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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단편영화가 외면받는 이유 _ 차장님은 연애 중, 안지희 감독

그냥_ 2019. 3. 1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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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단편영화를 권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강제규 감독의 <민우씨 오는 날>을 리뷰했었는데요. 이 영화는 그와 정반대 되는 영화라 할 수 있겠네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단편영화에 대한 선입견들이 없지 않죠. 이 영화는 그 모든 부정적인 선입견들의 집합이라 할 법합니다.

 

 

 

 

 

 

 

 

'안지희' 감독,

『차장님은 연애 중 :: Boss in Love』입니다.

 

 

 

 

 

# 1.

 

좋은 퀴어영화는 몰입해 보다 보면 어느새 퀴어로서의 속성이 느껴지지 않도록 만든 영화들입니다.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감정의 보편성이 육체적, 정신적 성별이나 지향성을 아득히 극복한다는 것을 정서적으로 증명함으로써 막연한 선입견과 차별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영화들이죠.

 

평등은 결과의 양적 균형만을 위해 다양성이 말살된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의 근간이 되는 원칙, 이를테면 사랑, 이상, 자존, 이성, 감성, 관계와 같은 뿌리가 우리 모두 다르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는데서 출발한다 믿습니다. 이성애자'만큼' 행복한 연애를 하는 성소수자가 아니라 그 영화 속 주인공이 이성애자인지 성소수자인지를 신경 쓰지 조차 않게 되는 것이 근원적인 평등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생각합니다.

 

 

 

 

 

 

# 2.

 

개인적으로 김조광수 감독의 영화... 비슷한 무언가 들을 아주 많이 엄청 진짜 완전 매우 비판적으로 보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김조광수의 영화 속 퀴어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무언가 이질적인 존재, 특별한 존재로 만드려 하거든요. 이성애자들과 대립적인 존재이자 대비되는 존재로서 그들과 정량적으로 동일하게 행복하다는 걸 보여주려 악을 쓰는 듯해 보입니다. 추리 스릴러 영화도 아니고 로맨스 드라마가 관객과 싸워서 이기려드는 걸 보는 게 유쾌할 리가 없지만 감독만 그걸 모르죠. 감정은 애당초 정량화의 대상이 아닙니다만 그의 영화에는 이런 상식이 빠져있습니다. 김조광수 감독의 영화가 취하고 있는 방법은 차별을 사라지게 만드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인간 홍석천을 좋아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이 김조광수 감독을 싫어하는 건 그가 동성애자여서가 아니죠.

 

개인적으로 한국 퀴어영화 중에서는 이현주 감독의 <연애담>을 추천합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실 그 감독의 그 영화 말하는 것 맞습니다. 감독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음은 잘 알고 있지만 연출자 개인의 문제와 별개로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제법 훌륭한 영화라 생각하거든요. 많은 부분에서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유사한 점이 보이지만 디테일들이 우리말과 우리 문화로 채워져 있는 <연애담>이 우리 관객들이 보기엔 조금 더 편하실 겁니다. 독립영화 계의 전도연, 이상희 배우의 가슴 절절한 연기는 덤이구요. 진짜 좋은 표정과 좋은 표현을 가진 배운데요.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속상하군요. 조만간 적당히 시간이 되면 '이상희' 배우의 주연작을 하나 리뷰해 보고 싶네요.

 

 

 

 

 

 

# 3.

 

이 단편 역시 그런 기준에선 썩 나쁘지 않습니다. 레즈비언들의 연애를 특별한 무언가로 만들려 들지는 않거든요. 그냥 사랑에 빠진 여자, 아니 여자 이전에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꼼냥거림을 나름 담백하다면 담백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직장인의 비밀 연애, 임자가 있는 사람의 당혹스러움, 아직 어린 사람의 사랑에 대한 적극성과 같은 누구나가 공감할 법한 보편성이 영화를 메우고 있습니다. 레즈비언 커뮤니티 어플인 탑엘과 같은 고유한 코드들이 등장하지만 작위적이지 않게 섞여 들어가게 만들어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것으로 취급하는 것 역시 훌륭하죠.

 

응? 근데 왜 이 글 제목은 이따위인거지?

 

 

 

 

 

 

# 4.

 

이 영화의 단점은 못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못 만들었어요. 무지막지하게 못 만들었습니다.

 

퀴어 영화로서 못 만들었다기보다 단편영화로서 못 만들었습니다. 단편영화는 못 만든 영화, 대충 만든 듯한 영화, 질감이 거칠고 불편한 영화, 시대착오적인 영화, 고매한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감독의 나르시시즘 영화라는 사람들의 선입견은 이런 영화들로 인해 만들어졌을 겁니다.

 

고민이 없습니다.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야근 씬 대화 장면은 실소를 금하기 어렵습니다. 좋은 대사냐 아니냐 이전에 제대로 된 대사가 없어요. 연인이라면서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둥, 저녁에 뭐할 거냐는 둥, 주말에 뭐 하고 싶냐는 둥, 한창 사랑에 빠진 연인이 종일 떨어져 있다가 밤늦게 만난 거라면 당연히 쉴 새 없이 오가야 할 대화가 없습니다. 이건 감독이 게을렀다고 밖엔 달리 말할 수가 없는 거죠. 대사가 빈약하다 못해 없다시피 해 고작 16분의 런타임조차 메워내지 못하다 보니 시간을 때우려고 하는 게 뽀뽀란 인상이 강합니다. 대화를 통해 이 사람들이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관객에게 풍부하게 묘사한 다음 그 사랑의 표현으로 뽀뽀를 하는 게 아니라 칠 대사가 없어서 뻘쭘해진 배우들이 뽀뽀로 대충 시간이나 때우는 느낌입니다.

 

 

 

 

 

 

# 5.

 

대사가 빈약하다 보니 사무실 한복판에서 섹스를 하려 한다는 것도 뜬금없게 느껴집니다. 저기요, 그냥 빨리 일 끝내고 퇴근해서 섹스하는 게 낫지 않나요? 그러지 못할 이유라도 있는 걸까요? 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짓거리를 하는 거죠? 거봐. 그러니까 걸리잖아. 벗은 팬티를 손에 들고 "안돼!"라고 소리치는 이런 식의 꽁트도 너무 식상하고 무책임해 보입니다.

 

연출 또한 끔찍합니다. 구도는 일반인들이 만든 흔한 인스타그램용 vlog보다 촌스럽고, 편집은 양산형 유튜버들의 그것보다 조악합니다. 배우들은 디렉팅을 전혀 받지 못한 듯 90년대 순정 만화 갬성의 과장된 표현을 문제의식 없이 남발하고 그 공백은 자극적인 뽀뽀와 팬티로 대충 채워내려 하죠. 그러다 보니 영화 내내 퀴어라는 소재가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차라리 아웃트로에서 보여준 세영과 혜미의 꼼냥꼼냥한 대화를 알차게 채워 16분의 런타임을 만드는 게 백배는 나았을 겁니다. 앞선 야근 장면들보다 대사도 훨씬 풍부하고 연기도 훨씬 자연스럽거든요. 우리 주변을 스쳐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성소수자 연인들도 섞여 있으며 그들의 자연스러운 연애 역시 특별히 불행하지도 특별히 행복하지도 않아 이성애자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는 퀴어 영화의 존재 의의와도 훨씬 잘 부합합니다.

 

# 6.

 

'왓챠'는 차라리 오그라드는 중2병이 주류이던 시절이 백배는 더 나았습니다. 지금은 거의 성소수자들의 성지가 되어버렸죠. 영화의 만듦새가 퀴어에 대한 선입견으로 이어져선 안 되겠지만 역으로 퀴어를 다루었다는 사실이 영화의 만듦새를 정당화시켜줘서도 곤란한데요. 이 영화는 퀴어 연애물이라는 특징 하나로 불필요한 고평가를 받고 있네요.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든 간에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다각적으로 판단하는 게 중요한 거겠죠. 팁을 하나 드리자면 퀴어나 정치적 올바름과 관련성이 있어 보이는 영화를 고르는 데 있어선 왓챠의 조언은 거르는 게 좋으실 거란 겁니다. 소수자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은 영화적 빈약함의 면죄부가 되지 못합니다. '안지희' 감독, <차장님은 연애 중>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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