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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느낌적인 느낌 _ 윤희에게, 임대형 감독

그냥_ 2020. 3.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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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눈. 일본. 달. 편지. 엄마. 딸. 사진. 여행. 고양이. 담배. 바텐더. 사랑. 이별.

 

처연하고 창백한 톤으로 서정성을 한껏 강조해 사랑이란 특별한 감정을 감성적이고 감각적이고 문학적인 묘사와 함께 관객과 교감하고 나누는 멜로드라마 영화. 코로나와 함께하는 차분하고 고요한 주말 오후의 오갱끼데쓰까군요.

 

 

 

 

 

 

 

 

'임대형' 감독,

『윤희에게 :: Moonlit Winter』입니다.

 

 

 

 

 

# 1.

 

보험을 깔고 갈까요. 영화 최고의 장점, 김희애가 나옵니다. 주연 배우가 다양한 상황에서의 구분된 정서를 섬세하게 다듬어 표현합니다. 막말로 티켓값은 배우 표정만으로도 거의 대부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김소혜, 성유빈의 싱그러움이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게 합니다. 역시 젊은 게 좋아요. 주제도 선합니다. 시대적 아픔을 딛고 서는 가냘프지만 단단한 사랑에 감동과 응원을 보내게 됩니다. 설경 이쁩니다. 눈 쌓여 있는 그림이 미려할뿐더러 퇴적된 정서에 대한 효과적인 은유로도 작동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도시가 가지는 각자의 매력과 식당과 카페, 바의 공간 역시 제법 감성적이고 멋들어집니다. 또 뭐가 있을까요. 이 정도면 됐겠네요.

 

그럼에도 상당히 지루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까지도 대체 이렇게나 이쁜 영화가 왜 이렇게 지루한 걸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죠. 묘사에 비해 시나리오가 빈약해서 그런 건 아닐까.

 

영화의 매력에 대해선 앞서 말씀드렸듯 동의할 수 있으나 그게 이 작품 고유의 매력인지 소장르가 가지는 최소한의 잠재력인지는 모호합니다. [김희애의 감정 연기를 볼 수 있다], [소수자 코드가 독특하다] 정도를 제외하면 비슷한 류의 비슷한 영화들 가운데 굳이 이 영화를 좋아해야 할 이유를 적어도 저는 찾지 못하겠습니다. 연출의 너무 많은 부분에서 감상을 방해받습니다. 시나리오와 대사의 너무 많은 부분에서 몰입을 방해받습니다. 일련의 불편함을 감수함으로써 얻는 특별함 내지 고유함도 옅습니다. 영화가 가지는 거의 유일한 의의는 시대성에 얽힌 동성애 코드 정도 밖엔 읽히지 않죠.

 

 

 

 

 

 

# 2.

 

진행이 너무 어색합니다. 하나의 씬 안에서조차 상황이 바스러집니다. 새봄과 경수 커플이 편지를 읽다가 냄새를 맡다가 드라이브를 간다 했다가 사진을 찍더니 대학 이야기를 합니다. 엄마와 산책을 하는 딸이 툴툴거리다가 코트 이야기를 하더니 담배 얘기가 나오니까 갑자기 방긋 웃고는 사진을 찍습니다. 쥰은 고모에게 엄마랑 아빠 둘 중에 왜 아빠랑 살고 싶었는 지를 이야기하다가 사진에 대해 말하더니 윤희가 꿈에 나온다는 이야기로 급발진합니다. 혼자 술을 마시는 바에서 윤희는 일본어로 대화하다가 혼자 한국어로 말을 하는데 일본인 바텐더는 또 그걸 알아듣는 식이죠.

 

대사도 너무 어색합니다. 문어체 은유와 도치가 워낙 많기도 하거니와 그전에 대화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김희애나 유재명 등 검증된 베테랑의 대사조차 편안하게 들리지 않죠. 예를 들어볼까요. 새봄과 아빠가 경찰서 복도에 앉아 있는 장면입니다.

 

"사탕 먹을래?" (아빠)

"웬 사탕?" (새봄)

"아빠 요즘에 담배 끊었거든." (아빠)

 

다음에 무슨 말이 나와야 할까요? 잘 끊었네. 라거나, 왠 일 이래? 라거나, 또 얼마 못 가는 거 아냐? 라거나 뭐 이런 말이 나와야 되겠죠. 그런데 새봄은 "담배 피우고 싶구나"라 답합니다.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으나 이런 식의 좋게 말하면 선문답 나쁘게 말하면 헛소리식의 덜컥 거리는 대사가 하나둘 감초처럼 있는 게 아니라 거의 매 장면마다 등장합니다.

 

새봄의 '엄마가 더 외로워 보였다'느니 '자신은 짐이라느니' 하는 대사들. 각 씬들이 정리되는 마지막 마다마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대사들이 지치게 합니다. 100여 분에 달하는 런타임 동안 일상적인 씬이 하나도 없습니다. 힘을 끌어모아 팡! 힘을 끌어모아 팡! 터트리는 게 아니라 매 순간 파편적 갬성을 오용하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 3.

 

정서적 발전에 있어 서사적 인과 관계가 빈곤합니다. 새봄이 왜 갑자기 엄마의 사정을 궁금해하는지 동기에 대한 묘사가 빈약합니다. 새봄이 쥰을 왜 엄마와 만나게 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가타부타 역시 없습니다. 시종일관 찍어대는 사진은 아무런 기능 없이 겉돌고, 카메라에 얽힌 윤희의 사연 또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죠. 새봄은 시종일관 시니컬하고 무례한 가운데, 그 이유는 설명되지 않고 그나마 일관되지도 않습니다.

 

대부분 요소들이 필요에 복무합니다. 고양이의 이름이 달의 한자 독음 '월月'이라는 건 너무 작위적입니다. 화자가 일본인이다 보니 '월'이 아니라 '워-르'로 발음된다는 점이 더욱 어색하게 합니다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고양이의 이름이 '월'이라는 설정 역시 영화 내에서 아무런 기능도 의미도 이유도 메시지도 가지지 못합니다. 비슷한 걸 또 하나 꼽자면 '만월滿月'이겠죠. 까놓고 누가 보름달 보고 '만월'이라 하나요. 구어口語가 아닌 대단히 딱딱한 문어文語지만 아랑곳 않습니다. 이 순간 감독은 그냥 만월이라는 어휘가 주는 감수성에 완전히 꽂혀있거든요.

 

윤희와 쥰을 더 애틋하게 만들기 위해 둘은 견우직녀처럼 바다 건너에 살고 있어야 합니다. 느낌 있는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를 쓰기 위해 쥰은 동물 병원을 운영해야 합니다. 달에 꽂힌 감독이 그 이름을 고양이에 붙여주기 위해 료코가 고양이를 키우게 만드는 식입니다. 영양사는 더 야속해 보이기 위해 일부러 더 매몰찬 말을 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더 얄밉게 보이게 하기 위해 억지로 전자담배를 입에 뭅니다. 밤하늘 달 아래 모녀가 온천하는 그림과 이불을 꽁꽁 둘러맨 다다미방의 그림을 찍기 위해 둘은 숙소를 옮겨야 합니다. 관객과 합의되지 않은 새봄의 무신경함은 영화 전반의 차갑고 침전된 분위기를 위해 기계적으로 동원된 특성입니다. 일본에 간 이후에 씌워진 새빨간 목도리에 어색한 선글라스 역시 귀여운 김소혜의 마스크를 활용한 그림을 한 컷 담고 싶어서 만든 장면에 불과합니다.

 

 

 

 

 

 

# 4.

 

윤희에게 편지를 쓰는 쥰의 주요 서사 역시 불친절합니다. 친구라고는 말하지만 누가 봐도 친구 이상의 관계. 두 사람이 레즈비언 연인이겠구나 하는 것은 영화가 시작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눈치챌 수 있습니다만, 이후의 고조나 진행에 대한 부연 설명은 전무라 해도 좋을 만큼 빈약합니다. 구구절절 재연을 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두 사람이 어떤 사랑을 했고 어떤 역경을 거쳤으며 어떤 감정을 교류하고 있고 왜 오래도록 연락을 끊었고 왜 수십 년 만에 보고서도 왜 저러고 있는지에 대해 관객과 정서적으로 합의하는 과정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부실하다는 것이죠.

 

플래시백을 활용하든 일기장을 만들어 두든, 개개인의 독백을 활용하든, 임의의 주변인을 만들어 대화에 녹여내든, 뭐가 되었든지 간에 두 사람이 만나기 전까지는 관객으로 하여금 두 주인공과 정서적으로 합치하는 과정을 축적했어야 합니다. 종합적 서사를 이해하고 충분히 즐긴 관객이 윤희와 쥰과 새봄과 충분히 정서적 교감을 나눈 후, 감독과 나란히 앉아 감독이 그리고자 하는 정서를 영화의 결말에서 함께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영화 시작부터 결정한 정서를 주입받는 느낌입니다. 뭐랄까요. 독고다이 예술가 느낌이랄까요.

 

 

 

 

 

 

# 5.

 

백번 양보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냐? 라 물으신다면 네, 그럴 수 있죠. 독단적인 작품들도 더러 있으니까요. 다만 이런 식의 일방적인 작품들은 마무리에서 퀄리티로 자신의 독선을 증명해야 합니다. "재수 없긴 한데, 그래 너 잘났다. 멋있는 거 인정." 이라는 반응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만 그러지 못하죠. 그래. 평범한 이성애자인 나도 윤희가 어떤 정서를 느끼고 있는지 절절히 알 것 같다라는 감정을 필연적으로 끌어냈어야 합니다.

 

온갖 폼을 잡으며 정서를 끌어올리려고 하는데 결말이라는 것이 너무도 허탈합니다. 온갖 주변 설정들과 인물들이 산발적으로 흩뿌려진 데에 대한 서사적 책임은 거의 없습니다. 두 배우는 클라이맥스에서 나름의 감정을 폭발시키는데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구요. 정작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윤희와 쥰의 관계는 그 특유의 애매함 그대로 방기 되는 가운데 두 배우의 개인 기량이 영화가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는 걸 간신히 방어하는 인상입니다. 더 골 때리는 건, 이후의 맥락과 수습을 윤희의 입을 빌린 [대사]로 설명한다는 점입니다. 더 더 골 때리는 건, 로맨스 영화의 마지막을 식당 면접으로 접수한다는 거구요. 세상에나.

 

 

 

 

 

 

# 6.

 

인물 밸런스 또한 애매합니다. 새봄은 철저히 부차적인 인물이지만 너무도 많은 분량과 서사적 짐을 혼자 짊어지고 있습니다. 윤희와 가장 적극적으로 교감해야 할 쥰은 되려 자리를 잃고 서사에서 밀려나 내레이터로 전락해 있죠. 주인공 윤희는 감정적인 짐들을 모조리 짊어지고 있는 데 반해 서사에 녹여낼 공간은 할당받지 못해 영화 내내 담배나 피우고 술이나 마십니다. 경수는 여자 친구 덕에 제법 많은 분량을 할당받고 있지만, 여배우만 득실거리는 작품의 분위기를 환기해줄 꽃병풍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 인물은 '윤희와 쥰이 만난다.'라는 이 짧은 이야기를 굴리는 동안 영화의 분량을 채워줄 소품 1에 불과하기에 없어도 영화가 굴러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죠.

 

미안한 이야기지만 김소혜의 연기는 아쉽습니다. 배역의 난도가 커리어에 비해 너무 어려워 보였달까요. 새봄은, ⑴ 진로 결정을 앞두고 있는 학생 감정 표현에 서툰 소녀 편부모 가족으로 인해 철이 빨리든 딸 엄마와 아빠의 연결고리 '경수'의 여자 친구 남자 친구와 떨어져 지내는 선택을 앞둔 애인 이혼한 아빠의 새 아내를 만나는 딸 이혼한 엄마의 전 여자 친구를 찾아 나서는 딸입니다. 대단히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입장과 설정이 중첩되고 또 중첩된 캐릭터라는 거죠.

 

하지만 연구가 충분하다는 느낌은 전달되지 않습니다. 소화하는 대사에서 일상성도 옅고 배경에 따른 입체성도 옅습니다. 감정도 잘 안 읽히고 운율도 없구요. 아니, 막말로 누가 저렇게 시종일관 딱딱하게 말을 하나요. 영화를 보는 동안 '이 아이가 이렇게 어딘가 어긋난 듯한 무미건조한 성격이 된 이유를 설득하는 후반부의 서사가 없다면 곤란하겠는걸?' 싶었는데 역시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김희애랑 한 컷에 나오는 분량까지 많다 보니 직접적인 비교가 되는 바람에 더 도드라져 보인 것도 있구요.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김희애의 표현을 감상하는 동안의 만족감은 분명 있습니다만 그와 별개로 굳이 한 명을 특정하지 않더라도 배우들마다 연기의 톤이 다 다르다는 느낌도 영화 관람을 불편하게 합니다. '감정의 밀도'는 당연히 인물마다 다를 수 있고 또 달라야 합니다. 입장이 다 다르니까요. 하지만 단일한 작품 내에서 최소한의 일관된 표현 양식은 필요합니다만 이 영화는 그러하지 못합니다. 배역마다 대사를 소화하는 방식이 제 각기입니다. 새봄과 윤희가 지금 같은 작품을 하는 게 맞나? 쥰과 가족의 대화는 직전의 윤희와 새봄의 『윤희에게』와 같은 영화인 게 맞는 거야?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하죠.

 

 

 

 

 

# 7.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지막 윤희의 대사 한마디 하려고 만든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그거 하려고 눈 쌓인 일본 간 거구요. 그거 하려고 감각적이고 도치된 대사를 그렇게도 많이 쏟아낸 거죠. 감성적인 로맨스의 탈을 쓰고 있지만 영화의 당위는 철저히 소수자 평등의 가치에 대한 윤리성에 기대는 가운데 길 잃은 서사는 특유의 분위기와 허세 대사로 분칠 되어 있습니다.

 

... 물론 제 박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새하얀 일본의 설경과, 주연 배우의 열연과, 사랑이란 감정이 가공할 파괴력을 과시하긴 합니다. 글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재미있게 보려면 재미있게 볼 여지는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칩니다. 눈 쌓인 풍경 보다 보면 이쁘긴 이쁘거든요. 유재명의 오열과 김희애의 어깨가 들썩 거리는 걸 보면 울컥하긴 하거든요. 소혜가 귀엽고 사랑스럽기는 하거든요. 마지막 딸의 카메라 앞에서 웃는 윤희를 보면 파이팅 하는 거 같고 흐뭇하긴 하거든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각각 파편적인 소재의 힘이지, 적어도 연출의 힘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좋은 소재를 썼다는 사실만으로 잘 만든 영화라는 평가의 근거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임대형 감독, <윤희에게>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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