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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방치된 사람들에 대한 진중한 시선 [미쓰백, 이지원 감독]

그냥_ 2018. 10. 16.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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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소외된 사람들의 상처, 그리고 그 모두에 대한 연민을 이야기합니다. 주요 인물들은 모두가 소외되고 고립된 사람들입니다. 미쓰백과 지은은 물론이거니와, 미쓰백에게 절망적인 유년기를 물려준 엄마 정명숙, 심지어 지은의 아비 김일곤과 그 애인 주미경도 악인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의지할 곳을 상실한 사람들이죠. 그들의 서로에 대한 폭력과 냉소의 연쇄, 대물림의 참상이 이어집니다. 그 사슬을 끊어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대한 감독 나름의 대답을 이야기의 형식으로 풀어갑니다.






미쓰백 포스터




'이지원' 감독,

『미쓰백』 입니다.






지옥같은 연쇄를 끊어낼 수 있을까


감독은 사각지대에 방치된 위태로운 삶을 이야기합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상처받은 인물들 사이사이로 각자의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아이가 화장실에 갇혀 있는 그 집 맞은편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맨발에 상처투성이 아이가 돌아다니는 길가에도 어른은 있습니다. 경찰은 폭력으로부터 도망친 아이를 폭력의 가해자에게 인도하고, 실종된 아이를 찾는 형사들의 협조 요청에 상인은 귀찮아합니다. 고독사와 사회 안전망을 규탄하는 TV 소리가 내내 울려 퍼지지만, '고립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라는 담론'이 관심을 받느라 정작 사각지대의 사람들은 더욱 외면됩니다. 물리적인 고독이 아닌 관심의 기아를 이야기하는 셈이죠아동학대가 발각되고, 경찰에 붙잡힌 지은의 아비는 끌려나가며 소리칩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걔라고 뭐 다를 것 같아?!!" 감독은 연민과 보호와 연대를 통해 소외와 고립의 연쇄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영화 시작, 미쓰백은 세차장에서 손가락 끝을 다칩니다. 홀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미쓰백 앞에 나타난 헐벗은 아이, 지은의 손가락 끝에도 깊은 상처가 있죠. 이야기가 흘러가며 아이의 상처는 더욱 가혹한 학대로 깊어갑니다.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매만지며 미쓰백은 지은의 상처가 늘어날 때마다 밴드도 붙여주고, 장갑도 씌워줍니다. 같은 곳에 난 상처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두 캐릭터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관계는 차근차근 맺어집니다.




미쓰백 A








서로를 지키는 두 사람


서사 상으로는 미쓰백이 일방적으로 지은을 구하지만, 물리적인 표현의 적극성은 오히려 지은이 가져갑니다. 줄곧 지은이 먼저 미쓰백 앞에 나타나고, 먼저 이름을 묻고, 또 먼저 이름을 부릅니다. 먼저 손을 잡고, 먼저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이 서사가 단순히 미쓰백이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이유로 시혜적인 관점에서 지은을 구출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쓰다듬고 치유하는 상호적 관계라는 걸 은유하는 거겠죠. 동시에, 클라이막스에서 아이를 지키기로 마음먹은 미쓰백이 처음으로 먼저 지은의 손을 꽉 움켜쥘 때, 극적인 느낌이 강조되는 효과도 생깁니다.


폭력에 견디다 못한 지은은 좁은 화장실 창문으로 탈출을 시도합니다. 높은 건물 밖 창틀을 붙잡고 벽에 매달려 있는 장면은, 아비의 폭력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구체적인 상황과 동시에 아이의 발 디딜 곳 없는 위태롭고 절박한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아이는 결국 누구도 받아내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지게 되죠. 아이를 받아내는 슈퍼맨은 현실엔 없습니다. 음... 네. 차가운 아스팔트 위, 상처투성이 맨발은 폭력으로부터 벗어난 곳이란 게 고작 차가운 아스팔트라는, 방치된 아이들의 처참한 현실을 직접적으로도, 동시에 은유적으로도 전달하는 좋은 연출입니다. 여러모로 굉장히, 굉장히 가슴 아프네요.


도망친 아이를 끌어안고 미쓰백은 어느 모텔로 향합니다. 우선 상처와 먼지로 뒤덮인 아이를 씻겨야 하죠. 그런데, 학대로 인한 화장실 트라우마가 있는 지은은 쉬이 들어서지 못합니다. 쭈뼛쭈뼛 어쩔 줄 모르는 지은을 본 미쓰백은 자신의 웃옷을 벗어 등에 난 큰 상처를 보여줍니다. 지은은 문턱을 넘어, 미쓰백을 끌어안죠. 지은의 트라우마를 위로하기 위해 미쓰백은 자신의 유년기 상처를 극복하고, 마찬가지로 미쓰백의 상처를 위로하기 위해 지은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합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합니다.











온기가 전해지는 섬세한 연출

지은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주미경의 뒤를 쫓는 미쓰백이 터널의 그늘에 서 있고, 지은이 그 경계를 넘어오려는 찰나에 멈춰 세우는 장면. 자신과 같은 어두운 삶으로 아이가 들어오지 않았으면 하는 미쓰백의 마음과, 어둠으로 걸어 들어가는 미쓰백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암시를 함께 주는 씬입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의지로 그 경계에 서서 미쓰백을 '지키던' 혹은 '지켜보던' 지은으로 인해 미쓰백은 살인자가 될 뻔한 위기에서 오히려 구원되기도 하죠. 영화의 주제의식을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장면입니다.


오프닝과 엔딩이 호응하는 방식도 좋았습니다. 오프닝에서 미쓰백이 지은을 처음 만난 날. 쭈그려 앉은 지은을 뒤돌아선 미쓰백이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엔딩에선 쭈그려 앉은 미쓰백이 일어서며 지은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이어받습니다. 이 모든 서사가 방치된 서로를 힐끗 '발견'하면서 시작해 똑바로 '응시'하면서 끝난다는 걸 표현합니다. 


서사 외적으로 가볼까요. 음... 전체적으로 폭력 묘사가, 특히 아이에 대한 폭력 묘사의 수위가 상당합니다. 사람에 따라 보기 불편할 수 있을 정도로요. 다만, 그게 'V.I.P'처럼 감독이 대충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된 건 아니고, 의도가 담겨 있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불편한 폭력장면들에서 눈을 질끈 감으려던 찰나, '불편함도 외면의 한 이유가 될 수 있겠다.', '내가 눈을 감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런 현실을 살고 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더 중요한 메시지를 위해 굳이 관객에게 불편한 걸 일부러 보여주는 게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덩케르크'의 연출도 얼핏 떠오릅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야, 악역 설계하기 정말 어려웠겠다.'란 생각도 했습니다. 주미경과 김일곤은 아동 폭행, 아동 살인미수라는 '쳐 죽여서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미친 개또라이들'이면서, 동시에 이들 역시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거든요. 백상아의 엄마 정명숙 또한 그러합니다. 이들을 마냥 악마적으로만 그리면 주제의식이 흐려지고, 이들을 어설프게 공감해 품으려 들면 폭력의 책임을 사회로 돌리는 비겁한 영화가 되어버릴 겁니다. 감독으로선 밸런스를 잡기가 만만찮았을 것 같은데, 이 포인트로도 영화를 보시면 또 다른 맛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쓰백 B








좋은 배우들의 진심어린 연기


대사도 건질 게 많습니다. 아이의 손에 쥐어진 천 원짜리를 보고 미쓰백이 무슨 돈이냐고 묻자, 지은은 이렇게 답합니다. "때리면... 돈 줘요." 이 한마디 대답으로 폭력의 일상성과 몰인간성이 한방에 전달됩니다. "나 좀 잡아가 주세요.", "나한테서 달아나, 멀리."라 말하는 정명숙의 대사도 기억에 남네요.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부터 누군가 잡아가 주기를, 스스로도 달아나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요. 이 엄마는 한 달간 시신이 방치된 채로 고독사하게 됩니다...


"미쓰백은 미쓰백이 싫어요?"라는 대사도 있습니다. 미쓰백과 지은의 경계가 무너져 내리는 중에 아이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이렇게 묻는데요. 여기서 앞의 미쓰백, 또 뒤의 미쓰백은 각각 누구 혹은 무엇일까? 란 생각을 했습니다. 고민하게 되죠. "내가 배운 건 없지만, 물려줄 것도 없지만, 대신. 니 옆에 있을게. 지켜줄게."라는 미쓰백의 말에 지은은 "나도 지켜줄게요" 라 답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이건 사실상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는 거죠. 좀 노골적이긴 합니다. 만, 뭐 이 정도는.




배우들 연기는 뭐,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스쳐 지나는 조연까지. 미쓰백, 백상아 역의 한지민은 본인의 영화 연기에 있어 정점을 한번 찍는 느낌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한지민, 말도 안 되게 이쁘거든요? 근데 세차장에서 쪼그려 앉아서 차 닦는 모습을 딱 보는 순간부터 이쁜 게 눈에 안들어옵니다. 연기가 좋아서 캐릭터에 빨려들어 버리거든요. 진짜루요, 한지민인데요. 지은 역의 김시아 양은... 어린 친구한테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솔직히 미친 거 같습니다. 너무 잘합니다. 너무너무 잘합니다. 어린 애들 불러다 개다리춤 추게 하고 엉엉 울린 다음 영화 천재라고 마케팅하는 그런 장사용 아역이 아니라, 이 친구는 진짜 연기가 좋았습니다. 캐릭터를 이해하고, 감정을 캐치해서, 뚜렷한 의도를 가지고, 그 지점을 표현하려고 한다는 게 팍팍 느껴집니다. 배역의 난이도도 그 '도가니'에 비할 만큼 어려운데 말이죠.


주미경 역의 권소현은 이쁜 배우한테 미안한데 진짜 미친 X 같았어요. 암수살인에서도 그렇고, 어려운 배역들에서 좋은 연기 해줘서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근데 길가다 만나지는 맙시다. 다리 풀릴 거 같아요;; (ㅋ) 이희준이나 장영남은 뭐, 다들 아시다시피 원래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잖아요? 그래서 당연하다는 듯 연기 잘해줍니다. 아 참, 장섭의 누나로 나오는 김선영 배우. 식당 하는 동네 아줌마를 진짜 데려오면 어쩌자는 겁니까? 이분은 그냥 이희준 친누나 데려온 줄 알았습니다. 지금도 이희준 집에 가면 있을 거 같아요.










한국영화의 힘

여러모로 이창동 감독의 '밀양'과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동시에 생각나는 영화였습니다. 한국영화 퀄리티 총량의 법칙 같은 거라도 있는 걸까요. 전반기의 개똥작들은 이런 영화들의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을까요. 제가 이해하는 한국영화란 '인간의 삶과 내면에 대한 진중하고 끈덕진 조명'입니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이 영화는 참 한국영화스러운 한국영화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 글에서 올해 지금까지 본 한국영화 중에선 개인적으로 암수살인이 1등인 것 같다고 말씀드린 적 있는데요. 그 의견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여전히 암수살인이 더 '잘 만든 영화'라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가장 사랑스러운 영화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전 이 작품을 고르겠습니다. 그래요, 단독주연 여배우는 이렇게 쓰는 겁니다. 미옥이나 악녀 따위가 아니라. 감독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영화, 이지원 감독 작, 미쓰백이었습니다.




아참, 사족을 하나 달아보자면, 영화를 보실 분들, 혹은 영화를 보신 분들이시라면 장섭의 누나. 그 누나의 캐릭터를 집중해서 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전 이 배역이 감독이 관객을 영화 안으로 부르는 캐릭터라 생각하거든요.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는 "Daum 영화"와 "IMDb"에 공개된 이미지만을 활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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