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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성인용 인사이드 아웃 _ 펀치 드렁크 러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그냥_ 2019. 1. 1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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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인사이드 아웃> 이란 영화를 아시나요?

 

2015년 혜성같이 나타나 다 죽어가던 픽사를 구해낸 2010년대 애니메이션사를 돌아볼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될 명작이죠. 주제의식과 아이디어, 이를 구축하는 이야기의 풍부함과 치밀함, 표현의 창의력과 유려함에 있어서 호평을 받기에 충분한 작품입니다. 만 뭐 이건 평론가들이 하는 얘기구요. 어느새 예비군도 끝난 찌들대로 찌들어 버린 아저씨에겐 장르 자체에서부터 심심하지 않을 도리는 없는 영화였죠. 아이디어는 신선하고 재밌는데... 이런 인사이드 아웃 비슷한 느낌의 매운 맛 영화는 어디 없을까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펀치 드렁크 러브 :: PUNCH-DRUNK LOVE』 입니다.

 

 

 

 

 

# 1.

 

그 영화 여기 있습니다.

 

뒤집어 까놓은 양말 같은 영화입니다. 주인공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정서를 끄집어내 시공간으로 역전시켜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작품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이 '특별한 상황에 놓인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에 대한 탐구'라 한다면 이 영화는 '평범한 일상 속 특별한 사람들의 내면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겠네요. 일반의 시각에선 이해할 수 없어 그저 '이상한 사람', 혹은 '통제가 필요하고 수정이 필요한 사람'으로 치부되던 편집증 환자들에 대한 PTA 의 진득한 탐구를 함께 들여다봅니다.

 

# 2.

 

서사를 추적하는 건 썩 무의미합니다. 정합성이나 핍진성을 진단하는 것 역시 부질 없습니다. 파편적으로 푸석푸석 바스러지는 이야기에 몰입하는 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너무도 당연합니다. 영화는 거대한 묘사 덩어리라 봐도 무방합니다. 감독은 '이상한 찐따가 음란전화에 잘못 휘말리고 동시에 연애한다.'라는 단순한 이야기 위에서 인물의 내면을 파고, 파고, 또 파고 들어갑니다. 상황마다 그의 입장과 그의 시각에서 그의 내면을 수용해보자 제안합니다.

 

 

 

 

 

 

# 3.

 

괴기하다고 밖엔 표현할 수 없는 오프닝입니다. 두꺼운 파란색 가로선이 그어진 적막한 창고, 한쪽 귀퉁이 덩그러니 놓인 책상, 마일리지와 비용에 대한 강박적 집착 등의 연결고리를 찾기 힘든 이질적 요소들이 파편적으로 등장합니다. 아담 샌들러가 연기한 주인공 '베리'는 새파란의 양복을 입고 있죠. 파란색은 인물에 짙게 배인 우울감을, 양복은 인위적으로 연출된 불편한 심리 상태를 은유합니다. 해가 떠오르는 새벽녘 조용히 잘 달려오던 차량이 난데없이 굉음을 내며 뒤집힙니다. 그의 머릿속에선 늘 파괴적이며 충동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누구로부터 와서 누구에게로 보내지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오르간이 베리 앞에 놓입니다.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내면 속으로 '이물질'을 받아들입니다. 웬 처음 보는 여자가 차량을 몰고 자신에게 막 다가옵니다. 차에서 내린 여자는 갑자기 베리의 손에 차열쇠를 맡기곤 휙 돌아가 버리죠. 이런 불안정한 상황이 일상적이라는 걸 은유하는 듯 태양은 담담히 떠오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경품 행사, 갑작스레 뒤집어진 자동차, 정체 모를 오르간과 차를 맡기고 떠나버린 여자. 도무지 인과를 유추할 수 없는 통제되지 않는 자극을 감당하지 못하는 베리는 빛이 스며들지 않는 자신의 내면 속 그림자로 황급히 몸을 숨긴 채 숨을 고릅니다. 비극적인 건 이게 그나마 '평온한' 상태의 베리라는 점입니다.

 

 

 

 

 

 

# 4.

 

잡다한 물건을 파는 사업체,

이곳은 일상적인 베리의 내면입니다.

 

쏟아져 내릴 듯 쌓여있는 잡동사니들은 번잡하게 누적된 너무도 많은 잡념을 의미합니다. 물건을 사가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들은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잡념들을 정리해 몰아내는 과정의 은유라 할 수 있겠죠. 이를테면 루이스 구즈만의 '랜스'는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인 셈입니다.

 

하지만 물건 하나 빼내기가 왜 이리 힘든 걸까요. 잡동사니를 내보내려고만 하면 전화가 걸려와 방해합니다. 첫 번째 전화는 가족 모임이라는 건조한 '사건'입니다. 두 번째 전화는 그의 표현에 대한 '오해'죠. 세 번째 전화는 그의 일상과 삶에 대한 '간섭'입니다. 사건과 오해와 간섭 모두 편집증 환자에게 너무도 귀찮으면서 동시에 너무도 버거운 짐입니다.

 

나름 그를 위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 사실 당사자에겐 고통이고 불행일 수도 있습니다. 복잡한 머리를 들쑤시는 수많은 것들로 인해 그는 늘 붕괴 직전의 상태에 살고 있습니다. 가족모임에서 갑자기 창문을 깨부수는 건 내면의 내구성이 한계에 닿아 있다는 의미입니다. 의사들도 그에겐 도움이 되기는커녕 비밀을 지켜주지도 않습니다. 베리는 수많은 사람과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비밀 하나 지켜줄 정도로 자신을 존중해주는 사람이 없는, 외로운 인물입니다.

 

 

 

 

 

 

# 5.

 

마켓은 베리가 춤을 출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정서적 안식처죠. 이해할 수 없는 강박적 집착은 사실 그 대상에 대한 집착보다 불안한 내면으로부터 도피해 잠시라도 쉬고 싶어 발버둥 치는 거라는 걸 보여주는 듯합니다.

 

베리에게 주변 사람들의 자극들은 부담이지만 그렇다고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베리는 영화 내내 그의 비밀을 들어줄 누군가를 간절히 찾아 헤맵니다. 음란전화인 줄도 모르고 받은 전화는 그의 절실함을 보여줍니다. 상대는 돈을 뜯어낼 생각뿐이지만 베리는 양복조차 다 갈아입지도 못한 채 불안하게 배회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애원합니다.

 

음란전화를 빌미로 베리를 협박하는 악당들은 일말의 선의조차 배제된 강압적 사건이 주는 극단적 스트레스를 형상화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건에 휘말리며 협박범의 전화가 걸려오면서부터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베리의 창고 속 물건들, 즉 베리의 머릿속 관념들은 질서를 잃고 무너지고 부서져 내립니다.

 

갑자기 들이닥치는 여동생, 정체 모를 처음 보는 여자, 음란전화의 끈질긴 추궁, 비밀의 유출, 쌓아놓은 푸딩, 쏟아져 내리는 짐짝은 베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주를 아득히 넘어서는 자극입니다. 베리의 한 박자 늦은 대답들은 강박증 환자들이 뜬금없이 던진다고 생각되는 말들이 사실은 최선을 다해 복잡한 머릿속 사건의 충돌들을 정리하느라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이 중반부 스트레스를 전달하는 장면의 시퀀스를 단순히 좌충우돌 펼쳐지는 평범한 드라마 영화 속 갈등으로 보지 않고 인물의 내면이 무너져 내리는 것으로 상상하며 보시면 또 다른 맛이 있으실 겁니다.

 

 

 

 

 

 

# 6.

 

하지만 아직은 희망이 있습니다.

스스로 베리를 찾아와 그를 수정하려 하지 않고 본래 모습을 아껴줄 여자, 레나의 존재죠.

 

그녀와의 데이트는 그가 처음으로 온전히 그로서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영화 내내 번잡한 주변의 것들과 함께 잡던 화면은 데이트를 시작으로 처음 그와 그녀의 얼굴만을 가까이 잡습니다. 강박적이고 스트레스적인 괴기한 사운드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평온한 음악이 흐릅니다.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여자 레나의 존재 역시 인물 그 자체가 아닌 베리의 내면 속 관념으로 본다면, 그녀는 베리에 대한 '인정'과 '수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불안정한 베리에게 쉬운 일은 없습니다. 그녀는 길을 잃기 쉬운 미로같이 어지러운 곳에 삽니다. 스스로의 길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잠시라도 집중력을 놓치면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을 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불안을 견뎌야 합니다.

 

협박범이 나타납니다. 강렬한 자극에 대한 극단적인 공포감과 스트레스를 파괴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이죠. 숨이 멎을 듯 달려긴 곳은 어둡고 비좁은 복도입니다. 죽어라 달려봐야 막다른 골목과 굳게 닫힌 문이네요. 겨우겨우 큰길을 찾아 내달려 보지만 차량을 타고 나타난 협박범은 비웃으며 말합니다. "어디로 도망가! 너 사는 데 다 알아!" 강박적 불안증 환자가 내면에 깃든 스트레스로부터 도망갈 곳은 없습니다. 그들은 늘 두려워하고 늘 최선을 다해 달아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습니다. 절망적이죠.

 

 

 

 

 

 

# 7.

 

결국 견디지 못한 베리는 하와이로 떠납니다. 총천연색 꽃잎이 휘날리는 핑크빛 축제가 열리는 곳. 아직은 서툴러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가는데 버벅거리지만 그 마저도 사랑스럽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수용해 주는 사랑 앞에서 처음으로 베리는 자신에게 간섭하는 동생에게 욕을 하며 저항합니다. 레나는 처음으로 베리의 비밀을 지켜주는 여자입니다. 처음으로 그를 위해 거짓말을 해주는 여자입니다. 처음으로 베레가 거짓말로 둘러대지 않는 여자죠. 감독은 수용하는 '사랑'이 아니라 '수용'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관객에게조차 고압적으로 느껴졌을 협박범이란 스트레스는 사실 정면으로 마주할 수만 있다면 별개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가 잔인한 일이라도 저지를 것만 같던 협박범들도 사랑에 힘입은 베리의 펀치 한방에 나가떨어지죠. 보스 역시 한낱 가구상일 뿐입니다. 불안에 떨며 애써 외면하던 위협의 실체를 만났더니 그 스트레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네요. 레나의 헌신적인 수용을 통해 성장을 이루어낸 베리는 결국 진정한 자아를 찾고, 평온해진 창고에 다시 찾아온 그녀에게 오르간 연주를 들려주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 8.

 

어떠신가요. 그럴싸한가요? <아이엠 샘>이 지적장애인에 대한 타자로서의 사회적 접근과 인식을 환기하는 영화라면, 이 영화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간접체험을 통한 내제적 접근을 시도하는 영화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 아담 샌들러네? 라며 무턱대고 로맨스로 보면 지루할 수밖에요. 사이사이 나오는 눈을 어지럽히는 형형색색의 화면들은 마치 정신과에서 심리치료에 활용되는 이미지들처럼 보입니다. 감독이 혹시나 싶어 강렬한 힌트를 주는 셈이죠.

 

이런 시각에서 영화를 되뇌며 제목을 다시 보면 그 기분이 묘합니다. 펀치 드렁크. 장기적으로 머리에 강한 자극을 반복적으로 받아 뇌 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의미하는 복싱 용어죠. 보기에 따라 뇌가 손상된 사람의 사랑으로도, 뇌가 손상될 만큼의 강렬한 사랑으로도 해석될 수 있겠네요 전자로 보면 정신분석학 적인 영화로, 후자로 보면 대단히 강렬한 로맨스 영화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이 글은 전자의 시선에서 쓰인 글이라 할 수 있겠네요. 감독이 의도한 정답이 이게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으로 보든 훌륭하고 또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다만 저와 같은 관점으로 영화를 보신다 하더라도 이질적이고 불편한 표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인내는 필요하겠네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펀치 드렁크 러브>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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