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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SF & Fantasy

SF는 거들 뿐 _ 스토어웨이, 조 페나 감독

그냥_ 2021. 5.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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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SF 물로서의 배경 묘사가 얼마나 디테일하고 논리적인가는 그닥 중요하지 않습니다. 되려 여러분께서 그런 디테일을 주의 깊게 보시게끔 만들었다는 것, 그게 문제죠.

 

 

 

 

 

 

 

 

‘조 페나’ 감독,

『스토어웨이 :: Stowaway』입니다.

 

 

 

 

 

# 1.

 

자식이 아픈 부모를 위해 약을 구해오는 영화가 있다면 우린 그 영화를 '효'에 대한 영화라 말할 겁니다. 올챙이가 개구리를 돕는 영화라거나, 아기 다람쥐가 엄마 다람쥐를 위해 도토리를 구해오는 영화, 로봇이 자신을 만든 박사를 구출하는 영화 모두 소재만 다를 뿐 '효'라는 같은 주제를 다룬 유사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겠죠.

 

만약 올챙이나 다람쥐가 나온다고 해서 '동물 영화'라 정의한다거나 로봇이 나온다고 해서 'SF 영화'로 이해한다면 이는 작품의 맥락을 전혀 짚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될 겁니다. 싸구려 평론가들이 주제의식에 대한 일말의 고찰 없이 젊은 배우들만 쏟아져 나온다고 '청춘 영화'라 딱지를 붙이는 바보짓과도 다를 바 없죠.

 

SF 영화라면 단순히 과학과학한 분위기의 아이템을 소비하는 것뿐 아니라 SF적 상상력과 전제에 강하게 연계된 서사가 펼쳐져야 합니다.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나 스탠리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크리스토퍼 놀런의 <인터스텔라>와 같은 작품들 모두 각자 나름의 철학적 주제의식을 겸비하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자신의 이야기가 왜 하필 우주에서 벌어진 것인가 역시 충분한 개연성으로 설득하고 있죠.

 

그에 반해 이 영화 <스토어웨이>의 이야기는 우주적 환경과 무관합니다. 심해에 잠긴 잠수함이나 지하 깊은 곳의 벙커, 좀비에 둘러싸여 고립된 건물 안이라거나 아니면 냅다 누구 하나 총대를 매지 않으면 모두 함께 퇴사하게 되는 절박한 회사 생활을 배경으로 한다 하더라도 전혀 지장이 없는 수준이죠. 적당히 "부양해야 되는 가족과 빚더미가 있는 세명이 일을 하다가 한 명이 추가되며 일이 꼬인다. 그중 한 명이 총대를 메지 않으면 다 쫓겨나는 상황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가며 수습해 보지만 결국 실패하고. 갑자기 감사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한 명이 희생했다." 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으니까요. 말인즉, 이 영화의 대표 장르는 'SF'가 아니라는 것이죠.

 

 

 

 

 

 

# 2.

 

딜레마를 다룬 드라마 영화입니다. 누군가 죽지 않으면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극단적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영화입니다.

 

'마리나', '데이비드', '조이' 세 승무원은 [정당성]을 대변합니다. 그들은 자기 분야의 검증된 전문가이자 대체할 수 없는 프로젝트의 존재 이유이며 합리적 절차를 거쳐 선발된, 우주선에 탑재된 재화를 소비해 생존할 권리와 당위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죠. 반면 밀항자 '마이클'은 [연민]의 존재입니다. 그는 어려서 큰 사고를 겪어 심각한 화상 자국을 가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부모를 잃었으며 아픈 동생을 돌보야 하는 유일한 보호자죠. 마이클의 묘사에 있어 비밀스러운 꿍꿍이를 가진 통수충이 아니라 최대한 순하고 착한 인물로 그려지는 건 이 인물이 죽어 마땅하다 생각되지 않아야 딜레마가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마이클이 "나는 못 죽어!!"라 땡깡을 부리는 순간 역으로 관객이 먼저 지가 뭔 염치로 나대지? 얘는 그냥 죽이자라 생각할 가능성이 크니까요.

 

딜레마라는 기준 하에 영화의 주인공은 '꽈찌쭈'와 '조이', 두 사람입니다. 꽈찌쭈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대변합니다. 조이는 당위와 명분과 원칙을 중요시하죠. 관객은 두 사람 모두로부터 상식적이고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을 소개받으며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만약 꽈찌쭈처럼 마이클에게 희생을 요구해야 한다 판단한다면 내가 마이클의 입장이어도 그 희생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만약 조이처럼 이상주의를 주장한다면 대안이 없을 경우 나는 내 주장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그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이상주의가 숭고하고 또 합리적인가. 따위를 고찰하는 사고 실험을 즐기는 작품이라는 거죠. SF는 그저 최소한의 시청각적 재미를 충족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에 불과합니다.

 

선장 마리나가 침착함도 노련함도 평정심도 능력도 쥐뿔 없는 건 SF 물에선 말도 안 되지만 드라마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 인물이 등신이어야 꽈찌쭈와 조이가 자기주장을 펼칠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마이클 역시 배우의 연기와 무관하게 어쨌든 영화 내내 머릿수만 늘리는 짐덩어리에 불과한 건 이 인물의 존재가 상수에 놓여 있어야 논리를 통제하는 데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두 캐릭터 모두 딜레마를 펼쳐놓기 위해 희생한 캐릭터라 할 수 있겠죠.

 

 

 

 

 

 

# 3.

 

비슷한 방법론의 영화로는 <마션>을 들 수 있을 겁니다. 마찬가지의 우주 영화입니다만 영화의 핵심은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재난 영화였다는 점에서 말이죠. 결말부 천 쪼가리 타고 도킹하는 장면의 연출이 대단히 파격적임에도 불구하고 <마션>을 보신 분들 대부분이 이 영화를 화성에서 감자 농사짓는 영화로 기억하시는 건 이 영화의 정체성이 재난생존에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도킹 장면은 그저 영화를 정리하기 위한 출구전략에 불과하다는 걸 관객 역시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 우주선의 디테일은 그저 해당 사고 실험에 관객을 안착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감독은 영화의 핵심, 딜레마를 설계하고 풀어나가는 방식에 올인했어야 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이 사고 실험을 심화시켰어야 하는데 영화를 보신 분들 모두가 아시는 대로 감독은 허무하고 고루한 아마겟돈식 영웅 서사로 정리하고 맙니다. 해결책이 요원해 보이던 모순적 상황에 집중하던 관객을 버려둔 채 말이죠.

 

 

 

 

 

 

# 4.

 

딜레마를 다룬 드라마인데 딜레마가 버려져 드라마에 공백이 생겼다. 드라마의 완성도가 관객의 관심을 강하게 틀어쥐지는 데 실패하고 나니 자꾸만 슬슬 쓸데없는 주변 설정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화성에 테라포밍 실험을 하러 가는 것치곤 우주선이 너무 허술하지 않나? 뭔 놈의 우주선에 장정 하나가 숨어 있어도 몰라? 응? 저 상태로 널브러져 우주로 날아갔는데 얜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한두 푼 하는 우주선도 아니고 생존과 직결된 이산화탄소 여과장치가 여유분도 없어? 지구 구경하는 방은 넉넉하게 만들어 놓고? 우주선을 탈 정도면 온갖 변수에 모두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훈련받았을 텐데 다들 너무 무능한 거 아냐? 뭐? 2인용인데 3인용으로 개조해서 산소가 부족하다고? 뭐? 진짜 산소 가지러 가는 방법이 저런 무식한 암벽등반 밖에 없는 거야?! 아니지, 그냥 중력 장치 끄고 편하게 날아가면 안 돼?!?!?!

 

# 5.

 

이 모든 SF 물로서의 합리성 문제가 완벽히 수정 보완된다면 영화의 감상이 달라질까. 글쎄요, 안타깝게도 딱히 나아지지 않을 겁니다. 그저 엉성하고 지루한 영화가 그냥 지루한 영화가 될 뿐일테니까요. 서두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리고 글을 통해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영화의 실패는 '과학적 묘사의 실패'가 아니라 관객이 과학적 묘사로 한눈팔게 만든 '딜레마의 실패'가 원인이기 때문이죠. ‘조 페나’ 감독, <스토어웨이>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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