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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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개봉 6

이런 얼굴이었을까 _ 파라노이드 파크, 구스 반 산트 감독

# 0. 그때 내 뒷모습은 이런 얼굴이었을까 구스 반 산트 감독, 『파라노이드 파크 :: Paranoid Park』입니다. # 1. 제법 난해하고 제법 독특합니다. 누가 구스 반 산트 아니랄까 봐 지독할 정도로 긴 롱 테이크가 영화의 호흡을 붙잡고 깊은 어딘가를 향해 침전시킵니다. 느리고 몽환적인 사운드와 대비되는 과격한 파열음은 침전된 관객의 마음에 의도된 파형을 반복적으로 유도합니다. 주인공 알렉스의 목소리를 빌린 독백 전개와, 혼자 기대앉는 낡은 의자, 일기나 편지 따위의 코드는 내적 고독감을 점층적으로 쌓아나갑니다. 1.33:1의 화면비와 레트로 캠코드의 질감까지 곁들여지면 작품은 현장적이고 회고적이며 감각적이고 동시에 사유적인 무언가로 두텁게 승화됩니다. 인물을 집어삼키고 고립시키는 프레임은 그..

Film/Drama 2023.08.08

십자말풀이 _ 뜨거운 녀석들, 에드가 라이트 감독

# 0. Greater Good! 에드가 라이트 감독, 『뜨거운 녀석들 :: Hot Fuzz』입니다. # 1. 코르네토 트릴로지 두 번째 작품입니다. 작년 초 를 다시 보고 난 후 1년 여만에 에드가 라이트군요. 감독의 절친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랑 함께한 트릴로지 중 한 작품이긴 합니다만, 사실 전후의 두 작품과는 결이 제법 다른 영화라 봐야 할 겁니다. 예외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목적지향적인 작품이기 때문이죠. # 2. 딱 잘라 말하자면 [애국자법 디스 영화]입니다. 한창 영미권이 테러에 불안해하던 시기, 공동체의 안전을 명분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는 법인데요. 원래대로라면 외국 법령을 설명드리기 위해 있는 지식 없는 지식 짜내야 했을 테지만, 다행히도 우리에..

Film/Action 2022.11.10

나초와 발가락 _ 데스 프루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 0. 긁어모으는 동안의 흥분. 집어던지는 순간의 쾌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데스 프루프 :: Death Proof』입니다. # 1. 주문에 맞춰 정확히 배합된 칵테일을 내놓는 바텐더 '워렌'처럼 감독 '타란티노'는 관객의 기대에 정확히 부합하는 환상적 배합의 보상을 선사합니다. 존~~~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역시 타란티노 죠. 뭐랄까요. 참 동물적인 영화입니다. 관객들, 특히 남성 관객들로부터 스스로 동물이라는 것을 폭력적으로 고백케 만들려는 듯한 작품이랄까요. 영화를 보다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허울에 갇혀 잊고 있었던, 그저 DNA에 새겨진 유전자 지도에 따라 배열된 단백질 덩어리 속 호르몬의 화학적 기작이 만든 본능 덩어리임을 새삼 상기하게 됩니다. 제 아무리 거창한 이유로 치..

Film/Action 2021.11.02

동네 영화 _ 카모메 식당,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

# 0. 핀란드의 갈매기는 뚱뚱하다. 비대한 몸으로 항구를 뒤뚱뒤뚱 걷는 꼴을 보면 초등학교 때 키우던 나나오가 생각난다. 나나오는 10.2킬로나 되는 거대 얼룩 고양이였다. 독불장군에다 툭하면 다른 고양이에게 폭력을 휘둘러 모두가 싫어했다. 하지만 왠지 나한테만은 만져도 화내지 않고 기분 좋은 듯 가르릉 거리기도 했다. 그게 너무 귀여워서 엄마 몰래 먹을 걸 잔뜩 주었더니, 점점 살이 쪄서 결국 죽었다. 나나오가 죽은 다음 해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었다. 엄마를 정말 사랑했지만 어쩐지 나나오 때보다 덜 울었던 것 같다. 그건 무술가인 아버지가 사람들 앞에서는 울지 말라고 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난 살찐 동물에게 약하다. 맛있게 먹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인다. 엄마는 말라깽이였다. '오기가미 나오코..

Film/Drama 2021.01.14

Miluju tebe _ 원스, 존 카니 감독

# 0. 무명 뮤지션의 버스킹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동시에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낭만으로 가득하기도 하죠.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들이 삶을 통채로 걸어 음악을 하는 이유와, 외로운 사람들이 열렬히 사랑을 갈구하는 이유를 함께 느끼게 하는 영화입니다. 뻔뻔한 소매치기와 고장 난 청소기와 관절염에 자살해버린 아버지와 악기상에서 치는 피아노 위로 아일리시 모던 락에 담긴 사랑이 울려 퍼집니다. '존 카니' 감독, 『원스 :: ONCE』입니다. # 1. 영화는 비어 있습니다. 의도된 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재구성한 풍경들, 이를테면 음악을 연주하는 순간마다 등장하는 연출이 마련해준 가상의 무대 따위는 없습니다. 진행을 위해 필요한 사람들과 필요한 조건들이 동원된다던지 하는 등의 계획된 인과 역..

Film/Romance 2020.06.06

걸작보다 뛰어난 범작 _ 스트레인저 댄 픽션, 마크 포스터 감독

# 0. 앞날을 알고 싶으신가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일을 겪으며 어떤 사람과 사랑을 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 궁금하신가요? 자신의 삶이 어떻게 굴러가게 될지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직 찾아오지 않은 내일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사는 게 훨씬 안전하게 느껴지겠죠. 물론 혹시나 엉망진창이면 어쩌나 하고 살짝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보단 역시 아는 게 낫다 싶기도 합니다. 더구나 그렇게 쓰여질 자신의 앞날이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의 완벽한 걸작이라면 어떨까요. 기승전결이 완벽한 서사와 훌륭한 내러티브로 짜여진 소설과도 같은 삶. 사람들이 두고두고 회자할 만큼 멋들어진 그런 삶을 살아낸 인간이라니. 더할 나위가 없을 것만 같네요. 네? 근데 그 걸작이 비극이라..

Film/Comedy 2019.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