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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역설로 빚은 잔혹동화 _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안국진 감독

그냥_ 2018. 12. 1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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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빈방이 있습니다. 각진 빈방을 노려보던 감독은 창문과 문이 거꾸로 매달리게끔 방을 뒤집습니다. 침대를 거꾸로 천장에 붙입니다. 협탁과 수납장 역시 천장에 뒤집어 붙입니다. 책상도 의자도 붙입니다. 이불과 배게, 카펫, 거울, 그 외 사소한 장식 모두 빠짐없이 거꾸로 매답니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앨리스를 방에 들여보냅니다. 눈 앞에 모든 것이 뒤집힌 세상이 보입니다. 어지럽네요. 다행히 감독의 생각을 이해한 성실한 주인공은 스스로의 몸도 천장에 거꾸로 매답니다. 그랬더니 어머나. 모든 것이 뒤집힌 세상이 잔인하리만치 똑바르게 보이지 뭐예.

 

 

 

 

 

 

 

 

'안국진' 감독,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Alice In Earnestland』 입니다.

 

 

 

 

 

# 1.

 

모든 것을 뒤집어 세상을 적나라하게 비추려 드는 영화입니다. 집착적으로 모든 것들을 역전시킵니다. 특히 이정현은 한국영화 통틀어 손에 꼽힐 만큼 사랑스러운 연쇄살인마를 연기합니다.

 

그녀의 모든 행동은 나름의 선의와 성실과 최선에서 비롯되지만 그 결과는 항상 더 처참한 비극으로 나락으로 귀결됩니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는 죽음을 권하고, 심리치료사는 마음이 병든 사람을 이용하고, 평생 누군가를 지키던 퇴역 군인은 사람을 때립니다. 스스로 매단 재개발 현수막은 도화선이 되어 폭사하게 만들고, 다리미와 세탁기로 사람을 고문하던 세탁소 주인은 옷 대신 세탁기에 들어가게 되죠. 범인을 잡아야 할 경찰은 범인에게 죽임을 당하고, 사람을 다섯이나 죽인 살인자는 행복한 신혼여행을 떠납니다.

 

끔찍한 살인들은 하나같이 만화적으로 묘사됩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을 죽였던 기술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살기 위해 악착같이 익혔던 것들이죠. '우연히 시작된 살인'이 '어쩔 수 없는 살인'과 '계획적인 살인'을 지나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살인'으로 격하게 치닫는 동안에도 수남의 내면은 여전히 남편만을 생각하는 사랑스러운 아내입니다. 불쌍한 수남을 동정하는 후배 경찰에게 노련한 박형사는 이렇게 말하죠. "원래 불쌍한 사람들이 죄를 저지르는 거야."

 

 

 

 

 

 

# 2.

 

빚더미에 오른 대가로 겨우 집을 사지만, 남편은 자살을 기도하고 자신은 쪽방에 살게 됩니다. 중반 이후 모든 비극은 올라버린 집값에서 비롯되지만 그 구렁텅이를 벗어나는 유일한 창구 역시 재개발로 더욱 올라버리는 집값으로 귀결됩니다. 환상의 세계를 방황하다 현실로 돌아오는 이야기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오마주한 영화는, 비극적인 현실을 방황하다 환상 속 바다로 떠나가는 이야기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집으로 돌아오지만 성실한 나라의 수남은 끝내 바다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현실적이면서 동화적인 표현됩니다. 전환은 상당히 빠른 템포로 관객을 몰아붙입니다. 앵글은 가급적 타이트하게 당기면서 동시에 대칭적이고 중앙 지향적인 구도로 담아 몰입을 최대한 높입니다. 묶어놓은 상담사에게 이야기하는 액자식 구성은 영화 중반 순환적으로 회수되며 관객이 영화의 시간 안에 다시 한번 말려 들어가게 합니다. 모든 사건들은 예측대로 흘러가는 게 없지만 인과의 법칙을 벗어나지도 않습니다. 어째 하나부터 열 끝까지 정상적인 것이 없고 일반적인 것이 없네요. 감독은 자신이 뒤흔든 성실한 나라로 관객을 불러 당신은 이 곳을 벗어날 수 있겠냐고 묻습니다. 당신은 성실한 선의가 불행으로 치닿는 이 이상한 나라를 살고 있지 않냐고 묻습니다.

 

 

 

 

 

 

# 3.

 

물론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사실 매력적인 주제는 아닙니다. 집값이 장땡인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거, 산업 구조 전체가 뒤바뀔 만큼 시대 변화가 빠르다는 거, 가난한 서민들 특히나 병간호하는 사람들 먹고살기 힘들다는 거, 재개발 앞두고 주민들 갈등 생긴다는 거 따위가 심오하거나 새로운 사실은 아니니까요. 

 

표현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직설적입니다. 나쁘게 말하자면 자극적이고 말초적이라 불편합니다. 잘린 손가락, 눈에 박힌 따조 같은 건 사람에 따라서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받는 데 방해될 정도로 잔인할 수 있으니까요. 이 영화의 묘미가 톡톡 튀는 사건들을 인과의 고리로 엮어나가는 치밀한 구조에 있다는 건 잘 압니다만, 단점은 단점입니다.

 

 

 

 

 

 

# 4.

 

그치만 괜찮습니다. 주연이 이정현이거든요. 열심히 시나리오 쓰, 3억밖에 안 되는 제작비에도 최선의 연출을 선보인 감독의 노고에 미안한 말이지만, 이 영화는 누가 뭐래도 이정현 영화입니다. 장편 영화 한 편을 그 작은 체구에도 폭발적으로 끌고 나가는 힘이 스크린을 찢고 나옵니다. 여러모로 미친 거 같아요. 누나, 사랑해요. 딱 3 씬만 말씀드리죠.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도 이 세 장면만큼은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아마 그녀의 에너지에 매료되 뭐에 홀린 사람마냥 영화 전편을 보시게 될걸요?

 

⑴ 재개발 서명을 받기 위해 신문배달을 쉬겠다고 말하는 씬

⑵ 남편의 발 경련을 보고 의사와의 대화에서 현실을 부정하는 씬

⑶ 재개발이 확정되고 바람을 맞으며 울먹이다가 매서운 눈빛으로 웃는 씬

 

 

 

 

 

 

# 5.

 

사실 영화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던 개인적인 취향에 닿아 있는 측면도 없잖아 있긴 합니다. 몇 번이나 노-개런티로 영화를 찍었던 이정현의 소속사에서 더 이상은 무리라는 판단에 이 영화 제안은 거절했다고 하죠. 그래서 엎어질 뻔했던 이 영화를 박찬욱 감독이 시나리오를 보고 직접 이정현에게 강력 추천하는 바람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싫어하겠나요. 영화에서 진하게 묻어나는 박찬욱의 향기는 제겐 개다래나무급의 중독성이 있는 걸요.

 

영화의 최대의 단점은 감독의 첫 장편이라는 거고, 두 번째 단점은 15년 8월에 개봉한 이후로 2018년이 다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차기작이 안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제 인생을 다시 행복하게 되돌리는 데 너무 간단한 방법이 있어요. 새 영화를 내는 것. '안국진' 감독,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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