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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ction

회장님 아들인가 _ 크로스, 이명훈 감독

그냥_ 2024. 8. 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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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쓸데없이 친절한 시대착오적 코미디가 몸 둘 바 모를 정도로 황송하다.

 

 

 

 

 

 

 

 

이명훈 감독,

『크로스 :: Mission: Cross』입니다.

 

 

 

 

 

# 1.

 

야구에는 지명타자(Designated Hitter, DH)라는 제도가 있다. 특수포지션인 투수들을 부상 위험에서 보호할 겸, 낭비되는 타석도 없앨 겸 대신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말한다. 당연하게도 투수를 대신해 들어가는 DH는 수비부담이 없기에 보통 '타격은 상위타석에 들만큼 탁월하지만 수비에 어려움을 겪는 베테랑 타자'가 서게 된다. 팀 입장에선 에이징 커브가 온 스타 선수의 남은 타격 능력을 뽑아 먹을 수 있으니 이득이고, 선수 입장에선 타자로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으니 역시 이득이다. 무엇보다 한여름 뙤약볕에 더그아웃 그늘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신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모든 스포츠에는 전략적 예외라는 것 또한 있는 법이다. 가끔은 밖에선 알 수 없는 모종의 이유로 베테랑도, 상위타선도 아닌 선수가 지명타자로 지목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럴 때면 앞서의 맥락을 모를 리 없는 동료들과 팬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볼멘소리를 놓는다. 구장 잔디라도 깔았냐. 회장님 아들이라도 되냐.

 

비유하자면 영화 크로스는 거액의 운영비를 들인 프로 구단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배테랑 배우 황정민, 염정아, 전혜진을 3,4,5번으로 세우면서 9번 타석에 입봉 감독을 지명타자로 세운 꼴처럼 보인다. 그러니 비슷한 의아함이 들 수밖에. 혹시 회장님 아들이신가.

 

 

 

 

 

 

# 2.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연기를 못한다는 것이다. 잘못 읽은 게 아니다. 분명 연기를 못한다고 썼다. 영화 내내 황정민과 염정아와 전혜진은 연기를 못한다. 정확히는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끔찍한 연출은 도저히 실패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클린업 트리오의 실력과 명성조차 가볍게 제압한다. 세 주연 배우 모두 혀에 얹어지지 않는 작위적인 대사와 어정쩡한 자세를 온몸 비틀어가며 소화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캐릭터는 더욱 기괴해진다.

 

모든 상황과 설정은 묘사나 전개의 도움 없이 대사로만 처리된다. 거의 모든 대화가 "아니, OOO가 XXX랑 OOO에서 출발해 지금 XXX에 가고 있다고?"라는 식이다. 혼자 있는 장면에서 역시 오직 상황 전달을 위해 전혀 할 필요가 없는 혼잣말을 남발한다.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헷갈릴까 싶어 인칭대명사를 극단적으로 자제하기에 대화는 더욱 어색하다.

 

배치나 동선이라는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초반 중고차 시장을 급습한 씬을 제외한 거의 모든 장면에서 인물들은 정자세로 서서 마주 보고 대화한 다음 대화가 끝나면 기계적으로 퇴장하거나 미리 준비한 코미디를 발사한다. 장르가 코미디라 해서 굳이 바보 연기를 할 필요는 없건만 주조연부터 엑스트라까지 모두는 성실하게 철 지난 바보연기를 주문받는다. 이런 악조건을 연기로 살릴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어미새가 꼭꼭 씹어 입안에 넣어주는 먹이 받아먹는 아기새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타율이 없다시피 한 코미디를 매 장면마다 쑤셔 넣으면서도 이 장면이 왜 웃긴 건지 꼬박꼬박 설명까지 곁들이는 친절함은 몸 둘 바 모를 정도로 황송하다. 긴장해 주세요~ 하는 요청이 들리는 듯한 음악, 코미디입니다~ 하는 음악, 액션 발사합니다~ 하는 음악의 활용보다 놀라운 것은 음악의 시작과 끝이 이렇게까지 부자연스럽게 노출되는 영화를 보는 경험은 절대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 3.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자신의 유튜브에서 한국 영화의 위기와 극장 영화의 위기는 구분되어야 하며, 최근의 위기는 한국 영화의 위기로서 창의성의 위기라 지적한 바 있다. 2022년 석 달 남짓 촬영해 2년 묵어 공개된 영화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완벽한 예시다.

 

내내 익숙한 클리셰들이 성실하게 전개된다. 너무 성실해 애잔할 정도다. 주부는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차리며 등장해 잠을 깨워야 직성이 풀린다. 형사는 더럽고 거들먹거려야 직성이 풀린다. 추격자는 타깃을 포위하고 유유자적 휘파람을 불어야 직성이 풀린다. 노래를 부를 땐 얄팍한 캐릭터에 맞춰 개사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뒷담화를 하면 지근거리에 자고 있던 당사자가 여지없이 듣는다. 코미디와 스릴러를 억지로 접붙여두더라도 클라이맥스 액션을 앞두고 가슴 절절한 신파는 필수다.

 

누구보다 냉철해야 할 베테랑 비밀요원 황정민은 황당할 정도로 정에 휘둘리는 소녀 감성이다. 직전까지 사람 쏴 죽이던 현장 요원이 직장인 빙의해 과장님 살려주세요 애원하는 건 캐릭터 따윈 안중에도 없기 때문이다. 접선 장소에서 커튼을 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접선자가 들어오니까 그제야 커튼을 치는 건 관객에게 칭찬해 달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굳이 프로젝터를 둘둘 싸들고 다닐 필요가 있나 싶지만 어차피 브리핑은 죄다 말로 하고, 정보는 플래시백으로 처리된다.

 

전혜진과 함께하는 선수입장식 작전 연출과, 언제나 흰 옷을 참 좋아하는 흑막의 히스테리는 한여름 폭염만큼이나 지친다. 똥 싸고 방귀 뀌고 엉덩이 까는 화장실 개그 역시 죽지도 않고 출석하셨다. 쌍팔년도에나 먹힐 99% 숫자질과, 그나마 현대적으로 보이겠답시고 끌고 온 것이 비트코인 가상화폐라는 창의성은 참담하다. 그럼에도 백미는 20여 년 만에 다시 끌려 나온 김병옥이다. 차라리 백 선생을 데려다 다 죽여 벼렸으면 좋았으련만.

 

 

 

 

 

 

# 4.

 

3조 운운하는 범국가적 사건의 스케일에 비해 터무니없이 단출한 전개와, 그 단출함을 가리기 위한 반동으로서의 쓸데없는 과격함은 너무 조악해 지적하는 것이 민망하다. <트루 라이즈>(1994)와 같이 슬슬 잊혔을 법한 2~30년 전 할리우드 영화를 열화 카피하는 짓거리는 너무 한심해 지적하는 것이 서글프다. 두 주인공의 관계를 중심으로 세일즈 하는 탓에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2005)처럼 결혼 생활의 원리와 정서를 첩보 액션으로 치환하는 류의 영화를 기대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쯤 되면 기대한 사람이 잘못된 것이니 반성하도록 하자.

 

코미디, 액션, 스릴러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영화의 유이한 의의는 안 되는 영화를 살려보겠다고 혼신을 갈아 넣는 배우진의 열정과, 하루가 멀다 하고 최선을 다해 홍보를 뛰고 있는 염정아, 황정민 두 스타 배우의 책임감이 전부다. 하나 더. 혹시나 제목이 크로스인 것이 '이 영화는 아니다(X)' 라는 뜻의 일말의 양심고백이었다면 이것 또한 칭찬할 수 있겠다.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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