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Action

거지의 왕 _ 무장원 소걸아, 진가상 감독

그냥_ 2024. 5. 6. 06:30
728x90

 

 

# 0.

 

당신이 영명하여 국태민안하다면 거지가 있을 턱이 없잖소.

 

 

 

 

 

 

 

 

진가상 감독,

『무장원 소걸아 :: King of Beggars』입니다.

 

 

 

 

 

# 1.

 

한번 보면 멈출 수 없다. <쿵푸 허슬(2004)>의 이야기다. 무협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절정에 달한 개그감으로 풀어낸 주성치의 활극은, 압도적인 여래신장과 아방의 막대사탕으로 끝난다. 아니, 끝나는 것으로 기억된다.

 

사실 쿵푸 허슬의 앤딩을 차지한 사람은 신조협려도 절대고수도 아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낯익은 거지의 능청스러운 중고책 영업이다. 어린 싱을 만났을 때와 똑같은 얼굴의 늙지 않는 거지는, 사실 쿵푸 허슬이 개봉한 당시의 12년 전에도 같은 얼굴이었다. <취권(1978)>에서 성룡의 스승으로 열연한 원소전의 아들이자 무술감독이기도 한 배우 원상인은 <무장원 소걸아(1992)>에서도 주인공에게 비급을 전수한 신비로운 거지의 왕으로 등장한다. 지독한 쿵푸 허슬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오마주였던 것이다.

 

관객은 주성치의 이름값 때문에라도 무레이타우(無厘頭. 20세기말 홍콩 대중문화 속 슬랩스틱 유머의 일종)를 기대하기 마련이나, 뜻밖의 정통 무협물로서 나름 진지한 주성치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마제스틱(2001)>, <이터널 선샤인(2004)> 등을 통해 증명한 짐 캐리도 그러하듯, 출중한 코미디 배우들이 정극을 자주 하지 않는다 하여 못한다 생각해선 곤란하다. 뿐만 아니라 구파일방(九派一幇) 중 개방(丐幇)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것에도 의의는 있다. 와이어 매달아 대나무 숲을 날아오르는 선남선녀와 날 선 보검 휘두르는 화려한 합 대신, 봉으로 개를 때린다는 타구봉법과 꿈속에서 상대를 무찌르는 수몽나한의 능청은 유쾌하다. 희소성만으로도 일정한 가치는 보증된 작품인 셈이다.

 

 

 

 

 

 

# 2.

 

무협이라 하면 보통 방대한 세계관과 화려한 액션을 떠올리기 마련이나, 이는 갈등을 해갈하는 스타일에 불과하다. 본질은 착실하게 누적되는 세속적 갈등에 있고, 그 끝은 언제나 안전하고 온화한 휴머니즘으로 귀결된다. 혼란스러운 청나라 말기를 살아가는 민초들의 현실, 혼란 속에서도 공동체가 지켜나가야 할 전통적 가치, 그 속에서 분투하는 치열한 개인의 로맨스와 페이소스는 무협의 매력이 시대를 불문하게 하는 이유다.

 

<무장원 소걸아> 역시 권선징악을 교훈으로 하는 일종의 전래동화라 해도 무리는 없다. 자만과 오만, 거룩한 부성애, 패배자의 좌절, 사랑과 신뢰, 역할과 책임, 전통과 계승, 순리와 부정, 배움의 가치, 정치의 의미, 민심과 천심 등이다. 돈이 썩어 넘치던 부자가 개밥을 훔쳐먹는 거지로, 다시 개방의 방주이자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넘나드는 서사와 이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끝내 거지로 돌아가는 결말은 인생무상 안빈낙도의 도가적 가치와도 부드럽게 연결된다. 조무기의 업(業)과 이찬의 보(報)가 순환되는 서사는 불교적 세계관도 끌고 들어오고, 이 모든 정치철학적 가치들이 화학적으로 융화되어 강호라는 거대한 세계를 이룬다.

 

아찬은 내내 게으른 사람이다. 황제가 벌을 내리기 전이나 후나 스스로 돈을 벌어 본 적은 없다. 글을 배우겠다 다짐하지만 배운다 하여 거지된 처지를 벗어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요원하다. 거지라고 해서 특별히 게으르거나 무식하지 않고, 부자라고 해서 특별히 부지런하거나 유식하지도 않다. 스스로의 잘못으로 가난한 개인의 존재와 별개로, 다수 민중의 가난은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에 근거함을 영화는 지적한다. 일련의 주제의식은 정치의 본령과 그 지향으로서의 '민(民)'을 반추하게 하고, 이는 개방이라는 집단의 결속과 정체성으로 연결되어 다시 무협의 세계관적 매력으로 확장된다.

 

 

 

 

 

 

# 3.

 

물론 그럼에도 주성치의 냄새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주성치의 해학은 개방 방주를 주인공으로 한 무협물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에 분명하다. 특히 방주로 추대되는 1대3 결투씬은 오롯이 배우의 힘이라 평해도 부족함이 없다. 중반부를 든든하게 지탱하는 오맹달과의 합도 큰 매력이다. 부성애 파트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을 개밥 먹는 장면은 비참하면서도 뭉클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액션씬에 나름 공을 들였다는 것도 칭찬할만하다. 여타 주성치식 B급 영화들에서는 볼 수 없는 넉넉한 물량의 엑스트라도 눈을 시원하게 한다. 다소 조악하나 그래서 유쾌하기도 한 폭발 표현들도 흥미롭다.

 

사실 신분 상승과 추락, 내적 발전과 그 계기까지 정통 무협의 클리셰가 전부인 영화라 해도 할 말은 없다. 다만 그것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지금 시대의 나에게 영화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30년 전의 영화를 보는 내가 그 시대를 스스로 찾아간 손님이라는 것과, 잔잔하게 흐르는 코미디의 완성도가 상투적인 드라마의 단점을 상당 부분 희석시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