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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20% 부족할 때 _ 아메리카 타운, 전수일 감독

그냥_ 2018. 12. 1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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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미군부대 근처에 만들어진 기지촌, 그곳에서 자의 반 타의 반의 성매매를 했던 소위 '양공주'들과 그런 양공주에게 첫사랑을 느낀 사진관 소년의 비극입니다. 오프닝의 콘돔이 버려진 차갑고 건조한 벌판, 그 위를 가르는 찢어질 듯한 비행기 소리처럼 일관되게 삭막하고 투박합니다. 모든 순간에 온기도 정서도 없습니다. 다들 나름의 절실함을 살지만 그들 모두는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만 알았던 시대,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만 알았던 공간을 다룹니다. 아이템은 매력적이죠. 아이템만 매력적이란 게 문제지만요.

 

 

 

 

 

 

 

 

전수일 감독,

『아메리카 타운 :: America Town』 입니다.

 

 

 

 

 

# 1.

 

냉정히 만족스러운 점수를 주진 못할 것 같습니다. 주조연 가릴 것 없이 배우들의 억양이나 대사처리에 있어서 아쉬움이 보인다던지, 공간과 캐릭터 전반에서의 디테일이 비어있거나 뭉개져 있다던지, 이유 없이 동원되었다 휘발되는 번잡한 장치들이 너무 많다던지 하는 등의 단점들을 짚어보기 이전에 일단 주제의식 전달이 안 되거든요.

 

감독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메리카 타운 속 양공주들의 삶을 진중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건가? 라기엔 내용이 없어요. 그녀들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도 너무 부실하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미군에게 몸을 파는 사람의 위태로운 내면에 대한 묘사도 부실하거든요. 그렇다고 자의로든 타의로든 기지촌으로 내몰린 이들의 과거와 속사정에 대한 서사라도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 2.

 

고발적 시각에서 시대의 구조적 모순을 조명하려는 건가? 라기엔 감독이 포착한 이 시대만의 고유한 디테일이 거의 없습니다. 막말로 서사를 뚝 떼어다가 80년대 경제 성장기 양아치들 상대로 일하던 창부의 이야기로 바꿔도 진행되는 데 막힘이 없거든요. 지구 반대편 멕시코 같은 곳에서 마약 팔이 상대로 강제로 몸을 파는 여자들로 바꿔도 서사가 흘러가는 데 전혀 지장이 없으니 말 다한 거죠.

 

혹시 시대는 맥거핀인 건가? 소년에 포커스를 맞춰 그런 불행한 시대와 불행한 공간에서 핀 비극적인 짝사랑을 이야기하려는 건가? 라기엔 소년의 내면도 묘사가 없긴 매한가지입니다. 소년이 영화 내내 하는 거라곤 섹스 한 번하고 몇 번 쭈뼛쭈뼛 찾아갔다가 미군 뚝배기를 깨고 지 살려고 첫사랑 팔아먹은 게 다거든요. 소년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나 첫사랑에 빠진 사람으로서의 묘사는 눈 씻고 봐도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감독을 이해하기 위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려 해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결국 마지막에 자막으로 나오는 '성병관리소에 감금된 여성들이 나오려고 절규하는 모습이 원숭이 같다고 하여 미군들은 이곳을 '몽키하우스'라고 불렀다.'라는 취재를 통해 알게 된 한 문장을 그리 깊지 않은 나름의 사명감, 혹은 부채감 같은 게 발동해 영상화해봤어! 정도의 결과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 3.

 

목표의식이 희미하다 보니 영화에 나열된 아이템들은 중구난방으로 튀는 데 하나같이 따로 노느라 접붙이기가 거의 안됩니다. 소년의 집은 왜 때문에 사진관을 하는 걸까요? 그냥? 소년이 시대의 프레임을 벗어난 관찰자인가? 라기엔 플롯에 너무 중요한 인물인데요? 사진관 대신 슈퍼마켓이면 안될 이유라도 있나요? 없죠. 수차례 삥 뜯기는 건 소년의 불우한 삶을 묘사하는 건가요? 그럼 초반의 동전 따먹기는 왜 나온 거야? 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얻어터지는 걸 보니 친구라곤 하나도 없나? 싶었더니 또 약을 빨 때는 친구들이 득실득실합니다? 어쩌자는 거죠?

 

허구헛 날 출장 핑계로 계집질 하는 아비는 아들에게 관심이 있는 건가요, 없는 건가요. 아빠는 소년이 엄마 얘기를 꺼내는 걸 싫어하는데, 아들이 몰래 엄마의 사진집을 만드는 걸 알았네요? 세상에 아들이란 놈이 도망쳐 외박을 하고 들어왔는데... 아빠는 또 그냥 출장을 갑니다? 뭐 화를 내건 괜찮다고 하건 하물며 너도 니 어미에게나 가버리라는 둥의 막말을 하건 그런 거 없나요? 아니지, 그전에 이 죽은 엄마라는 아이템은 왜 나온 거죠? 이 설정 역시 여지없이 휘발됩니다. 양공주가 자기 엄마에게 돈을 붙이는 걸 보며 모성에 대한 갈증을 매개로 인물 간의 내적 접점을 찾으려나 싶었더니 그런 것도 없습니다. 두 인물 사이에 존재하는 건 성병과 깨진 미군의 뚝배기뿐이죠.

 

 

 

 

 

 

# 4.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개인의 삶과 사회적 문제가 분리될 수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글쎄요. 그러려면 '기지촌'과 '미군' 그리고 '양공주'라는 이질적이고 파괴적인 사회적 현상이 소년의 첫사랑을 일반적인 궤도 밖으로 탈선시켰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얻는 소년의 불행은 첫사랑이 하필 '양공주'라 성병이 옮았다가 전부죠. 2010년대에 꼬마가 원나잇 했는데 잘 못 걸려서 성병 걸렸다여도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건 명백히 목적의식의 실패죠.

 

의도는 좋습니다. 의도는 좋아요. 원래 사각지대 보다 사각지대로 명명된 지점조차 벗어난, 이름조차 붙여지지 못한 곳이 더 추운 법이니까요. 사회가 점차 사각지대에 카메라를 들이밀 때 마다 그곳에서조차 벗어난 누군가는 분명 더 외로웠을 겁니다. 윤리적 올바름은 사회학자의 몫이고 시대적 의의에 대한 평가는 역사학자의 몫이라면, 영화감독의 몫은 그런 곳에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카메라에 담아 전해주는 것이겠죠.

 

하지만 세상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의도만 좋은 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가 존재해야죠. 이 영화는 그게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방치된 사람들의 삶을 가져다 다시 방치하는 걸 보는 게 유쾌할 만큼 전 문제적인 인간은 아닙니다. 전수일 감독, <아메리카 타운> 이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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