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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불안을 다독이는 영화라는 축복 _ 라모나, 안드레아 바그네이 감독

그냥_ 2024. 1.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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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안정과 충동 사이에서 불안한 인간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확장되는 시네마

 

 

 

 

 

 

 

 

 

안드레아 바그네이 감독,

『라모나 :: Ramona』입니다.

 

 

 

 

 

# 1.

 

주인공은 둘입니다. 하나는 불안한 인간 라모나구요, 둘은 그런 불안한 인간에게 있어 영화의 의미라 할 수 있겠죠. 최대한 있어 보이게끔 말을 굴려보자면 안정과 충동 사이에서 불안한 인간,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확장되는 시네마랄까요.

 

라모나는 '불안'한 인간입니다. 부정하든 극복하든 분출하든 어떻게든 불안을 처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자, 희망이나 욕망이 아닌 불안에 근거해 행동하는 사람이죠. 고아라는 설정은 최소한의 기반조차 없다는 면에서 불안에 내동댕이 쳐진 인물의 처지를 과장합니다. 구체적 개인임과 동시에 보편적 도시인이기도 합니다. 클래식 음악 위로 비추는 마드리드의 전경과, 핀초가 진열된 바에서 나누는 "도시인은 모두 불안하다"라는 대사는 명시적인 근거가 됩니다.

 

우연히 만난 영화감독 브루노는 '충동'을 상징합니다. 라모나와 브루노는 불안(환경오염)을 매개로 급격히 친해지는 데요. 불안에 대한 브루노의 대응은 당장 생선을 사서 얼린다는 충동적 행동이었죠. 하고 싶은 말을 담아두면 췌장암에 걸린다는 독설이라거나, 생약으로 가시지 않는 불안을 이기기 위해 술을 마시고 담배를 권한다는 것 역시 충동의 이미지에 기여합니다. 물론 니코틴 없는 담배라는 면에서 불완전성이 지적되고 있긴 하지만요. 충동은 '하강'으로도 연결됩니다. 마지막 브루노와의 이별이 계단을 내려가는 지하철인 이유죠. 내려가는 것은 편하고 쉽고 안전하지만, 고립되고 어둡고 허무합니다.

 

 

 

 

 

 

# 2.

 

오래전부터 만난 애인 니코는 '안정'을 상징합니다. 니코는 여러 면에서 브루노와 대비됩니다. 안정은 '상승'으로 연결됩니다. 함께 사는 집이 까마득한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올라가는 것은 건강하고 도달한 곳은 밝지만 그만큼 힘들고 파괴적이고 두렵기도 합니다. 길목에 갱단과 강간범이 도사리고 있는 듯 말이죠. 니코의 직업인 요리사 역시 안정의 건전함을 은유하는 데요. 동시에 다이어트를 방해하고 살찌게 만든다는 면에서 태만할 위험이 공존하기도 합니다. 니코와 만나며 해온 보모일이라거나 번역과 학위 취득들 모두 안정과 관련됩니다. 브루노의 술과 담배에 배치된다 할 수 있겠죠.

 

라모나는 브루노와 니코라는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안정과 충동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니코는 안전하고 윤리적인 반면 브루노는 위험하고 비윤리적입니다. 하지만 니코는 불안으로부터 구원해주지 않고 브루노는 적극적으로 그녀를 보호해 주기도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내려와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는 니코와, 집에 데려다주고 앞장서서 문까지 열어주는 브루노의 대비는 선명한 것이죠.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던 라모나는 결국 브루노를 찾아가 포옹할 수 있는 사람임과 동시에, 니코와의 관계도 공존시킬 수 있는 인격으로 성장하는 데요. 성장의 과정은 다름 아닌 영화의 프로세스 위에 녹여냅니다. 영화 내내 라모나는 두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코미디와, 불안에 대응하는 인간의 드라마를 오가는 데요. 이는 첫 오디션에서 코미디와 드라마를 준비했다는 설정으로 회귀되어 영화에 대한 영화임을 증명합니다.

 

 

 

 

 

 

# 3.

 

오디션입니다. 가짜 티가 역력한 금발 가발은 허구, 흰머리는 현실입니다. 스물다섯에서 서른까지 뽑는 오디션을 지원한 것은 허구고, 서른한 살의 나이는 현실이죠. 우디 앨런의 애니홀은 고아인 라모나가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면에서 명확한 허구지만, 불안을 이야기한다는 면에서 진심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오나'로서의 정체성과 '라모나'로서의 정체성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일련의 영화적 과정 속에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붕괴됩니다. 그 눈부심의 순간은 화려한 컬러를 통해 연출되고 있죠. 현실의 자아로 평가받는 것은 불쾌하고 허구의 자아로 평가되길 바라는 아이러니는 영화의 본질을 유머러스하게 통찰합니다. 캐스팅의 과정이 지나치게 '충동'적이라는 이유로 거절한 라모나를 오히려 '안정'(니코)이 설득합니다. 영화는 현실과 허구뿐 아니라 안정과 충동이 복합적으로 관계하는 공간임이 암시됩니다.

 

인터뷰입니다. 또 한 번 컬러화면이죠. 붉은 배경 대신 편안한 배경, 가발도 쓰지 않습니다. 대본처럼 들리지도 않습니다. 라모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럼에도 뷰파인더 앞에서 하는 말이라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앞서의 오디션이 허구 안에 숨은 현실이라 한다면, 인터뷰는 현실 안에 숨은 허구입니다. 두 상황을 뒤집어 대칭시킨 것이죠. 오디션과 인터뷰의 공통점은 '직시'한다는 점입니다. 같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라모나가 카메라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브루노와 마주 보는 장면에서는 흑백으로 전환되고 있으니까요. 컬러 화면 속의 라모나는 현실과 허구가 중첩된 영화 속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불안을 직시합니다.

 

리허설입니다. 라모나는 결과를 모르는 연기를 힘들어합니다. 불안을 지우기 위해 연기하는 데 불안을 지우지 못한다면 무의미하다 여기기 때문이죠. 심지어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다른 배우를 데려오자 모멸감을 표하며 프로젝트에서 이탈합니다. 자신의 불안이 이용당하고 소비당할 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충동에 배신당한 라모나는 사자굴이라는 이름의 외면으로 도피합니다. 편리한 도피를 경험한 라모나는 감정이 널뛰는 일 말고 평범한 일을 하고 아기를 가질 것이라 선언합니다. 충동(브루노)은 라모나를 찾아와 오해를 풀고 설득합니다.

 

 

 

 

 

 

# 4.

 

안정과 충동과 도피 가운데 선 라모나의 불안은 영화라는 예술로 승화됩니다. 그 순간의 화려함은 큼지막한 꽃과, 짙은 화장과, 벽 넘어 들리는 신음소리로 은유되고 컬러의 색감을 통해 완성됩니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안정(니코)은 어딘가 달라진 듯한 라모나의 마음을 의심합니다. 인생엔 영화 말고도 많은 것들이 있다는 말에 충동(브루노)은 돌아섭니다. 더 이상 자신의 불안을 안정에 보호받지도, 충동에 위탁하지도 않게 된 라모나는 스스로 균형을 찾습니다.

 

결말에서 짐을 정리하고 이사를 간다는 것은 갱단에 은유된 원초적 불안을 통제했음을 의미합니다. 서른두 살이 된 라모나가 여전히 오디션을 준비한다는 것은, 자신의 불안을 예술의 공간에 충동적으로 표출할 줄 알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20대들과 함께 밴드에서 노래한다는 것은 필요하다면 불안을 피해 갈 수 있는 지혜가 생겼음을 의미합니다. 니코와도 헤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현실의 안정과도 적당히 타협하는 어른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영화는 텅 빈 극장 한가운데 서서 막을 내리는 데요. 라모나는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직시'합니다. 그와 동시에 영화의 모든 흑백 화면은 관객의 뇌리 속에서 화려한 색으로 물듭니다. 모든 흑백의 시간들이 영화적으로 확장되는 결말인 것이죠. 특유의 화면비, 16mm 필름의 질감은 관객이 본 모든 프레임이 흑백의 표현과 별개로 그 자체로 영화였음을 증언합니다. 또한 일련의 갈등과 분투를 로맨틱하고 클래식하고 품격 있게 그린다는 면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영화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안드레아 바그네이 감독, <라모나>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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