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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Mystery & Thriller

서글픈 정신승리 _ 나이트 플라이트, 웨스 크레이븐 감독

그냥_ 2024. 5.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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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고도로 발달한 정신승리는 정신치료와 구분할 수 없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

『나이트 플라이트 :: Red-Eye』입니다.

 

 

 

 

 

# 1.

 

<나이트메어(1984)>와 <스크림 시리즈(1996-2011)>로 유명한 웨스 크레이븐의 2005년 작이다. 한평생 호러만 깎은 장인의 이름에 차기작 역시 정통 호러를 예상했으나 의외로 전형적인 범죄 액션 스릴러물이었다. 그를 좋아하던 일부의 팬들은 실망을 표하기도 했는데 사실은 명예로운 죽음이라 할 수 있다. 장르 선택과 별개로 완성도부터 부실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스릴러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영화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창작하지도, 충분한 긴장감을 연출하지도 못한다. 흔한 비행기 테러의 클리셰를 따라가는 동안 사투는 지루한 버전의 <톰과 제리>로 전락한다. 리사(레이첼 맥아담스)의 행동은 최선이라기보다는 대책 없는 바보짓으로 보인다. 빌려준 책과 화장실 거울에 SOS를 쓴다 해서 아버지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건 상식적이지만, 똑 부러진 그녀에겐 상식이 없다. 그녀가 바보짓을 할 때마다 그녀를 응원하는 것보다 차라리 잭슨(킬리언 머피)을 응원하고 싶은 생각마저 하게 만든다.

 

물론 그렇다 해서 잭슨을 응원할 수도 없다. 그 역시 미모의 헌팅녀 못지않게 멍청하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가득 찬 이코노미 좌석에서 자신의 음모를 줄줄이 늘어놓는다거나, 말 안 듣는다고 냅다 박치기로 기절시키는 모습을 차치하더라도. 대체 2주 동안 지갑 훔치기를 제외한다면 뭐를 한 건지 궁금할 정도로 킬러로서의 계획과 실력 모두 엉성하고 조악하다.

 

 

 

 

 

 

# 2.

 

선량한 역할의 레이첼 맥아담스가 죽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다정한 아버지가 죽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안전이 담보된 스릴러는 초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감독은 부족한 긴장감을 메우기 위해 폭풍우를 끼얹고, 비명소리를 더하고, 샤이닝을 흉내 내보지만 역부족이다. 요소요소에 호러의 스타일을 끌고 들어와 연출적으로 조력하지만 역시 역부족이다. 영화의 의의는 다정한 전반, 음흉한 중반, 분노한 후반으로 변모하는 킬리안 머피의 연기 정도가 전부다. 레이첼 맥아담스는 분투하는 미녀라는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이행하지만 캐릭터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한다. 브라이언 콕스의 재능은 완벽히 낭비되어 플롯 상의 도구로 전락한다.

 

나이트 플라이트는 비슷한 시기 개봉한 동명의 한국 영화를 피하기 위해 새로 붙인 이름으로 원제는 <레드 아이>다. 불안과 불면에 붉게 충혈된 눈을 뜻하는 야간 비행의 별칭으로, 상황과 심리를 중의적으로 빗댄 제목이다. 혹자는 그 제목을 끌고 와 '잠 오지 않는 늦은 밤 비행기에서나 보면 좋을 영화'라며 비꼬아 혹평하는데 잔인하기는 하나 가혹하지는 않다.

 

 

 

 

 

 

# 3.

 

다만 변명거리는 있다. 스릴러의 완성도가 부족한 것은 감독이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9월 11일. 영화는 9.11에 대한 은유와 해석으로 가득하다.

 

비행기 테러라는 코드, 올려다보는 까마득한 고층 빌딩, 상층에 꼬라 박히는 미사일과, 과격하게 치솟는 불길은 9.11 외에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렵게 한다. 타인에 대한 느슨한 호의로 작동하는 사회 시스템을 공격해 불신하게 만드는 테러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벌써 20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개봉한 당시는 2005년, 제작은 그보다 한두해 전에 이루어졌을 것을 생각하면 미국인 감독이 미국에서 만든 영화에 9.11의 충격이 녹아있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번잡한 도시를 바삐 움직이는 리사는 웨스 크레이븐의 미국이다. 모두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 곤란과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유능한 사람은 미국이 스스로 생각하는 미국이다. 그런 면에서 주변 인물들의 구성은 썩 민망하다. 미국(리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과, 미국에게 배려를 받는 사람과, 무례하지만 미국이 봐주고 있는 사람과, 미국을 이용해 먹으려 속이는 사람뿐이고, 이는 당시의 미국이 이해하는 국제사회의 모습이다. 리사의 가슴에 숨겨진 상처는 9.11 그 자체다.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리사의 말은 다시는 9.11을 겪지 않겠다는 단호한 선언이다. 영화의 제목인 레드 아이는 분노한 미국의 눈이자, 슬픈 미국인의 눈이다.

 

 

 

 

 

 

# 4.

 

영화 속에는 메인 빌런과 서브 빌런이 존재한다. 당연히 메인 빌런은 잭슨이고 그는 탈레반의 은유다. 후반부의 갈등보다 흥미로운 것은 잭슨과 리사의 사이가 처음에는 좋았다는 것인데, 이는 소련을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무자헤딘을 지원하던 미국의 과거사를 생각게 한다. 성대에 구멍이 뚫리자 연기된 영어를 잃고 흉악한 목소리를 노출한다거나, 목에 휘감은 스카프가 아랍의 복식처럼 보인다면 너무 과한 해석일까.

 

서브 빌런은 악질적인 클레임의 부부로, 얄미운 시누이 같은 주변국들이다. 수많은 나라들이 그동안 미국에게 무례를 범했음에도 참고 아량을 베풀었지만 결국 배신당했다는 것이 지극히 미국적인 관점에서 진단하는 9.11이다. 앤딩에서 부부를 매몰차게 조롱하는 리사의 태도는 앞으로는 얄짤 없다는 세계 경찰 나으리의 엄중 경고로서 자국의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물론 이때만 하더라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20년씩이나 이어진 끝에 실패로 돌아갈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다만 이 모든 것을 정신승리라 비웃기 전에 상처가 실존하는 것임을 고려해야 한다. 빈곤한 완성도의 우스꽝스러운 정신승리지만, 동시에 그런 정신승리라도 절실한 집단적 트라우마의 치료를 목격하는 것만 같은 느낌도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분노와 슬픔 아래로 잔잔히 흐르는 연약하고 아슬아슬한 내면을 이입하면 측은하기도 하다.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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