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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ction

분명한 퇴보 _ 발레리나, 이충현 감독

그냥_ 2023. 10.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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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넷플릭스 산 K-액션 누아르의 익숙한 그 냄새

 

 

 

 

 

 

 

 

이충현 감독,

『발레리나 :: Ballerina』입니다.

 

 

 

 

 

# 1.

 

1시간 30여분 내내 과장된 스타일과 피상적인 이미지가 범람합니다. 분홍색과 민트색 네온사인, 네 병의 술과 다른 색깔 빨대, 발레슈즈가 담긴 선물상자, 비밀스러운 sns 대화, 줄 달린 이어폰의 갬성, 잔뜩 기울이다 못해 심심하면 뒤집어지는 화면, 부담스러운 클로즈 업, 어지러운 공간 미술, 착란을 유발하는 눈뽕 테러와, 주요 세일즈포인트였을 GRAY의 사운드까지. 이 무지막지한 물량공세는 그 자체로 진입장벽처럼 느껴질 지경입니다. 누군가 정신이 없다며 중도에 낙오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죠.

 

그렇게 쏟아부은 이미지 모두는 '모순적인 형용'과 '대결적인 관계'로 구축됩니다. 네온사인의 화려함과 허무함의 대비. 고통스러운 표정과 아름다운 춤선의 대비.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된 절실한 관계. 본인이 좋아하지 않는 생일 케이크. 적극적인 발레리나와 숫기 없는 경호원. 살아라 말하던 친구의 거짓말 같은 자살. 현실적인 한국 지명과 비현실적인 도시 묘사 등. 일련의 이질감을 만드는 끔찍한 폭력과 윤리의 붕괴는 개개인의 사연을 넘어 하나의 세계로 확장됩니다. 모순된 세계 한가운데 위태롭게 발끝을 들고 추는, 총과 칼의 발레리나 옥주가 추는 슬픔의 춤. 뭐 고런 느낌적인 느낌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 2.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야기는 지나칠 정도로 앙상합니다. '친구가 죽어서 복수했다'가 전부입니다. 악녀, 미옥, 길복순 등에서 질리도록 보셨을 잔뜩 화가 난 여주인공이 사내자식들 다 때려죽인다는 내용의 액션 누아르, 그중에서도 가장 단순하고 납작한 형태의 전개입니다. 묘사는 변태적인 섹스 토이나 과시적인 마약 공장 등 최대한의 자극으로만 점철됩니다. 내내 쳐 죽일 놈들이 쳐 죽일만한 짓을 더하고 더하고 더하는 것이 작품의 유이한 동력이구요. 불쌍한 여자들이 불쌍해지고 더 불쌍해지고 더 불쌍해지는 게 나머지 하나의 동력입니다. 보다 보면 장면은 계속 전환됨에도 왠지 모르게 동어반복처럼 느껴지는 이유죠.

 

액션 누아르라는 장르와 성범죄라는 아이템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점은 황당합니다. 당장 성범죄가 아니라 다른 것이여도 전개에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마약이든 인신매매든 사채든 모함이든 심지어 재수가 없어서 그냥 잘못 얻어걸렸든. 어쨌든 최프로가 민희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만 같다면 아무 문제 없이 영화가 데굴데굴 굴러간다는 것은 분명 문제적이죠. 때문에 어느 순간 '왜 굳이 성범죄여야 했을까?'라는 질문이 덩그러니 남게 되는 데요. '그게 가장 자극적이니까'라는 것 말고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액션물로서의 완성도도 처참합니다. 합이나 연기를 따지기도 뭣 한 것이 컷 전환에 정신이 없어서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분간조차 버거울 정도니까요.

 

 

 

 

 

 

# 3.

 

캐릭터, 납작합니다.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의 디테일이 빈곤합니다. 옥주와 민희의 관계는 몇몇의 태만한 플래시백에 짬처리 되어 있고, 인서트의 퀄리티마저 조악해 전반적인 완성도를 떨어트립니다. 민희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여고생은 최소한의 정서적 공간마저 부여받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도, 관객에게 전달되는 감정도 사실상 단편적인 연민과 분노가 전부입니다. 주인공은 영화 내내 슬픔과 분노에 못 이겨 오토바이든 람보르기니든 타고 하염없이 이동하길 반복하고, 관객은 그걸 하염없이 지켜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전종서는 전작들에서도 본 듯한 겁나 삐딱한 카메라 치명적인 표정으로 노려보기를 90분 중 스티커 사진 찍는 장면을 제외한 88분 동안 시전합니다. 김무열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배우들은 그 전종서의 노려보기를 열심히 따라 합니다. 대부분이 감정에 완전히 충전된 듯한 과장된 표현을 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되려 공허합니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감독의 도덕적 과시를 수행하기 위한 인형처럼 보일 정도죠.

 

캐릭터들이 입체성을 잃고 납작해진 탓에 인물구도는 '가해'와 '피해'로 쩍 갈라지는 데요. 가해는 몽땅 남자캐릭터에 할당하고 피해는 몽땅 여자캐릭터에 할당하는 것도 편협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그냥 싸잡아 멸시하는 것 밖에 안되고, 이는 여성 캐릭터들을 남자의 장신구처럼 쓰고 버리는 류의 여타 졸작들과 그 방향만 반대일 뿐 다를 바가 없는 것이죠. 주인공과 교감하는 유일한 남자인 편의점 직원까지 굳이 외국인을 데려다 놓은 탓에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라는 비겁한 변명조차 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 이야기, 묘사, 장르, 캐릭터, 감정, 연기, 촬영, 편집 등등의 공백은 도취적인 스타일에 철저히 복무합니다. 때문에 작품은 전반적으로 크게 낭비적인 인상인 데요. 눈을 감고 떠오르는 아무거나 집어 영화에서 제거해도 작품이 굴러가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죠. 그중 화염방사기는 이 영화가 어떤 작품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아이템이라는 생각입니다. 과시적이고 과격하고 과장되면서 동시에 뜬금없고 허무하고 소모적이니까요.

 

 

 

 

 

 

# 4.

 

끔찍한 성범죄자를 잔혹하게 단죄하는 이야기라 영화의 포지션 역시 주인공 옥주와 등치 되는 듯 보입니다만, 오히려 영화는 그 자체로 최프로의 usb메모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극 중 usb는 '소유한 자의 목적을 위해 타인의 내밀한 상처를 박제해 일방적으로 폭력적으로 굴복시키는 수단'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텐데요. 최프로는 변태적 성욕의 충족을 목적으로 민희를 포함한 피해자들을 지배한다면, 감독은 자신의 스타일 과시를 목적으로 민희를 포함한 여자들의 상처를 영상으로 박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의 시작과 끝에 큼지막하게 채워 둔 제목은 usb에 적힌 발레리나라는 글씨를 스스로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데요. 이쯤 되면 대체 이 무슨 자해인가 싶죠.

 

... 오래전 <하트어택>을 보고 난 후 취업준비생의 포트폴리오 같다 말씀드린 기억이 있는데요. 단편이라 그런 것이 아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든다는 것이 가장 뼈 아픈 대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세작 <몸값>이 훌륭했던 것은 원 테이크로 뽑아낸 스타일이나, 성매매를 통렬하게 지적하는 윤리성이 아닌, 그것을 밀착감 있게 녹여내는 이야기였음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군요. 이충현 감독, <발레리나>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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