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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땅의, 땅에 의한, 땅을 위한 _ 명당, 박희곤 감독

그냥_ 2018. 9. 24.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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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월세 15만 원짜리 반지하 단칸방에서 종부세 기사들을 읽으며 현타가 오던 차에, 민족의 명절 추석을 맞아 조물주 위의 건물주가 되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돈 많은 인간과 권력 잡은 인간과 왕손 금수저가 비싼 땅을 놓고 2시간 동안 싸우는 영화를 만들었다기에 보고 왔습니다. 역시 현실도피엔 대리만족만 한 게 없죠. 문제는 이 영화가 대리만족도 제대로 못시켜주는 영환 줄은 몰랐단 거지만요.

 

 

 

 

 

 

 

 

'박희곤' 감독,

『명당 :: FENGSHUI』입니다.

 

 

 

 

 

# 1.

 

요약이랄 것도 없습니다. 이 영화는 그냥 땅이에요.

 

모든 게 땅입니다. 이원근이 고생하는 이유도 땅 때문이고, 조승우가 망한 것도 땅 때문이고, 백윤식이 잘 나가는 것도 땅 때문이고, 김성균이 막 나가는 것도 땅 때문이고, 지성이 고종 아빠 되는 것도 땅 때문이고, 문채원이 죽는 것도, 조승우 가족이 죽는 것도, 박충선이 죽는 것도, 심지어 조선이 망한 것도, 우리나라가 독립한 것도 몽땅 다 땅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는 땅 때문에 생겨났다 땅으로 해결됩니다. 덕분에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땅바닥처럼 평면적이고, 개연성은 땅에 처박히다 못해 아주 땅을 파고 들어갑니다. 영화 제목도 땅이고,감독의 명성도 땅에 처박히게 생겼죠. 모든 것이 땅을 기는 동안 그 위에 고고히 서 있는 건 킹갓엠페러제너럴충무공마제스티 문채원 님의 미모뿐입니다.

 

 

 

 

 

 

# 2.

 

이런 류의 영화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한재림 감독 작 <관상>과 비교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실존했던 역사적 사실에 토속적인 아이템을 욱여넣는 다른 모든 영화들 처럼요. 가볍게 두 영화를 비교해 봅시다.

 

관객은 역사의 큰 줄기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세조가 반정해서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한다든지, 흥선군이 파락호 연기를 하며 기회를 엿보다 결국 아들을 고종으로 만든다든지 하는 사실들 말이죠. 감독은 이미 알려진 역사 속에 기록의 얼개가 헐거워지는 틈을 찾아 상상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상상력의 매개가 되는 아이템은 큰 역사의 흐름에 밀착하되 개입하지는 않도록 해야 하죠. 어렵네요.

 

<관상>은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낼까요. 한재림 감독은 주요 인물들, 특히 역사적 인물들이 관상을 중심으로 바라보되 인물들이 관상에 목을 매지는 않게 합니다. 송강호는 관상쟁이니 그걸로 밥을 먹을 뿐이고, 혜수 누나는 용한 관상쟁이로 돈을 벌려 할 뿐입니다. 납득이에게 송강호는 친한 형일 뿐이고, 심지어 아들 이종석은 강직한 유학자로 관상을 배격합니다. 버거킹이 '어디,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 묻는 것도 어디까지나 승자가 패자를 조롱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김종서 등도 기울어가는 형세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관상을 붙잡을 뿐입니다. 현대라면 관상 따위 지푸라기조차 되지 않겠지만, 시대를 감안한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용인하고 몰입할 수 있죠.

 

 

 

 

 

 

# 3.

 

반면 명당에서는 주요 인물 모두가 땅에 완전히 매몰되어 버립니다.

 

자기들 딴에는 심각한데 관객 눈엔 하나같이 멍청해 보입니다. 묫자리 하나 때문에 그것도 다른 조상은 안 된다는 지관 한 명의 말 때문에 시신이 필요하다고 아비를 죽인다구요? 정치적 입지를 물려받는 것 따위는 나몰라라 하고? 덕분에 김병기는 미친놈처럼 보이는 덴 성공했지만 동시에 머저리가 되어버립니다. 더군다나 가야사에서의 칼부림은 뭔가요. 그래요, 뭐 칼부림은 졌다 칩시다. 왕도 무릎 꿇리는 정도의 세도가라면 다음날에라도 사병 둘둘 감고 가서 흥선을 죽이면 되지 않나요? 근데 김병기는 가야사 땅을 뺏겼다는 이유 하나로 쿨하게 흥선군 밑으로 들어갑니다?!

 

저기요!!! 너 방금 니가 왕 해보겠다고 니 아빠 죽이고 왔어요, 이 등신아!!!!!

 

 

 

 

 

 

# 4.

 

대원군도 코미딘 게 그전까지의 바보 연기를 벗어던지는 계기가 고작 자기 손으로 가야사에 불을 지르기 때문인가요? 가야사에 불을 질렀다 칩시다. 여전히 세도가는 건재하고, 헌종은 젊은 나이에 요절해서 철종기로 넘어가고, 대원군은 상갓집 개일 뿐이지 않나요? 뭐가 달라졌단 거죠? 커밍아웃의 계기가 너무 허접하지 않나요?

 

갑자기 쥐뿔 없는 상태로 조선 최대 권력자 앞에서 본색을 드러내고 칼부림을 해버리면 뒷수습은요? 가야사에서 졌다고 김병기가 쿨하게 무릎을 꿇는 찐따가 아니었으면 어쩌려구요. 이해하기 힘들죠? 골치 아파 보이죠? 이런 부실한 영화의 감독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는지 다들 아실 겁니다. 네, 그냥 모른 척 넘어갑니다. 겉멋 든 자막 옛서체로 깔고 치우죠. 여러분 이제와서 티켓값 못 돌려줘요~ 그러니 잔말말고 꺼지세요~ 엔딩 크래딧 발사~!

 

'박재상'은 신입니다. 아들이 공부를 안한다? 책상만 돌려 놓으면 됩니다. 후사가 안보인다? 박재상이 시키는 대로 이사가면 됩니다. 장사가 안된다? 박재상이 말하는 풍수만 따르면 됩니다. 왕이 되고 싶다구요? 용한 지관 하나 물면 까짓거 못할 것도 없습니다. 명당으로 이야기를 풀다 못해 모든 서사와 인과를 땅 아래 무릎 꿇리다 보니, 결과적으로 땅을 읽는 사람이 거의 절대자의 권능을 가지게 됩니다.

 

 

 

 

 

 

# 5.

 

모든 게 땅,땅,땅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캐릭터의 운신의 폭이 극단적으로 좁습니다.

 

박재상은 직업만 지관일 뿐 전형적인 진지충 충신 롤입니다. 김좌근 역시 전형적인 무표정한 얼굴의 인간미 없는 권력자 롤을 맡습니다. 김병기는 야망 있는 악독한 이인자의 클리쉐를 기계적으로 따라가고, 헌종은 2시간 내내 놀라고 화내고 울고 놀라고 화내고 웁니다. 그나마 이하응은 어느 정도의 자유를 가진 입체적 인물로 그려지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이 그러한 덕이지 감독의 역량은 아닙니다.

 

 

 

 

 

 

# 6.

 

때문에 배우들도 자신이 가진 능력에 비해 충분한 성취를 얻지 못합니다. 다재다능한 배우 조승우는 2시간 내내 인상만 써야 했습니다. 조폭 행동대장과 삼천포,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배우 김성균은 2시간 내내 화내거나 부들부들 떨기만 합니다. 충무로 최고의 씬스틸러 백윤식 배우는 2시간 내내 오천 원짜리 지폐에 나오는 모자 쓰고 천 원짜리 지폐에 나오는 율곡 선생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소리만 칩니다. 전도유망한 이원근 배우는 2시간 내내 분하다가 울고, 분하다가 웁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흥선역의 지성 배우와 구용식 역의 유재명 배우는 풍부한 연기를 보여주긴 합니다. 유재명은 관객들이 진지한 톤의 영화에서 받을 스트레스를 훌륭히 덜어줍니다. 그런 배역의 경우 자칫하면 혼자만 따로 놀게 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그런 실수도 없습니다. 지성은 표정 연기가 매우 좋습니다. 야망을 품은 이하응의 내면과 파락호 이하응의 능청을 한 얼굴에 동시에 표현하는 데 성공합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도 그 표정 연기 만큼이나 훌륭하고요. 물론 그럼에도 지성의 연기력 따위는 문채원 님의 미모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갓채원 님이 한복을 입고 있는 데다 심지어 기생 역이에요. 갓띵작 인정합니다. 초선이라는 캐릭터는 다소 진부했지만 알게 뭔가요.

 

 

 

 

 

 

# 7.

 

다만 갓채원의 미모에도 불구하고 이건 지적해야겠어요. 이 결말은 대체 뭔가요. 개나 소나 다 아는 고종, 순종 이후에 조선이 망한다느니 하는 게 무슨 의미심장하기라도 하다는 듯 자막으로 넣는 꼴값은 그렇다 칩시다. 근데 독립군을 박재상 앞에다 데려다 놓고 또! 또! 또! 땅을 물어보게 한다니요. 이래 버리면 우리가 독립한 게 고작 땅 잘 봐서 그런 거 같잖아요? 씨X년아? 

 

사람들이 명당이 어쩌고 관상이 어쩌고를 받아들여 줄 수 있는 건 조선 시대까지 입니다. 일제강점기로 끌고 나오는 건 완전 무리수죠.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났다는데 그동안 박재상은 아무런 성장도 없는 인간인 건가요. 애초에 독립군을 들먹이는 것부터가 무리수지만 굳이, 굳이 쓰고 싶었다면 '결국 터는 터일 뿐이고 운명을 만드는 건 사람이다. 만주가 척박해 보여도 여러분이 진심을 다하면 어디서 있든 언젠가 나라를 찾을 것이다.' 라는 식으로 푸는 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이 씬 전체가 사족이란 건 전혀 달라지지 않겠지만요.

 

 

 

 

 

 

# 8.

 

영화가 땅땅거리는 탓에 여기저기 땅들을 많이 찍기는 합니다. 그림은 적당히 볼만하죠. 하지만 이야기와 조응하지 못하는 떼깔만큼 허무한 것도 없습니다. 그 악명높은 '고산자, 대동여지도'도 그림은 이쁘니까요. 비싼 카메라, 유능한 촬영감독 써서 냅다 찍어다 후보정 겁나해서 눈뽕 줬더니 관객들이 그림은 이쁘다고 해주네? 정신 차리세요. 이건 칭찬이 아니에요. 영화는 이야깁니다. 이쁜 그림을 보고 싶었으면 갤러리를 갔지 영화관을 왜 가.

 

결국 영화 속 인물들만 진지할 뿐 관객에겐 바보짓하는 걸로만 보입니다. 유능한 배우들이 참사를 막기 위해 몸을 던져가며 고군분투하고 일견 성공하기도 하지만 참사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하... 언제까지 한국영화 보면서 연기는 좋았네, 그림은 좋았네, 소리만 해야하는 건지... 2시간 내내 좋은 땅을 찾아 헤메는 이 영화의 제목은 명당이라는 데, 글쎄요. 정작 영화가 누운 자리는 영~ 아니올시다. '박희곤' 감독, <명당>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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