살인, 흡혈, 자살이 난립하는 이야기임에도 스크린엔 청소년기의 풋풋함이 가득하다. 퀘벡 출신의 작가 겸 감독 아리안 루이-세즈 플루트는 인간과 뱀파이어가 함께 사는 새로운 세계의 규칙을 이전의 정형성에 의존하지 않고 한 땀 한 땀 손수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다.
제목을 활용한 방식에서부터 그래픽 노블을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의 영상 연출은 큰 즐거움이다. 두 주인공뿐 아니라 일련의 이야기 일체가 청소년기의 그것 같은 다정함으로 승화되어 있다. 상황에 따라 장난스럽기도, 관능적이기도, 가족적이기도, 퇴폐적이기도 한 컬트적인 테마의 호러 코미디에 필수적인 미술 연출 역시 준수하다. 성인이 된 사샤의 피아노 버스킹 장면의 연주곡, 폴과 사샤가 함께 듣는 브렌다 리(Brenda Lee)의 음악 <Emotions>를 비롯, 피에르-필립 코트(Pierre-Philippe Cote)의 사운드 역시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에 충실히 기여한다.
# 2.
영화는 기민한 내러티브보다는 캐릭터의 속성에 빗대어진 알레고리를 즐기는 류에 가깝다. 인간의 정신과 뱀파이어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면에서 정체성 불안을 그린 드라마 영화로도 읽힌다. 자신이 속한 세계의 적응에 실패한 청소년의 우정을 그린 하이틴 영화로도 보인다. 피아노와 음악을 생각하면 직업 선택과 자기실현을 은유하는 성장 영화로도, 존재와 관계의 의미에 대해 통찰하는 철학 영화로도, 심지어는 채식과 육식에 대한 이야기로 읽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독립을 눈앞에 둔 소녀의 어설픈 신체 변화라는 면에서 2차 성징을 경험하는 소녀의 불안으로 본다 해도 무리는 없다. 심지어 결말에서는 안락사 담론으로 흘러가는 맛도 있다. 이 모든 은유의 작동을 위해 다양한 설정을 덧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연민하는 뱀파이어'라는 단일한 설정에 겹쳐내는 경험은 기대보다 더 유쾌하다.
나이도 성별도 종족도 상이한 사샤와 폴은 죽음을 각오한 인물이라는 면에서만큼은 동일하고, 이는 둘러앉은 자살 예방 모임으로 그려진다. 조금 더 정밀하게 표현하자면 사샤는 방법이 부재한 삶, 폴은 이유가 부재한 삶이라 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도 영화의 이야기를 지나는 동안 사샤는 폴로부터 살아갈 방법을 찾고, 폴은 사샤로부터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감독은 삶을 이유와 방법의 결합으로 규정한다.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같은 위계에 있는 친구와의 소중한 관계다.
모든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사샤는 유약하지만 따뜻한 아빠와, 단호하지만 책임감 있는 엄마와, 매정하지만 츤데레인 사촌이 있다. 폴이 위험에 처하자 사샤의 요청에 한 달음에 달려온 가족을 잊어선 곤란하다. 폴에게도 소중한 엄마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먹고살기 힘든 홀어머니는 아들에 미쳐 신경 쓰지 못하지만, 폴의 엄마는 영화 내내 최선을 다한다. 아들이 뱀파이어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아들로서 사랑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을 구원한 것은 고통과 외로움을 이해하는 서로 뿐이다. 같은 눈높이에서 교감하며 성장하는 또래란 그렇게 중요하다. 사샤와 폴의 관계는 사랑보다 멀지만 우정보다는 훨씬 가깝다.
# 3.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나저러나 영화는 사샤를 중심으로 흘러감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부조리를 극복한 새로운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되겠단 선언을 폴이 가져가는 것은 몰입을 크게 해친다. 사샤를 주에 놓을 거라면 폴로부터 해당 대사를 가져오게 하던가, 굳이 폴에게 그 대사를 시켜야 했다면 폴에게도 더 많은 정서적 공간을 할애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세계에 대한 상상이 조금 더 과감했더라면, 조금 더 치밀했더라면 싶은 부분들도 군데군데 발견된다. 상상력의 한계는 비단 세계관뿐 아니라 영화가 암시하는 다양한 알레고리들에도 일관되게 적용된다. 앞서 소개한 대로 영화는 폭넓은 영역의 담론을 커버하고 있지만 그만큼 각각에 있어 발전이나 고찰 없이 얄팍하다는 것도 부정하기 힘들다. 다만, 관객에 따라 40억 남짓 제작비로 만든 저예산 호러 코미디라는 것과, 도전정신 충만한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것을 감안할 수 있다면 조금 더 너그러워도 이상할 것은 없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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