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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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섹시한 가영씨 _ 밤치기, 정가영 감독

그냥_ 2018. 11. 1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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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영화를 좋아합니다. 좋은 감독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이야기를 듣노라면 고작 두어시간 동안만에 수십년의 인생을 덤으로 사는 느낌이 든 달까요. 문지방을 넘는 데만 성공하면 수백명의 사람들이 수백억의 돈과 수년여의 시간을 들여 만든 온전한 세계를 단돈 만원에 접할 수 있습니다. 엘프와 드워프가 오크 머릿수를 세는 헬름 협곡을 지나, 수다스러운 조지 클루니와 함께하는 우주를 건너, 시가를 비스듬히 문 제이미 폭스의 묵음 D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거 될 수 있는 환상적인 취미죠. 매주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기 무섭게 영화관을 찾는 건 아직 영화보다 더 남는 장사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영화보다 영화관이란 공간을 조금 더 좋아합니다. 사랑하는 커플들과 사랑하려는 사람들, 외로운 솔로들과 자녀 손에 이끌려 온 부모님, 옹기종기 모여 떠드는 아이들과 손 꼭 잡은 노부부까지. 다음주부턴 수능보느라 수고한 빛나는 학생들도 영화관을 많이 찾겠군요. 각기 다른 삶의 깊이와 궤적을 걸어온 사람들 모두가 어린 아이로 돌아가 한 몸처럼 눈을 반짝이는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영화보다 멋집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특색있는 영화관들이 많이도 없어졌습니다. 독립영화관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죠. 어릴 때만해도 그래도 도시마다 특색있는 극장들이 하나 쯤은 있었던 거 같은데요. 멀티플렉스가 전국에 쫙 깔린 후론 결국 다 문을 내리고 말았네요. 그래놓고선 CGV가 '아트하우스'라는 상영관을 런칭하던데... 글쎄요. 베베 꼬인 놈이라 그런진 몰라도 마치 제 손으로 야생동물 다 죽여놓고 멸종 위기종 동물원을 운영하는 걸 보는 기분입니다. 어차피 옥자 찍으며 배급사들에 찍힌 봉준호 감독이 고무장갑 쓰고 나타나 CGV 망해라고 해주면 좋겠네요.

 

여하튼 그래선지 몰라도 두어번은 꼭 인디영화를 봅니다. 영화관 나들이도 할 겸 있어보이는 척도 할 겸 또 웬지 모를 인디 영화에 대한 가벼운 부채감도 덜 겸해서 말이죠. 리뷰는 하지 않았지만 최근에 '너와 극장에서'를 봤었는데요. 그 옴니버스의 두번째 에피소드를 연출한 감독의 새 장편 영화가 이번에 아트하우스에 걸렸네요.

 

 

 

 

 

 

 

 

'정가영' 감독,

『밤치기 :: Hit the Night』입니다.

 

 

 

 

 

# 1.

 

섹스가 고픈 여자가 남자를 불러 하룻밤 내내 추는 구애의 춤입니다.

 

너무 짧은가요? 늘려보죠. 감독이 예전에 점 찍어둔 배우 하나를 캐스팅해다가 하루에 딸딸이를 3.5번 친 적 있는 지 물어보고, 시나리오 인터뷰를 미끼로 술을 나눠 마시더니, 냅다 같이 자자고 질렀다가 정색먹고 까인 다음, 파란색 정액에 대한 썰을 풀다가 사랑해 사랑해 해랑랑. 노래방에 소환된 폰팔이랑 키스를 하고, 처음의 남자를 불러다가 오늘 되게 좋았을 거에요. 맛있어 보이는 컵라면과 딱히 궁금하지는 않은 감독의 등짝을 보고 파파야의 사랑만들기를 들려주며 끝나는 영화입니다. 젊은 화이트 컬러의 욕구와 반전적인 도발. 그걸 담아내는 좌식형 식탁과 술, 투박하면서도 관음적인 카메라와 담담하면서도 화려한 대사빨. 그 너머 어디선가 불륜남의 소주 냄새가 나는 듯도 하지만, 적당히 넘어갑시다.

 

인디 영화라고 무조건 철학적으로 관념적으로 바라보는 걸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단 좋아하고 싫어하고 이전에 잘 모르구요, 암기했다 한들 그런 걸 찾아 볼 눈도 없거니와 그런 식의 프레임이 인디영화를 '고상한 지식인과 아티스트들이나 즐기는 마이너하고 배고픈 것'으로 규정하는 느낌이 드는 게 싫기 때문입니다. 어느 판에 있든 상관없이 영화 감독이란 직업이 이야기꾼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누군가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중요하지 자기 철학을 관객에게 학습시키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을테니까요. 해서 일자무식인 저답게 보이는 그대로를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 2.

 

가지고 싶은 남자가 있습니다. 영화감독인 여자는 남자를 불러서 인터뷰를 진행하죠. 지글거리는 어묵탕을 가운데 놓고 여자는 첫 질문을 던집니다. "자위는 하세요?" 당황하는 남자에게 매력적이라는 둥 멋있다는 둥 솔직하고 대담하게 하룻밤을 유혹하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볍게 보이고 싶어하지않는 밀당도 놓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런, 진혁은 애인이 있었네요. 진혁은 자신을 유혹하는 가영의 흑심을 알아채면서도 나름의 의리를 단호히 말합니다. 그런데 또 자리를 뜨지는 않아요. 술을 마시며 인터뷰를 진행하는 진혁은 어떤 생각으로 앉아 있었을까요. 돈을 받았으니까? 진짜 그것 때문에 그 자리를 뜨지 못한 걸까요? 글쎄요, 이 지점도 흥미가 없지는 않지만 딱히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누가 뭐래도 이 영화는 여자, 가영의 영화니까요.

 

영화를 쓰는 가영에게 시나리오는 안중에 없습니다. 여자는 그저 진혁을 불러내고 싶었으니까요. 노골적인 질문을 던지고 당황하는 남자를 사랑스런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여자친구가 있다는 진혁의 말에 실망이 얼굴을 스치지만 이내 다시 유혹을 시도합니다. 애인이 있는 상태로 바람을 필 수 없다는 말을 단호히 하는 남자에게 상처받습니다. 밤은 술병의 남은 술처럼 줄어들고 그에 반비례해 취기는 깊어갈수록, 가영은 조금씩 더 노골적으로 다가가고 조금씩 더 비참하게 까입니다.

 

 

 

 

 

 

# 3.

 

영화는 런타임 내내 사랑을 이야기 하지만 임자있는 남자에 대한 순애극의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주인공 가영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기보다는... 뭐랄까요, 외로운 사람에 조금 더 가까워 보입니다. 그렇다고 고독이 내면화 되어 발버둥 치는 그런 사람이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누구랑이든 상관없이 잠만 자면 그만인 사람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죠. 가영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 난해한 배역을 감독이 자처합니다. 변태같아요. 감독은 즐기고 있습니다. 섹스나 자위 따위가 아니라, 그런 얘기를 듣는 사람의 당혹스러운 반응이 아니라, 고백하고 까이는 비루함이 아니라, 이런 이야기를 다루고 이 이야기를 둘러싼 인물들의 멘탈리티를, 그 내면을 들여다보는 걸 감독 본인부터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달됩니다. 감독 겸 배우 정가영 특유의 개구진 표정에서 이 작업 전체가 재밌어 죽겠다는 게 스크린을 넘어 순간순간 삐져나옵니다.

 

 

 

 

 

 

# 4.

 

물론 인디영화 특유의 거친 느낌이 보이긴 합니다. 화려한 장비로 촬영된 대중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겐 위화감을 주기에 충분하죠.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지도 않고 서사로서의 볼륨도 없습니다. 영화의 리듬감은 카메라 구성에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가영의 어깨 넘어 가영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진혁, 클로즈 업되어 비춰지는 가영, 선을 넘는 순간의 순간적인 적막을 비추는 풀샷을 오가며 정적인 상황의 지루함을 달래려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남자는 배우이지만 여자는 감독이라 연기의 질감이 달라 좀 불편하기도 하고, 공간도 디테일이 살아있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그래서 인디영화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이라면 어느 정도의 관대함은 필요합니다만, 그런걸 감안하더라도 런타임 내내 이 여자 가영의 멘탈리티를 들여다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감독 정가영과 배우 정가영의 찌질하고 비참한 그럼에도 묘하게 섹시한 그날 밤. <밤치기>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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