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Action

나초와 발가락 _ 데스 프루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그냥_ 2021. 11. 2. 06:30
728x90

 

 

# 0.

 

긁어모으는 동안의 흥분. 집어던지는 순간의 쾌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데스 프루프 :: Death Proof』입니다.

 

 

 

 

 

# 1. 

 

주문에 맞춰 정확히 배합된 칵테일을 내놓는 바텐더 '워렌'처럼 감독 '타란티노'는 관객의 기대에 정확히 부합하는 환상적 배합의 보상을 선사합니다. 존~~~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역시 타란티노 죠.

 

뭐랄까요. 참 동물적인 영화입니다. 관객들, 특히 남성 관객들로부터 스스로 동물이라는 것을 폭력적으로 고백케 만들려는 듯한 작품이랄까요. 영화를 보다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허울에 갇혀 잊고 있었던, 그저 DNA에 새겨진 유전자 지도에 따라 배열된 단백질 덩어리 속 호르몬의 화학적 기작이 만든 본능 덩어리임을 새삼 상기하게 됩니다. 제 아무리 거창한 이유로 치장해봐야 최대한의 보신保身과 자극적인 유희遊戱를 즐긴 후 유전자 정보를 남기는 것 말고는 빌어먹을 삶의 이유가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카타르시스를 끌어 모아둔 것만 같은 작품이죠.

 

 

 

 

 

 

# 2.

 

사실 위와 같은 동물적인 성격의 작품이라는 것이 그리 희소한 것은 아닙니다. 희소하기는커녕 너무나 많죠.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포르노그래피만 하더라도 수컷의 동물적 카타르시스를 자극하고 충족시키기 위한 창작물들이니까요.

 

이 영화와 포르노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수컷의 동물성을 최대한 자극한 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장렬히 무너트린다는 데 있습니다. 마초의 허세 이면에 숨겨진 비굴함이 까발려지는 순간의 역설적 카타르시스를 추구한다는 점 말이죠. 영화에 등장하는 수컷들은 대부분 스스로 알파 메일 Alpha Male이라 주장할 법한 과시적인 인물입니다만, 그들은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같이 비겁한 선택과 비굴한 모습을 가감 없이 노출합니다. 이 비겁함과 비굴함은 '발'에 대한 노골적인 패티시즘으로 구체화되죠.

 

 

 

 

 

 

# 3.

 

세최찐은 단연 '스턴트맨 마이크'입니다. 한껏 센척하며 어그로를 끌어 보지만 그는 영화 내내 그 어떤 여자들로부터도 관심과 인정을 받지 못하죠. 자신이 연기한 작품들을 읊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순간 감추지 못하는 수치심과, 무언가를 통찰하는 듯 분위기를 잡아보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아 돌아서야 하는 순간의 초라함과,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자신은 '데스 프루프'된 스턴트 차량 운전석에 곱게 모셔져 있는 알량함과, 그 와중에 법적 책임은 또 회피하고 싶어 둘러쳐둔 너저분한 트릭들. 2부 시작을 흑백으로 만들어둔 게 고마울 법한 지저분한 추태와, 스턴트맨이라는 직업이 아까울 민망한 호들갑과 눈물 나는 고해성사까지 더해지면 가히 완벽합니다.

 

물론 다른 '놈'들도 거기서 거기죠. 관능적 입매의 '알렌'과의 섹스를 위해 우산 받쳐 들고 시간제한까지 감수하는 남자라거나, 잘만 하면 한번 잡아먹을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맹한 표정의 미인에 혹해 값비싼 차를 폐차시키게 생긴 머저리. 카우보이 모자를 뒤집어쓰고서 사건의 실체 어쩌구 하며 온갖 겉멋을 부리지만 결국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보안관 부자. 특히 1부 마지막 마이크에 의해 처참하게 갈려나가는 세 여자를 보며 30여분의 유혹에 녹아내린 관객이 자신도 모르게 순간 떠올릴 '아깝다'라는 생각이야 말로 수컷의 찌질함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 속 가장 화려한 액션을 여자 스턴트맨이 온몸으로 소화하는 동안, 데스 프루프 된 차량에 곱게 모셔져 눈물 흘리는 마이크의 대조. 거기에 (여담이긴 합니다만) 안전 문제로 전전긍긍하는 감독과, 완벽한 스턴트를 선보이며 영화를 완성한 '조이 벨'의 대조는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겠네요.

 

 

 

 

 

 

# 4.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매드 맥스>와 같은 완성도 높은 여성주의 액션 영화 뭐 그런거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영화를 특정 이념에 꼬라박는 건 균형의 타란티노를 너무 물로 보는 거죠.

 

결말의 호쾌함과 별개로 흠씬 얻어터지는 스턴트맨 마이크 정도를 제외하면 관객을 포함한 거의 모든 수컷들은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어쨌든 가져가는 데 성공합니다. 우산을 든 남자는 어쨋든 짧게나마 알렌과 잠을 자는 데 성공했을 테구요. 바텐더 '워렌' 옆엔 여전히 미모의 여자들이 서 있을 테죠. 보안관 역시 자신의 말처럼 피곤한 일에 얽히지 않을 수 있었구요. 타란티노는 사랑해 마지않는 익스플로이테이션 필름들에 대한 오마쥬들을 마음껏 선보일 수 있었죠. 특히나 관객은 '관능'과 '스릴'과 '질주'와 '폭력'이라는 모든 종류의 쾌감을 한 아름 안고 돌아갈 수 있었을 겁니다. 

 

1부의 처참한 결말과 2부의 호쾌한 결말의 차이는, 이 마초적이면서 찌질한 수컷들을 다루게 되는 암컷들의 방식 간 차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대단히 스타일리시한 머슬카 액션 슬래셔 무비 위로. 감독 나름대로의 성별에 따른 힘겨루기 원리에 대한 시니컬한 해석 역시 슬쩍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 5.

 

온통 섹시한 것들로 가득한 영화에서 가장 섹시한 건 역시 단 한컷도 낭비하지 않고 화면을 핥는 카메라일 겁니다. 특유의 수집욕을 자극하는 것만 같은 구도와 촬영과 질감 따위가 짐짓 단순할 수도 있을 화면들을 언제나처럼 근사한 이미지와 메시지로 승화시킵니다.

 

온통 찌질한 것들로 가득한 영화에서 가장 찌질한 건 취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스타일일 겁니다. 특유의 완성도 높은 화면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 담긴 눈에 뻔~~히 보이는, 보다 정확히는 일부러 눈에 뻔히 보이게끔 만들어둔 장난기 가득한 취향이 관객을 효과적으로 도발합니다.

 

감독의 영화들 중 독보적으로 싼티 나는 작품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을 테지만, 그 덕분에 <펄프 픽션>, <킬빌>, <바스터즈> 등의 명작이 즐비한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고유의 영역을 선명히 점유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10분 동안 울려 퍼질 머슬카 엔진 소리를 위한 수다스럽고 요란스러운 예열과, The End 를 향해 내달리는 질주의 쾌감은 취향과 별개로 대체하기 쉽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 6.

 

감독은 이 영화를 자신이 만든 것 중 최악이라 평했다 하는데요. 어떤 이유에선 진 알 수 없으나 일견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라는 다소 오글거리는 국내용 별명처럼 유혈이 낭자한 과격한 액션으로 대표되는 감독이긴 합니다만, 그의 진짜 매력은 작가로서 이야기를 짜내는 천부적인 재능에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죠.

 

등장하는 캐릭터를 하나하나 고유한 작품처럼 빚어내는 솜씨. 각기 다른 출발점과 도착점을 가진 다층적 이야기를 하나의 상황에 눌러 담아 만든 초고밀도 서사. 관객에게 최대한의 흥미로 전달케 만드는 플롯의 상상력과, 씹덕 연출자로서의 영화 기술적 탁월성.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장르적 재미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올곧게 밀어붙이는 에너지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이 영화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죠.

 

 

 

 

 

 

# 7.

 

언제나처럼 캐릭터는 주연에서부터 스쳐 지나는 단역까지 모조리 매력적이긴 합니다만, 이야기라 할만한 게 없다 보니 본능을 건드리는 자극과 별개로 영 심심합니다. 플롯도 평이하고, 연출 역시 캐릭터를 조물조물 매만지는 데에만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죠. 볼 때마다 늘어나는 볼륨에 감탄하기 위해서라도 두 번 세 번 보고 싶어지는 여타 작품들에 비해, 이 영화는 마지막 The End와 함께 딱 한번 짜릿하게 보고 나면 관객 경험 역시 칼로 잘라낸 듯 완전히 끝나버리는데요. 다름 아닌 이야기의 부재 때문이라 해야 할 겁니다.

 

원코인 클리어를 노리는 횡스크롤 머슬카 레이싱 게임 같은 영화라 생각한다면 적당할 겁니다. '커트 러셀'이 세상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나초처럼, 지저분해질 것 걱정하지 말고 게걸스럽게 즐긴 후 배를 채울 수 있다면 그만인 영화랄까요. 타란티노식 팝콘 무... 아니, 나초 무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데스 프루프>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