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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Skip _ 투 마더스, 안느 퐁텐 감독

그냥_ 2021. 12.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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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두 절친 아줌마가 서로의 아들을 바꿔 연애하는 영화, 즉 불륜물입니다. 관객에 따라선 작품을 보기도 전부터 소재의 파격만으로 혀를 찰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박훈정' 감독의 『V.I.P.』 리뷰에서도 말씀드렸듯 영화의 소재가 그 자체로 문제시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궁금해하고 즐겨야 할 건 소재의 파격성이 아니라 소재로부터 감독이 무엇을 발견하고 있는가여야 하는 거겠죠.

 

 

 

 

 

 

 

 

'안느 퐁텐' 감독,
『투 마더스 :: ADORE』입니다.

 

 

 

 

 

# 1.

 

전반부는 이들의 관계를 최대한 긍정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위 판을 까는 작업이죠.

 

아들들은 키 크고 잘생긴 몸짱 출신 서핑 중독자들입니다. 엄마들은 해녀보다 더 자주 물질을 하는 수영의, 보다 정확히는 '수영복'의 화신들이죠. 걸리적거리는 인물이 없도록 두 가족은 무인도 같은 바닷가에 동떨어져 살고 있고 거추장스러운 남편 역시 한 명은 하늘나라로 한 명은 시드니로 날려버렸습니다. 이성적 판단을 방해하기 위한 환상적인 와인이 곁들여진 술판은 매일같이 벌어지고 네 명의 주인공 모두 대자연과 하나 된 헐벗은 모습으로 시종일관 등장하죠. 특히 두 엄마 역의 배우로 "그래, 나 같아도 사랑에 빠지겠다." 싶은 사랑스러운 '나오미 왓츠'와 우아하고 고혹적인 '로빈 라이트'를 섭외한다면 준비는 완벽합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소재의 파격성으로 승부를 보는 영화에서 저게 말이 되냐는 둥의 배경 설정의 합리성을 진단하는 건 무의미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보며 빙하기의 작동원리와 열차의 운행 방식을 과학적으로 따지고 드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죠. 몰입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법한 초대형 설정 구멍이라도 발견되지 않는 한. 감독이 제시하는 창의적인 설정 그 자체에 딴지를 거는 건 창작자에게 너무 가혹할뿐더러 결과적으로 관객에게도 좋을 게 없는 일입니다.

 

 

 

 

 

 

# 2.

 

어쨌든 좋습니다. 두 절친 '로즈'와 '릴'은 각자 서로의 아들들 '이안'과 '톰'을 상대로 스스로도 말하는 '선'을 넘습니다. 파격적인 상황을 다루는 감독의 묘사가,

 

1. 특수한 관계 속 인물들의 다각적 정서의 충돌과 감수성의 전개에 대한 탐구로 가느냐

2. 윤리적 문제를 해석하고 사회적 역할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에 대한 고찰로 가느냐

 

에 따라 작품의 장르적 성격과 주제의식이 결정되겠군요.

 

 

 

 

 

 

# 3.

 

전자로 방향을 잡는다면 네 인물이 어떤 갈증과 결핍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필요할 겁니다. 파트너에게서 어떤 계기로 어떤 면모를 발견한 것인가에 대한 섬세한 묘사 역시 필요하겠죠. 금기를 넘어서는 순간의 두려움과, 일탈로 인한 자기 파괴의 쾌감과, 차마 숨길 수 없는 사랑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석되는 윤리의식과, 그와 반비례해 강화되는 합리화와, 밤이면 깊은 곳에서 머리를 내미는 가책 따위에 대해 충분한 시간과 상황을 동원해 공들여 묘사해야 할 겁니다. 일련의 정서들이 표현되는 과정에서 관객과 깊은 밀착감으로 호흡하는 도발적인 멜로드라마가 완성되겠죠.

 

주인공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도덕적 우위와 열위. 행복감과, 불쾌감과, 소유욕과, 박탈감의 중첩. 모자관계와 연인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의 이율배반적 정서는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맹목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이안', 사랑 뒤로 죄의식이 겹쳐져 방어적으로 상대를 대하는 '로즈'. 엄마와 절친에 대한 원망과 가족의 해체로 인한 분노가 뒤섞인 '톰'. 남편을 잃고 홀로 남겨진 외로움과 부담감으로부터 해방되고픈 '릴'. 각기 다른 정서를 가진 네 인물에 대한 섬세한 디렉팅이 가미된 풍부한 묘사를 즐기는 영화라. 훌륭합니다.

 

 

 

 

 

 

# 4.

 

후자로 방향을 잡는다면 로맨틱한 묘사를 건조하게 덜어내고 그 공백을 인물들의 내-외적 도덕 갈등으로 채워내야 할 겁니다. 이들의 상황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직관적인 '금기 위반'으로 느껴집니다만 그 도덕률의 실체는 되려 희미하기 때문이죠. 글의 서두에서 자신 있게 "불륜물입니다!"라고는 했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영화 속 연애에 불륜의 이유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로즈'와 '릴'이 아무리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가족인 것은 아니니까요. 생물학적으로 아무런 접점이 없는 생판 남이 연애를 한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죠. 만약 두 엄마가 절친이 아니라 사제지간이었고 제자와 스승의 아들 간의 사랑이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부감을 거의 느끼지 않았을 겁니다. 혹은 두 사람이 친구 사이라 하더라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면 또 거부감은 덜했겠죠.

 

그렇다면 이 위화감은 온전히 '나이'때문인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평범한 커플들을 보며 느끼는 위화감과 이 영화 속 관계의 위화감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을 겁니다. 그럼 소위 '족보'가 꼬이기 때문인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겹사돈과 같은 상황 역시 종종 일어나곤 하죠.

 

아니면 '모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낳고 기르는 것뿐 아니라, 마음을 다해 아끼고 함께 키우면 암묵적으로 '모자'의 관계와 같다고 인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어느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더라도, 윤리 기준과 관련된 흥미로운 지적 유희라 할법합니다.

 

 

 

 

 

 

# 5.

 

둘 중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흥미로운 설정입니다만 감독은 안타깝게도 기대를 한참 벗어난 실망스러운 선택을 하고 맙니다. 그건 바로!

 

2년 후...

 

네. 감독은 극단적인 상황이 만든 독특한 멘탈리티와 윤리의식에 대한 묘사의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립니다. 연애가 시작된 시점에서 2년 간의 내-외적 갈등의 과정을 통째로 SKIP 합니다. 2년의 시간이 한 줄 자막과 함께 허망하게 지난 후 각 인물들은 완벽히 서로의 연애를 인정하는 모습으로 재등장합니다. 아직 관객은 그 단계의 심리상태에 들어가지 못했는데요.

 

전개를 이딴 식으로 하고 나면 영화엔 너무나도 아름다운 중년의 여성과 몸짱 꽃돌이들의 연애담 밖에 남는 게 없습니다. 관객은 이들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나 감정적 동화의 기회를 모조리 박탈당한 채 그저 이들의 치정을 구경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죠. 즉, 2년 후라는 자막이 나온 시점에서부터 이 영화는 연하남과의 일탈적인 불륜을 즐기는 관음적 포르노그라피로 전락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 6.

 

실제 후반부가 아침드라마식 막장 로맨스물의 파격성만으로 채워진 건 그런 이유에서라 할 수 있습니다. 아들 '톰'이 바람이 난다던지, 2년간 신나게 물고 빨던 '로즈'가 대뜸 이별을 고한다던지, 화가 잔뜩 난 '이안'이 다른 여자와 잠을 자더니 덜컥 애가 생긴다던지, 이미 결혼 해 아이까지 있는 '톰'이 '릴'과 정기적으로 잠자리를 한다던지 하는 막장전개는 <2년 후>라는 자막이 나옴과 동시에 결정된 필연적 수순인 셈이죠.

 

중간에 찝찝했던 감독은 '로즈'를 통해 다른 시간을 살 수밖에 없는 연인의 심리묘사 같은 걸 어설프게 하려 합니다만, 그건 그저 나이 차이가 20살 이상 나는 연상 연하 커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고민일 뿐, 영화의 소재가 가진 잠재력을 온전히 활용한 방식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아들뻘 꽃돌이들과 사랑에 빠진 중년 여성의 환상이라는 감독의 본색이 공개됨과 동시에 모든 인물들은 그 환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영화의 포커스는 '릴'과 '로즈'. 특히, '로즈'에 맞춰둔 채 나머지 모든 인물들은 그녀의 정서적 도구가 됩니다. '톰'은 '로즈'와 '이안'이 헤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바람을 피웁니다. '릴'은 '로즈'의 내적 갈등을 강조하기 위해 울어야 하죠. '이안'은 '로즈'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기 위해 땡깡을 부리다가 등신마냥 스스로 다리를 부러트립니다. 가엾은 '한나'와 '메리' 모두 이 할머니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 1', '장애물 2'로서 기능적으로 동원되었다가, 처참한 불륜의 현장 한가운데서 가혹하게 소비됩니다.

 

영화 내내 반복되는 거대한 바다와 서핑, 부표 따위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몸을 맡기는 이미지의 차용입니다. 여기에 "유일하게 정상이었기에 잘못된 거다"라 말하는 '로즈'에 대한 감독의 비겁한 합리화까지 더해지면, 꽃돌이와의 일탈을 정당화하는 훌륭한 아침드라마식 망상 포르노가 완성됩니다. 아쉽네요. 흥미로운 상황과 환상적인 공간과 매력적인 배우들을 잘 모아놓고 진정 이런 식으로 밖에 풀 수가 없었던 걸까요. '안느 퐁텐' 감독, 『투 마더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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