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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소유를 사유하다 _ 돌로레스, 마이클 로젠 감독

그냥_ 2024. 3.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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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박제가 되어 버린 그녀를 아시오?

 

 

 

 

 

 

 

 

마이클 로젠 감독,

『돌로레스 :: Dolores』입니다.

 

 

 

 

 

# 1.

 

소유욕이라는 감정을 탐구하고 탐미합니다. 미리 구분해야 할 것은 감독이 탐구하고자 하는 소유욕이란 썩 중립적이라는 점입니다. 인간 게오르그가 탐욕적이고 망상적이고 지저분하고 추악하고 짜증스러운 인간이라는 것과 별개로 말이죠. 모형 제작자로서의 순수한 장인정신이라거나, 종이비행기 날리는 소년에게 모형을 건네는 다정함, 돌로레스의 생일날 그녀의 아버지를 본 딱 인형을 선물하는 섬세함, 병든 동생을 걱정하고 챙기는 모습 따위를 숨기지 않고 있으니까요. 감독이 이해하는 게오르그는 관객의 생각보다 훨씬 순수합니다. 순수하게 악할 뿐이죠. 감독은 욕망하는 게오르그를 단죄하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궁금해할 뿐입니다.

 

영화는 소유욕의 부분집합을 연구하는 과정으로 점철됩니다. 망가진 것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소유는 당연하게도 '보호'와도 일정 부분 닿아있습니다. 집중하며 모형을 제작하는 모습에 은유된 '애정'은 물론이구요. 대신 비를 맞는 장면으로 은유된 '헌신'이나, 줄자로 은유되는 '탐구'와도 일정 부분 닿아있습니다. 운전기사와의 갈등으로 은유되는 '독점'하고자 하는 욕망도 포함되구요, 냄새를 맡는 행동으로 은유되는 '감각'하고자 하는 욕망도 포함됩니다. 집사 시몬과의 관계는 대리만족으로라도 느끼고 싶은 '갈증'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대리할 수 없는 '고유함'도 의미합니다. 갈증에 떠밀려 '가속'되는 집착의 본질과, 그것이 언제고 끔찍한 '폭력'의 형태로 발산될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핵심적이죠.

 

지극히 자의적인 순수함. 지극히 자의적인 다정함. 지극히 자의적인 섬세함. 보호. 애정. 헌신. 탐구. 독점. 감각. 갈증. 가속. 고유함. 이 모든 스트레스가 응축된 폭발적인 폭력의 가능성은 감독 마이클 로젠이 사유하는 소유욕입니다.

 

 

 

 

 

 

# 2.

 

괴팍한 동생은 히로인 돌로레스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이 인물은 구체적인 캐릭터라기에는 과도하게 과격한데요. 주인공의 내면 일부를 투사한다 이해하면 조금 더 편안합니다. 같은 부모에게 태어나 같은 집에 살고 같은 창문 너머 같은 여자를 바라본다는 점, 형제의 욕망이 연동되는 모습으로 소개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죠.

 

동생은 게오르그의 솔직한 욕망임과 동시에 윤리적 장벽으로서 기능합니다. 게오르그는 동생의 담배와 단 것을 통제하는 데요. 이는 자기 내면의 소유욕을 통제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됩니다. 화려한 돌로레스의 저택이 환상과 욕망의 공간이라면, 낡고 텅 빈 지저분한 집은 주인공의 현실입니다. 동생의 존재는 형을 일정주기마다 환상에서 끌어내려와 현실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실제 게오르그는 동생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래도 최소한의 현실을 자각하고 일정한 윤리의식 안에서 행동했죠. 동생을 격리시킨 후 결국 죽음에 이르고 나면 윤리적 장벽 또한 함께 무너집니다. 윤리의 붕괴는 작게는 나무난간의 파괴로, 크게는 시몬을 공격하는 큰 벽체의 파괴로 구체화됩니다.

 

# 3.

 

감독이 이해하는 '소유욕'의 가장 큰 적은 동생에 은유된 '윤리'도, 주변인들에 은유된 '관계'도, 경찰에 은유된 '질서'도 아닌 '시간'입니다. 이를 통찰함으로써 소유욕은 특별한 사이코패스의 특별한 정신병이 아닌, 시간의 흐름에 대한 저항으로서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집착하는 모든 사람의 내면으로 확장됩니다. 변화에 대한 저항이자, 불멸을 향한 집착에 자유롭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니까요.

 

영화 속 소유욕은 게오르그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 특히 돌로레스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사를 앞두고 굳이 자신의 집과 똑같은 모형을 만들어 보관하려 한다거나, 매 순간 남은 인생 중 가장 젊은 모습을 박제시키는 사진 촬영이 반복된다거나,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젊은 배역에 대한 집착 따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돌로레스의 집착을 상징하는 저택의 디자인 또한 흥미롭습니다. 미술은 2017년에 공개된 작품임에도 상당히 고전적입니다. 저택은 20세기 중반 모더니즘에 충실한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고, 출연하는 영화도 20세기 중반의 전쟁 상황을 그린 흑백 영화, 차량도 그 시절 로맨스 영화 주인공이 타고 다닐 법한 분홍색 올드카이니까요.

 

 

 

 

 

 

# 4.

 

모형을 집 밖에 분리시키고 그 안에 박제된 여자를 관음 하며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집 안에 들어있다는 아이디어는 의외의 전개와 서스팬스를 발생시킵니다. 육체를 소유하는 것을 넘어 경험과 인격까지 소유하고자 한다는 면에서 훨씬 극단적인 형태의 소유라 할 수 있겠죠.

 

결말은 제법 흥미롭습니다. 게오르그의 모형 안에 갇혔음을 깨닫고 당황하던 돌로레스는 집을 벗어나려 하는데요. 새하얀 빛으로 둘러싸인 모형 안임을 알게 되자 좌절하는 대신 담담하게 게오르그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오르그의 음습한 욕망에 갇혀 인형이 되어버린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집 안에서 영원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는 것이라 상상하면 섬뜩하기도 하죠.

 

게오르그의 입장도 재미있습니다. 최대한 정밀하게 탐미적으로 대상을 측정하고 가두는 영화에서 가장 갇혀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게오르그이기 때문입니다. 돌로레스가 게오르그의 음모에 갇힌 것이기도 하지만, 관념적으로 보자면 돌로레스에 대한 집착으로서의 돌로레스의 저택에 영원히 갇혀버린 게오르그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소유하고자 욕망하는 두 사람이 소유하는 사람이 아닌 소유되는 인형이 되는 결말은 새하얀 빛과 대비되는 섬뜩한 어둠처럼 느껴진달까요. 마이클 로젠 감독, <돌로레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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